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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조를 빙의한 마오쩌둥의 후난 길-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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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초한지가 많이 생각났다. 한고조 유방이 패현에서 군사를 일으켜 진승, 오광의 난에 동참하고 당시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까지 공격해 들어가면서 군사력을 키웠던 과정과 천하를 놓고 항우와 쟁탈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던 일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결국 장량, 소하, 한신 등의 도움으로 해하성에서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의 기업을 세우면서 입지를 굳혀나간 유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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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초한지가 많이 생각났다. 한고조 유방이 패현에서 군사를 일으켜 진승, 오광의 난에 동참하고 당시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까지 공격해 들어가면서 군사력을 키웠던 과정과 천하를 놓고 항우와 쟁탈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던 일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결국 장량, 소하, 한신 등의 도움으로 해하성에서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의 기업을 세우면서 입지를 굳혀나간 유방이 권력에 위험 요소가 될 자신을 도왔던 조력자들을 제거하고 황제의 위를 공고하게 해나가는 과정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오쩌둥에게 유방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길 위에 서 있다. 마오쩌둥이 걸어온 역사적 궤적을 따라 걷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마오쩌둥의 모든 삶들이 녹아 흐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의 평생을 차근차근 펼쳐 보이고 있다. 처음은 마오쩌둥과 그의 절절한 친구였던 국민당 간부로 활약한 샤오위의 무전여행으로 이야길 전개하고 있다. 방학을 맞아 난관 극복의 일환으로 둘은 동가식서가숙하면서 여행에 임한 것이다. 이 여행에서 둘의 성격과 어려움에 임하는 자세 등이 잘 드러난다. 저자는 이들의 여행을 생각해 보면서 그들의 행적을 뒤쫓고 있다.

 

이 때 마오는 이미 한고조 유방을 통해 그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내보인다. 그리고 토사구팽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도 내보인다. 이런 생각들이 바탕이 되어 그의 권력이 나아가는 길에서 정적들에게 그렇게 냉혹하게 처신한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된다. 류사오치를 실각시키고 그의 아내에까지 말 못할 고통을 안겨준 일이라든지, 국민당과 싸우는 과정 속에서도 공산당의 힘을 약화시키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정적을 제거한 일들은 그의 권력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잘 내어 보이는 일들이다. 이 책은 그런 그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 잘 표현되어 있다.

 

책은 ‘붉은 길’로 명명된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과정이 녹아 있는 곳곳에 대한 여행객들이 지금 넘치고 있는 상황을 얘기한다. 요우커(여행객)들이 중국혁명의 성지를 찾아나서는 모습을 말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그들을 홍커라 한다. 마오쩌뚱, 류사오치 등 인민들의 우상이 된 인물들과 그들이 생활했던 터전을 연계해 그들을 기리고 참배하는 형식을 지닌 여행자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중국 국내 여행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혁명 성지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하면서 그들의 관계를 조명하고 역할과 결과 등을 생각해 보고 있다. 마오쩌뚱의 고향 마을 샤오산, 혁명 과정에서 처음으로 소비에트 건설에 성공한 징강산, 중국공산당의 역사적인 중앙 홍군이 처음으로 대정정에 나선 소도시 루이진,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가 열렸던 구이저우성 ‘쭌이’, 대정정을 마친 중앙홍군과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혁명 근거지를 마련한 엔안, 중국 국민당군과 최후의 일전을 치른 핑산현의 ‘시바이포’ 등의 혁명 성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도시들의 모습과 활동했던 인물들을 조명하고 있다. 이 장소들이, 이 인물들이 지금 붉은 여행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을 돌아보면서 인물들의 관계 및 활동을 소상히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공산주의의 성장을 자세히 들려주면서, 마오쩌둥의 행적을 자세히 제시한다. 그의 꿈과 욕망을 공산당을 통해서 실현하는 과정을 들려준다. 그 가운데 고향 후배였던 류사오치는 큰 역할을 감당한다. 마오쩌둥은 권력을 잡고 국가 성장을 위해 대약진 운동을 전개한다. 대약진 운동은 우주 개발, 군사력 강화 등을 목적으로 하여 세계의 대국으로 올라서는 일이다. 하지만 이 대약진 운동은 수천만의 인민을 굶주림에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온다. 국가 경영에 크게 실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마오쩌둥은 주변들에게 주석을 내어놓아야 할 위기에 몰린다. 그 상황에서 주석을 인수한 후계자가 류사오치다. 마오쩌둥은 자리는 물려주지만 권력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류사오치의 힘도 강해져 가고 한 나라에 두 하늘이 있게 된 상황이 된 것이다. 마오쩌둥은 문화혁명을 통해 류사오치에게 경계의 화살을 날린다. 그러면서 절치부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황제의 자리를 넘보면서 마오쩌둥의 자리를 넘어서려고 했던 류사오치는 그 경고를 무시하다 마오쩌둥의 군사력 앞에 낭패를 입는다. 그리고 다시 권력을 빼앗는 과정에서 류사오치를 죽음을 내몬다.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증명해 주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음식으로 붉은 고추 한 접시를 꼭 먹는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역경을 이겨나가는 상징물처럼 여겨진다. 나중에 홍사오로우라는 음식도 마오쩌둥을 기념할 수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가 좋아 했고 혁명 과정 속에서 함께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음식들을 통해 마오쩌뚱은 혁명가 이전에 야심가라고 말하고 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란 말은 그가 넉넉히 제시했던 말이다. 후난의 혁명도시 ‘창사’, 사범학교를 다닐 당시에 꿈을 키우고 추수봉기의 주 무대 곳이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마오쩌둥은 군대를 가지게 된다. 저우언라이를 중심으로 일으킨 봉기를 지도하는 입장으로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공산당이라는 배경의 힘이 생겨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항일 운동과 국민당 견제라는 이중의 일들을 이루어나가면서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이 후난에서 일어났고, 후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들어 졌다. 그러기에 후난을 빼어놓고는 혁명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한다. 당시 궁산당의 주요 인물들이 거의 이곳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다. 화밍로우 류사오치, 저우언라이 국방장관 펑더화이 등이 그들이다.

 

중국 인물들의 이름은 어렵다. 한자의 우리말 읽기 식으로 읽다보니 중국어 발음으로 인명이 표현되면 어려워진다. 지명 이름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원 발음을 중심으로 인명 지명을 표현하고 있다 보니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는 우리말 식 표현이 되면 더 빨리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차피 번역하는 글이라면 지명, 인명 등은 우리말식 발음으로 표현해 주면 책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주은래라면 익히 들어오던 이름이다. 그런데 저우언라이라 하면 글 읽기에 있어 이름 기억하는데만 많은 정력을 소모한다. 책읽기가 한결 어렵게 다가오는 것이다. 조금은 읽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책을 통해 마오쩌둥의 욕망과 중국 공산당의 성장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감사하게 읽었다.

j****3 2015.05.29.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중국인민들과 마오쩌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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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이야기 2015-116   『후난 마오로드』 서명수 / 나남     ‘홍커’(紅客)   지금 중국은 붉은 색의 새로운 흐름이 있습니다. ‘홍커’(紅客)입니다. 중국 혁명의 성지를 찾아 나서는 여행객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들이 찾는 대표적인 성지는 마오쩌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마오쩌둥의 고향마을이자 옛집이 있는 ‘샤오산’은 10여 년 전부터 마오 주석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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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이야기 2015-116

 

『후난 마오로드』 서명수 / 나남

 

 

‘홍커’(紅客)

 

지금 중국은 붉은 색의 새로운 흐름이 있습니다. ‘홍커’(紅客)입니다. 중국 혁명의 성지를 찾아 나서는 여행객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들이 찾는 대표적인 성지는 마오쩌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마오쩌둥의 고향마을이자 옛집이 있는 ‘샤오산’은 10여 년 전부터 마오 주석의 혁명 흔적을 찾아 나선 붉은 여행객들로 넘쳐나고 있답니다. 붉은 여행 열풍은 마오쩌둥 주석 탄생 120주년을 맞이한 2013년 12월에 절정에 이릅니다. “마오 주석의 생가가 있는 후난성 샤오산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1천만 명을 넘어섰고 전 중국의 붉은 여행객이 8억여 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제시됐다. 이에 2년 앞선 2011년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빚어졌다.”

 

 

중국 현대사 속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현대사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을 제외하면 뭐가 남을까요? “중국을 모르면 세상의 절반에 대해 눈을 감는 것과 같다. 그것은 마오쩌둥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신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의 중국, 중국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마오쩌둥과 중국인의 관계를 이해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중국의 붉은 여행은 우리나라의 국토순례 행사처럼 ‘중화주의’라는 애국심과 중국식 ‘혁명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것은 중국인들이 예전처럼 정부의 시책을 마지못해 끌려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국 정부에서 중국 인민들(老百性, 라오바이싱)에게 홍색여행을 장려하고 지원하지만, 중국 인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시선이 갑니다. 중국인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주요 혁명 성지 즉, ‘홍색여행지’는 마오쩌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외에도 꽤 여러 곳입니다. 중국 공산당과 관련이 있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결국 마오쩌둥으로 초점이 맞춰지는군요.

 

 

 

이 책의 지은이 서명수는 중국통입니다. 지은이의 표현을 빌리면 중국이 눈에 들어온 건 한순간이었다고 합니다. “1998년 남북고위급회담 취재를 위해 베이징 행 비행기를 탄 후, 이어진 남북회담을 취재하고 택시를 탔다가 강제로 베이징 뒷골목 투어를 당했다. 그것이 중국에 빠져들게 한 짜릿한 유혹이 될 줄 몰랐다”고 합니다. “톈안먼 앞을 가로지르는 창안제의 화려한 야경 뒤에 숨어있던 베이징 서민들의 삶. 그것은 중국식 만두피 속에 감춰져 있던 만두소를 맛본 것과 같은 끌림이었다.” 지은이는 이 책 외에도 여러 권의 중국 관련 서적을 출간했습니다.

 

 

권력의 화신, 붉은 고추 사랑

 

중국인민들에게 마오쩌둥은 거의 신격화가 되어있군요. “당신들 중국인에게 마오쩌둥 주석은 어떤 사람인가요?” “마오 주석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마오 주석은 영원한 영웅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성공한 혁명가지만, 실패한 집권자라는 양면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마오쩌둥. 지금 중국인들에게 마오쩌둥은 ‘중국건국의 아버지’로 신과 같은 존재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국인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 만나는 마오쩌둥은 권력욕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냉혹한 면도 보입니다. 40여 년간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혁명 동지이자 고향 후배인 류사오치를 쥐도 새도 모르게 숙청하기 전엔 문화혁명 홍위병들에게 온갖 수치를 다 당하게 하는군요. 자신의 자리를 넘보았다는 겁니다. 마오쩌둥은 류사오치를 2인자로 앉혀줬는데 류샤오치는 오히려 마오쩌둥을 뒷방으로 보내려 했다는 겁니다. 이 과정이 석연치 않습니다. 류샤오치를 주석으로 앉힐 때는 언제고, 류사오치를 어떻게 없애버릴까 궁리하니 나 원 참. 이 과정 중에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혁명인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문화대혁명에 관심이 많습니다. ‘문혁’이 녹아들어간 소설도 즐겨 읽는 편이지요. 그 기간 동안에 일어난 인간 심성의 변화에 관심이 많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겠습니다.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문화대혁명은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 아마도 홍위병의 역할을 했던 이들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오늘의 나와 오늘의 중국이 있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를 당한 선생, 교수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요. 따지고 보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역사의 희생자들이나 그 기막힌 상황의 총 연출자는 황제와 같은 권력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 마오쩌둥입니다.

 

 

이 책은 마오쩌둥이 남긴 삶의 흔적과 정치적 행보의 중심인 후난(湖南)을 중심으로 합니다. 마오쩌둥이 지나간 그 곳을 마오로드(毛之路)라고 부릅니다. 붉은 색으로 시작해서 붉은 색으로 끝납니다. 붉은 길, 붉은 욕망, 붉은 별이 각 챕터의 타이틀입니다. 다른 마오(毛)관련 서적에서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는 ‘붉은 욕망’에서 들려주는 ‘붉은 고추’이야깁니다. “마오쩌둥에게 ‘붉고 매운 고추’는 권력에 대한 강렬한 욕망뿐만 아니라 혁명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는 끼니때마다 고추를 먹었고 매운 고추를 잘 먹는 사람이 혁명적이라고 여겼다. 마오에게 고추는 붉은 욕망의 상징이었다.” 나는 개인적 성향이 혁명적이진 못하지만, 매운 고추는 즐겨 먹습니다.

 

 

 

재물신(財物神)이 된 마오쩌둥

 

다시 한 번 라오바이싱(중국인민들(老百姓))들에게 마오쩌둥은 어떤 의미인가 정리를 해봅니다. “마오쩌둥 주석의 초상화는 베이징의 톈안먼에만 걸려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대기근으로 이어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비극적인 시대를 거친 중국이지만 그들의 가정에서는 어렵지 않게 마오쩌둥 초상화를 발견할 수 있다. 라오바이싱의 집과 식당 혹은 상점은 물론, 적잖은 기업의 사옥이나 사장실에는 어김없이 마오쩌둥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아예 기업의 출입구나 가정집 거실에 별도로 마오쩌둥 주석을 모신 제단을 차려놓은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마다 마오 주석에게 향을 올리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합니다. 마오 주석은 중국인들에게 유일신이자 재물신으로 간주된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마오가 황제였다면 죽은 마오는 신으로 승격이 된 셈입니다. 이 책의 결론은 시작과 마찬가지로 마오와 중국인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국의 현주소와 미래를 내다보는 계기라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s******5 2015.06.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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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 마오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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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내게 가깝고도 먼 나라다. 가깝다는 말은 내가 사는 옆동네에 작은 차이나타운이 형성돼 그 길을 걷다 보면 중국 식당과 중국인을 자주 볼 수 있어서고, 멀다는 말은 중국에 관련된 나의 인연은 고작 삼국지를 두세번 되풀어 읽은 적이 있다는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중국이란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 무궁무진한 호기심이 자랐다고 말하고 싶다. 격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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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내게 가깝고도 먼 나라다. 가깝다는 말은 내가 사는 옆동네에 작은 차이나타운이 형성돼 그 길을 걷다 보면 중국 식당과 중국인을 자주 볼 수 있어서고, 멀다는 말은 중국에 관련된 나의 인연은 고작 삼국지를 두세번 되풀어 읽은 적이 있다는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중국이란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 무궁무진한 호기심이 자랐다고 말하고 싶다. 격변의 중국사도 우리나라와 만만치 않다는 애잔한 마음도 함께.

 

마오쩌둥은 이력은 굵직하고 화려하다. 중국의 군인, 투쟁가, 혁명가이며 초기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이다. 아마, 내 또래의 사람들은 마오쩌둥의 생김새는 몰라도 한번 쯤은 이름을 들어봤으리라. 후난은 이런 거대한 인물이 태어나고 자란 곳. 마오쩌둥은 이 길을 수없이 걸으며 미래의 중국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붉은 길'은 중국 혁명의 성지를 여행하는 '홍커'로 시작하여 마오쩌둥의 정치적 활동을 스펙터클하게 조명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이름만 들어 본 마오쩌둥을 단순히 위대한 정치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많은 아사자를 낸 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문화 대혁명의 국가적 재난급의 정책을 접하게 되니까 그에게 경외감을 품게 되었다.

 

 

 

2부의 '붉은 욕망'편은 후난하면 빠질 수 없는 '고추'와 마오쩌둥의 고추에 대한 애정을 담았다.

 

고추 한 접시를 다 먹은 후에는 곧바로 치통이 왔고, 간호사가 와서 '주석님, 입안이 얼얼해지면서 곧바로 치통이 온다면 다시는 고추를 드시면 안 됩니다. 고추를 더 드시면 입안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아플지도 모릅니다'라고 자제할 것을 권했다. 그러면 마오 주석은 '열은 무슨...'이라고 하면서 '고추는 열을 진정시켜 주는 것이야'라고 맞대꾸하곤 했다.

                                                                                  -마오 주석 요리사 청뉘밍-

 

사실, 마오에게 고추는 고난과 시련을 견디게 해주는 강인한 혁명정신의 상징인 것이다. 그래서 마오는 자신이 나태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매운고추를 몇 개씩 씹어먹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던 것이다.

 

후난성을 대표하는 음식기업 '마오쟈판디엔'의 이야기도 담고 있는데, 현관문에 우뚝 서 있는 마오쩌둥의 동상을 비롯해서 어록과 사진들이 온 벽에 도배가 돼 있다고 한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우리돈 약 300원으로 시작한 이 가게가 현재는 홍콩과 마카오를 포함해 중국 전역에 300여 개의 체인점이 있다고 한다. 독특한 것은 이러한 장사 방법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성과라니, 어쩐지 아이러니하다.

 

 

3부인 '붉은 별'은 마오쩌둥의 고향 후난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경치가 빼어나 영화 아바타의 촬영지가 된 후난성 서북쪽의 '장자제', 중국의 3대 고성인 '펑황고성', 이 고성은 루쉰과 더불어 중국의 양대 문호라 불러지는 '선총원' 문학 세계의 발생지라 할 수 있다.

 

 

작가가 명명한 '마오로드'를 걷다 보니 격변의 중국사 한복판에 내던진 기분이라 머릿속이 후끈거렸다. 피를 함께 흘릴 수는 있지만 빵을 함께 나누기는 어려운 달콤한 권력의 본질앞에서 인간의 변화가 무척 흥미스러웠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셀 수 없는 많은 피해자들의 운명이 몹시 안타까웠다.  

w*********3 2015.06.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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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 마오로드 - 서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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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 나남의 서평 지원 이벤트로 읽은 책입니다. >  <후난, 마오로드>라는 책을 보는 순간 얼핏 마오쩌둥의 대장정이 생각났다. 1934년에 시작되어 2년간 지속된 홍군의 행군을 통하여 중국 공산당의 근거지가 동남부에서 서북부로 바뀐 이 역사적인 사건은 마오쩌둥과는 불과분의 관계이기에 그렇게 연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을 읽어보기 전에 나는 마오쩌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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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 나남의 서평 지원 이벤트로 읽은 책입니다. >

 <후난, 마오로드>라는 책을 보는 순간 얼핏 마오쩌둥의 대장정이 생각났다. 1934년에 시작되어 2년간 지속된 홍군의 행군을 통하여 중국 공산당의 근거지가 동남부에서 서북부로 바뀐 이 역사적인 사건은 마오쩌둥과는 불과분의 관계이기에 그렇게 연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을 읽어보기 전에 나는 마오쩌둥의 지휘하에 벌어진 대장정의 모습을 담아낸 책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고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후난성의 곳곳을 저자가 방문하면서 부제이기도 한 '신이 된 마오쩌둥'을 그의 과거의 삶과 현재 중국인들의 반응을 통하여 재조명을 시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후난성일까? 중국의 많은 지역중에서 사실 후난성은 익숙하지 않은 지명이다. 오히려 후난성의 남쪽으로 경계를 맞대고 있는 광둥성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지역이다. 청나라 시대에도 그다지 주목할 것이 없는 지역이기에 변두리로 취급받는 이 지역이 왜 이 책을 통하여 다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바로 마오쩌둥이 태어난 곳이 바로 후난성이며, 샤오산에는 그의 옛집이 위치하고 있다. 저자는 최근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중국인의 순례지로 각광을 받는 후난성의 곳곳을 누비면서 거기에서 볼 수 있었던 중국인의 마오쩌둥에 대한 생각과 반응, 그리고, 마오쩌둥의 영욕의 삶을 반추하고 있는 것이다. 기행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동시에 중국 현대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마오쩌둥에 대하여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일까?


 [붉은 길]이라는 첫번째 부분에서는 곧바로 이 책의 특징인 기행문이자 인물에 대한 분석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마오쩌둥이 태어난 샤오산의 옛집에서부터 근처에 존재하는 류사오치의 옛집, 최근 그 존재를 개방한 아모쩌둥의 비밀 별장, 그리고, 마오쩌둥이 혁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인연을 맺은 창사의 방문. 이곳에 대한 묘사는 기행문의 그것에 따라서 서술되는데, 단순히 그곳의 경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마오쩌둥의 삶과 연관지어 설명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현재의 그곳의 모습과 함께 마오쩌둥이 당시 그곳에서 활동하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독특한 점은 이 책은 마오쩌둥의 탁월한 정치나 업적 보다는 2부의 [붉은 욕망]이라는 제목과 함께 마오쩌둥의 권력에 대한 야욕과 암투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샤오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류샤오치의 고향 '화밍로우'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마오쩌둥에 의하여 숙청당한 류샤오치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동향 출신에다가 마오쩌둥을 떠받들면서 자연스럽게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서 국가 주석이 된 류샤오치. 그러나, 마오쩌둥은 자신이 주도한 '대약진 운동'이 류샤오치가 주석에 집권하면서 비판을 가하기 시작하자 결국 문화대혁명을 통하여 그를 숙청하고 다시 정계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류샤오치 뿐만 아니라 역시 동향 출신이자 탁월한 군인이었던 펑더화이에 대한 숙청도 언급되면서 저자가 방문한 후난성의 방문지는 현재 중국인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마오쩌둥에 대한 존경과 함께 권력에 대한 욕망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진시황, 한고조, 당태종, 송태조, 칭기즈칸, 주원장,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보라고. 그 사람들이 정직했나? 태곳적부터 중국에서 권력을 숭상하던 사람들은 정신이 비열한 사람들이었네. 권력과 비열한 정신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어... - p. 10 -

사범학교 시절 샤오위(후일 국민당 고위층 간부)와 후난의 길을 걸으며 무전여행을 하던 마오쩌둥의 이 발언은 그가 추구하고자 한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당시 혼란스러운 현실에 직면하여 덕치가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쟁취하여 그 권력을 토대로 자신의 뜻을 펼치려는 그의 야심은 후난이라는 붉은 길을 걸르면서 갖게 된 그의 붉은 욕망이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 문화대혁명을 뒤에서 조종하면서 정적과 후계자들을 숙청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한 마오쩌둥의 삶을 바라본다면 그가 추구했던 공산주의 노선도 어찌보면 권력 쟁취의 수단이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이다. 


 대약진운동과 같이 그릇된 정책으로 인하여 수천만명이 기근에 시달리다가 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런 정책에 대하여 비판을 가한 류샤오치, 펑더화이와 같은 오랜 동지들을 순식간에 숙청하는 그의 모습은 권력에 대한 그의 남다른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붉고 매운 고추'를 하루에 한 접시씩 먹거나, '홍샤오로우'를 먹으면서 나름 붉은 혁명의 의지를 표현하였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이라는 '붉은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중국인들은 여전히 마오쩌둥을 숭배하고 있다. 심지어 마오쩌둥은 인민에게 있어서 재물신으로 추앙받을 정도이다.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집에 걸어 놓거나, 그의 사진을 뱃지로 달고 다니는 현재 수많은 중국인들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붉은 별]은 이러한 마오쩌둥의 모습을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중국인들은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으로 대표되는 경제 정책을 통하여 획기적인 발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 실패한 면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들은 마오쩌둥이 있었기에 덩샤오핑의 정책과 그 이후의 모든 정책들이 추진될 수 있었던 기반이 마련되었음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 역사사 인민들이 오히려 가장 잘 사는 시대의 기반을 다진 것이 마오쩌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난성에서 목격되고 있는 마오쩌둥에 대한 순례 열풍은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는 현상처럼 보여진다. 


 <후난, 마오로드>는 개인적으로 마오쩌둥에 대한 새로운 측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오쩌둥에 대하여 대장정을 이끌었다든지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을 완성시켰다는 굵직한 부분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오히려 혁명 완성 이후에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그의 후반기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딱딱한 논문이 아니라 기행이라는 테마를 통하여 잘 알지 못했던 마오쩌둥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권력에 대한 강렬한 집착을 보였으며, 정책적으로 실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국인으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로 부각되고 있는 원인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g*******7 2015.05.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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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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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중국이라는 거대한 통일국가 형성의 근저에는 모택동의 홍군이 강력한 장개석 군대를 무찌른 영웅적 투쟁이 있었다. 전후좌우가 토벌군대에 둘러싸여 있고, 공중에서는 폭격이 계속되는 등 인류가 상상할 수 없는 간난고초를 겪으며 25,000리를 행군한 홍군의 대장정은 중국 정치 역사의 새로운 탄생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마오의 신화도 한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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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중국이라는 거대한 통일국가 형성의 근저에는 모택동의 홍군이 강력한 장개석 군대를 무찌른 영웅적 투쟁이 있었다. 전후좌우가 토벌군대에 둘러싸여 있고, 공중에서는 폭격이 계속되는 등 인류가 상상할 수 없는 간난고초를 겪으며 25,000리를 행군한 홍군의 대장정은 중국 정치 역사의 새로운 탄생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마오의 신화도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지만, 마오쩌둥은 여전히 중국인민들에게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상점이나 가정집 어디서든 흔히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볼 수 있고, 홍커(붉은 여행객)들은 마오의 고향인 샤오산과 혁명의 근거지였던 산시성 등 마오의 길을 찾아다니며 참배한다는 것이다. 특히, 문화대혁명은 마오에 의해 주도된 사회주의 운동이었다. 계급투쟁을 강조하고 그 힘을 빌려 중국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에 중국 전체가 말려들었다. 자본주의 타파를 위해 나이 어린 홍위병들이 조직되었고 그 여파는 시골마을이었던 부용진에도 어김없이 영향을 미쳤다. 이에 씨에진 감독의〈부용진〉을 필두로 문혁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잇달아 나오며 문화대혁명은 새롭게 조명되었다. 무엇보다 문화대혁명을 빙자하여 인민의 희생을 고발한 영화를 마오의 고향인 후난성에서 찍었다는 것은 문화예술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그 시대의 무게와 고통이 얼마나 컸는가를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k***4 2015.05.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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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과 후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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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도서는 산시, 석탄국수에 이어 두번째 저서를 접했다. 산시성의 특성에 의해 국수가 유명하기로 이름난 산시성의 사람들의 생활과 유적지를 비롯하여 산시성에서 만 맛볼 수 있는 여러가지 국수의 맛을 느껴본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오늘은 그 두번째 저서 후난, 마오로드를 읽는다. 산시, 석탄국수에 맛 봤던 국수의 참 맛과 공자의 유적지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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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도서는 산시, 석탄국수에 이어 두번째 저서를 접했다.

산시성의 특성에 의해 국수가 유명하기로 이름난 산시성의 사람들의 생활과 유적지를 비롯하여 산시성에서 만 맛볼 수 있는 여러가지 국수의 맛을 느껴본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오늘은 그 두번째 저서 후난, 마오로드를 읽는다.

산시, 석탄국수에 맛 봤던 국수의 참 맛과 공자의 유적지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순진함을 맛보았기에 책을 받고 표지를 넘겨 저자를 소개하는 글에서 산시, 석탄국수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 되겠구나하고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같은 사건들은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모택동으로 알려진 그의 이름이 어느 순간에 마오쩌둥으로 바뀌고 등샤오핑으로 불리는 등소평이란 이름이 낮설기도 하여 한편으로 헛갈리기도 한다.

중국은 워낙 넓은 땅으로 구성되어있고 중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쉽게 어디가 어딘지 모를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중국의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자유 경제를 추구하는 나라이면서도 나라의 정치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이면성을 보이는 국가이기도 하고 베이징, 샹하이, 찡다오 등 우리와 관련이 있는 곳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잘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중국 고대의 역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것이 있다. 바로 중국의 고대 소설이다. 삼국지와 초한지는 전쟁 뿐만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지도자와 국민들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에 대한 마음의 자세부터 대처방안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나 사서삼경등의 고전은 아시아권 뿐만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읽히는 도서이다. 또한 공자, 맹자, 손자를 비롯한 중국의 옛 성현들에 대해서는 중국과의 교류가 시작된 때부터 현재까지도 우리의 일상 생활에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와는 많은 전쟁과 영토확장을 위한 사건들로 얼룩져있고 사대사상 또한 우리에게는 치욕적이라 해도 무방하리 만큼 선조들을 괴롭혀온 중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고 그들의 무력을 널리 표방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한 만큼 중국을 더 잘 알아야하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 만큼 중국이란 나라는 많이 알고 있는것 만큼 우리가 모르는 부분 또한 많은것 같다.

 중국과의 국교가 수립되면서 값싼 중국 여행을 다녀오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더 중국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그렇지 못한것 같다. 값싼 물건, 짝퉁제품 등 갖가지 명목으로 중국에 대한 험담들이 들려오지만 그러한 이면에는 우리가 중국을 모르기에 그런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마오쩌둥의 자서전과 평전도 출간되었지만 나는 아직 접한적이 없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본 도서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이 마오에 대해 설명해주는 가장 의미있는 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었다.

후난성에서 자라 제1사범학교에서 수학한 마오가 문화대혁명이라는 미명하에 중국의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는 일련의 과정과 그의 전 인생을 통해 바라본 마오와 그의 친구 류사오치와의 관계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얽혀있었다. 마오 다음으로 주석자리에 오른 류사오치를 바라보는 마오의 눈과 마음은 진정한 중국의 건설이라기 보다는 류샤오치를 제거하려는 의미였다는 점에서는 비난 받아야 마땅하지만 중국 인민들의 생각은 그러지 못한것 같다. 마오가 있었기에 오늘의 중국이 있었다는 생각이 과연 옳은 생각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주석의 퍼스트레이디에 관한 내용에서는 두 사람의 엇갈리는 운명을 화해를 통해 풀어나가는 과정은 주석의 퍼스트레이디다운 마음에서 비롯된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근대 중국의 변화를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마오가 사랑했던 후난성에 대한 많은것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모든 역사속에 담긴 일들은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취사선택해야 할것이고 역사에 대한 비난보다는 오늘날에 그들의 역사를 바라보고 어떤 입장에서 적용할것인지에 대한 판단만이 독자가 도서를 읽고 가져야 할 가치가 아닐까? 

l*****7 2015.05.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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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 마오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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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사의 정치 거목 마오저뚱의 고향은 후난성 샤오산(韶山)이다.후난성 성도인 창사(長沙)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마오저뚱이 태어날(1895년) 당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 오지이었다고 한다.그러한 한촌(寒村)이 마오 탄생 120주년(2015년)을 맞이하여 성대한 행사를 치를 예정인데,후난성 성도인 창사를 가로지르는 창장 쥐즈저우(橘子舟) 모래톱에 조성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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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현대사의 정치 거목 마오저뚱의 고향은 후난성 샤오산(韶山)이다.후난성 성도인 창사(長沙)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마오저뚱이 태어날(1895년) 당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 오지이었다고 한다.그러한 한촌(寒村)이 마오 탄생 120주년(2015년)을 맞이하여 성대한 행사를 치를 예정인데,후난성 성도인 창사를 가로지르는 창장 쥐즈저우(橘子舟) 모래톱에 조성된 마오의 두상은 (인위적인)마오 신을 숭상하는 중국인의 집단 심리가 잘 반영된 것이라 할 수가 있다.마오의 두상은 높이 32m,길이 83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중국인에겐 신중국을 창립한 국부의 상징으로 비춰지고 있는 셈이다.후난성 창사는 인천 공항에서 직항편이 있다고 하니 마오의 고거(故居) 및 주위의 풍광 이를테면 둥팅호를 비롯하여 장자졔,봉황고성,마오가 즐겨 먹었다고 하는 후난 요리(홍샤오러우 등) 등을 즐기고 음미해 보는 것도 삶의 의미를 더해 주리라 기대한다.

 

 

 

 마오저뚱 인물에 대한 이미지는 살아 있는 신(神)이 아닐까 한다.중국 베이징의 심장 톈안먼 광장에 걸려 있는 마오의 초상화부터 중국 인민의 각 가정 벽에 걸어 놓은 초상화 그리고 마오의 탄생 기념을 경축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 주조한 특별 동전과 지폐(1위엔부터 100위엔까지)에 이르기까지 현대 중국 사회는 마오에 대한 숭배사상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물론 중국 인민 모두가 그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산당원 및 농민,노동자 계층일수록 그를 기리는 마음은 신중국을 탄생시키면서 그가 제창한 현대 중국의 이념과 강령이 그들에게 맞아 떨어졌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그를 유일신 및 재물신으로 떠 받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오는 부패한 청말 태어나 창사 제1사범학교를 다니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심취하고 징강산,준이회의를 통해 본격적인 정치 인생이 시작된다.흔히 국공합작이라고 하는 장졔스의 국민당과 마오의 공산당은 여러 차례 합작이 결렬되지만,마오가 이끄는 공산당은 농민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당으로서 그들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얻는다.반면 국민당은 수장과 부하간의 마찰과 잡음으로 분열하면서 중국은 공산당에 의한 신중국이 1949년 탄생하면서 마오가 사망하던 1976년까지 굴곡과 얼룩으로 가득했던 양대사건(대약진 운동과 문혁)을 치르게 된다.마오는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방법에 의해 현안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만 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자연 대재해와 기근,수많은 아사자 발생을 빚은 대약진 운동과 하이루이바관(海瑞罷官)이 마오의 정치체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대지주,자본가,지식인 등 반동분자들을 대거 숙청,하방운동에 내몰리게 했다.대약진 운동의 정치적 실패는 당시 정치 2인자 덩샤오핑과 류사오치에게 정치 권력이 넘어가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10여 년의 대동란(大動亂)를 치르고 막을 내렸던 것이다.마오의 네 번째 부인 장칭느 권력욕에 눈이 먼 나머지 문혁 당시 권력 실세였던 덩샤오핑,류사오치,영부인 양광메이를 숙청하기 위해 갖은 모략과 모욕을 주면서 감옥에 갇히게 했다.덩샤오핑은 다행히 좌천되어 훗날 영광의 재기를 했지만 류샤오치는 옥사하고 부인 양광메이는 12년 간의 옥살이를 하게 된다.정치는 비정하다 못해 피를 볼 때까지 싸우는 것인가 보다.그래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마오 스스로 말했던가.

 

 

 

 마오의 정치 인생은 숱한 굴곡이 있었지만 가장 하류층인 농민과 노동자를 업고 정치를 행사했기에 그나마 오랜 견뎌냈을지도 모른다.국.공합작을 이뤄내기 위해 대장정에 나섰던 마오는 다섯 차례 회의를 갖게 되면서 5대 성지로 꼽히고 있다.대장정의 주역들이 후난 출신이 많은 것이 특색이다.마오를 비롯하여 펑더화이(한국 전쟁시 북한군 지원),주더,류샤오치,화궈펑 등이 후난성 출신이다 한때는 한솥밥을 먹던 의기투합의 정객이었지만 이념,사상이 어긋나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돌아서는 것이 정치의 속성인가 보다.특히 류샤오치는 아내 양광메이와 함께 대약진 운동의 피폐를 딛고 자본주의 길을 몇 십년 앞당길 수도 있었지만 마오의 권력욕과 퍼스트 레이디였던 양광메이에 대한 장칭의 날서린 질투심이 문혁의 동란을 걷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장칭은 문혁의 4인방으로서 반동분자들을 일소하여 마오 사후의 권력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였지만 말로는 비참하게 막을 내렸다.장칭은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제 후난 창사를 비롯하여 마오의 고향 샤오산 그리고 류사오치의 고향 화밍러우의 거리는 관광객들로 들썩 거리고 있다.그곳 주위는 홍색성지로 지정되면서 마오를 그리워하고 숭배하는 이들에겐 명소이다.마오가 생전 좋아했던 갖가지 음식도 군침을 돌게 한다.바로 홍샤오러우이다.돼지 삽겹살 및 비계살을 걸쭉하게 만든 요리이다.중국 출장 시절 먹어 본 적이 있는데 부드럽고 쫄깃하며 단백한 맛이 그만이다.게다가 후난성 위쪽은 쓰촨성 아래는 구이저우성이 붙어 있는데 그 지역의 요리가 매운 고추로 만든 요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마오의 고추사랑은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한다.대장정 시절 고추요리를 먹어야 건강과 활력을 찾았던 것 같다.

 

 

 

 그외 후난성에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크고 넓은 둥팅호와 장쟈졔라는 명산,시간이 멈춰 버린 펑황고성이 예스러움을 더해 주고 있다.둥팅호는 마오 생전 넓은 강을 횡으로 유영을 했을 정도로 수영을 좋아했다고 하며,장쟈졔는 금강산 1만2천봉과 같이 기암괴석의 연속일 정도로 관객들의 찬탄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둥팅호 부근에는 위엔양러우가 있다.시인 묵객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 시(詩)성지가 아닐까 한다.이태백,두보,굴원 등의 에피소드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게다가 산,물,노래,사람이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펑황고성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기에 족한 멋진 곳이다.높게 굽이치는 창랑과 태풍이 지나간 뒤의 모습과 같이 정치적 동지이면서 숙적이었던 마오와 류는 사후 미망인 양광메이에 의해 마오가와 류가가 한자리에 모여 화해와 상생의 길을 마련했다고 한다.양광메이는 부군 류샤오치와 마오저둥 간의 파란 많았던 정치 역정을 내려 놓고 편안하게 삶을 마감하고자 했던 모양이다.중국 정치 현대사의 1세대 주역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2,3세들이 지탱해 나가고 있다.놀라운 경제 성장과 높은 소득 수준을 보이면서 중국인의 삶도 풍요로워졌다.이러한 삶을 살게 된 연유를 마오저뚱에게 돌리려 하는게 중국인의 집단 심리가 아닐까 한다.마오를 유일신이고 재물신으로 여기는 데에는 마오가 현대 중국사에 끼친 정치적,정신적 파워와 영향력이 중국인의 내면에 깊게 각인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j******6 2015.05.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