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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고 너절한 인생들 껴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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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님의 초기작에는 그야말로 청춘의 물이 듬뿍 흘러 넘쳤다. 이유없는 반항과 방황조차도 아름다왔던 작품 속의 싸늘한 주인공의 시선은 요즘말로 쿨했기에 더욱 멋졌다. 5년만에 내놓았다는 이번 신작에는 그런 쿨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하찮고 너절해서 눈물나는 중년에 접어든 한심하고 슬픈 인생사들이 펼쳐진다. 조선족이 아니어도 남편이 3년째 식물인간이 아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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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님의 초기작에는 그야말로 청춘의 물이 듬뿍 흘러 넘쳤다. 이유없는 반항과 방황조차도 아름다왔던 작품 속의 싸늘한 주인공의 시선은 요즘말로 쿨했기에 더욱 멋졌다. 5년만에 내놓았다는 이번 신작에는 그런 쿨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하찮고 너절해서 눈물나는 중년에 접어든 한심하고 슬픈 인생사들이 펼쳐진다. 조선족이 아니어도 남편이 3년째 식물인간이 아니어도 누구의 인생인들 눈물나는 사연 하나쯤은 없겠는가, 머릿골 빠지는 고민거리 하나 없겠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뇌아거나 망각의 강에 빠져버린 치매자일 것이다. 바늘 하나 들어갈데 없이 팍팍한 살이, 그런 인생사를 담담하게 때로는 격렬한 고통으로 그려내는 작가들의 가슴은 철갑을 둘러졌을까하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글을 쓰기 위해 작가는 독자의 몇만배의 고통을 겪어내며 한줄한줄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쓸쓸한 이야기들 속에서 한 줌 희망을 찾듯 오늘도 나는 한 줄의 자서전을 써본다.
i****3 2005.10.14.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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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의 기억을 간직한 환멸의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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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을 읽었다. 두 번이나 읽었는데도 산뜻하게 이야기들이 정리되지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들이 쉽게 정리가 안 되는 혼몽한 서사들을 다루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 제각각 서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깊은 인상을 남기는 현실성 강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는데도 그 이야기들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는 한결같이 음울함 일색이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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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을 읽었다. 두 번이나 읽었는데도 산뜻하게 이야기들이 정리되지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들이 쉽게 정리가 안 되는 혼몽한 서사들을 다루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 제각각 서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깊은 인상을 남기는 현실성 강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는데도 그 이야기들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는 한결같이 음울함 일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편소설 여덟 작품을 읽은 게 아니라 마치 혼란스럽게 서사를 풀어만 놓고 그걸 정돈하려는 노력은 조금도 기울이지 않은 채 마무리한 어지러운 장편소설 하나를 읽은 느낌이 든다. 나만의 느낌일까.

 

아무튼 나는 그랬는데, 자칫 이 말이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겠으니,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의 수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수작들이었음을 미리 말해두어야겠다. 내가 느낀 혼란과 어리둥절함이란 다만 작품들에서 풍기는 지나치게 음울한 분위기 탓이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써내는 소설들은 전체적으로는 어둡다고 해도 군데군데 경쾌하고 산뜻한 작품이 얼마나 많은가. 최근에 읽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농담이나 웃음이라곤 전혀 없는 이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혼란과 어리둥절함이 가라앉자 거의 자동적으로 내 머릿속에는 글자 한 자가 돌올히 떠올랐으니 말이다. 멸(滅). ‘죽다, 사라지다, 꺼지다, 다하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이 한자어는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에서 명시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발견되는데, 주로 ‘환멸(幻滅)’이라는 단어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이 ‘환멸’의 기록들이라는 사실에 나는 일단 주목했다.

 

그즈음 그는 간혹 나를 바라보다 말고 깜짝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짓곤 했는데, 나는 그가 순간순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여자가 누군가…… 그런 혼란은 물론 찰나적인 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지나자마자 그는 ‘그 여자’를 알고 싶은 욕망을 잃어버렸다. ‘그 여자’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알려고 하는 것은 통장의 잔고와 노후에 받게 될 연금의 액수뿐인 듯했다. 때때로 그는 승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승진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에겐 더이상 나와 할말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94쪽, 「바다와 나비」)

 

그는 화선과 함께 처음으로 731부대를 관람했었다.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악해질 수 있고, 그 악에 대해 무감각해질 수 있을까. 그는 거의 두들겨맞는 듯한 느낌으로 731부대의 기록들을 보았다. 전시실을 한바퀴 다 돌고 부대의 마당으로 나왔을 때, 화선이 그에게 기념사진을 찍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날이 처음이었지만 그보다 하얼삔 생활이 일렀던 화선은 지인들이 올 때마다 안내를 하느라고, 그날이 최소한 다섯번째는 될 거라고 했다. 선과 악은 어느 지점에서 구분이 되는 거 같아요? 삶과 죽음처럼, 그건 그냥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충격은 사라지고 환멸만 남은 목소리로 화선이 그렇게 말했을 때, 토할 것 같은 역겨움과 인간에 대한 두려움에 고스란히 사로잡혀 있던 규상은 이렇게 대꾸했다. 한가지 분명한 건, 무엇이든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거지. 사랑은, 연민은, 아픔은…… 살인은, 폭행은, 강간은…… 전부 다 사람이 하는 일이지. (117쪽, 「감옥의 뜰」)

 

환멸이란 무엇인가. 내가 갖고 있는 국어사전에서는 ‘이상(理想)이나 희망의 환상이 사라지고 현실을 접하는 허무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환멸을 느끼기 위해서는, 또다른 ‘멸’인 소멸(消滅)이 우선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소설집에서 가장 뛰어난 두 편의 작품(김인숙은 「바다와 나비」로 이상문학상을, 「감옥의 뜰」로는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에서 옮긴 위 문장들에서 읽을 수 있듯이,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이나 휴머니즘에 대한 믿음 따위가 소멸한 자리에서 작품 속 주인공들의 환멸은 자라난다.

 

이렇듯 소멸은 환멸의 뿌리이며 환멸의 대문자이다. 따라서 환멸의 기록에는 사라진 것, 떠난 것, 잃어버린 것, 다한 것, 죽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 즉 소멸의 서사가 뒤따르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 작가가 늘어놓고 있는 그 소멸의 목록은 각양각색 참으로 다양하다. 우선 작품 속 주인공들이 겪는 소멸의 목록을 살펴보자.

 

정치가를 꿈꾸는 졸부의 자서전을 대필하게 된 여성작가가 밥벌이와 맞바꿔버린 작가적 양심(「그 여자의 자서전」), 오랫동안 간직해 왔으나 우연한 만남으로 구겨져버린 젊은 날의 애틋한 기억(「숨은 샘」), 주위에서 들은 소문을 확인하느라 몰아부친 애인이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바람에 그 상처를 평생 품게 된 트럭 운전사의 덧없는 사랑(「밤의 고속도로」), 구제할 길이 없는 속물이 된 남편과 늙은 노모가 보여주는 텅 빈 삶의 의미(「짧은 여행」), 사고로 몸이 마비되어 이제 더이상 사랑을 나눌 수 없게 된 산송장 남편의 버러지 같은 육체(「모텔 알프스」), 만인의 사랑을 받은 텔레비전 광고 목소리의 주인공에서 베이비시터로 전락한 젊은 여자 성우(聲優)의 이루지 못한 꿈(「빨간 풍선」).

 

여기에 그 주변 인물들의 소멸의 목록까지 더해져 있으니 이 책은 가히 소멸의 서사로 가득 찬 소설집이라 하겠다. 그러니 분위기가 그토록 무겁고 어두운 것도 당연한 일일 터. 그러한 소멸의 기억들을, 그리고 소멸에서 비롯된 환멸들을 주인공들이 떨치고 일어나는 모습을 봤으면 좋으련만 작가는 좀처럼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소멸의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소멸에서 비롯된 환멸을 이겨내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바다와 나비」에서, 여주인공이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 처녀 채금의 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어렸을 때 어른들 허리틈 사이로 공개처형 당하는 죄수의 죽음을 목격한 일이 있는데, 그날 이후로 한쪽 눈이 안 보이게 된 늙고 병든 불구의 사내다.

 

어른들에게 방치된 아이는 홀로 걸었다. 한쪽 눈으로만 눈물을 흘리면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는 눈물이 흐르는 눈이 어떤 눈인지를 분명히 알았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지 않은 순결한 눈이었다. 어른들의 허리틈에 짓눌려 있느라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눈. 다른 쪽, 죽음을 목격한 눈만이 눈물을 거두어버렸다. 그가 그 순간에 알았는지, 아니면 그후 오십년 세월을 살아가면서 깨닫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알았다. 눈물을 거두어버린 한쪽 눈은 이제 한사람의 죽음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또한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남아 있는 눈은, 눈물을 거두어버린 눈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보다 더 흉하고 끔찍한 것들을 평생 목격하게 되리라. 한쪽 눈의 마지막 기억을 비웃으면서, 더 많은 것, 더 지독한 것들을 담아내리라. (86쪽, 「바다와 나비」)

 

소멸 중에서 가장 극단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형식인 죽음을 목격했기에 한쪽 눈이 멀어버린 이 아이에게 실명한 그쪽 눈보다 더 가혹한 것은 죽음을 보지 않은 다른 쪽 눈이라는 전언은 언뜻 억지이자 역설로 여겨진다. 그러나 평생 그를 따라다닌 가난, 한쪽 다리마저 잃은 부상,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교통사고, 그를 놔두고 한국으로 떠난 아내, 그리고 이제는 딸마저도 한국으로 떠나게 된 상황 등 그가 처해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라. 그후 오십 년 동안 눈이 멀지 않은 한쪽 눈으로 그가 자신의 삶에서 목격하게 되는 온갖 불운과 불행은 이 역설이 억지도 거짓도 아님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지 않은가.

 

환멸이란 바로 이 불운하고 불행한 사내의 멀지 않은 한쪽 눈과도 같은 것인데, 오직 그쪽 눈으로만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 눈물이란 공포나 증오나 불안이 아니라 아마도 연민이나 사랑이나 체념의 눈물일 터이다. 오직 순결한 영혼만이 그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법이니, 환멸 역시 그런 섬세하고 민감한 영혼들만이 감당하는 몫이라는 뜻이겠다. 그와 함께 공개처형장면을 함께 보았던 동네사람들은 그 누구도 눈이 멀거나 울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다만 잠시 공포와 불안을 느꼈을 뿐인 동네사람들은 죽음을 목격한 후 한쪽 눈이 멀어 버렸다고 말하면서 다른 쪽 눈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 소년을 ‘경멸’하고 ‘모멸’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보게 되는 또다른 이 ‘멸’은 ‘멸(滅)’이 아니라 ‘멸(蔑)’이라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남을 업신여기고 깔보는 이 경멸(輕蔑)과 모멸(侮蔑)에는 연민이나 사랑이나 체념이 깃들 틈이 없다.

 

환멸은 경멸이나 모멸과는 달리 자기 자신을 향하는 내성(內省)의 시선이다. 환멸이 비롯된 소멸의 대상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이든 자기 바깥에 있는 것이든 간에 환멸을 느끼는 영혼은 결국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살아 있는 한, 그래서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한, 환멸은 끈질기게 따라붙기 마련이고, 작품 속 주인공들은 그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인 양 그런 환멸을 견디고 또 견딜 뿐이다. 그 견딤의 방식은 그들이 경험한 소멸이 각양각색 다양한 것처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홈쇼핑 중독으로(「그 여자의 자서전」), 자식 유학을 핑계 대며 남편의 곁을 떠나는 중국행으로(「바다와 나비」), 보다 위험스럽게는 도박과 마약에 빠져드는 모습으로(「감옥의 뜰」) 나타나기도 한다. 「알프스 모텔」에서 전신마비 남편을 둔 여주인공이 시어머니와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도, 「빨간 풍선」에서 잘 나가던 왕년의 성우가 고층빌딩을 걸어 올라가는 것도 모두 그들이 마주친 환멸을 견디기 위한 나름대로의 안간힘인 것이다.

 

성우가 곧바로 베이비시터로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의 사촌처럼 길고긴 실업자 세월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 시절에 나는 끝없이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남들과 달랐다면 나는 앞으로 걷거나 옆으로 걷는 대신 위로 걷는 방법을 택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높은 빌딩이 보일 때마다 내려서 그 빌딩의 꼭대기까지 계단을 걸어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비만, 특히 복부의 비만을 방지하는 데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 내 몸은 점점 더 날씬해지고 단단해지고 아름다워졌다. 낯선 빌딩의 낯선 옥상에 서서, 나는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내려다볼 수 있는 세상은 그다지 크지도 않고,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그러나 욕심이 많지 않는 나는 그만큼이라도 갖고 싶었다. 말하자면, 나도…… 갖고 싶었다…… 냉장고와, 냉장고가 있는 집과, 그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시는 남자를…… 나도, 갖고 싶었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나를 냉장고에 넣어주세요! 그리하여 내 목소리를 차갑게 얼려주세요! 나는 내 유일한 채널을 열어, 세상의 모든 스피커들이 뻥 뚫려버릴 때까지, 차갑고 시린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234~235쪽, 「빨간 풍선」)

 

환멸을 견디기 위한 이러한 다양한 방식들은 모두 도피이고 회피일 뿐이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소멸에서 비롯된 그들의 환멸이 다다를 수 있는 최후의 지점인 또다른 소멸, 즉 그들 자신의 죽음으로 가는 길을 차단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위 인용문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가끔씩은 삶에 대한 한 가닥 욕망을 품게 만든다는 점에서 환멸로부터 빠져 나오는 뜻밖의 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세상의 상식적인 기준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는 그 욕망은 어쩌면 참으로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작고 희미한 욕망이 그들을 살게 하고 마침내 환멸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 되어 주는 것이겠다.

 

소멸에서 환멸로 다시 소멸로 이어지는 무한 악순환을 끊어주는 이 사소한 욕망, 이 희미한 마음에 ‘욕’이라는 한 글자를 붙여주면 어떨까. 세상 사람들이 너무 작다고 경멸하고 참으로 보잘것없다고 모멸해서, 모욕당한 심정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참담한 ‘욕(辱)’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욕심을 내고 탐을 내서 알뜰히 온전히 내 것으로 삼아보려는 그런 소박한 ‘욕(慾)’ 말이다. 이 비루한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나가기 위하여 감당해야 하는 ‘멸’은 ‘욕’과 짝을 이루기 마련인데,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손쉽게 타인에게로만 시선을 돌리는 경멸(輕蔑)과 모멸(侮蔑)의 ‘멸(蔑)’이 모욕(侮辱)과 치욕(恥辱)의 ‘욕(辱)’을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소멸(消滅)과 환멸(幻滅)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 ‘멸(滅)’은 의욕(意慾)과 무욕(無慾)의 ‘욕(慾)’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니까.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욕(慾)’의 모습은 적극적인 욕심인 ‘의욕(意慾)’보다는 달관에 가까운 마음인 무욕(無慾) 쪽인데, 아쉽게도 작가는 그런 소박한 ‘욕(慾)’을 드러내 보이는 데도 참으로 인색하다. 작품의 결말에 가서야 겨우 그 기미를 살짝 보여줄 뿐이다. ‘멸(滅)’에서 ‘욕(慾)’까지 이르는 길이 얼마나 멀고 힘겨운지 작가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책 뒷표지에 동료 소설가인 이혜경이 써준 추천사를 읽어보니, ‘김인숙은 자주 넘어지는’ 작가라고 말하고 있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다음 작품집에서는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서 훌훌 털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든다.



c*****t 2013.09.10. 신고 공감 1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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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모텔 알프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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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했던 남편이 불구가 되면 어떨까? 여자의 남편은 일하다 척추를 다쳐 신체가 마비되었다. 하루 종일 누워있을 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움직일 수 없는 남편의 몸은 무섭게 살이 붙고 등에는 욕창까지 생겼다. 여자에게 남편은 곧 집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친척도 없는 천애고아다. 게다가 남편은 그녀의 첫사랑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그녀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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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했던 남편이 불구가 되면 어떨까? 여자의 남편은 일하다 척추를 다쳐 신체가 마비되었다. 하루 종일 누워있을 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움직일 수 없는 남편의 몸은 무섭게 살이 붙고 등에는 욕창까지 생겼다.

여자에게 남편은 곧 집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친척도 없는 천애고아다. 게다가 남편은 그녀의 첫사랑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그녀의 몸을 그토록 탐하는 그가 신기하고 고마웠던 여자. 남자가 우리 집에 가자, 했을 때 세상을 전부 가진 것 같았던 여자-는 이제 그 집을 떠나고 싶다.

여자는 모텔에서 청소 일을 한다. 그녀가 그 직장에 다니게 된 것은 생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모텔에서 숙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한다. 집을 떠나오면 집은 돌아가야 할 곳이 되지만, 집에 도착하면 이제 집은 떠나야 하는 공간이 된다고. 남편의 집을 영영 떠나고 싶은 충동을 누르기 위해 집은 돌아가야 할 곳이 되어야 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집을 떠나 모텔에 사는 것이다.

모텔 사장의 말과 행동에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혼이 난 뒤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이 사장을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의 행동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웃음이 나는 것이라고. 현재 그녀의 집은 사실상 모텔이다. 그러니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는 자연히 모텔 사장이 되는 것이다. 천생이 외로운 여자에게 집이란 울타리의 의미는 절대적이다. 집이 되어주는 사람에게 그녀는 의지할 뿐이다. 남편에게도 사장에게도 열정적인 사랑의 마음은 없다.

술 취해 모텔 알프스로 돌아가는 사장의 뒷모습을 쫓아가다가 사장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그녀는 고양이와 마주친다. 그 고양이는 새로 지어진 고급의 러브호텔들을 놔두고 굳이 가장 오래되고 퇴락한 모텔 알프스에 살고 있다. 장맛비로 지하가 침수되었을 때 그 고양이는 새끼를 잃었다. 그날 하루 종일 울던 그 고양이가 또다시 새끼를 잃은 모텔 알프스로 돌아가는 길인 것이다. 사장은 돈을 끌어와 모텔을 꾸미지만 계속 손님이 없자 술에 취해 중얼거린다. “뭐가 문제라는 거야? 딴 데도 아니고 꼭 내 집에서 새끼를 내는 것들도 있는데! 딴 데도 아니고 꼭 내 집이어야만 한다는데!” 남편의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계속 자신을 따라다니던 끈질긴 시선을 또다시 느끼고 창문을 확 열어젖힌다. 시어머니의 질투어린 엿봄일 것이라 짐작했던 그녀는 뜻밖에 그 고양이의 눈빛과 마주하게 된다.

고양이는 그녀에게 돌아가야 할 곳을 일러주는 존재일 것이다. 실제로 고양이는 주인이 이사를 가도 집에 남는다고 한다. 개가 집을 버리고 주인을 따르는 것과 다르다. 낡아 비가 새는 바람에 새끼를 잃었어도 돌아갈 곳. 생계를 짊어져야 하고 점차 버러지처럼 느껴지는 남편이 있는 곳. 영영 떠나고 싶은 충동을 다스리느라 모텔에 취직까지 했지만 사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돌아가야 할 곳을 일러주는 끈질긴 눈빛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남자에게서 집을 찾지 말고 그녀의 눈빛이 말하는 대로 그녀 스스로 집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느 소설의 문구가 떠오른다. “나는 바쁘다. 변방에는 늘 적이 쳐들어오고 성이 무너진다. 나는 지원군을 보내고 성을 수리한다. 나는 매일매일 가까스로 나를 유지한다.” 어쩌면 내 집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수시로 무너지는 ‘나’라는 성을 다시 쌓고, 감정과 기억의 변방에는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지원군을 보내며, 나를 지키며, 애써 지키며 살아야 한다.

a*******e 2013.01.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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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중요한 것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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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은 스무 살에 등단해 스물세 해를 소설가로 살아왔다. 소설가로 살아온 날들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은 사람의 사십대는 어떤 나이일까 잠깐 생각해 본다. 스무 살에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 그녀에게 행운이었을까, 묵직한 짐이었을까……. 그러나 그녀가 걸어 온 길을 보면 그녀는 늘 소설을 쓰고 있다. 살면서 한 가지쯤 지속적으로 열정을 바쳐 할 수 있는 일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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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은 스무 살에 등단해 스물세 해를 소설가로 살아왔다. 소설가로 살아온 날들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은 사람의 사십대는 어떤 나이일까 잠깐 생각해 본다. 스무 살에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이 그녀에게 행운이었을까, 묵직한 짐이었을까……. 그러나 그녀가 걸어 온 길을 보면 그녀는 늘 소설을 쓰고 있다. 살면서 한 가지쯤 지속적으로 열정을 바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분명 특별한 행운이자 복이다.

소설 때문에 그녀의 나이가 너무 이르게 겉늙어 버린 것은 아닐지, 그래서 그녀의 이십대와 삼십대가 남들보다 우울하고 힘겹지 않았을지 갸우뚱 생각해 보다가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한번쯤은 더 넘어져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는 달리던 탄력에 의해 넘어지기보다는 넘어지기 위해 탄력을 필요로 하게 되어버린 그런 나이쯤이 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직도 나는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마지막 문장을 되뇌이며 내 식대로 다시 말을 만들어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직도 나는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넘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이 모두 우울하다는 사실이다. 상실, 환멸, 절망, 회한, 슬픔, 분노로 얼룩진 삶.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먼지처럼 쌓여 있는 그 우울질의 흔적을 쓱 문질러 닦아 내면 희미하게나마 존재를 드러내는 의지와 긍정성이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하나같이 우울한 등장 인물들이 어쨌거나 삶을 긍정하고 다시금 살아가는 힘이 거기에 있다. 삶에 대한 긍정성을 품고 있는 소설을 우습게 보던 시절이 있었다. 해피엔딩, 화해, 희망, 이루어지는 사랑, 꿈의 실현을 말하는 소설은, 뻔한 거짓말을 뻔하게 늘어 놓는 것일 뿐이라고. 그때는 아무래도 지금보다야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지 못해서, 인생 쓴 맛을 덜 봐서 그랬을 것이다. 작가에게도 위대해지고 싶었던 스무 살의 어느 날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는 200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바다와 나비」, 2005년 이수문학상 수상작 「감옥의 뜰」을 비롯해 여덟 편의 소설을 만날 수 있다. 표제작은 정치판에 뛰어들고자 하는 오십대 재산가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가난한 여성 작가 이야기다. 아버지 몰래 오빠와 함께 책갈피 사이에다 끼워 둔 나뭇잎이 얼마나 말랐는지 들여다보던 어린 시절처럼, 생명의 주름이 사라져가는 나뭇잎의 모습이 실제보다 더 아름답고 더 영원하다고 생각했던 그때처럼 비루한 일상 속에서 실감해야 하는 절망과 분노를 다독이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럽다.

「숨은 샘」의 이영호는 대학 시절 데모 한 번 하지 않고 도서관에 파묻혀 공부만 하다가 공기업에 입사한다. 언젠가 한번은 전부를 걸고 힘차게 멀리 뛰고 싶었던 그는 파업의 선봉에 섰다가 해고를 당한 후 보험외판원으로, 살이 찌고, 머리가 벗겨지고,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 이영호는 주인공의 대학 동창이자 ‘숨은 샘’처럼 특별한 존재였으나 과거의 추억과 낭만마저도 현실로 일깨우고 훼손해 버린다. 그러나 이영호는 여전히 인생의 해피엔딩을 꿈꾸고, ‘나’는 “기억은 때묻고 더럽혀진 채로 쌓여가는 것이다. 모든 추한 꼴을 견디고 나서야 마침내 다가오는 생의 끝, 해피엔딩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와 나는 아직 그 끝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고 말한다.

역시 중요한 것은 우리 역시 아직 그 끝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가지 말라고 하는 길, 아직 걸어 보지 않은 막막한 그 길마저도 잘못 들어서는 거라고, 가면 안 된다고 누구도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막막하지만 벽이라도 더듬으며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로 오늘도 나는 산다.(*)

t****7 2007.03.18. 신고 공감 0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매혹적인 우울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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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소설들이다. 그냥 우울하기만 하다면 내 취향이 아니라고, 읽기 불편하다고, 굳이 안 읽고 넘기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고 말 텐데, 이 책의 우울에서는 짜증이 나지 않는다. 이것 참, 낯선 기분인데? 분명 등장인물들의 삶은 고달프고 남루하고 때로 지긋지긋하고 또 역겹기까지도 한데, 글이 읽힌다. 그냥 넘겨버리고 싶지 않고 한 문장 한 문장 따지듯이 바라보게 한다.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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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소설들이다. 그냥 우울하기만 하다면 내 취향이 아니라고, 읽기 불편하다고, 굳이 안 읽고 넘기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고 말 텐데, 이 책의 우울에서는 짜증이 나지 않는다. 이것 참, 낯선 기분인데? 분명 등장인물들의 삶은 고달프고 남루하고 때로 지긋지긋하고 또 역겹기까지도 한데, 글이 읽힌다. 그냥 넘겨버리고 싶지 않고 한 문장 한 문장 따지듯이 바라보게 한다. 그래도 우울한 느낌은 가시지 않는데, 한 편씩 다 읽고 나면 견뎌온 내가 살짝 대견해진다. 읽어내었구나.  


작가의 나이가 나와 비슷하다는 건 내 독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좀더 가깝게 느끼는 건 당연하겠지. 그 가까운 거리만큼 기대할 수도 실망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이 작가의 경우는 좋은 쪽으로 공감하게 해 준 듯하다. 책은 2000년대 초반 작품들이니 그 시절의 내 사정을 떠올리면 또 그것대로 작품과 연관지어 세상도 내 삶도 돌아볼 수 있어 괜찮고. 이 또한 좋은 마음으로 읽었으니 이런 기분인 것이고 반대였다면 떠올리기도 싫었겠지만. 


대학 때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의무 같은 게 내게 아직도 남아 있다. 국어교사라면 우리의 문학 작품을 꾸준히 사서 읽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분이 있으셨다. 나는 기꺼이 따르고자 했고, 지금도 그러려고 하는 편이다. 우리가 마음으로 책값으로 지원하는 것이 우리 문학을 살리는 가장 쉬운 길이라고 하셨는데 지금의 나는 마음보다는 책값에서 살짝 인색해지기는 했다. 사서 볼 책과 빌려서 봐도 좋은 책과 굳이 안 봐도 되는 책이 자꾸만 구별이 되고 있으니(우리 소설을 연달아 읽으니 더 구별이 잘 되는 느낌). 


이 작가의 책, <소현>에 이어 두 번째인가 보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읽기는 했을 텐데 이 책에서 다시 보니 하나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서 메모를 해 둔다. 아직 살 생각까지는 안 하고 있고.        

YES마니아 : 로얄 j***6 2018.11.26. 신고 공감 0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삶의 물결이 밀어낸 생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삶의 물결이 밀어낸 생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내용보기
산다는 건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과거의 삶에 머무른 사람들도 있다. 해서, 그들은 과거 진행형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게 삶이라는 걸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라던 삶의 방향과는 점점 멀어지고 수평선이 되버린 삶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현재진행형으로 위장한 과거 진행
"삶의 물결이 밀어낸 생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내용보기
산다는 건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과거의 삶에 머무른 사람들도 있다. 해서, 그들은 과거 진행형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게 삶이라는 걸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라던 삶의 방향과는 점점 멀어지고 수평선이 되버린 삶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현재진행형으로 위장한 과거 진행형의 살을 살고 있는게 아닌지.

 

 김인숙의 <그 여자의 자서전>의 사람들은 모두 그랬다. 과거의 조각난 삶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 조각난 부분이 계속해서 자신들 찌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놓지 못했다. 누군가는 아련한 추억이라 말할 그것들, 그러나 모두 알고 있었다. 더이상 추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제의 나와 다른 오늘의 나로 살고 싶은 욕망도 안다. 결국은 그 욕망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게 된다는, 그리하여 반복되는 일상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이상을 딸이 아닌 자신과 닮은 아들이 실현해주길 바랐던 아버지가 책장 가득 책들을 채운 이유도 아들을 위해서였다. 그 책에서 꿈을 키운 건 딸이었지만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그 여자의 자서전>의 그 여자는 자신의 책을 갖지 못했고, 자신의 책을 쓰지 못했다. 자신의 이야기 아닌 타인의 삶을 대필하며 산다. 어린 시절 오빠가 아닌 자신을 아버지가 봐주었다면 여자는 자신의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한 때는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고, 부질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허무의 연속, 그것이 삶일까. 단편 <바다와 나비>는 삶의 환멸과 허무에 대해 말하는 듯 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온 ‘나’와,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려하는 ‘채금’.  ‘나’는 아이의 중국 유학을 핑계로 남편과 별거를 시작한다. 아이가 기숙사로 들어가자, 혼자 남는다. 한국에 있는 채금의 어머니의 부탁으로 채금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그토록 한국으로 떠나려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나’와 ‘채금’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싶은 갈망이 같았다. 잘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남편도 나도 행복을 위장한 가식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 채금도 눈 먼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다.

 

 바다라는 끝도 없는 삶을 향게 날아가는 나비, 그건 바로 우리였다. 삶은 계속해서 바다를 건너는 몸짓이었다. 되돌아갈 수 없는 길, 하여 힘겹지만 날개짓은 쉴 수 없는 것이다. 소설은 내게 무기력해지는 봄날, 마냥 울고만 싶었던 초록의 어떤 날을 떠올리게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참으로 지난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게 아닐런지. 

 

 지나간 삶을 부여잡고 사는 이는 또 있었다. 안정된 결혼과 승진을 꿈꾸던 남자가 어느 순간 트럭 운저사로 전락해버린 <밤의 고속도로>, 지켜주고 사랑해준다 약속했던 남편이 식물인간이 되어버려 시어머니까지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젊은 여자의 깊은 한숨이 들리는 듯한<모텔 알프스>, 모든 것을 다 잃고 쫓기듯 중국으로 도망쳐 의미없는 생을 이어가고 있는 한 남자와 그가 간절하게 원했던 여자의 이야기<감옥의 뜰>.

 

 그때 나는 스물일곱살이었고, 정수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입사가 결정되었고, 내가 입사를 하자마자 정수기가 가정필수품인 것처럼 붐을 이루었고, 느닷없는 도시개발로 한뼘만하던 집값이 껑충 뛰어 집안은 집값에 붙은 동그라미 숫자를 헤아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풍요로웠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의 절정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꿈이 꿈만으로도 풍요로웠던 시절...... 140p

 

 그들에게도 삶의 중심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환한 미소로 빛을 발하던 시절 말이다.  그리하여, 미래를 꿈꾸고 행복을 계획하던 순간들. 어쩌면 김인숙의 되돌아보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난 시절을 잘 살아왔는지, 그 때 그 순간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산다는 건 무엇인가, 그 의미를 생각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여전하게 건너야 할 삶이라는 바다가 있음을 잊지 말라고. 바다에 들어온 이상 벗어날 수 없음을, 그 안에서 유영해야 함을 생각한다.

r*********s 2010.01.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4.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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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아야겠지. 슬프고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에 마음이 열리는 것은 왜일까... 살면서 이런 저런 꼴을 보고 마음을 다치고 혹은 다치는 줄 모르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소설들이었다. 나와 닮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나뿐이 아닐듯... 세상은 그런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 그러나 다들 힘들지만 어떻게든 살아낸다. 내가 소설을 읽듯 남의 삶을 살짝 곁눈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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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아야겠지. 슬프고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에 마음이 열리는 것은 왜일까... 살면서 이런 저런 꼴을 보고 마음을 다치고 혹은 다치는 줄 모르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소설들이었다. 나와 닮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나뿐이 아닐듯... 세상은 그런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 그러나 다들 힘들지만 어떻게든 살아낸다. 내가 소설을 읽듯 남의 삶을 살짝 곁눈질 하면서 때로는 용기를 얻고 때로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두주먹 불끈 쥐고... 언젠가는 하면서 살아왔듯이 ... 또 속으로 되뇌인다. 언젠가는...하면서...그러면 신기하게도 다시 일어나진다... 게다가 지금도 그리 나쁘진 않아... 사는게, 이런게 다 재미지 뭐 해진다....
YES마니아 : 로얄 s******1 2006.12.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