|
나는 공동체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셀이나 가정교회와 같은 세련된 이름이 아니라 지금은 잘 부르지도 않는 ‘구역’이 바로 그것이다. 명세기 목사가 심방을 가도 공부기계인 자녀들은 집에 없고, 있다 한들 인사를 하곤 곧장 지들 방으로 들어가 같이 예배를 드리지 않는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자녀들이 모두 구역예배에 참여했다. 물론 지금 추억해 보면 예배는 역시나 지루했다. 인도자는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내용의 일방적 전달했고, 다른 성도들도 눈치를 보니 입도 뻥긋하지 않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듯 했다. 그렇게 모임이 마치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간식시간이었다. 그렇다. 내 공동체의 좋은 기억 8할은 먹는 시간이다. 기껏해야 삶은 달걀, 고구마, 감자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그 시간은 여전히 내게 군침 도는 순간이었다. 공동체의 저력을 확인한 것은 바로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지금처럼 상조회가 활성화 되지 않는 그 때, 장례의 모든 순서를 교회 공동체가 맡았다. 하관을 하는 날, 성도들은 소고기국을 끊여서 짐차에 다 실고 먼 길을 같이 와서 조문객들의 식사를 일일이 책임졌다. 지금도 장례식에 참석할 때마다 난 그 시절 교회 공동체의 수고와 헌신을 떠 올리며 감격한다. 이렇듯 난 교회공동체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 나게 흐뭇하다. 그런데 차정식 교수는 교회를 무조건 공동체로 전제하는 것에 딴지를 건다(376면). 아니 교회가 공동체가 아니면 뭐가 공동체란 말인가? 사실 저자도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었다. 허나 달라진 사회와 그 속에서 더 달라진 사람들을 보면서 또 그 사람들이 몸 담고 있는 교회를 보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공동체성과 너무 멀리 떨어진 현실을 보며 더 이상 교회를 공동체로 보지 않는다. 조국 교회가 초대교회가 가졌던 공동체 이상을 담고 있지 못하기에 더 이상 공동체로 부르기 어렵다는 것이다(27면). 그러고 보니 교회 내 소그룹들이 많이 변했다. 남녀노소유무식을 초월하여 누구든 섞여야 할 텐데 현실은 생활수준, 사회적 지위, 학력이 비슷한 자들끼리 묶어 달란다. 여전히 그곳에서는 성도와 성도간의 만남이 아니라 00교수, 00장관, 00박사란 호칭이 통용되고 있다. 결단을 하고 전체 소그룹 재편 작업을 했으나 외압에 그만 포기한 다락방이 생겼다.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소그룹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소그룹이 또 다른 벽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명분을 그럴싸하지만 결국 조직의 운영을 효과적으로 하는 목적으로 소그룹이 전락해 버렸다. 상황이 이러니 저자의 진단이 맞다. 하여 저자는 성경에서 말하는 공동체성을 추적한다. 공동체적 관점으로 본 성경해석이라고 할까? 학자의 세밀함과 주도면밀함을 가지고 올곧게 밀어 부친다. 가히 공동체 부분에 기념비적 책이라고 하겠다. 그렇기에 공동체에 대한 실용적 담론에 머물러 있는 조국 교회가 이 책을 통하여 든든한 이론적 배경도 동시에 견지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여전히 성경적 공동체가 이 땅에 소망이며,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도구임을 증명했으면 좋겠다.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의 수려한 글 솜씨가 오히려 내용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전적 부족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현학적인 문장으로 인해 분명한 이해가 어려웠다. 또한 실천적 대안을 모색한다고 했으나 진부한 대안만 제시한 듯 하여 아쉽다. 공동체의 긴 추적에 비하여 결론적 대안은 조금은 초라해 보인다. |
|
|
나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공동체를 경험해오고 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교회를 오가면서 주일학교와 학생부를 거쳤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위치에 있다. 교회는 새로운 가족이고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주의 소유요 몸 된 지체이다. 성도들은 예외 없이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한다.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교회공동체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교회는 일반사회에서 존재하는 체계적 조직이 아닌 “주께로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 즉, 정체성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차정식 교수는 현대 한국교회가 자본주의의 하부구조에 몸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픔과 고통 속에서 실제적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다. 더불어 그는 보다 선명한 기독교공동체의 토대를 위해서 성경적인 뿌리를 파악하고자 본서에서 집필했다. 성경이론이 토대위에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한 기초다지기랄까? 그의 연구는 신학적 토대를 넘어서 철학과 역사, 심리학까지 망라하는 백과사전적 방식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공동체와 당시 배경을 형성한 이웃공동체와의 소통과 주고받은 영향들을 기술해나간다.
기독교공동체의 성경적 기원을 찾아간다. 성경적 공동체란 세상과 구별된 독특한 공동체를 의미한다. 에덴에서의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공동체에 대한 개관은 노아시대의 열린 공동체와 탈주공동체를 형성한 아브라함, 터다지기의 이삭, 조부의 걸음을 역류한 유랑공동체, 이어진 출애굽사건과 광야공동체를 다룬다. 사사시대의 부족들의 자율에 기초한 느슨한 공동체와 비극적 사건들 속에서 이방에 대한 포용을 담고 있는 『룻기』, 왕정시대를 통한 국가공동에의 강력한 체계와 이로 인해 파괴된 공동체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예언서에 담고 있는 묵시적 희망공동체는 다분히 종말론적이다. 스가랴의 새로운 신정통치체제의 구축이나 이사야의 자연의 질서까지 화평을 회복하과 사망의 사망이 이루어지는 미래를 희망한다.
중간기로 알려진 때에 나타난 메시야 대망의 사상과 디아스포라와 회당공동체, 쿰란과 테라퓨테공동체 징검다리 역할, 사복음서에서 선포된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로 혈통을 넘어 유무상통의 은사중심의 교회공동체의 흐름을 개관한다. 저자는 결론에서 무의미한 논쟁과 세포분열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공동체의 새로운 공통적인 것의 재발견을 권한다. 창발적인 새로운 토대발견을 찾아나가라는 촉구다. 공동체의 규모가 비대화되면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기 쉽다고 경고한다. 성장이 교리가 되어버린 한국교회에 대한 따끔한 비판이다. ‘환대의 구멍’을 통해 타자를 수용하는 공동체형성에 있어 양적팽창은 가장 멀리해야 할 적인 셈이다.
부단한 성찰을 통해 공동체의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더불어 ‘희락의 공동체성’ 회복을 강조한다. 고대부터 공동체의 기초로 이원론적 금욕주의가 지배해 왔다고 비판하면서 주께서는 ‘먹을 것을 탐하는 자요, 술꾼의 친구’라는 비방을 자초하신 분이며,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셨음에 주목한다. 먹고 나눔의 물질성을 부인하지 않아야 하며 희락이 충만한 식탁공동체를 구현해 나가라고 조언한다.
내게는 보다 진보적인 공동체에 대한 담론이다. 그의 공동체론은 내게 급진적인 공동체론으로 비추어진다. 그의 주장은 내게 로널드 사이더, 짐 윌리스와 존 하워드 요더 등과 같은 미국의 급진적 제자도의 느낌을 가지게 한다. 자본주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 끊임없이 고민해야할 교회 공동체에 대한 그의 고뇌는 내게 적지 않은 고민들을 던진다. 더불어 성경적 공동체에 대한 깊은 연구는 큰 자극이 아닐 수 없다. 성경적 지평의 횡으로 오가는 역사적 배경과 철학적 사상의 이야기는 많은 유익이다. 공동체에서 횡적인 형제간의 연대와 환대의 강조와 더불어, 은혜로 선물로 불러내신 주권자 되신 주와의 교통에 대한 균형 있는 강조가 아쉽다. |
|
갈수록 사회가 메말라간다. 답답하고 삭막하다. 사회의 여러 문제들의 근원은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공동체의 붕괴와 해체가 아닐까? 저자는 전통적인 삶의 터전으로서 공동체가 이미 붕괴되었으며, 그 현상으로 인해 사회는 병들어간다고 말한다. 공동체의 붕괴는 한 공동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각 개인과 전체 사회의 안전망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동체’는 무엇인가? 저자는 기독교 교회를 ‘공동체’로 일컫는 추세에 대해서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 구성원들 전원의 흔쾌한 주체적 참여와 사유재산의 개념을 넘어서 공동의 것으로 나누는 전폭적인 나눔, 이를 통한 열린 교제가 없이는 ‘코이노니아’ 정신에 기초한 통속적인 생활공동체로서 교회의 가치는 퇴색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실로 다방면의 공동체를 다루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세상의 거의 모든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해도 무방하다. 공동체의 성서적 기원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2장에서는 크게 정치경제사상사적 맥락과 인문주의적 맥락, 종교사상사적 맥락에서 공동체론의 지형과 쟁점을 다루고 있다. 도가의 자유주의적 전통, 유가의 공동체주의, 헤겔과 마르크스, 존 듀이, 장-뤽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 알폰스 링기스의 타자 공동체, 김영민의 동무 공동체, 가라타니 고진, 김경동, 박삼종과 그들의 견해를 살피면서 공동체의 보편개념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구약과 신약에서부터 공동체의 기원과 유형을 살피고 있다. 아담과 하와의 생태적 부부공동체로부터 시작해서 바울서신에 이르기까지 성경에서 나타나는 공동체의 유형과 발전에 대해서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최근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신약성경의 공동체(마가 공동체, 마태 공동체 등)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견해를 살펴볼 수 있는 것도 큰 유익이다. 마지막으로 성서에서의 공동체의 유형을 다시금 정리하고 조망하면서, 기독교 역사에서 나타난 공동체의 특징과 한계를 알아본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장점은 그 동안 논의되었던 공동체 담론의 전체 지형도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방대하면서도 각 공동체의 특징과 장단점을 명확하면서 간결하게 진단한다. 또한 성경에서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공동체의 모든 유형과 삶의 자리를 알 수 있다. 실제 역사적으로 나타났고 현재 진행중인 공동체를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큰 기쁨이다. 앞으로 이 책은 공동체 연구와 실제 공동체 운동을 모색함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자료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