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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라투르가 쓴 파스퇴르. 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실망만 가득 안겨준다. 물론 브루노 라투르에 대한 실망은 아니다. 거의 백 퍼센트 번역에 대한 실망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책을 번역했을까? 아니 더 의문스러운 것은, 어떻게 이렇게 번역한 책을 출판사는 출판할 수 있을까? 편집자가 읽어보면 단 한 문장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는데. 아무 데나 펴고 옮겨 본다. “산소의 단순한 흐름에 의한 탄저 배양체 독성의 축소 및 닭 사이에서 똑같은 질병의 촉발인데, 닭은 보통 탄저에 복속되지 않지만 그들이 서늘한 온도에 놓일 때 그것에 걸린다.” (109쪽)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이 문장을 유추해서 해석하면 이런 뜻이다. “탄저균을 공기 중에 여러 차례 배양하면 독성이 감소하면서 닭에서 탄저병이 생기는데, 닭은 보통은 탄저병에 잘 거리지 않지만 서늘한 온도에서는 탄저병에 걸린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끝까지 읽어보려 했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해석하는 것도 벅차고(문명 한글로 쓰인 문장이다), 그렇게 해서 대충의 의미라도 파악되는 문장은 1/3도 되지 않는다. 결국 150쪽 정도까지 가서 포기했다. 번역기를 썼나? 이런 생각도 했지만, 차라리 번역기를 썼으면 나았을 것 같아 보인다. 옮긴이를 보니까 분명 과학철학 전공이다. 그런데 왜 이런 번역을 했을까? 아무리 미생물학, 면역학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어려운 한자말을 쓴 게 문제가 아니라 문장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번역한 느낌이다. 차라리 영어로 된 책을 읽는 편이 낫겠다. 그래도 그나마 좀 이해되는 문장, 중요한 문장 몇을 옮겨 본다(그래도 나도 이 책에서 뭔가를 얻어야겠기에). “그는 모든 것을 했다. 그는 새로운 의학, 새로운 생물학, 새로운 위생학을 재생시켰고, 혁명화했으며, 창조해 냈다.” (40쪽) “한 인간은 그의 천재성만으로 산을 움직이다.” (52쪽) “구식 프랑스 의사 피터(Peter), 그리고 근대적 정신을 가진 독일 의사 코흐. 그들은 파스퇴르에 대해 똑같은 비판을 했다. 부적절하게 명료화된 약간의 사례라는 기초 위에서 그가 성급한 일반화를 했다는 것이다.” (61쪽) “정말로, 한 과학의 엄밀성은 내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93쪽) “”파스퇴르“를 그들의 모든 결정의 옹호자로 전환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위생주의자였다.” (97쪽) “파스퇴르는 집요한 완고함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그의 연구 대상을 계속 바꾸고 있다. 각 시기에 그는 이야기되었던 것보다 덜 혁명적인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그가 들어가는 과학들에 심오한 충격을 배달한다.” (113쪽) “무엇보다도, 그는 결정적인 경제적인 질문을 그의 실험실 문제로 변환했으며 그의 실험과 직접 관련되었던 전체 산업을 포획했다.” (114쪽) 이 문장들도 정말 어색하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미루어 무슨 의미인지는 짐작할 만한 몇 안 되는 문장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