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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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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행에 맞는 옷을 입지 못한다. 천성이 무난한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용기가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유행을 따라갈 체형이 못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남들처럼 새로운 옷을 입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시도도 해본다. 어색하지만 낯선 신선함…… 그런 것이 느껴질 때 나는, 아직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무난히 읽히는 시에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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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행에 맞는 옷을 입지 못한다. 천성이 무난한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용기가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유행을 따라갈 체형이 못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남들처럼 새로운 옷을 입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시도도 해본다. 어색하지만 낯선 신선함…… 그런 것이 느껴질 때 나는, 아직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무난히 읽히는 시에 먼저 손이 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새로워지고 싶었고, 그래서 자꾸만 신선한 시 쪽으로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김중일 시인은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가문비 냉장고>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그후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를 통해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고양이는 발소리가 없다 왜일까? 고양이는 우연히 발생해서 은밀히 골목을 뒤덮는다’

‘고양이의 몸은 심장의 주인을 좇아 작은 게르처럼 떠돈다’

‘새는 제 그림자인 고양이를 검은 추처럼 지상에 던져놓고, 고양이는 검은 연처럼 새를 하늘 멀리 띄워놓는다’ (<고양이는 새의 그림자> 중에서)

세상에…… 고양이가 새의 그림자니! 심장의 주인을 좇아 게르처럼 떠돈다니! 아, 그래서 고양이가 새처럼 자유로웠구나. 이 시인이 아니었다면 나는 담장을 기웃거리는 도둑고양이만 보고 살았겠구나.

‘비 오는 날 침대 위에 수북이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은 나를 그리던 세필의 흔적. 일생을 떠도는 허밍 같은 나를 스케치한 흔적. 베개 위의 머리카락은 매일 잠에서 깨면 몸 안에서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망령 같은 내 밑그림의 흔적. 나는 잠시 나로 채색되어 있을 뿐. 내가 지난 계절 귀뚜라미의 몸으로 밤새 흥얼거렸던 허밍은, 먼 대륙까지 날아가 잡풀로 무수히 웃자라 있다.’ (<비의 자화상> 중에서)

머리카락이 나를 스케치한 흔적이어서, 나는 머리카락 한 올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다. 밤새 내 꿈속을 헤매다가 나를 빠져나온 것들이고, 나를 가장 잘 아는 것들이어서…… 나는 빠지는 머리카락에 광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씨 미안해요』에 수록된 시들이다. 그의 시를 다 읽고 난 후 무언가를 모두 빼앗겼다는 박탈감에 빠졌고, 한동안 시 읽는 맛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살아갈 사람』이 나왔을 때 나는 젊은 애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처럼 설레고 두근거렸다. 그리고 역시 시인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다는 건 꿈을 빌리고 있다는 것. 너의 감은 눈은 달빛에 깊이 찔린 상처 같다. 너의 긴 속눈썹은 너라는 하얀 주머니를 급기야 꿰맨 자국이다. 감은 눈의 너. 지금 내 무릎을 벤 너라는 주머니 속에는 나와 같은 부피의 죽음이 밀주(密酒)처럼 가득하다.’ (<밀주> 중에서)

나의 속눈썹도 나라는 주머니를 꿰맨 자국이겠구나. 그래서 나는 자루처럼 둥글게 채워지며 살고 있구나.

‘나는 장미처럼 새빨간 석양을 온통 주름투성이 얼굴로 모두 받으며 서 있다. 주름이 얼마나 깊어야 꽃잎이 되는가. 나는 작은 새를 안듯 마지막 장미 한 송이가 날아가버릴까봐 두 손으로 감싸고 있다.’ (<장미가 지자 장맛비가> 중에서)

내 주름은 꽃잎이 되기에 한참 부족하다. 조금 더 살아봐야겠다. 조금 더 치열해야겠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동시에 물구나무서서 땅을 움켜쥔다면

지구를 한주먹의 작은 공처럼 뭉칠 수 있을까

은빛 레일이 있는 승강장 한쪽에 무심히 놓인

환한 달의 휴지통 속으로 던져 넣을 수 있을까

환한 달의 휴지통을 뒤집자 쏟아지는

흰 파지처럼 구겨진 눈 덮인 산맥과 구름

지난 계절 우리가 던진 공은 어느날 돌연

빗방울이라는 아주 작은 공이 되어

떨어질 것이다’

(<중력이라는 아주 작은 공> 중에서)

아침과 저녁, 어제와 내일 사이에는 둥글고 하얀 뼈처럼 붙박인 오늘의 해와 달이 매달려 있다.

내 몸속에 둥근 도르래가 돌아간다. 둥근 머리와 무릎은 나와 공중을 잇는 도르래. 내가 가슴 위로 끌어당겼던 마음들 모두 방향 바꿔 하늘 높이 멀어졌다. 빙글빙글 맴돌며 멀어지는 도르래의 날들. 누군가 간절히 끌어당겼던 숨결은 멀어지고 대신 우리가 여기 태어난 것이다.‘ (<도드래의 날들> 중에서)

‘사과가 땅에 떨어지듯 새가 하늘로 떨어진다 긴 치마를 활짝 펼쳐 사과를 받듯 하늘이 새를 받았다 빗방울이 빛나는 구두코 위에 떨어지듯 새가 저 깊숙한 구름의 모서리로 후드득 떨어진다 볍씨를 흙 속에 파종하듯 새 떼가 공중에 점점이 흩뿌려진다’ (<새를 받았어> 중에서)

그가 구겨서 버린 편지를

빗물에 젖어 퉁퉁 불어버린 편지를 주워

내 머릿속에 슬쩍 넣어 왔다

그것이 바로 지금 나의 뇌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나는 내 영혼의 제삼자

아직도 나는 구겨진 내 마음을 펴서 읽지 못했다’

(<이제와 제이와> 중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또는 볼 수 없는 어떤 것을 보는 사람이 시인이지만, 나는 가끔 양 미간 사이에 다른 눈동자 하나가 더 붙어 있는 시인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남들은 못 보는 어떤 것이 시인의 눈에만 보인다고, 그렇게 믿고 있다. 이 시인을 만나면 나는 눈동자가 아닌 양 미간 사이를 보며 인사를 할 것 같다.

김중일 시인의 시를 읽다보니 내가 제법 잘 차려입고 거리를 나선 것만 같다. 익숙한 것들로부터 잠시 벗어나, 사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s*****3 2016.06.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