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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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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21세기에도 마르크스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외양만 놓고 보면 지난 2세기 동안 자본주의는 엄청난 전과 성장을 구가해왔다. 그러나 속내를 들어다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썩은 내가 진동한다. 극에 달한 착취와 소외가 폭풍 전야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보다 못한 하워드 진이 파격적 발상으로 새로운 희망 만들기에 나섰다. 전전긍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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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21세기에도 마르크스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외양만 놓고 보면 지난 2세기 동안 자본주의는 엄청난 전과 성장을 구가해왔다. 그러나 속내를 들어다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썩은 내가 진동한다. 극에 달한 착취와 소외가 폭풍 전야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보다 못한 하워드 진이 파격적 발상으로 새로운 희망 만들기에 나섰다. 전전긍긍하고 있느니 차라리 자본주의 비판의 선구자 마르크스를 현실로 끌어내 다시 한번 역사적 통찰을 보여 달라고 주문하자는 것.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당대)는 그런 의도를 가졌던 하워드 진이 정성들여 지은 그러나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아담한 집이다. 진은 막 지은 집의 완공식에 지인들을 불러놓고 더할나위 없이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오늘날에도 근본적으로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그러나 마르크스를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으로 불러내는 일은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마르크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사그라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련의 붕괴를 빌미로 마르크스를 부관참시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는 현실이니 말이다. 진의 노력에 의해 150년 만에 뉴욕에 나타난 마르크스는 - 불과 1시간이라는 극히 제한된 시간과 선동적인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서 -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고 진지하기 만하다. 심지어는 자신을 다시 이승으로 보내준 저세상 관료들의 눈치까지 보고 있으니, 대체 온전한 마르크스라고 봐야할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진은 차분하게 말한다. 그게 바로 마르크스의 진면목이라고. 마르크스는 종래 무대책하고 무책임한 과격분자가 아니었다. 그의 철학을 잠시 뒤로 물리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보면 새삼 마르크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아내이자 충실한 비판자였던 예니, 사상적 동지이자 영원한 친구 엥겔스, 마르크스에게 거침없이 대들기도 했던 명민한 막내딸 엘레아노르, 심지어 술에 절어 마룻바닥을 뒹굴며 주먹다짐을 벌였던 미하일 바쿠닌 등의 모습 속에 투영된 마르크스는 하마 정겹고 친근하게만 느껴진다. 진의 의도를 간파한 마르크스 역시 시종 너스레를 늘어놓는다. “세상에 정치경제학에 관한 것을 읽는 일보다 더 지루한 일이 있을까요? 아, 있지요. 정치경제학에 관해 쓰는 것.”(47쪽) 아내 예니의 <자본론> 비판은 뜻밖에도 거침이 없으며 정수를 찌른다. “당신은 왜 검열 당국이 이 책의 출판을 허락했는지 알아?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82쪽) 그러나 마르크스는 마르크스다. TV쇼에 나온 가수에게 대중을 웃기기만 하고 노래는 부르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은 일종의 난센스다. 가수는 노래를 해야 하고 마르크스는 예의 자본주의를 비판해야 제격이다. 오래 에둘러왔던 만큼 현실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한마디쯤 문제될 것이 없다. 더구나 그것이 자기고백의 성격을 띤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고백하건대, 나는 자본주의가 용케 살아남는 재간이 있다는 것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 병든 체제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마약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고요. 전쟁이 산업을 계속 유지시키고, 사람들을 애국심에 불타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비참한 상황을 잊게 하리라는 것도, 그리고 종교적 광신도들이 대중들에게 예수가 돌아올 거라고 약속하리라는 것도 말입니다. 나는 예수를 압니다. 그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1848년에 나는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틀렸지요. 하지만 그건 시기를 좀 제대로 못 맞혔을 뿐입니다. 한 200년쯤 후에는...” (128쪽) 한발 더 나가면 비로소 하워드 진이 마르크스를 현실로 불러낸 목적에 가닿게 된다. 물론 조심스럽지만 기왕 내친걸음이 아닌가. 15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간단없이 뛰어넘는 위대한 철인의 모습은 한갓 시공간의 제약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자본주의는 인류의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과학기술에서 놀라운 기적을 낳았지요. 그러나 자본주의는 자신의 무덤 또한 파고 있습니다. “더, 더, 더!”를 외치며 계속해서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탐욕은 세상을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트립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버리지요. 예술, 문학, 음악, 심지어는 아름다움 자체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인간도 상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공장 노동자뿐 아니라 의사, 과학자, 법률가, 시인, 화가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두 자신을 팔아야 합니다. (...)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노동자이고 따라서 공동의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연대할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나라에서만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요.” (129쪽) 살아생전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포효했던 마르크스의 카리스마가 100여년 만에 맞은 찰나의 환생을 통해서 예의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변해 있다. 왠지 생경해 보인다. 그러나 곱씹어 보면 그의 말은 여전히 무게가 있다. “래디컬하는 것은 바로 문제의 뿌리를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바로 우리입니다.”
y****y 2005.09.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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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뉴욕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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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뉴욕 그리고 역사 모노드라마 [미국 민중사]를 저술한 하워드 진은 촘스키와 더불어 진보적이고 행동하는 지성으로 불리 우는 학자이다. 그는 뉴욕 소호거리에 마르크스를 등장시키며 ‘역사 모노드라마’라는 1인칭 독백 희곡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다소 생소한 형식에 구시대(?) 인물을 끌어내 혼란스러워 할지도 모르지만 맑스의 사상이 여전히 유효함을 기억해주길 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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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뉴욕 그리고 역사 모노드라마 [미국 민중사]를 저술한 하워드 진은 촘스키와 더불어 진보적이고 행동하는 지성으로 불리 우는 학자이다. 그는 뉴욕 소호거리에 마르크스를 등장시키며 ‘역사 모노드라마’라는 1인칭 독백 희곡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다소 생소한 형식에 구시대(?) 인물을 끌어내 혼란스러워 할지도 모르지만 맑스의 사상이 여전히 유효함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세계 부의 중심지 미국의 심장(뉴욕) 한복판에서 맑스의 신랄한 비판과 유쾌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금 하나의 유령이 뉴욕을 떠돌고 있다. 마르크스라는 유령이. 객석에 등장과 함께 맑스의 독백은 시작된다. 물론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한 저자의 상상력이지만 말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맑스의 가정생활과 -부인 예니와 그의 딸 엘레아노르와의 이야기- 혁명가로서의 면모 그리고 바쿠닌과의 논쟁 등에 대해 말한다. 예니와 엘레아노르를 등장시킴으로써 자칫 딱딱해지고 지루해질 수 있는 내용을 흥미롭게 풀어간다. 바쿠닌의 경우는 더욱 희극적이다. 하지만 그가 여기에 온 큰 목적은 자본주의 현실을 고발하고 비판하고 다시금 그의 사상을 일깨우는데 있다. 마르크스는 안 죽었다! 맑스가 죽었고 소비에트와 동구권에 몰락했다고 해서 그의 사상이 폐기처분 되어져야할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온전한 의미에서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악용된 자신의 사상을 변론한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보여주듯 일당 독재와 관료화된 엘리트 계급만이 존재하는 국가자본주의의 소비에트 모습은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하여 맑스는 왜곡되고 변질된 사회주의 모습을 넘어 파리 코뮌이라는 자신의 이상적인 공동체 사회를 제시한다. 그는 “내가 말한 프롤레탈리아 독재가 뭔지 알고 싶어? 그럼 파리 코뮌을 봐. 그게 진짜 민주주의야.”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주주자본주의)와 아메리칸 스탠다드가 갈수록 판쳐대는 현실에서 우리가 꿈꾸는 이상사회는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아니 지배계급의 헤게모니에 속에서 우리는 그런 사실 조차 잊은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맑스의 말처럼 이제는 움직이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일단 엉덩이에 뾰루지가 났다고 가정하세요. 그래서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 있으면 너무 아파서 당장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은 움직여야 합니다. 행동해야합니다.” 저자는 유물론이나 변증법이니 하는 기계적이고 교조화된 맑시즘에 대해 쓰고 있지 않다. 극 중 예니의 생각처럼 하워드 진은 쉽고 간결하게 내용을 전달한다. 또한 낯설고 무거워 할 수 있는 맑스를 시종 너스레를 떨며 얘기하는 모습, 바쿠닌과의 다소 코믹스러운 논쟁 -실제로 둘의 사이는 상극이었음- 을 보여주며 친근하게 느끼게 해준다. “최악의 사회주의조차 최선의 자본주의보다 항상 더 낫다.”는 루카치를 말을 떠올리며 사회주의 이상에 대해 다시 한 번 꿈꿔본다. <본문에서> 여러분에겐 내 말이 너무 래디컬(급진적)하게 들리세요? 그러나 명심하세요. 래디컬하다는 것은 바로 문제의 뿌리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바로 우리입니다. p.s.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사진과 그림 그리고 분량 늘리기에 급급한 편집은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p**********a 2006.10.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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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하워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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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하면 흔히 우리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떠올리게 된다. 엄연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개념이 다른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경제논리를 인정하면서 경제의 원리가 개인에서 사회로 대체햐여 사회를 개조하는 것이라면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근간 자체인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공유재산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왠지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빨간 공포증'이 남아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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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하면 흔히 우리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떠올리게 된다.

엄연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개념이 다른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경제논리를 인정하면서 경제의 원리가 개인에서 사회로 대체햐여 사회를 개조하는 것이라면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근간 자체인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공유재산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왠지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빨간 공포증'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광복후,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로 나뉘어 이념적 갈등이 있어왔고.... 남과 북으로 갈리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지금까지 서로 적대국으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서부터 교육을 자유주의는 좋은거고 사회주의는 거부감을 느끼게끔 알게 모르게 주입되어왔다. 그래서인지 과거보다는 사회주의에 대한 접근이 자유롭지만 꺼려지는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너무 삼천포로 빠진거 같은데 책으로 돌아가서 이 책은 마르크스와 미국의 지식인 하워드 진이 만나서 이루어진 것이다. 과거에 마르크스는 런던의 소호에 살았었는데 그 마르크스가 지금 런던의 소호가 아닌 자본주의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 뉴욕의 소호에 왔있으면 어떠할까를 가상해 연극으로 꾸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 마르크스의 이론과 저서들을 중심으로 실제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것은 과거에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거대한 부의 등장에 따른 계급의 분화. 대기업들의 합병에 따른 대규모 실직의 발생이 현재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극에서 마르크스는 자신의 주장이 소련에 의해 왜곡되고 사람들을 현혹시키는데 이용되었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도 토로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취지자체는 옳다. 사회주의 뿐만 아니라 어떤 주의이든 완벽한 이상이며 유토피아다. 하지만 그것들이 현실에 적용될때,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 문제들은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에 퍼져있는 경제학적인 측면에서는 자본주의, 정치학적인 측면에서는 자유주의가 그렇다. 자본주의에 따라 있는자들은 지속적인 부를 축척하고 없는 사람들은 계속 박탈감을 느끼고... 자유주의 말이 좋아 자유주의이지 있는 사람들에 의해 법과 규범이 제정되어 부의 축척을 정당화하고 있는 현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드러나고 있는 폐해들이다. 어떻게 해야 이러한 폐해들이 고쳐져 모든사람이 행복해질지 방법은 모르곘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러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극 중,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안에서 인간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삶이 아닌 삶을 살면서, 자신이 정말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하면서, 그런 삶은 꿈이나 환상 속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지요.'

 

- p. 133 -

s********1 2010.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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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의 유쾌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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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만에 잼나게 읽은 책이다. 마르크스가 사후 100년이 넘었는데 뉴욕에 나타났다. 세계자본주의 심장부인 뉴욕에 말이다. 뉴욕에서 간만에 사람들을 만나니 마르크스도 꽤나 방가웠나 보다.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 못내아쉬워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맥주한잔씩 홀짝이면서... 마르크스는 죽었어. 몇번이나 그가 죽었다고 선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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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만에 잼나게 읽은 책이다. 마르크스가 사후 100년이 넘었는데 뉴욕에 나타났다. 세계자본주의 심장부인 뉴욕에 말이다. 뉴욕에서 간만에 사람들을 만나니 마르크스도 꽤나 방가웠나 보다.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 못내아쉬워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맥주한잔씩 홀짝이면서... 마르크스는 죽었어. 몇번이나 그가 죽었다고 선언하는것에 대해서 그 자신이 꽤나 못마땅하다는 투다. 자신이 죽었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에게 일갈한다. 왜 자꾸 죽었다고 반복해서 얘기하는거야... 하지만 그런 반복은 도리어 마르크스가 살아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뭐 정확히 그런 외침이 보여주는 진짜는 인간 마르크스가 남긴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이 아직도 펄쩍펄쩍 살아서 탐욕으로 가득찬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할수 있다는 사실이 마르크스의 죽음을 외치는 자들의 뒤틀린 속내에 열 뻗치게 하는것이겠지!!!! 1시간이지만 살아 돌아온 마르크스는 19세기 자신이 진단한 자본주의의 폐해가 사라진것이 아니라 더욱더 거침없이 세계속에서 확장되고 있다는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론이 구 사회주의 정권에서 왜곡된 사실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마르크스의 좌우명은 "모든것에 대하여 의심하라"였다. 그는 자기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음도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두명의 동지 아내 예니와 막내딸 엘레노아도 뺴놓지 않고 거론한다. 칼의 입장에서 가장 정직하고 예리한 비판가였던 두사람이자 엥겔스와 더불어 가장큰 버팀목이었던 두 사람에 대한 애정 또한 솔직하게 드러낸다. 철두철미한 이론가였던 마르크스는 세계를 해석하는것에서 끝내지 않고 세계를 변화 시키기 위해서 행동하고 적극적으로 세계에 개입했던 혁명가였다. 이 1인 모노극에서 젤 재미있던 부분은 무정부주의자였던 바쿠닌과의 술자리씬 <물론 마르크스가 독백으로 전하는 부분 실제 바쿠닌은 마르크스 집에방문한적이 없다> 이다. 그 장면을 그대로 가져와본다. 마르크스왈 바쿠닌과 나는 마시고 논쟁하고, 또 마시고 논쟁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말했지요. "미하일 자네는 프롤레타리아 국라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우리는 한 순간에 과거를 모두 박살내는 오르가슴을 느낄 수 없어. 우리는 옛 질서가 남겨놓은 것을 가지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해. 그리고그러려면 시간이 걸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아냐, 민중이 옛 질서를 무너뜨리고 바로 자유롭게 살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자유를 잃게 돼." 급기야 우리의 논쟁은 점점 사적인 감정으로 치우지고,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하긴 너 같은 멍청이가 그걸 이해하겠어?" 브랜디는 역시 그에게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내 말에 그가 그랬지요."마르크스, 넌 항상 그렇듯 역시 오만한 녀석이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야! 너는 노동자들이 네 이론을 바탕으로 혁명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도 안되는 소리! 그들은 네 이론 따위엔 눈곱만큼도 관심 없어. 그들의 분노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날 거고. 그들은 거창한 네 과학 없이도 혁명을 일으킬거야. 그들은 혁명에 대한 본능을 타고났으니까." 그러더니 그가 분기탱천해서 소리쳤습니다."난 네 이롬에 침을 뱉겠어!" 그러면서 그가 바닥에 침을 뱉었습니다. 이런 돼지같으니라고! 이건 해도 너무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미하일, 자넨 내 이론에 침을 뱉을 수는 있어도 우리 집 마룻바닥에는 침을 뱉을 수 없어, 당장 닦아!"...............................................................................생략 칼과 바쿠닌 이 둘의 기질과 사상적 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흥미진진한 장면이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E.H카는 이 둘을 이렇게 비교했다. "걷잡을수 없는 충동이 넘쳐나는 사람과 감정을 지성으로 완벽하게 다스림으로써 언뜻 보면 감정이 없다고 믿게 되는 사람.... 자석처럼 다른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사람과 차가움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기죽이고 내치는 사람." <전자는 미하일 바쿠닌 후자는 칼 마르크스> 이 둘의 극적 대비가 일단락 되면 이제 마르크스는 이렇게 외친다. 소외에 관한 이야기를 한후 "그렇지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예, 물론 나도 그것이 가능성일 뿐이라는 걸 인정합니다. 이제는 그게 분명해졌습니다. 나는 지나치게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나 이젠 나도 압니다. 무슨 일이든 일어 날수 있다는것을. 그러나 사람들은 엉덩이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에겐 내 말이 너무 래디컬하게 들리세요? 그러나 명심하세요. 래디컬하다는 것은 바로 문제의 뿌리를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바로 우리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하워드 진은 17살에 마르크스를 만났다고 한다. 가난한 하층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던 진에게 어느날 어떤 공산주의자가 공산당 선언을 선사했다. 세상이 뭔가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는 공산당 선언을 다 읽고 나서 비로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빈곤의 현실과 악순환의 체계를 제대로 바라볼수 있게 되었다고 서평에서 고백했다. 1960년대 민권운동, 반제국주의 반전 평화 운동을 거치고 스탈린주의 체제하의 구 사회주의 국가와 그 독재정권에 환멸을 느꼈던 그는 아나키즘에 깊이 매료되었으며 미국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에 관한 연극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다시금 마르크스를 부활(?)시킨것은 마르크스가 가지고 있던 자본주의 체제에 관한 그의 분석과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었으리라. 이 재치있는 1인극 모노드라마는 마르크스을 알아 가는 첫번째 입문과정으로 꽤 괜찮을 듯싶다. 인간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의 사상 둘다를 만나는데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도리어 더 흥미롭게 다가서는 매력들을 듬뿍 담고 있기에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추천목록이다. 매력덩어리의 인간... 마르크스... 그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한번쯤 꼭 읽어보시길.
i*****7 2006.04.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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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마르크스를 왜곡하지 마세요
"제발 마르크스를 왜곡하지 마세요" 내용보기
‘하워드 진’하면 노암 촘스키와 더불어 반전, 반제국주의 운동을 펼치는 미국의 행동하는 지성으로 유명하다. 이번 부시의 이라크 전에 대하여도 반대 성명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등 미국 내의 진보적 사고를 대표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가 쓴 저서 중 가장 읽기 쉬운 책이 바로 이 가 아닌가 싶다. 다른 저술들은 대부분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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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하면 노암 촘스키와 더불어 반전, 반제국주의 운동을 펼치는 미국의 행동하는 지성으로 유명하다. 이번 부시의 이라크 전에 대하여도 반대 성명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등 미국 내의 진보적 사고를 대표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가 쓴 저서 중 가장 읽기 쉬운 책이 바로 이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가 아닌가 싶다. 다른 저술들은 대부분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실태를 고발하는 학술적 형태를 띤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마르크스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1인극 형태로 서술되어 보다 흥미로운 내용 전개를 펼친다. 책의 머리말에서 밝히는 하워드 진 자신의 삶은 미국의 소외된 빈민층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열 일곱에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서 그는 자본주의 체제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도록 고무되었다. 그러다가 소련에서 공산주의를 빙자한 스탈린주의라는 공포 정치가 행해지는 것을 보고 ‘무정부주의’에 더 큰 관심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잘 살려 쓴 책이 바로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이다. 저자는 죽은 마르크스를 회생시키고 마르크스 혼자서 이야기를 늘어 놓는 일인극을 펼치도록 글을 써 나간다. 하워드 진은 다시 살아난 마르크스의 입을 통해 그의 사상이 잘못 해석되어 온 현실을 강하게 비판한다. ‘공산주의는 곧 소비에트 연방의 독재 정치’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이 무자비한 스탈린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왜곡된 것을 보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나는 세계 곳곳에서 억압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한 사이비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자본주의의 승리에 자못 흡족해하는 서구 정치가와 저술가들로부터도 마르크스를 구해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오늘날에도 근본적으로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분석이 옳다는 것은 날마다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사건들이 명명백백히 입증해 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그의 시대에 기술 변화와 사회 변화의 유례없는 속도와 혼동을 보았고, 이것은 오늘 날 한층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본주의의 온갖 문제점과 병폐를 고발한 마르크스의 생각들은 현재 그대로 드러나고 있으며 전적으로 옳은 부분이 많다. 비록 ‘모든 사람들이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사상은 이루어지기 어렵지만, 그가 비판한 자본주의의 모습은 그 실체를 흉측하게 드러낸 채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책에서 마르크스가 등장하는 부분에 “온통 내 사상은 죽었다고 떠들어대는 말뿐이다. 그래서 나는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돌아왔다.” 라고 울부짖는 설정을 담는다.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혁명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위하는 척 하였지만 사실 일부 권력층의 야심에 의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마치 공산주의 이론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다시 회생한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이 이렇게 왜곡된 채 일부 정치 권력을 옹호하는 데에 쓰인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빈곤한 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부자 계급의 배만 부르게 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론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사람들은 ‘독재를 하다가 멸망한 소비에트 연방’만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론을 알기 쉽게 다시 설명해 준다. “<자본론>은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역사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서 나타나, 엄청난 생산력 증가와 전세계 부의 어마어마한 증가를 가져왔는지 보여주고 있지요. 그리고 본성상 자본주의 체제는 그 부를 노동자의 인간성뿐 아니라 자본가의 인간성까지 파괴하는 방식으로 분배하게 된다는 것도.” “바로 지난주에도 나는 미국 노동부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읽었습니다. 여러분의 노동자들은 갈수록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면서도 임금은 갈수록 더 적게 받고 있어요. 그 결과가 뭐지요? 바로 내가 예측한 대로예요. 이제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상위 1퍼센트가 나라 전체 부의 40퍼센트를 거머쥐고 있어요. 그리고 이게 세계 자본주의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라는 나라에서 그래요. 자기 국민들만 강탈하는 게 아니라 나머지 세계의 부도 빨아먹고 있는 나라에서요…” 살아난 마르크스의 목소리는 한편으론 하워드 진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실제 오래 전에 마르크스가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 사회에 적용하여 보여줌으로써 자본주의가 지닌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하워드 진의 몫이다. 즉 이 책의 마르크스는 과거의 공산주의 이론가 마르크스일 수도 있으며 또 한편 이 시대의 행동하는 지성인 하워드 진일 수도 있다. 시공을 초월하며 펼쳐지는 마르크스의 독백을 통해 독자들이 명백히 얻을 수 있는 사실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가 지닌 온갖 문제점들에 대한 이해’와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왜곡됨 없는 지식’이다. “여러분은 이상하지 않으세요? 왜 이렇게, 내가 죽었다고 거듭거듭 선언할 필요가 있을까요?” 라고 의문을 던지는 마르크스. 마르크스가 죽었다고, 그의 이론은 죽은 이론이라고 거듭거듭 선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이것은 자본가들이 그들의 체제를 막강하게 구축하고 공고히 하기 위한 방패막이인 것이다. 우리를 혼란하게 만드는 그들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옳은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한 번쯤 깊이 있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가 제안한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t******8 2005.09.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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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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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삶은 재미없을 것이다. 그런 사회에선 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역시 허락되지 않을 테니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모든 것은 변한다. 인류는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왔으며, 많은 이들은 그것을 일컬을 때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렇다. 확실히 세상은 살기 좋아졌다.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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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삶은 재미없을 것이다. 그런 사회에선 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역시 허락되지 않을 테니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모든 것은 변한다. 인류는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왔으며, 많은 이들은 그것을 일컬을 때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렇다. 확실히 세상은 살기 좋아졌다.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가 아무리 발전할 지라도 가난한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들의 삶을 그저 그들 개인의 불행으로 돌리는 것은 실로 무책임한 태도라 하겠다. 절대적으로 가난한 이들의 수치는 줄어들고 있을지 몰라도 분명 중산층은 사라지고 있다. 점점 더 커져만 가는 빈부의 격차는 어느 한 사회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극소수를 제외한) 전 세계의 빈곤화라고 해도 될까. 마르크스 사상의 현실 접목 시도는 이미 오래 전 실패했다는 평가서를 받아들었다. 한 때 미국과 쌍벽을 이루던 소련이 붕괴했고, 동유럽 역시 자본주의 사회로 편입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몇몇 공산주의 국가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 국가를 동경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이런 현실 사회에서 마르크스를 말하는 것은 케케묵은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르크스의 이름이요, 사상이 아닐까 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이리저리 날뛰는 자본의 거센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을 우리는 분명 필요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관료제의 병폐로 인하여 영국의 소호 아닌 미국의 소호 지역에 출몰(?)하게 된 마르크스. 그가 환생하기 위해 필요로 한 시간은 무려 122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우리말도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우리 사회는 그가 생존하던 시절과 크게 달라진 바가 없는 듯했다. 오히려 그에게 오늘날은 자신의 예언이 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로서 보일 뿐... 그래서 그는 광분했다. 덥수룩한 수염을 적셔가며 내리 맥주를 마셔댔고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가며 오늘날 사회가 자신이 예견한 것과 무엇이 다른 지를 묻고 있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야기를 했듯 이 책에서의 마르크스 역시 지난 러시아 혁명이 결코 자신이 꿈꾸던 사회를 건설해주지 않았음을 이야기했다. 오히려 역사를 통해 나타났던 수많은 시도들이 만들어낸 사회는 민중을 도외시한, 아주 소수의 이들에게 모든 것이 집중된 사회였다. 그 사회로부터 마르크스는 자신이 꿈꾸던 그 어떤 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관료들은 부패하였고, 다수는 침묵하는 가운데 소수의 특권층만이 꿈틀거리는, 그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는 이미 죽은 사회였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지난 역사에 대한, 더 나아가 오늘날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탄식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판의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한 사람을 위한 무대, 그 무대의 주인공 마르크스에게 작가는 인간성을 불어넣었다. 사랑하는 아내 예니 그리고 세 딸. 여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가부장적이었다는 비판을 종종 듣곤 하는 그였지만 그렇다 하여 그가 아내를 그리고 딸들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아버지로서의 마르크스를 그리기 위해 저자는 노력했다. 혁명을 말하지만 이론에 더욱 충실했던 그, 자신과 다른 사회를 꿈꾸는 이들을 향해 신랄한 독설을 늘어놓던 그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의 말을 건낼 수 있는 것은 아내 예니와 그의 막내 딸 엘레아노르의 몫이었다. 저자에게 그들은 마르크스의 이론이 보다 완벽해질 수 있었고 그의 이름이 오늘날까지도 잊혀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거기에, 바쿠닌과의 티격태격하는 모습까지 더해지고 나니 마르크스는 어느 순간 평면적인 책의 페이지를 뛰어넘어 우리 곁에 존재하는 듯 느껴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자신을 변론하는데 사용한 마르크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이 흐름을 멈추게 하기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도 짧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사회에는 잘못된 것들이 많고, <자본>을 저술한 마르크스라면 분명 이보다는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했을 테니 말이다. 앞으로 어떠한 사회가 도래할 것인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 역시 미래 사회에 대해 다소 모호한 설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자본을 위해서라면 인간조차도 필요 없는 사회는 분명 아닐 것 같다. 진보는 분명 필요하지만, 진보의 필요성을 말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그 진보가 다름 아닌 인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일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만 한다. 노동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에 눈뜨기 위하여 우리는 그를 필요로 한다. 지금 이 사회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결과적으로 다른 누구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한 사회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 그의 이론은 여전히 유효하니 말이다.
이달의 사락 q*****2 2005.09.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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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윈,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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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윈의 『마르크스 평전』의 감동은 여전하다. 그래서 다소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다음의 말로 추천했다. ‘사회주의의 이론적 완성자, 칼 마르크스, 그는 희대의 광기어린 미치광이도 신의 위임을 받은 전지전능한 구원자도 아니었다. 그의 삶은 평생 빚과 종기와의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 마르크스를 접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책’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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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윈의 『마르크스 평전』의 감동은 여전하다. 그래서 다소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다음의 말로 추천했다. ‘사회주의의 이론적 완성자, 칼 마르크스, 그는 희대의 광기어린 미치광이도 신의 위임을 받은 전지전능한 구원자도 아니었다. 그의 삶은 평생 빚과 종기와의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 마르크스를 접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책’ 그런데 학생들에게 더 적절한 책을 발견했다. 바로 이 책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아주 쉽게, 역사적 맥락을 짚으면서, 관련된 사상가들의 사상을 역시 쉽게 소개하고 비교하면서 쓴 책이다. 왜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망령을 불러왔는지, 왜 사회주의가 희망의 근거가 되는지 잘 알 수 있는 책이다. 다음의 구절은 참으로 소중한, 그러나 너무나 평범한 문장이었다.

“코뮌은 학교는 “아이들에게 자기와 똑같은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d********n 2008.12.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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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미안 하워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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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를 잘 모르고, 자본론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좀더 신선하고 재미나게 읽었지 않았나 싶다.     책은 아주 짧다(전체 167페이지). 덕분에 집중력이 약한 나 같은 사람도 단숨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니 오히려 마르크스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공산주의 역시 쓸모없는 사상이 되어버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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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를 잘 모르고, 자본론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좀더 신선하고 재미나게 읽었지 않았나 싶다.

 

  책은 아주 짧다(전체 167페이지). 덕분에 집중력이 약한 나 같은 사람도 단숨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니 오히려 마르크스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공산주의 역시 쓸모없는 사상이 되어버렸다고들 떠들지만, 책은 현대의 뉴욕에 마르크스를 등장시킴으로써 마르크스가 하고자 했던 말과, 그의 사상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 어필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나 마르크스 사상이 필요하고 재인식되어야 하는가를 느껴보기도 했다.

 

  공산주의라면 거의 공포의 수준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를 논하고 좌파를 논하고 공유한다는 것은 아주 힘들다. 일단 '좌파'라는 어휘에  대해서 보수와 진보 진영이 이해하는 개념 자체가 틀리기 때문이다. 수준이 그러할 진데 사회주의에 대한 찬미가 가득한 이 책이 과연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될까하는 생각도 들긴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시선이 혹시나 왜곡된 것은 아닐까 하는 조금의 '의심'만 있다면, 무난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책 분량도 짧으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하워드 진의 이 작품은 자본주의가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서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마르크스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책이다.

u*****a 2008.07.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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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코 앞에 나타나서 맥주마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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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 드라마를 책으로 만나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게다가 위대한 혁명가 마르크스가 주인공 이라니…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을 ‘하워드 진’이 썼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뉴욕에 나타나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며 왜곡된 사상, 현실, 인물에 대한 변을 늘어 놓는다. 자본주의에 의해 소외된 인간을 대변하며 인간이 꿈꾸는 사회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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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 드라마를 책으로 만나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게다가 위대한 혁명가 마르크스가 주인공 이라니…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을 ‘하워드 진’이 썼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뉴욕에 나타나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며 왜곡된 사상, 현실, 인물에 대한 변을 늘어 놓는다. 자본주의에 의해 소외된 인간을 대변하며 인간이 꿈꾸는 사회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이야기이다. 부담 없는 독백이고, 화자와의 대화이다. 마르크스의 내면은 울림이 되어 언어로써 퍼진다. 그것은 관객, 독자와의 개별적인 결합을 이룸으로써 사상의 전이, 공유를 일으킨다. 이것은 단절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나 값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의 단절, 미래와의 단절. 오로지 현실적 가치에만 집중하고, 자본의 척도로 측정되어야만 인정 받을 수 있는 조각난 현대에서 그 유효성은 매우 중요한 관심사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는 공산주의의 패배이고 자본주의 승리라고 흔히들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몰락한 것은 민중을 배반한 지배층이지 민중의 이상일 수 없다. 그렇다고 득세한 자본주의의 승리는 더더욱 아니다. 고달픈 체제 속에서 자본주의적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인간의 노동이 변질 될 수는 없고, 민중이 희망하는 사회가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무엇이 변화시킬 것이고, 변화하는 가는 이미 우리 자신에게 투영되어 있다. 그것을 이끌어내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아마도 삶의 치열함이 아닐까. 마르크스의 사상은 아마 그의 치열한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고 생각된다. 가난, 그의 가난이 우리의 가난과 같은 의미일지는 모르겠으나 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칼날을 세울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는 가족들의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한 인간의 생애에서 가족과의 삶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상적 동지, 민중의 적, 역사적 진실을 입체적으로 담은 이 책은 그래서 너무나 인간적이다. 책의 편집도 재미있다. 모노드라마답게 임팩트가 있다. 폰트 사이즈가 제 멋대로다. 사람에 따라서는 산만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썩 괜찮은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목소리가 계속 ‘도~~’로 이어진다면 로봇 같지 않을까. 이 책은 아마 독자의 상상에 울림까지도 전해주고 싶어했던 모양이다. 사상이 탄압 받던 시대가 있었다.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이 놈의 나라는 모양새가 후지다 못해 천박하다. 강 교수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 마르크스 관련 도서가 이렇게 쉽게 출판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할까. 마르크스 만큼의 치열한 사상의 의지, 삶의 투쟁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물음표 하나 달고 책을 덮는다..
k*******0 2005.11.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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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르크스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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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다. 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예전에는 마르크스를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에 따라 감옥에 갈수도 있었다. 그를 인정하는 쪽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단점을 냉철히 분석하고 새로운 사회의 비젼을 제시한 최고의 학자라고 치켜세우고 부정하는 쪽에서는 공산주의라는 인류최악의 체제를 만든 원흉이라고 비난한다. 모두 마르크스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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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다. 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예전에는 마르크스를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에 따라 감옥에 갈수도 있었다. 그를 인정하는 쪽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단점을 냉철히 분석하고 새로운 사회의 비젼을 제시한 최고의 학자라고 치켜세우고 부정하는 쪽에서는 공산주의라는 인류최악의 체제를 만든 원흉이라고 비난한다. 모두 마르크스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마르크스는 지금까지 인간으로서의 마르크스가 아니라 사상, 이데올로기, 주의로서의 마르크스였다. 우리의 이야기속에 인간 마르크스는 어느순간 삭제되어 있었다.   하워드진은 이데올로기로서의 마르크스를 탈피하고 인간 마르크스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형식도 건조하게 그의 삶을 대신이야기해주는것이 아니라 직접 지금 이 사회, 그것도 뉴욕에 그를 불러세운다. 그도 한낱 나약한 인간으로서 부인과의 갈등때문에 고민하고 영리한 자식때문에 기뻐하기도 한다. 독보적인 학식으로 누구와 이야기해도 절대 감정을 내세우지 않았을것 같은 그지만 대립각을 세웠던 바쿠닌같은 사람과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싸우기도 하였다. 이런 인간적인 마르크스를 만나며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마르크스는 어느순간 친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인간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킨다면 결코 하워드 진의 책이 아닐것이다. 역시 중요한것은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지 20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노어린 목소리다. 그가 주장한 평등한 기회의 균등, 돈이 최고가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과연 지금 어느정도나 이루어져 있는가. 마르크스는 뉴욕을 보고 자신이 살던 시대보다 뉴욕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으며 더욱 심각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말했던 공산주의는 왜곡될 대로 왜곡되어서 이제는 의미없는 낡은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고 무너질 것으로 예상했던 자본주의는 그 끝을 모르고 팽창해서 세상 모든 사람을 집어삼키고 있다. 마르크스는 분노하고 절망한다.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곰팡내나는 낡은 이론으로 잊혀져가는 마르크스의 사상. 지금 21세기에 그의 사상이(왜곡되지 않은)여전히 의미있으며 유효하다고 하워드진은 외친다.   이 책은 외국에서 연극으로 많이 공연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이 연극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c******3 2005.09.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