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극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자본이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우리는 선진국과 후진국 등 갖가지 단어를 통해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려 든다. 이러한 차이는 전 세계를 하나로 아우르는 세계화, 즉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함께 더욱 증대될 것이다. 하지만 한 국가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돈’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류에게는 돈으로 구입할 수 없는 역사가 존재한다. 인류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미래에 대해 사람들이 긍정적으로만 평을 하지 못하는 까닭 역시 ‘역사’에 있다. 일본이 온갖 억측을 동원하여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도, 중국이 그토록 유구한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동북공정을 펼치는 이유도 모두 오늘날 우리가 지닌 정체성이 역사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객관적 사실로 존재하되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실체이다. 하나의 국가가 자국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자국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한 국가의 역사는 통째로 다른 국가의 것으로 편입되기 일쑤이다. 일제가 우리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떠올려 보면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잊혀진 이름들로부터 애통함을 느끼는 까닭은 비단 그 국가들이 망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황허강 유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카자흐스탄 국경지대의 카스에 이르기까지, 거대하게 뻗어있는 이 길을 우리는 실크로드, 즉 ‘비단길’이라 부른다. 하지만 비단길이라는 이름이 풍기는 왠지 모를 낭만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 공원으로 인해 깨어지니, 믿을 만한 운송수단이 없었을 당대 상인들이 얼마나 괴로움을 겪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 괴로움이 모여 역사가 되었기에, 자연이 허락한 험난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비단길을 따라 여행을 한다. 기원전 1000년경부터 한 국가의 수도로서 끝없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시안은 중국 역사를 압축해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익숙한 진시황제의 능, 당나라 때 설계된 이슬람 사원인 칭전사 등을 보유하고 있는 시안은 과거와 같은 수도로서의 위엄을 누리고 있진 못하나 여전히 번화한 도시로 남아있다. 하지만 실크로드상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들이 모두 시안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만리장성의 끄트머리가 위치하고 있는 자위관 서쪽의 루위안먼은 과거 서역 여러 나라의 대상인들이 드나들던 관문이었지만 지금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길의 연속일 뿐이다. 한때는 꽤나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을 베제클리크 천불동의 일부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풍화되었다면, 풍성한 불교문화를 구가했던 가오창 왕국의 흙벽돌들은 모두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고고학을 들먹이며 수많은 문화재를 해외로 반출한 사람들에 의해 화려했던 문명의 알맹이는 많은 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서글픈 것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위구르어를 사용하고 생김새 역시 중국인과는 전혀 다른 위구르족 사람들과 흉노, 말갈, 돌궐 혹은 몽골 등의 피를 지녔을 이들이 가졌을 정체성은 어떤 것일지… 1930년생의 저자가 여행하기에 비단길은 다소 험난하게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년 퇴임한지도 어언 9년이 넘어가고 있는 대학교수인 그에게 이번 여행은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비록 혼자 하는 여행이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습득했을 연륜을 통해 중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함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극복했다. 배낭을 짊어지고 그렇게, 인류 문명이 잠들어 있는 도시들을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으로부터 나이는 이미 읽을 수 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