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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작품 사랑이 채우다 이현의 연애 서라벌 사람들 (..) # 읽고 나서. 절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우리 집도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명절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전날 자정이 가까울 때까지 늘 명절 준비를 하던 때도 있었고, 조금 나아져 각자 맡은 음식을 따로 준비해서 모이기 시작하다가, 일부는 사는 것으로 대체하다가, 음식 자체를 간소화하다가, 결국은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시대가 바뀐 것도 있고, 의식이 중요한 만큼, 그 의식을 이어가는 것, 혹은 그 의식이 본래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한몫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시대가 이렇게 바뀌어서인지, (비록 이 소설이 오래전 쓰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종갓집에 대한 이야기는 뒤통수를 맞은 것만큼 어이없고 당황스러웠다. 그렇고 그렇게 살아간 윗대를 지나 상룡의 할아버지는 집안에 대한 대단한 잣대와 자존심을 가지고 부와 명예를 세우려 힘쓴다. 그 아래서 기죽어 지낸 아버지는 몰래 나가 다른 여자와 사이에서 나(상룡)를 낳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강압에 못이긴 척 떠나가 버린 어머니 덕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맺어준 부인과 결혼한 아버지는 힘없이 목메어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자식 없이 그 뒤를 따라간 부인 덕에 상룡이 집안의 대를 잊기 위해 불려온다. 군대 제대 후 집안의 과거 이야기가 쓰였다는 '언간'을 해석하는 일을 하면서 그는 집안일을 돌봐주고 있던 달시룻댁의 병신 딸 정실과 정을 나누고, 무모하고 맹목적인 사랑을 돌려주는 정실을 사랑하게 돼버린다. 할아버지는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그들을 떠나게 만들고, 언간에서 드러난 비극적인 사건이 밝혀지며 그들도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달시룻댁이 그나마 제일 제정신이 박힌(?)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쉽게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실망스러웠다. 맹목적이고 무모한 사랑을 돌려주는 정실은, 저것이 진정한 사랑일지라도 도시락 싸고 다니며 말리고 싶을 사랑을 하고 있었고, 자신의 인간다움을 스스로 찾지 못하고 굳이 꼭 상룡을 통해서 찾아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조금은 답답하게 만들었다. 명예,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끔찍한 일들, 지금은 더 이상 없기를 바라지만, 과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냈어야 했을지 모를 작가님의 소설이지만, 지금 읽으니 마냥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에 대해 조금은 신박한 결말이라도 기대했건만, 너무나 손쉽게 그냥 다 태워버리는 결말은, 어쩔 수 없겠다 싶으면서도 아쉬움이 컸다. 1월 독서모임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기억력의 한계. ㅋㅋ 책 보단, 나누었던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독서모임 덕에 지나치게 많이 친 ....)밑줄 나에게 압착의 능력 따위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나는 내 인생을 구성하는 범상한 요소들조차도 하나도 범상하게 거느리지 못했다. 내가 해월당 어머니의 친아들이었다면 할아버지의 태도가 달라졌을까? 존재의 위치라는 개념에 대해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 머리를 떠나지 않던 질문이었다. 가난할지언정 명문가의 후손 다운 몸가짐만은 지켜야 한다는 강박은 일평생 할아버지의 뇌리를 떠난 일 없었고 그 간절한 일념의 바람직한 모범이 되어주지 못한 증조할아버지에 대해서는 거의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품었다. 뱀처럼 차가운 할아버지의 눈길 앞에 서면 나는 항상 개구리처럼 움츠러들었다. 면책의 특권을 등에 업고, 나는 마음껏 뻔뻔스러워질 수 있었다. 나에 대한 충성심과 귀신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정실의 모습은 가학적인 충족감마저 안겨주었다. 나는 네까짓 것에게 상처받지 않아. 네까짓 것들한테 상처받을 만큼 나는 약하지 않다고. 그런 소리를 뇌까리면서, 오래오래 정실에게 키스했다. 정실이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 거대한 살 무더기에 깔려 정신이 아뜩하도록 숨이 막혔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천하 병신 권정실 앞에서 울고 불었으니 사실 죽는 편이 나았다.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없었다. 죽기를 바라는지 살기를 바라는지, 사랑하기를 바라는지 미워하기를 바라는지. 바라기로는 오로지 정실에게서 육체적인 쾌락만 취할 수 있기를 원했건만, 천하 병실 정실조차 다소곳이 동의한 일이었건만, 그마저도 내 뜻대로 디지 않는 듯했다. 나에게 사랑은 하나였고 그건 정실을 향했다. 그동안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지 않았을 뿐, 나는 정실에게 질투와 독점욕, 응석 부리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 등의 일상적인 연애 감정을 모두 느꼈다. 그리고 언제나 한결같이 우직하게 돌아오는 사랑과 믿음의 메아리는 끝없이 목말라하고 두려워하며 의심하는, 내 상처받은 마음에 더할 나위 없는 치료제가 되어주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불신과 배반, 유기와 경멸에 절어 살아왔던 나는 흔히 연애에 동반되는 감정의 줄다리기를 견뎌낼 심적인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근본을 밑바닥까지 알면서도 무조건적이고 전폭적인, 무모하고 맹목적이라 할 수 있는 애정과 신뢰를 보내주는 사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건 정실뿐이었다. 봐라. 이 제사 일이 좀 많고 복잡나. 대대손손 권세 조상 모시는 그거이 다 영광스러운 일이지만서도, 이를 다 주관하는 사램은 참말로 자게 일 아이믄 못하는 기그든. 어른한테는 니하고 이 집안이, 그기 세상 전부라. 그걸 지킨다꼬 당신 일생이 고마 내떤져뿐 거라. 그란데 니가 할배한테 자꾸 엇나가고, 그래 맘에 문을 닫아버리모, 어른 살아온 일생이 너무나 불쌍타. 내는 나이를 무서 그란지 어른이 자꾸 불쌍타. 그래서 내 어른한테도 할 말 다 못 하고 고마 일어섰다 아이가. 정실이를 생각 하모, 어른께 머라고 할 말이 많지마는, 고마 꿀꺽 삼키고 돌아섰다 아이가. 어른 말씀도, 니가 정신만 곧바로 차리면은 정실이를 곱게 내보내주신다 카더라. 종부는 사람이 고르는 것이 아니다. 조상께서 맺어주시는 것이다. 조상들의 가르침을 따라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 기도하는 심정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나는 모멸감과 패배감에 울었다. 담벼락처럼 견고한 할아버지의 전 인식 세계를, 나의 정서와 논리로는 도저히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득했다. 효계당의 주인이자 이 집안의 계승자로 살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사람에게, 아무리 진실이라 한들 이토록 가혹한 결말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 부당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네 생각은 어떠하냐." "진실이 추악합니다." "진실이라." 결국 너는 이 언간을 미끼로 나에게 그 아이를 내놓으라고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니냐? 천근같이 무겁고 중한 것을 희생하여 가장 해롭고 비천한 것을 얻으려 하는 네놈은 더 이상 이 집안의 종손이 아니다. 이 집안은 허황된 무고로 힘없이 넘어질 집안이 아니다. |
| 가족이라는 울타리(엄밀히 말하면 가부장제라 딱 집어 말해야겠지만)가 얼마나 사람을 옥죌 수 있는지 그려낸 이야기였네요...화자가 어린이고 배경이 일반 가정집이었던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언뜻 건드리긴 했으나 차마 다 풀어낼 수는 없었던 지독함을 여기서 작정하고 다뤄낸 것 같기도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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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 매우 감동받아 심윤경 작가님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서 구입했습니다. 같은 사람이 썼나 싶을 정도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요..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닌데 어렵고 생소한 단어들과 사투리를 그대로 글로 옮겼기 때문에 읽기 수월한 책은 아닙니다. 게다가 불편한 장면이나 묘사가 상당히 나와서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진실을 외면하면서도 여인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그들이 진짜로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굉장히 무겁고 며칠동안이나 가슴이 답답했던 소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