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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적하는 우리들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하는 것은 모두 생각의 소산이다. 우리는 이 생각을 멈추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생각은 자기의 유지에만 관심이 있어서 나와 남을 갈라놓아 남에게 배타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생각을 해야 인간이 되는 줄 알지만 우리 인간은 바로 이 생각 때문에 항상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따라서 생각을 멈추어야 진정한 해방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이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따르면 방법은 없다. 인연이 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어떤 일이든 크게 집착할 필요 없다. ‘그저 그러려니’하면서 수용하면 된다. 그러다가 화가 나면 나는 것이고 기분이 좋아지면 그저 좋으면 된다. 유지 가르침의 역설이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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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초월하는 것은 무엇일까? 깨달음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대답은 누구나 쉽게 말하기 어렵다. 어쩌다 글을 쓰고 말을 해도 이미 누군가 이야기하고 글을 쓴 경우가 대다수다.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이의 생각에 영향을 받아서 앵무새처럼 말하고 심지어 스스로를 속이고 다른 이들을 속인다.
나 같은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생각보다 문제가 있는 편이다. 그나마 조금은 정리를 한다는 마음에 그러한 위험을 감안하고 쓴다.
이 책은 저자가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에 대해서 서술한 책이다. 명상계를 조금은 아는 사람들은 크리슈나무르티라고 하면 지두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동전의 양면으로 불리던 유지에 대해서는 국내의 자료는 거의 없다. 이 책에도 나오듯이 오래 전에 절판이 됐고 최근에 와서야 한 권이 발간됐다.
이 책은 그 유명한 신지학회의 지두에 대해서도 서술하는데 저자는 유지를 지두보다 높은 단계에 있다고 보고 나름대로 서술한다.
유지의 경계에 대해서는 20세기 최고의 스승이라고 저자는 자평하고 그에 대해서 서술한다. 유지의 깨달음은 대단히 간단하고 명료하다.
모든 것은 생각에서 비롯된 헛된 것이다. 모든 가르침에 대해서 부정을 하는데 절대의 영역에서 절대적 부정에 속한다.
그리고 쿤탈리니(차크라) 각성의 경험을 통해서 자연 상태에 도달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생략을 하고 저자는 대단히 그러한 점에서 유지에 매료됐다.
우리나라 선사들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비판을 하는데 나름대로 일리는 있다.(물론 선사들의 뜻은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 좋다.)
재미있게 읽었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명상의 한계를 제대로 이야기한다.
얼마 전에 쓴 의심법과 유지만의 독특한 가르침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사실 의심법도 그렇고 유지의 가르침도 그렇지만 부정이나 의심은 독과 같아서
초보자가 접근하면 반드시 중독되고 죽음에 이른다.(나도 초보자니 부정보다 긍정이 좋다.) 이 책 저자도 말했듯이 지두의 방법을 먼저 택하고 부족한 부분을 유지로 완성하라는 식으로 말한다.
부정보다는 긍정이 보다 좋은 에너지를 발휘하기 쉬운 것을 누구나 아는 사실이듯이 말이다. 차크라(내분비선)에 관한 것들이나 저자에 대한 비판은 글이 길어지니 생략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