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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어머니의 살인을 종용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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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가부장의 정점 명예살인.   강간 혼인이 합법적인 마을,   명예라는 이름으로 아들에게 어머니의 살인을 종용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마을의 무지가 소름끼치는 분노를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종교의 문제는 아니다.   이슬람교가 그들에게 그러한 율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을 힘으로, 재물로 차지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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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가부장의 정점 명예살인.

 

강간 혼인이 합법적인 마을,

 

명예라는 이름으로 아들에게 어머니의 살인을 종용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마을의 무지가 소름끼치는 분노를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종교의 문제는 아니다.

 

이슬람교가 그들에게 그러한 율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을 힘으로, 재물로 차지할 수 있는 종속물로 보아온 오랜 악습의 결과물일 뿐이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이런 일들이 소설 속에서보다 현실에서 더 많이,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k******e 2009.02.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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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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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비극이다. 이런 소설이 야샤르 케말의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어있는 것이 달랑 한권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문학성있고 감동적이고, 게다가 충격적인 소설가의 작품은 더 나와줘야한다. 뛰어난 심리묘사 신화적인 신비감 가득한 너무나 슬픈 소설이다. 소설에는 여러가지 유혀이 있다.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은 충격적인 진실과 맞딱 드렸을 때 영혼의 울림, 그리고
"비극이다." 내용보기
정말 비극이다. 이런 소설이 야샤르 케말의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어있는 것이 달랑 한권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문학성있고 감동적이고, 게다가 충격적인 소설가의 작품은 더 나와줘야한다. 뛰어난 심리묘사 신화적인 신비감 가득한 너무나 슬픈 소설이다. 소설에는 여러가지 유혀이 있다.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은 충격적인 진실과 맞딱 드렸을 때 영혼의 울림, 그리고 성장을 주기 때문이다.
l***e 2008.11.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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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읽었어야 했는데
"진작에 읽었어야 했는데" 내용보기
매번 읽는 문학작품이 국내와 영미권, 서유럽의 작품들이었다. 갑자기 다른 문화권의 작품이 읽고 싶어 터키 작가 ‘아샤르 케말’의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평소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하고 호의적인 느낌을 가졌던 터라 설레는 마음으로 읽으려 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이 ‘납치혼, 명예살인’, ‘쿠르드족 탄압’에 대한 것이라 결코 설레임만으로 읽을 수 없었다.
"진작에 읽었어야 했는데" 내용보기

매번 읽는 문학작품이 국내와 영미권, 서유럽의 작품들이었다. 갑자기 다른 문화권의 작품이 읽고 싶어 터키 작가 ‘아샤르 케말’의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평소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하고 호의적인 느낌을 가졌던 터라 설레는 마음으로 읽으려 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이 ‘납치혼, 명예살인’, ‘쿠르드족 탄압’에 대한 것이라 결코 설레임만으로 읽을 수 없었다.

 


작가인 ‘아샤르 케말’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유명하고 좋은 작품을 많이 쓴 사람이었고,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라이던 터키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납치혼, 명예살인’, ‘쿠르드족 탄압’ 따위의 이면의 진실들은 불편하고 심각했다.

 


“아내나 누이가 성폭행을 당하거나, 혹은 혼외 성관계가 발각되는 경우 아내나 누이는 명예살인의 대상이 된다. 곧바로 아버지나 오빠, 남편이 처벌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때 명예살인으로 여성들이 처벌당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결과이다.” (p.236)

 

 


‘명예살인’에 대한 내용인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이 작품은 1976년에 출간되었다.
‘명예살인’이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이 1994년 요르단 타임즈의 ‘라나 후세이니’라는 여기자에 의해서였다고 하니,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잘못된 율법의 해석과 왜곡된 전통의 답습으로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받아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아프간의 ‘탈레반’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만이 이러한 ‘명예살인’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슬람 문화권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무섭고 놀라웠다.

 


또한 책에 실린 두 번째 소설 <아으르 산의 신화>는 오스만 제국의 붕괴 후 터키공화국이 수립되는 과도기에서 자행된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공화국의 탄압과 현재에도 유효한 그들에 대한 차별에 대한 내용이었다.

쿠르드족은 중동 지역에서만 존재하는 소수민족인 줄 알고 있었는데 터키 동부 산악지대를 비롯해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까지 서구 열강과 군소 독립국들에 의해 탄압을 받아 왔다는 사실 또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인권과 소수자에 대한 사회고발과 배려의식이 담긴 ‘야샤르 케말’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큰 의의가 있었다.


어느 곳이든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는 차별과 아픔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것 또한 뼈에 와 닿는다.

 


이런 무거운 주제를 가진 작품이지만 작가의 필력은 대단하다. 마치 동화를 읽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잔혹동화라 해야 하나?ㅋ) 인물 간 대화와 상황 설정, 묘사가 빠르고 섬세하다. 그렇다고 가볍게 스케치 하듯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감정의 이입이 될 만큼 구성이 뛰어나다.

 


마지막으로 해외작품을 읽으며 한 번도 번역자에 대한 호평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 작품의 번역자인 오은경씨의 번역은 훌륭한 작품을 더욱 훌륭히 읽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에겐 낯선 터키어를 한글로 번역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 터키어와 한글에 대한 공부가 충분한 실력 있는 번역가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터키와 터키의 문학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나에게도 전해져 빨리 또 다른 터키 문학작품을 찾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l****h 2011.03.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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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그 무한매력에 빠지게 해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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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는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독서는 그 책의 배경이 되는 곳에 가서 책을 읽는 것이라고. 나는 이번에 터키 여행을 하면서 바로 그 로망을 이루기 위해 여러권의 책 중 신중하게 이 책을 골랐다. 남자가족이 더럽혀진(?) 여자 혈연을 죽이는 '명예살인'에 관한 소설이라고 해서 좀 우울하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작가가 터키의 국민작가로 추앙받고 있다는 말에
"터키, 그 무한매력에 빠지게 해주는 소설" 내용보기

소설가 김영하는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독서는 그 책의 배경이 되는 곳에 가서 책을 읽는 것이라고. 나는 이번에 터키 여행을 하면서 바로 그 로망을 이루기 위해 여러권의 책 중 신중하게 이 책을 골랐다.

남자가족이 더럽혀진(?) 여자 혈연을 죽이는 '명예살인'에 관한 소설이라고 해서 좀 우울하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작가가 터키의 국민작가로 추앙받고 있다는 말에 덥썩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탁월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 책에는 두 개의 소설이 들어가 있다.

첫작품이자 표제작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를 둔 아들이 왜, 어쩌다가 어머니를 제 손으로 죽이게 되었나에 관한 이야기다. 할머니와 삼촌들이 끊임없이 아버지의 죽음을 상기시키고, 끝내는 아버지의 귀신이 뱀으로, 각종 동물로 나와 아들을 괴롭힌다. 친족사회의 그 꽉 막힌 답답함과 사춘기 소년에게 저질러지는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압력들. 그에 대해 소년의 입장을 섬세하게 써내려간 수작이다. 서술자는 소년을 감옥에서 만났던 어른이라 시점도 참신하다.

두번째 작품은 '아으르 산의 신화'이다. 아으르 산은 모세의 방주가 있었던 아라랏산을 말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을 당시 동부 아나톨리아쪽으로 하루에 대여섯시간씩 버스를 타고 달리고 있었는데, 이 작품의 아으르산에 대한 묘사가 차창밖을 지나가는 풍경과 어우러져 잊어버릴 수 없는 작품이 되었다. 터키의 산과 자연은 '광활하다'는 단어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저런 산을 보고, 내내 저 들판을 뛰어다니며 사는 사람이 한반도에서 나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곳에서 태어난 문학이 한국 문학과 같을 수 없다. '아으르 산의 신화'는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길고도 열정적이면서도 서사적으로 펼쳐진다. 한편의 신화를 읽는 듯 했지만, 그 속을 흐르는 여자의 절절한 심정에 대한 묘사는 어떤 연애소설보다 뛰어났고, 결국 그런 열정과 의지로 사랑을 이루어내지만 어긋나는 두 남녀의 사랑에 오면...와...이건 뭔가...싶은 생각이 들면서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터키 여행을 하며 읽어서 내 몸과 마음에 쏙쏙 흡수된 측면이 있지만, 터키에 가보지 않더라도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터키에 대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t***p 2010.08.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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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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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했습니다. 피가 튀기거나 엽기적 살인행각으로 잔인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잔혹할 수 있는지, 집단적 광기는 사람을 얼마나 미쳐버리게 만드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야샤르 케말의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잔인한 소설입니다. 알라신의 작품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여인 에스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할릴이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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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했습니다. 피가 튀기거나 엽기적 살인행각으로 잔인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잔혹할 수 있는지, 집단적 광기는 사람을 얼마나 미쳐버리게 만드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야샤르 케말의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잔인한 소설입니다.


알라신의 작품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여인 에스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할릴이란 남자는 에스메에 대한 구애가 거절당한 뒤 어느 날 밤 그녀를 납치합니다.

할릴은 저항하던 에스메에게 마약을 먹여 겁탈한 후 정식 혼인신고를 하게 됩니다.

아들 하산이 태어나면서 점차 안정을 찾던 에스메의 일생은 연인이었던 압바스가 나타나면서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압바스는 연인을 납치한 할릴을 총으로 쏴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맞습니다.

이제 에스메는 할릴의 친족들에게는 철천지 원수로, 동네 주민들에게 모든 재앙의 원인이며, 피의 보복을 받아야 ‘창녀’로 지목받게 됩니다.

그들이 알고 있고 원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원통하게 죽은 할릴은 구렁이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으니, 에스메를 죽여 복수함으로써 그 영혼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을 전체의 집단적 광기 속에 복수를 행할 적임자로 떠오른 이는 바로 아들 하산이었습니다.

하산은 마침내 아버지의 유품인 권총을 어머니 에스메에게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이 천명된 후,

중동 지방의 법적 원칙은 등가물로의 갚음, 생명에 대해서는 ‘피의 복수’였습니다.

문제는 그와 같은 피의 복수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습이라고 해야 할 피의 복수의 주체는 언제나 남성이었습니다.

그리고 피의 복수를 통해 지켜내야 할 것은 가부장의 명예, 가문의 명예, 남성의 명예였습니다.

따라서 중동지역 여성들은 피의 복수라는 인습의 희생양일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파생하는 여성으로서의 성적 차별의 이중 희생양이라 할 것입니다.


사실 모든 비극의 첫 번째 원인은 할릴이 에스메에게 최초에 가했던 납치와 강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할릴이 행한 남성적 폭력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신부를 얻은 용기있는 행동으로 치부됩니다.

에스메는 피해자였지만 그녀가 그리던 행복, 그녀가 바라던 사랑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에스메는 남편 할릴의 죽음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문과 마을공동체로부터 ‘남편을 죽음에 빠뜨린 여자’, ‘창녀’로 지목받아 ‘죽어 마땅한 여자’로서 피의 복수의 대상자가 됩니다.


더욱 잔인한 것은 할릴과 에스메의 아들 하산을 이 피의 복수의 집행자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원래 하산은 어머니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를 지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산에게 이렇게 충동질합니다.

“네 아버지는 원한을 풀지 못해 소복을 입은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돈다. 그 원한의 제공자는 네 어머니 에스메이다. 너는 할릴의 아들이니, 마땅히 할릴을 죽인 네 어머니 에스메를 죽여 원수를 갚고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직접 할릴의 혼백을 만났다는 둥, 할릴이 구렁이가 되는 것을 보았다는 둥 온갖 미신과 주술의 힘이 더해집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도 곧이듣지 않을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세 사람만 합심해서 같은 거짓말을 하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믿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집단적 광기, 집단적 몰아세우기의 힘이 마침내 하산에게도 똑같은 광기를 가지게 하고, 어머니를 향해 복수의 총을 들게 하는 과정이 섬뜩하기만 합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독사’란 무엇이었을까요?

할릴의 친족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에스메는 죽여야 할 ‘독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으로 본다면 이와 같은 가부장적 차별구조와 남성 중심의 인습이야말로 죽여버려야 할 사회의 독사와 같은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산이 모든 참소를 이겨내고 어머니를 지켰더라면 그는 ‘독사’를 죽이고 생명을 얻은 셈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산은 독사에 굴복하였고, 어머니는 피해자로, 자신은 패륜자요 범죄자로 전락시켰습니다.


인습의 힘과 인습의 무서움이란 것, 집단적 광기의 무서움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혹시 우리 사회도 무지함과 무관심 속에서 독사를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마침내 그 독사가 자라나 자기자신을 물어 죽음에 이르게 했을 때에야 ‘그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라는 한탄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작가에 대해서....

오르한 파묵 이후로 두 번째로 만난 터키 작가였는데, 파묵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파묵의 작품은 서구화 속에서 터키의 전통을 지키고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속 인물들도 터키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지식인 또는 사회지도계층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구요.

그런데 야샤르 케말은 터키의 기층 민중들의 삶을 보다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파묵과 차이가 났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서구화나 전통의 계승보다는 인습이 된 전통이 어떻게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의 회복과 인습의 극복. 하나의 대상에 대해 정반대 방향에서 접근하는 위대한 작가를 둔 터키는 이 두 명의 작가로 인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e 2009.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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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공동체의 폐해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공동체의 폐해" 내용보기
이 책은 2개의 중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그 중 여자에게 반해서, 여자를 납치해서 결혼해 버립니다. 졸지에 연인을 도둑맞은 남자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버린 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녀의 집 근처에게 배회하다가, 결국 그녀의 남편을 죽여버리고, 동네사람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합니다. 그렇게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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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개의 중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그 중 여자에게 반해서, 여자를 납치해서 결혼해 버립니다. 졸지에 연인을 도둑맞은 남자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버린 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녀의 집 근처에게 배회하다가, 결국 그녀의 남편을 죽여버리고, 동네사람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합니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격정에 휩쓸린 폭력의 축제가 끝이 난 뒤에, 누군가는 그 뒷처리를 해야만 합니다. 


졸지에, 과부가 되어버린 여자를 두고, 남편의 식구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어떻게든 죽여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를 죽이러 간 남자들은 오히려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에게 구애를 하게 되지요. 


마을 사람들은 이 여인을 어떻게든 죽이려고 하지만, 아무도 죽이려 들지는 않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처럼, 누군가가 대신 처리해주기만을 바라고, 마을 사람들의 다수결에 의해 선택된 처형자는 바로 그녀의 아들이었지요. 


하지만, 존속살해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어린 아들이 미쳐버릴때까지 엄마를 죽이라고 세뇌를 시키고 결국 아들은 엄마를 총으로 쏴서 죽이게 됩니다. 


2. 아으르 산의 신화

- 제후의 말이 산으로 달아납니다. 그 말을 주운 산속의 남자는 말을 돌려주지 않고, 화가 난 제후는 그 남자를 잡아다 감옥에 가둡니다. 남자는 밤마다 피리를 불었고, 그 피리 소리에 홀린듯, 제후의 딸이 그와 사랑에 빠집니다. 


제후는 말도 빼앗기도 딸도 빼앗기자 너무나 화가 나서 억지로 남자를 죽여버리려고 합니다. 그런 제후의 권력의 남용에 화가난 사람들은 시위를 벌이고, 사람들의 시위에 겁을 먹은 제후는 결국 그 남자를 용서하고, 딸과의 결혼을 허락합니다. 


결혼이 허락이 되자, 남자는 스스로 제후의 딸과 헤어집니다. 왜냐하면, 제후의 딸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다른 남자에게 순결을 팔았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기 때문이지요. 


두 소설 모두에서, 주인공의 파멸은 그 자신의 악덕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주변에서 강요한 가치관 때문에, 그 공동체에 계속 속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스스로 망쳐버리게 됩니다. 


개인주의는 기득권의 논리라고들 합니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의 논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힘 없는 사람들은 서로 뭉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는 것은 없습니다. 


공동체가 사회문제의 모범 답안일 수는 있어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경고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개인주의가 대안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l*****6 2013.10.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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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들에 대한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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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다. 소위 말하는 제 3세계 작가들에게 자꾸 손이간다. 비슷한 처지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터키 작가다. 터키 작가로는 오르한 파묵에 이어 두번째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더 읽으려고 하다가, 올해 노벨상을 받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아 피했다.   두 편의 중편이 실렸다.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와 '아으르산의 신화'이다.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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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다. 소위 말하는 제 3세계 작가들에게 자꾸 손이간다. 비슷한 처지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터키 작가다. 터키 작가로는 오르한 파묵에 이어 두번째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더 읽으려고 하다가, 올해 노벨상을 받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아 피했다.   두 편의 중편이 실렸다.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와 '아으르산의 신화'이다.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만 살펴보면 이 작가의 일면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이슬람 사회에서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명예살인'과 '납치혼'에 얽힌 실화이다. 아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엽총으로 쏴 죽인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실화이다).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고, 바람 피운 남자가 남편을 죽였다. 어머니는 원래 바람 피운 남자를 좋아했다. 그러나, 죽은 남편에게 납치되었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복수를 위한 살인이 허용된다고 한다. 더불어, 좋아하는 여자를 납치해서 결혼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한다(물론, 현실은 미묘한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죽은 남편의 집안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은 아들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할 것을 강요한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섬세한 심리 묘사로 어머니를 죽인 소년과 마을 사람들의 심리를 그려낸다. 마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년의 죽은 아버지의 영혼이 마을을 떠돈다고 말한다. 그래서, 복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왜 하필 소년이 복수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죽은 사람들과 관련된 사람은 수없이 많을텐데. 작품 중간에 두 줄 정도 이런 말이 나온다. 적어도 여자의 자식이 여자를 죽이면 여자의 형제들이 다시 복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관습이란 이상하다. 폭력이 결합된 관습이란 이상하다. 그 하중이 반드시 사회의 약한 부분으로 집중된다.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어제, 학교에서 60여차례의 폭력을 당하고 아버지한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는 어느 중학생의 기사를 보았다. 인간은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을 배제시킨다. 인간은 집단의식이 작용할 때 잔인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잔인하다. 누구에게나 광기는 내재해있다. 그 광기를 발산할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 단지 그 광기를 관습이라고 포장할 뿐이다.   시대가 어두울 수록 작가는 더욱 빛을 발하나보다. 이런 작품이 범할 수 있는 계몽적이고 자기 위선적이고, 시혜적인 폭력을 무난히 넘어선 작가이다.
g********m 2006.1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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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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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있는 동안 밖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하산의 나이는 아마 예닐곱 살이었을 것이다. 하산은 그 짧은 순간에 아버지의 턱이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잠시 후 아버지는 총에 맞았고 하산은 연기를 보다가 아련히 정신을 잃었다. 아버지가 죽고 사람들이 몰려 와서 어머니를 끌어 냈다. 삼촌들은 어머니에게 발길질을 해댔고, 할머니는 자지러지는 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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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있는 동안 밖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하산의 나이는 아마 예닐곱 살이었을 것이다. 하산은 그 짧은 순간에 아버지의 턱이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잠시 후 아버지는 총에 맞았고 하산은 연기를 보다가 아련히 정신을 잃었다. 아버지가 죽고 사람들이 몰려 와서 어머니를 끌어 냈다. 삼촌들은 어머니에게 발길질을 해댔고, 할머니는 자지러지는 통곡소리를 내며 울었다. 어머니는 할릴(아버지)을 죽인 것은 자신이 아니며 압바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미 압바스를 죽여 그 시체를 마당에 가져다 놓았었다. 어머니는 그 시체를 보며 '당신이 이렇게 죽다니..'라며 흐느꼈다. 사람들은 화냥년같은 인간이 남편을 죽였노라고 욕지거리를 해댔다.

  

아버지의 장례가 지나고 할머니는 매일 같이 하산에게 너의 원수는 니 어미라는 말을 했다. 하산을 끌어 안고 우는 할머니의 손을 풀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가 밥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표정은 가끔 밝아보이기도 했다. 하산은 혼란스러웠다. 어느날 무스타파 삼촌은 자개가 촘촘히 박힌 장총을 하산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하산아, 이 총은 네가 가져라. 네 할아버지가 쓰시던 총인데 유언에 그러셨지. 우리 집안의 원수를 갚는 첫번째 대장부에게 물려주라고..... 자 받아라. 잊부터는 총을 쏘고 싶을 때 마음대로 쏘아라.' 그래서 하산은 그 총을 들고 매일 산으로 들로 다니며 사냥을 했다. 그게 다였다. 처음에는... 

  

이 단편은 두 가지의 큰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는 '납치혼'이고 또 하나는 '명예살인'이다. 사실 하산의 어머니 에스메가 남편을 죽인 사람을 보며 슬퍼한 이유는 따로 있다. 에스메는 할릴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압바스는 그 전부터 에스메를 사랑하고 있었으나 감옥에 있었다. 그 사이 하산의 아버지인 할릴이 에스메를 납치해 아편을 섞은 음료를 먹여 겁탈한 것이다. 할릴은 혼인신고를 해버리고 법적으로 혼인절차를 밟았다. 에스메는 일년이 넘게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압바스가 포기하게 하기 위해 결국 아이를 임신 시킨다. 그 이아가 하산이다. 그녀의 인생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는데도 잔인하게 흘러갔다. 그녀가 의지하는 것은 오직 하산 뿐이었다. 할릴이 죽고 나서 하산의 삼촌이 와서 에스메에게 떠나라고 말한다. 에스메는 하산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삼촌은 그러면 당신은 죽게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돌아간다. 

  

아버지의 가족들은 사람을 시켜 어머니를 죽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사람들은 하산에게 찾아와 할릴이 한이 맺혀 저승에 가지도 못하고 하산에게 원수를 갚아 달라고 했다고 전한다. 어머니를 향한 하산의 맹목적인 사랑이 분노가 될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을 해댔다. 병역기피자 케림 아저씨는 어머니에게 찾아와 아버지의 유령을 봤다고 이야기 했고, 그 이야기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양 마을에 퍼져 나갔다. 그중에서는 그런 불길한 기운을 눈치챈 어떤 노인은 절대 니 손으로 어머니를 죽이는 건 안된다고 다짐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움직임도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할릴의 공포를 완화시키지 못했다.  

  

할릴은 마침내 매일 밤 하산의 꿈에 나타났다. 그 모습은 언제나 처절하게 형상화 됐는데, 가끔은 구렁이의 모습으로 때로는 도마뱀이나 개구리, 올빼미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는 항상 그를 위해 복수를 해달라고 말했다. 꿈속에서 그는 매번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며, 간절하게 부탁하듯 복수를 부르짖었다. 그렇다면 '독사'는 아마도 아버지의 원혼이었을까. 하산이 방아쇠를 당겨야 했던 것은 어머니를 향해서였을까. 아버지의 환영 혹은 할머니나 삼촌들의 미신같은 믿음이었을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동네 사람들을 떨게 만든 지독한 공포심이었을까.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결국 슬금 슬금 나를 뒤쫓아와 결국엔 나를 집어 삼켜버린 고통과 슬픔의 거대한 독사에 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우리 삶에 한번쯤은 그 거대한 '독사'와 마주할 순간이 있으며, 그때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인생의 방향을 전혀 다르게 바꿔 놓을 수도 있다.  

 
YES마니아 : 로얄 c****o 2022.05.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