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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에 어떤 세계를 구상하여 뚝딱 만들어내는 소설가의 매직봉도 경이롭지만, 해당 작품을 단 하나뿐인 창작물로 돋보이게 하는 평론가의 손길과 영매 역할도 놀랍다.
언어의 마술 피리를 불어 독자를 한 데 모으는 평론가의 자발적이고 독창적인 길안내를 흠모하며 그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매진했다.
아마도 내 생각을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매번 한계와 좌절과 실패를 겪는 사정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아직 나의 글쓰기는 늘 그렇듯이 손에 집었던 달콤한 사탕 알맹이는 온 데 간 데 없이 껍질만 눈앞에 남기는(버려지는) 행위에 그친다.
평론가의 치열한 사유와 고유한 글을 만나며, 나는 내 안의 자기 보존의 욕망과 함께 타나토스를 에로스로 전환하고자 하는 어떤 절실한 갈구는 느꼈다. 나의 비인간-괴물-벌레로의 전락을 막는 구원책이 다름 아닌 어떤 문장의 출현과 그에 따른 매혹임을 새삼 확인하며 나는 안도했던가. 아니 조금 더 쓸쓸해졌던가.
# 세계가 선사하는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나누는 ‘단순한 자유’는 왜 그렇게 누리기 어려운가.
# 폐기되고 망각된 과거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늘 우리와 함께 있다. 다만 그것을 불러내는 일은 지금 이곳의 몫이다.
# 반복 출현하는 세계의 파탄을 그 부분적 증상이나 증후 이상으로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 탈락과 배제의 불안, 공포 앞에서 심화되는 개인의 고립은 유대와 연민, 공감과 관련된 마음의 영토 자체를 앗아가고 있다.
# 세상에 만연한 고통에 눈을 돌리고 발화되기 힘든 약자들의 목소리에 자신의 상상력과 언어를 내어주는 것은 문학 본연의 자리다.
# 시간은 앞뒤와 상하를 알 수 없는 덩어리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 덩어리 앞에서 연속과 균질, 진보만으로 시간의 전체적 진실을 아우를 수는 없다.
#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진실을 지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이 주로 머무는 자리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인간의 경험의 영역이다.
# 우리 시대의 작가들은 저마다 마주친 골목길 모퉁이 틈새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름 없는 가능성들’을 발굴하며 현재와 과거, 미래가 뒤섞인 시간의 덩어리와 씨름하고 있다.
# 불가해한 기호들인데도 여러 번 읽자 어떤 온도가 느껴졌다. -김금희 <센티멘털도 하루이틀>
# 이 한 문장이 눈에 닿는 순간 고압선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