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러시아나 중국 혁명은 다루기에 너무나 위험하고, 쿠바등 제3세계의 혁명은 너무 공간적인 거리감이 느껴질 때, 프랑스 혁명이 하나의 대안으로써 젊은 세대 사이에 널리 유행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1989년 혁명 200주년을 정점으로 프랑스 대혁명은 더이상 대중적인 관심을 끌지 못하고, 마띠에, 르페브르, 소불 등의 기념비적인 저작들도 대형서점의 서가에서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 즈음에 프랑스 대혁명의 실천적, 사상적 중심인 로베스피에르의 평전이 번역,출판된 것은 의외의 사건이라 할만하다. 로베스피에르의 생애를 그와 결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프랑스 대혁명의 전개과정과 함께 엮어놓은 독특한 구성의 이 책은 1956년(1970년 2판)에 출간되어 다소 낡은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바도 있지만, 그때까지의 연구성과를 충실하게 반영한 역작이라 생각된다. 로베스피에르를 대하는 프랑스 국민들의 태도에 대하여 저자 장 마생은 머리말에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활동가들 중에는 훨씬 더 의미심장한 두 범주가 있다. 파리의 거리에 자신의 이름을 제공한 이와 그 이름이 결코 편지 봉투에 쓰이지 않는, 다시 말해 거리에 이름을 제공하지 않은 이가 그것이다." 반역죄가 분명한 라파예트도 수도의 가장 넓은 도로에 이름을 얻었고, 양다리 걸치기를 시도한 미라보도 가장 낭만적인 다리에 자신의 이름을 걸었으며, 사상성이 조금 의심스러운 당통도 중심가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거리를 갖게 되었다. 그외 소소한 역할을 한 많은 혁명가들도 대개 걸맞는 지명이 되었지만, 대혁명의 중심에 선, 그를 제외하고는 혁명을 논할 수 없는 로베스피에르의 이름은 거리에도, 학교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저자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 화두를 던지면서 글을 시작하였는데, 이제 일독하고난 첫 느낌은 로베스피에르가 던지는 불편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즉, 이 부패할 수 없는 혁명가는 너무도 순결하였기에 도덕적 기준이 그에 따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낙천적이고 쾌활하면서도 윤리관념은 약간 떨어지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프랑스 민족에 있어서랴! 저자의 시각은 다분히 親로베스피에르的이라 할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선입견을 갖고 있는 피의 복수에 대하여 상당히 그의 역할을 축소하고 있으며, 어쩔수 없이 그가 책임을 부담해야 할 행위에 대하여는 그 불가피성을 변론하고 있다. 상당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진 국민공회나 공안위원회에서의 활동, 변호와 증언을 무력화시킨 '프레리알 22일의 법'(종국에 로베스피에르 자신이 이 법의 희생이 되지만) 제정에 있어서의 책임도 (위원회의 다른 성원과)나누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광란사태를 막으려 애썼으며 그의 노력에 따라 목숨을 구한 사람도 있다고 주장한다. 아마 부분적인 진실도 있으리라. 로베스피에르 자신이 이미 역사의 패배자인 고로 그를 껄끄럽게 생각했던 세력이 그를 모든 악덕의 원흉으로 돌려세우는 음모를 막을 수 없지 않았겠는가. '혁명의 탄생'이란 부제는 '로베스피에르의 변명'이라 바꾸어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그의 '변명'도 필요하다. 그는 법에 따라 변론하지 못했으며, 순발력에 있어서 다소 뒤떨어지는 그의 감수성으로는 변론은 커녕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명확히 판단할 시간조차 부족했을 것이다.(1794년 7월 26일 체포 논의, 27일 체포, 28일 오후 처형) 로베스피에르의 실패는 1794년 국민공회 활동에 있어서, 산악파 중의 극좌파인 에베르 파의 숙청으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극단적인 통제경제를 주장하는 에베르 파의 입장을 부르주와지 출신의 로베스피에르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반대파와 공존할 수 없는 정치적 현실 아래서 그들을 외국과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로 단두대로 보낸다. 그와 함께 로베스피에르가 딛고 섰던 사회경제적 토대인 파리 쌍퀼로트의 지지기반도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 뒤에 테르미도르 반동에 이르기까지는 그냥 관성에 따라 조금 더 진행되었을 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조금만 더 현실감각이 있었다면 그 전에 혁명의 향배를 예측하고(아니면 결정하고) 과격파(左)인 에베르 파나 관용파(右)인 당통 파, 둘 중에 하나와 연합하여 혁명의 완성할 것을 꾀했어야 했다. 하지만 얼떨결에 양쪽의 정적을 완전히 제거한 로베스피에는 '최고존재'를 위한 축제 따위의 엉뚱한 일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만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그들은 너무나 순수했고, 혁명의 거대한 하부구조인 사회경제적 토대를 장악하기에 그들은 너무 젊었다. 단두대에 선 로베스피에르는 36세, 그의 가장 절친한 혁명의 동지인 쿠통은 39세, 너무나 매력적인 젊은 생쥐스트는 겨우 27세(!)에 불과했다. 그들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그들의 혁명을 향한 열정, 천재적인 통찰력, 불굴의 실천의지는 인류역사의 진보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가까이는 마르크스,레닌에서부터 근자의 체 게바라, 넬슨 만델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진보세력은 그들에게 사상적인 빚을 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전기는 대혁명기의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산악파에 대하여 기존의 역사학적 지식과 다른 참신한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다. 또한 무미건조할 수 있는 로베스피에르의 삶(책 중간중간 등장하는 그의 연설문은 얼마나 지루한가)을 대혁명의 사건 경과와 함께 짜나가면서 역사소설 이상의 생동강 넘치는 서술을 이루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책을 읽어나가며 앞뒤에 수록되어 있는 부록들을 활용한다면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전반적인 조망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흑백 도판이지만 중간중간 적절히 삽입되어 있는 인물과 사건들의 삽화는 이 책을 더욱 빛내고 있다.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말미에 수록된 '프랑스 혁명의 주요인물' 해설이다(가나다順 이다). 책의 외관은 두툼하고 무게가 있으며 로베스피에르의 멋진 초상화가 가운데 들어선 표지도 수려하다. 역사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서가 한쪽을 장식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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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 피에르..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왠지 피냄새가 난다.. 물론 그 냄새는 공포정치, 학살, 기요틴에게서 풍겨나오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 피냄새는 혁명을 끝까지 완수하고자 했던 그와 그의 동료들의 끓어오르는 육체 너머로 피어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바로 짧은 일생을 혁명과 함께 했던 그들을 위한 송가이다..
90년대 중반에 학교에 들어와서, 그 해 여름 처음 접했던 프랑스 혁명사는 그 뜨거운 여름 내내 나를 중독시켰던 주제였다. 구체제의 모순, 그리고 왜 혁명은 1789년 프랑스에서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는가.. 초기 혁명의 진행과 좌절, 제 2혁명의 발발과 공화국, 혁명의 내적 모순, 나아가 제 3혁명으로의 길과 혁명의 몰락.. 드라마틱한 사건사건들과 너무나 매혹적인 혁명의 주인공들,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생쥐스뜨.. 특히 20대의 생쥐스뜨가 국민공회 연단에 서서 프랑스, 나아가 전유럽을 향해 "혁명은 유럽에서 새로운 사상"이라고 외쳤을 때, 나는 숨을 죽이며 다음 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프랑스 혁명사는 학회 세미나의 커리였다..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 <프랑스 혁명사>, <프랑스 혁명 이후의 유럽정치사> 등등 1학년이 소화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빽빽한 커리들.. 그리고 평등이란 무엇인가? 자유와 평등은 양립할 수 있는가? 공포정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민중의 역량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등등.. 지금 생각하면 하나도 제대로 답할 수 없는 물음들을 던지면서 치기어린 감상들을 쏟아내던 시기였다..
최근 <로베스 피에르, 혁명의 탄생>을 읽고 있노라니, 그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다시 아른아른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때의 나도 이제 나이 서른을 훌쩍 넘어버렸고, 이제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책을 꺼내 읽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물음들에 대해 치기 어린 답변을 할 수 도 없는(끊임없이 주저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 책은 바로 그 시절의 생생한 감동을 다시 내게 던져주었다..
저자는 혁명의 전시기 로베스 피에르의 궤적을 밟아나가면서, 공포정치, 단두대, 학살의 그늘에서 그를 구해내고자 한다.. 그의 이름 앞에 항상 따라 붙는 "부패할 수 없는"이란 형용사는 전시기 반혁명과 음모로 점철되었던 프랑스 혁명사에서 그의 위치를 더욱 굳건히 해준다. 나아가 저자는 지롱드파와의 대립, 에베르파, 관용파(특히 당통)와의 대결 등을 상세히 그려내면서, 로베스 피에르가 결코 맹목적인 원칙론자가 아닌, '살아있는' 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준다. 한때 혁명의 동지가 혁명의 적이 되는 가슴아픈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가 겪었을 고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대의명분을 따르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저자는 로베스 피에르의 연설문들을 통해 훌륭하게 형상화한다..
이 책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로베스 피에르를 위시한 18세기 혁명의 수행자들은 깨닫지 못했을 혁명의 내적 모순의 진정한 원인, 즉 18세기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793년 7월 공공교육위원회에서 자신의 마음을 담아 그의 벗 르펠르티에의 보고서를 낭독한다. "3년 전부터 진행된 혁명은 다른 여러 계급의 시민들을 위해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진 것이라고는 노동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빈곤의 혁명이 있습니다"
로베스 피에르를 비롯한 18세기 산악파들이 가졌던 사회민주주의적인 진지함, 유토피아적 이상주의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계몽주의의 아들, 나아가 루소의 아들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사회정치적 문제는 우선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오직 '계몽'의 확산으로 해결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공화력 2년 말 빵과 최고가격을 요구했던 상퀼로트와 에베르 파의 요구에 대해 온당한 답변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로베스 피에르는 공화국의 덕성을 주장했지만, 그 덕성은 바로 밑바닥을 이루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야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로베스 피에르의 개인적인 한계라기보다는 18세기의 한계인 것이다. 로베스 피에르의 연설 곳곳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려 하는 의지가 엿보이지만, 그 의지는 다시 한계라는 장벽에 가려진다. 테르미도르 반동은 로베스 피에르가 거둔 승리 자체의 '변증법적 대응물'일 뿐이다. 저자는 이 한계를 돌파하는 임무를 바뵈프에게 나아가 19세기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게로 넘긴다.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한 인물에 대한 '평전'이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사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인물들의 모든 면모들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는 없다(만약 이 부분에 관심이 있다면 소불의 <프랑스 대혁명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책은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인물,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인 로베스 피에르에 대한 책이다. 혁명사의 주요 주제들, 예를 들어 1789년 인권선언의 의미, 91년, 93년 헌법의 성격, 그리고 빠트릴 수 없는 상뀔로트의 성격에 대한 문제들은 이 책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 이 하나하나의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책들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영웅전을 쓰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말한다. "몇몇 순간에 혁명의 가장 위대한 인물들이 모두 소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거나 가장 중요한 시간에 수동적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데 머물렀다는 것은 혁명사가에게,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의 전기 작가에게는 더욱 의미심장한 일이다." 로베스 피에르(당통, 마라, 생쥐스트 등등)가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기는 하지만, 혁명의 고비고비마다 그 위기를 극복하고 넘어섰던 힘은 이들 소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이름 없는 민중들에게 나왔음을 저자는 결코 잊지 않는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들 주인공들은 바로 그 힘을 인정하고, 그 힘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린 주체들일 뿐이다. 혁명은 결코 "단지 몇몇 선수들이 말을 옮기고, 공격을 계산하고 반격을 선택하는 장기 시합"이 아닌 것이다.
로베스 피에르에 대한 평전의 밑바닥에는 혁명기를 내달았던 민중들의 열정,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살아숨쉬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름 없는 그들에 대한 송가이기도 하다. (마지막 구절은 글자 제한때문에 인상깊은 구절에 싣기로 한다)
[인상깊은구절] 역사는 여전히 존재하는 이러한 위험을 경계하라고 우리를 가르친다. 어떤 순간에 로베스피에르의 재능은 상테르, 알렉상드르, 국민방위대의 어떤 포병, 어떤 연맹군 병사, 포부르들의 어떤 상퀼로트만큼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지성 이상으로 다른 요인이 나름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요인이란 우연이 아니라 민중이다. 8월 10일의 봉기의 성공에서 우연은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혁명적 봉기들 중 이보다 더 오래, 더 체계적으로, 더 공개적으로 준비된 것은 별로 없다. 그것은 로베스피에르의-또는 마라의- 위대한 정치적 용기, 위대한 지성이 민중의 집단적 의식과 영웅적 행위가 없었더라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믿음을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로베스피에르의 위대함은 전적으로 최선을 다해 민중을 계몽하면서 민중의 힘을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308). 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합니까? 누가 사후에 민중봉기의 흐름이 중단되어야 했던 지점을 표시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값을 치르며(외부에서 정해준 지점에서 봉기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 어떤 국민이 전제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봉기 가담자들은] 사회 전체를 위해 암묵적으로 위임받은 대리자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승리를 위해 우리가 사용한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그 승리의 결실을 우리에게 남겨주십시오. 여러분의 헌법과 여러분의 모든 옛 법들을 되찾으십시오. 그러나 공공의 대의를 위해 죽은 우리의 동료 시민들, 우리의 형제들, 우리의 아이들을 돌려주십시오!..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너진 왕좌와 새로이 태어난 공화국을 두고 맹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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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물을 통해서
프랑스 대혁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은 단 몇 사람의 생각과 행동으로 이해할 만큼 단순하지도 않다. 한 사람의 행적을
통해 프랑스 대혁명을 이해한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것처럼 어느 한 부분만을 확대해서 해석하는 잘못을 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대혁명에서 로베스피에르라는 인물을 깊이 들여다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로베스피에르가
담당했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따라서 그를 통해서 프랑스 대혁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망상과도
같은 억지만 부리지 않는다면 프랑스 대혁명의 아주 중요한 면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로베스피에르를 얼마나 알고 있나.
로베스피에르라고 하면, 바로 붙어 다니는 말이 있다. 바로 ‘공포정치’.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기요틴)에 올려 목숨을 앗아간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정치가쯤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지금도 로베스피에르와 비교하거나 공포정치라는 딱지를 붙이면 더할 나위 없는 모욕, 혹은 협박쯤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는 왜 공포정치를 펼쳤을까? 그는 정말 권력욕의 화신이었으며,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생각해
마구잡이로 처단했을까?
사실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그의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현실 인식은 어떠했을까? 분명히
프랑스 대혁명의 대의를 수호하고자 했을, 그의, 쟈코뱅의
공포정치는 어떤 사회를 꿈꾸었을까? 또한 그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 젊은 나이에 프랑스 대혁명을 대변하는
위치, 혁명의 지도자로 떠오를 수 있었을까?
장 마생은 로베스피에르를
변호한다.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서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며, 프랑스
대혁명의 대의를 지키는 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으며, 당대의 시대적 한계를 갖는 인식을 가졌지만, 그 와중에서도 가장 진취적인 이상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 바로 로베스피에르였다는 것이다. 절대 부패하지 않을 인간, 바로 로베스피에르.
혁명 초기 로베스피에르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아니었다. 삼부회에서 제3신분의
대표로 선출되었지만, 테니스코트 선서에서 마흔 다섯 번째로 서명할 정도였다. 그러나 루이 16세의 국외탈출 시도 이후 반혁명 시도가 잦아지면서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의 지도자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그의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마라, 당통과 같은 인물과 함께였다. 그리고 지롱드파를 숙청하고, 격앙파까지 숙청하면서 권력을 쥐게 되는데, 권력 자체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의 대의를 위한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게 장 마생의 시각이다. 공포정치는 말을 그렇게 만든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동료(생쥐스트 같은)에게 상당 부분 책임이 지워지는 것은 맞지만, 그 공포정치가 이 이전과
그 이후의, 이름 붙여지지 않은 공포정치보다 더 공포스럽지 않았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궁극적으로 역사의 패배자로서 공포정치의 망령을 뒤집어쓰고 있는 셈이다.
그는 혁명을 탄생시킨
인물이 아니다. 그는 혁명을 유지하고자 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단 몇 년 간, 테르미도르 쿠데타에 의해 실각하고 바로 처형당한 로베스피에르를 통해서 프랑스 대혁명을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그를 통해서만 프랑스 대혁명을 바라보고자 한다면, 오히려 거대한 민중의 물결은 언급하지 못할 수가 있다. 이 책도
로베스피에르만을 따라가다보니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시킨 시대적 배경과, 민중들의 요구, 행동, 국제적 반응 등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족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로베스피에르 한 사람만을 쫓아간 이 책이 모두 700쪽이 넘는 걸 보면, 프랑스 대혁명을 온전히 서술하고자 한다면
얼마나 많은 분량이 필요할지는 상상이 가질 않는다.)
여전히 로베스피에르는
‘문제적 인간’이다. 부르주아로서
부르주아 혁명이었던 프랑스 혁명에 뛰어들어 최고의 위치까지 올랐다 하루아침에 몰락한 인물. 절대 악명을
자신의 수식어로 가지고 기록된 인물. 그러나 이후의 혁명에서는 이념적 나침반이 되기도 한 인물. 그는 민중들이 환호하는 인물이었으나, 그 환호에 도취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40년도 살지 못한 그를 이해하는 데 이 두꺼운 책도 여전히 부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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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중심 인물인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기획자이자 실행자 이지만 자신이 만든 단두대에 자신의 목이 잘리는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5년의 기간동안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는 혁명의 드라마를 생생하게 눈앞에서 보고있는 듯한 잘 쓰여진 고전 전기이다. 책도 두껍고 내용이 다소 복잡하여 읽기 쉽지 않았지만 재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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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혁명, 민주주의 혁명, 자본주의 혁명, ..
21세기를 거처온지금 우리 인류에게는 얼마나 많은 혁명들이 잃어났겟는가
작게는 우리주변의 학교,가족등으로 부터 크게는 국가와 인류를 바꾸워놓는사건
그것이 바로 혁명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의 기록자인 '승자'의 기록을 좀더 해부하고 그에대한 역설과 반론
을 대하는 식과 그당시의 주변상황을 기록해준다.
로베스 피에르를 읽다보면 구한말 '김옥균' 이생각날것이다.
'3일천하' 로 유명한 인물이다.
나라를 옳바르게 잡고자하는뜻은 혁명의 이념의 기본이 되나
그 결과에 따라 인물을 평가하는 역사를 비난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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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이라하면 연도밖에 기억을 못했었다. 그리고 이름, 로베스 피에르 정도? 나폴레옹? 예전에 프랑스에 혁명이 있어서 왕을 처단했다더라... 라고만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세계사의 한 사건이다. 그리고 작년 초의 국내 분위기에 힘입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막연하게 알던 혁명의 세세한 내용및 흐름, 그리고 그 중심에 로베스 피에르라는 걸출한 혁명가. 술술 읽히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 방대한 내용들이 집중을 방해하기도 한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다시 한번 찾아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