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소감에서 2005년 이효석문학상을 받은 구효서는 적고 있다. “매번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친구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꼭 타야 할텐데…… 그들이 많이 안타까워했다. 세월이 흘렀다. 그들은 이제 공연히 내 앞에서 미안해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문학상을 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록 친구는 아니지만, 나의 마음을 꼭 대변하는 것 같아 작가에게 고맙다. 열성독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구효서의 소설들은 거의 다 읽었다고 자부한다. 그렇기에 항시 마음의 빚을 지게 되었다. 위에서 말한 문학상이다. 이 정도면 받을만한데, 내년에는 받겠지 하는 마음의 짐이 싸일수록 간혹 만나게 되는 그의 소설들을 읽기 전에, 꼭 대면해야하는 작가의 프로필과 거의 변동없는 그 흑백사진을 지나치기가 참 어려웠다. 이제는 조금 편해질 것 같다. 사실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추천 우수작의 대부분은 다른 문학상에서 산재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구효서란 그 이름만으로, 그리고 내가 지게 된 마음의 빚을 들고자 산 책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소금가마니’란 작품을 읽고 조금은 달라진 구효서 아저씨를 만나게 되어 기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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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작업을 끝낸 뒤 버거킹 매장 탁자 위에 누웠을 때였다. 몸은 마치 잔뜩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했지만, 그럴수록 그의 정신은 더욱더 또렷해졌다. 그리고...... 그래서 그는 다시 자기 자신이 서 있는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다.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기가 무엇 때문에 하루 종일 벽을 부수고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그는 매일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 (중략) 낮엔 모두 잊혀져 있던 미래들이, 밤만 되면 그의 곁으로 찾아와 하나 둘 불을 밝혔다. 그는 그 불빛에서 헤어나고 싶었다. 아아, 그 순간 곁에 도스토예프스키라도 있었다면, 아니 베게트라도, 아니, 그 딱딱한 조이스라도 있었다면...... 그는 그들이 못 견디게 그리웠고, 또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 그들 중 한 권만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그는 오로지 자신만 남겨진 밤이 두려웠다. 밤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135-136).
문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시인, 소설가, 평론가, 기타 등등)이 혹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어떤 감정 같은 것, 혹은 극단의 외로움이나 고통, 고독을 느낄 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찾게 되는 어떠한 것들을 가장 잘 보여준 대목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왜 이기호는 이 작품의 제목을 수인(囚人)이라고 지은 걸까? 스스로 만든 감옥 안에 자발적으로 유폐된 존재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수인(囚人)'이라는 걸 깨닫고 사는 유일한 족속들이라는 의미일까? 전자이든 후자이든 이들의 삶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건 자명하다. 그래서 이 자조적인 자기 정의가 서글프냐 하면 딱히 그렇지는 않다. 결국 그들 스스로의 선택이라서?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OO문학상 수상작품집'류의 책들을 읽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겠다. 요즘에도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적엔 다양한 과자들을 모아 한 상자에 담아 파는 종합선물세트라는 게 있었는데 마치 그런 걸 받는 기분이다. 혹은 4-50개가 넘는 아이스크림들 앞에서 무엇을 먹을까 행복하게 진열장을 바라보는 기분 같은 것?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시작하지만, 뜻하지 않게 맘에 드는 작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렇게 시작해서 그 작가를 좋아하게 되고 결국 전작을 다 읽게 될 수도 있는 거다. 혹은... 좋아하는 작가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기쁨이랄까? 홍대에서만 만나던 사람을 강남 한복판에서 만나면 익숙하던 사람도 새롭게 느껴지는 기분 같은 것. 낯선 곳에서 다시 보기. 한 작가의 작품들만 모아놓은 단행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뚝 떨어뜨려 보기, 혹은 다른 작품들 속에서 보기, 같은 것. 흐름이나 맥락 없이 볼 때 이미 읽었던 그 작품은 어떤 식으로 새롭게 읽혀질 수 있나, 뭐 그런 것. 내가 'OO문학상 수상작품집'류의 책을 읽는 이유. 그것도 한참 지난 책들만 골라서 읽는 이유.
구효서는 순전히 '검은지층'님 덕분에 읽게 된 작가였는데,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검은 지층'님이 많이 생각났다. 잘 살고 있는지. 뭘 하고 사는지. 내가 블로깅하고 처음으로 만난 친구였는데. 나에게 '도라지꽃 누님'을 추천해준 친구이기도 하고(그런데 왜 나에게서 '도라지꽃 누님'을 연상했는지 이 작품을 몇 번 읽어봐도 감을 못 잡겠다. 내가 도라지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잠수 그만 타고 다시 컴백해서 꼭 이유를 알려주길). '소금 가마니'에서 보여주는 개인사, 가족사 등의 미시사적 접근은 한때는 무척 관심 있었는데(문학의 사회적 역할이랄까? 뭐 그런 측면에서), 두부처럼 담백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뭐랄까? 간수가 많이 들어간 두부 같은 느낌?(난 아직 구효서가 왜 좋은지 잘 모르겠다. 역시 난 수준 있는 독자는 아닌가 보다.) 상징성에 매이지 않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 어쨌든 '소금 가마니'는 우리 어머니들이 살아온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소재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평생, 자기를 증오하듯 어둠과 습기를 기꺼이 안아들여 자식을 사랑으로 지켜온 어머니의 시신이 간수를 빼낸 새하얀 소금처럼 정화되어 꽃상여 안에 누워 있었다. 무명 상복을 입은 서른 명의 자식과 손주들이 숨두부처럼 몽글몽글 상여 뒤를 따랐다. 그 무성하고 엄숙하게 연속되는 생명들을 바라보며 나는 마침내 혼자 울며 중얼거렸다. 당신의 생은 위대했습니다.
작품적으로 강렬하고 인상 깊었던 건 천운영의 '백조의 호수'. 솔직히 한국의 여성작가들의 글쓰기 방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크게 관심도 없었고, 아마도 조경란과 비슷한 부류(이 말 정말 싫어하는데 딱히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대체할 적당한 단어를 추천해주면 고맙겠다)라고 읽어보지도 않고 단정했었는데, 뭐랄까? 단단한 결기 같은 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유리처럼 쉽게 깨어질 것 같은 예민함 때문에 불안하다. 자조적이면서 비판적이랄까? 독특하다. 물론 내가 이런 스타일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지만... 암튼 기회가 되면 좀더 읽어봐야겠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느끼는 일과 사랑, 결혼 등에 대해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간결하고, 강렬하게 잘 보여준 작품 같다. 하성란의 '1984년'도 괜찮다. 하성란은... 마치 이런 느낌이다. 가난한 사람 편에 서야 한다고 외치면서 스스로는 가난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노동자, 농민이 어쩌구 저쩌구 떠들면서 스스로는 노동자나 농민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하성란은 가난한 사람이면서 노동자이면서 농민 같다. 이런 걸 뭐라고 설명해야지?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하지만, 꾹꾹 연필로 눌러쓴 글처럼 힘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생활자만이 줄 수 있는 울림 같은 것. 지나치게 무겁지도 현학적이지도 않지만, 솔직하고 정직한 자만이 줄 수 있는 뭐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1984년은 분명 과거의 시간인데 왜 한 번도 그런 인식을 하지 못하고 살았던 걸까? 아마도 조지 오웰 때문이겠지? 출근할 때마다 항상 1984년 LA 올림픽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보면서도 왜 한 번도 1984년을 떠올리지 못했던 건지...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던 그 해, 그래서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으로 만든 책받침을 가지고 다니던 그 때(도대체 그 책받침을 어디서 났던 걸까? 부채 같았던 것도 있었던 것 같고, 암튼 전단지처럼 하도 많이 뿌려서 길거리에 버려진 것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이게 맞는 기억인지 조차 자신이 없다. 워낙 희미한 기억이라서. 그 이전 기억들도 비교적 뚜렷한데 왜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단 그 해의 기억만은 이렇게 희미한 건지... 참 모를 일이다), 브라운관 속 유리 겔라를 따라 모두 숟가락을 굽히던 그 때(어, 난 이걸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나? 나는 내가 4학년 때 매우 성숙한, 다 큰 어른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 나이에도 역시 나는 미숙했던 거다. 딱 그 나이만큼의 아이처럼.).
나는 첫 직장에서 12년 동안 일했다. 근면 성실함은 모계 유전인 듯했다. 그동안 일곱 살이던 막내가 자라 1984년 그때의 내 나이가 되었다. 그때 난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내를 보니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나이였다. 찧고 까불었지만 어른들의 눈에는 어설픈 애어른 정도로 보였겠다(1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