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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선 혜화역, 역사 밖으로 굳이 나가지 않아도 느낀다. 이 동네는 젊은 친구들이 참 많구나. 성균관대학교 방면으로 뻗은 길은 물론이요, 일대 어디든 다른 지역보다는 평균 연령이 확연히 낮음을 느끼기 딱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대학로’라 이 지역을 지칭했다. 지금은 캠퍼스가 관악으로 옮겨간 서울대학교가 한때 이 지역에 있었음을 적잖은 사람들은 여전히 기억한다. 어떠한 연유로 대학로라는 이름이 덧붙었는지 잘은 몰랐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유력한 하나의 이야기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모가 인위적으로 생성한 이름이 한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듯 지명에도 지역에 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근대적 대학의 도입은 1800년대 후반에서야 이루어졌다. 허나 성균관대학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으로 자신들을 소개한다.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는 고등 교육기관이 자신들의 기초라 여기는 까닭이다. 흔히 조선시대를 떠올릴 테지만, 고려 충선왕 시절 국자감을 성균관이라 고쳐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명칭은 우리의 역사에 등장한다. 물론 첫 위치는 지금과는 달리 개성이었지만, 한양을 도읍 삼은 조선 건국 직후 성균관 또한 한양으로 이전해 와 지금에 이르렀다. 자연스레 일대 마을은 성균관이 있는 동네, 한문으로 기재하자면 반촌(泮村)으로 불렸다. 명칭에만 영향을 준 게 아니었다. 반촌만의 독특함은 형성된 이래 꽤나 오랫동안 유지됐다. 대학 주변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식점이나 학생들이 묵을 수 있는 하숙 시설 등이 들어서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농사를 중시했다. 확고한 신분제도의 정점에는 양반이 위치했지만, 몸을 움직여 일하는 이들 중에는 농사짓는 경우를 최고로 쳤다. 소는 중했다. 한 가정, 더 나아가 고을의 농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소를 잡는 일은 천히 여겨졌다. 내가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면, 반촌 지역 사람들(이하 “반인”)은 독특하게도 소의 도축과 판매를 독점했다. 짐작가능한 대로 그들의 신분은 천민이었으며, 공기관인 성균관에 부역하는 공노비였다. 관직에 나아가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성균관 유생들의 그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멸시가 가득하지 않았을까. 평생토록 소득 없이 일만 해야 하는 노비들의 삶을 막연히 상상하는 나의 마음은 갑갑함으로 들끓었다. 반인들의 삶은 예상 밖으로 흥미진진했다. 기본적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성균관이지만, 모든 유생을 거두지는 못했다. 성균관에 기거치 못하는 유생들은 자연스레 반촌에 묵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정보를 공유했으며, 지적 역량을 겨루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신림동 고시촌이나 노량진 공무원 수험가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책에서는 지체 높은 나으리들 또한 필요에 의해 반촌에 터를 틀었다고 했다. 최신 정보에 민간함 입장에서는 반촌이 꽤 괜찮은 선택지였을 것이다. 어떠한 관계도 일방적이지는 않다. 반인들은 이러한 수요에 민감하게 대응했다. 이는 훗일까지 도모한 움직임이었다. 반촌에 기거했던 이가 과거급제를 하고 요직에 임명되면 그들은 지난날의 노고에 대한 대가를 요구했다. ‘역시 천한 것들’이라며 혀끝을 찰 법한 상황이 그려지기도 했다. 생존을 향한 열망은 생각 이상으로 질겼다.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신성한 지역이었기에 범죄자를 잡아 문책하는 일은 당연 금지였다. 양반이라 하여도 마음대로 집을 짓고 기거하지 못했다. 더구나 반인 모두가 ‘안향의 사노비’로부터 비롯된 데다 타 지역으로의 이주 등에 제약이 있다 보니 오래도록 그 정체성은 유지됐다. 서당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대대로 성균관 문화의 영향을 받아온 반인들도 비슷했다. 마을 전체가 나서 문집을 출간한 일은 반인들에게 두고두고 자랑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운명이 바람 앞 촛불처럼 흔들리는 와중에도 반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근대 교육 기관의 설립과 함께 유명무실해지려 드는 성균관의 입지를 걱정하는 한편, 궁성 수비를 담당하는 별초군으로서 제 역할을 다 했다. 대한제국 군대 해산 명령에 대항해 의로운 죽음을 택한 박승환 대대장 또한 반촌 출신이었다. 송시열과 윤휴를 비롯하여 적잖은 양반들의 이름이 거론됐지만 나의 관심은 순수 반인들에게 쏠렸다. 1920년대 일제가 새로이 주택단지를 조성하면서 반촌은 정체성을 잃었다고 했다. 반촌을 거주지이자 교육특구로 인식했던 반인들이 세운 숭교의숙과 숭정학교 또한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혜화’라는 명칭이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반촌의 기억을 지우기 위한 명명이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는 점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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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보며 자란 세대다. 그래서 ‘성균관’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유생들, 과거시험, 그리고 나라의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기관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성균관 “주변”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바로 그 주변, 성균관과 반촌에 대한 이야기다. 성균관은 지금으로 치면 대학 같은 곳이다. 그렇다면 반촌은 무엇일까? 반촌은 오늘날 서울 명륜동과 혜화동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당시 성균관 유생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조선시대 대학가’ 같은 공간이었다. 과거를 준비하는 유생들을 위해 숙식과 생활 편의를 제공하던 곳이라니, 지금의 고시촌이나 대학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반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성균관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던 사람들, 바로 공노비 신분의 반인들이다. 놀랍게도 이들은 월급 없이 노동을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유노동 무임금.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을까? 시대가 달라도 사람 사는 방식은 비슷했던 것일까. 반인들 역시 돈을 벌고 재산을 굴리며 살아갔다고 한다. 심지어 노비가 또 다른 노비를 두는 상황까지 생겨났다는 대목에서는 씁쓸하면서도 묘하게 현실감이 느껴졌다. 결국 ‘돈’의 힘은 예나 지금이나 강력했던 셈이다. 성균관은 나라의 인재를 기르는 공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출세주의와 공리주의가 팽배해졌다고 한다. 점점 이상적인 학문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최상위 고등 직업학교’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또한 반촌은 치외법권 지역으로 경찰권이 제한되었다고 하니, 그 안에서 형성된 특수한 권력 구조 역시 상상해보게 된다. 게다가 요즘처럼 공부하는 이들끼리 모여 인맥을 쌓고, 동창 모임을 만들며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시대는 달라도 사람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성균관’이라는 공간을 훨씬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특히 반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반촌이 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조선시대 대학가의 풍경이 궁금하다면,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성균관의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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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학로 일대는 연극 공연을 보러 가거나 아르코미술관 때문에 여러 번 지나던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그곳에 담긴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성균관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통해 성균관 안에 있는 명륜당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조선시대 유생들이 공부하던 공간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계기로 성균관과 그 주변 마을에는 어떤 역사와 사람들이 있었을지 궁금해졌고, 조선시대 대학가의 모습을 다룬 안대회 교수님이 쓰신 <조선의 대학로>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성균관이라는 교육기관 자체보다 그 주변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반인들의 삶에 주목한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반인들은 단순히 성균관에 소속된 노비에 머무르지 않고, 생활을 꾸려 가며 유생들의 수험 생활을 가까이에서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법적으로는 노비였지만 실제 삶의 모습은 훨씬 복잡했고, 유생들과 오랜 관계를 맺으며 반촌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성균관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삶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하나의 사회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책은 여러 기록과 자료를 바탕으로 과거 반촌의 모습을 차근차근 되짚어 보여줍니다. 지금의 명륜동과 혜화동, 대학로 일대를 예전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며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치는 공간에도 오랜 시간의 이야기가 쌓여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대학가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한층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앞으로 대학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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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성균관 유생과 반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 출간되었는데 『조선의 대학로』가 바로 그렇다. 이곳을 조선 고시촌이라 부르고 있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운데 특히 20개의 주제로 조선시대 당시의 유일한 대학가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량진에 고시촌이 형성되고 대학가에 상권이 형성되는 이치 같은데 이때 반촌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성균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사극이나 다른 부분에서도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내용이라 흥미롭다. 반촌을 구성했던 사람들, 그중에는 명문가도 있었지만 상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들이 유생과는 어떤 관계였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은 생각지 못했던 내용이라 더욱그렇다. 게다가 마치 소도처럼 이곳에는 범죄자가 들어온다고 해도 잡으러 올 수 없는 치외법권이였던 곳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상인에 대한 인식이 다소 낮게 보는 경향이 있었음을 가늠하면 이곳은 조선의 신분제가 좀 완화된 듯해 보이기도 한다. 지금 시대의 대학가의 풍경과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많아 신기하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요즘 격의 동창회가 있었다는 점, 대학생 존재로 생업을 유지하거나 경제 활동을 했다는 점 등에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흥미로운 책이라 생각한다. #조선의대학로 #안대회 #문학동네 #리뷰어스클럽 #성균관유생 #반촌사람들 #조선고시촌 #옛대학가의내밀한풍경 #조선시대유일의대학가 #성균관마을의탄생과운영 #책 #독서 #도서리뷰 #책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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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은 성균관으로 유학을 가르치고 국가의 관리가 될 인재를 양성하던 최고 국립 교육기관이다. 이 성균관이 자리하고 있던 일대를 대학로라고 했다. 성균관이 있던 숭교방은 대학가라는 이름에 부합하고, 대체로 현재의 명륜동과 혜화동, 대학로 일대 마을이다. 성균관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학문과 관련된 생활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서책을 파는 곳, 붓과 종이 등 문방구를 파는 상점, 유생들이 머물던 하숙집과 여관 등이 생겨나면서 일종의 학문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지방에서 올라온 유생들이 머물면서 서로 교류하고 학문적 토론을 나누며, 선후배 관계 속에서 학문과 예절을 배운다. 지금의 대학가 주변과 크게 다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의 대학로 일대는 조선시대 말로 바꿔 표현하면 반촌이라고 한다. '반촌'은 성균관이 있는 동네 또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 중기 이후 대한제국기까지 불렸던 역사적 명칭이다.
<조선의 대학로>에서는 성균관과 반촌, 반촌에 사는 사람들, 반촌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반인의 흥망성쇠까지 반촌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반촌의 주민은 반인, 반민, 관인, 관사람 등으로 불렸다. 호칭은 달랐지만 성균관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반인은 공노비 신분으로 반촌에 거주하면서 성균관의 온갖 업무를 맡았고, 성균관 노비는 면천을 허용하지 않았다. 노비 신분이기는 하나 반인을 단순하게 노비로만 단정하기 어렵다.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지위가 상당한 수준까지 올랐고, 양반 신분의 유생이나 조정 관료가 그들을 함부로 부리지 못했다. 주민이 늘어나면서 집터가 부족해지는 문제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거주 이전 제한이 반인의 주거 때문에 핵심적 안건으로 등장한다. 반인을 성균관 업무에 묶어두기 위해서 그들을 반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는 강제가 필요했다. 왜 반인을 성균관에 묶어두었냐면 성균관 이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좁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유생들의 생활을 지원하고 성균관 행사와 의식을 준비하는 등 반촌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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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유생 #반촌사람들 #조선고시촌 #조선의대학로 유생과 관료가 반주인과 맺는 밀접한 관계가 분명하게 보인다. 유생만이 아니라 관료도 반인 집에 머물고, 심지어는 한양에 사는 유생조차도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 반촌을 찾는다고 밝혔다. 성균관에서는 정기적 비정기적 시험이 자주 치러지고, 과거시험과 관련한 온갖 정보가 모이며, 다양한 응시생과 브로커까지 암약하기 때문에 반촌은 전국에서 몰려든 수험생으로 항상 북적일 수밖에 없었다. 반주인은 그들에게 숙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편의와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p145 반촌에서 만나 사귀게 된 다른 지역 지성인과 주고받은 시와 편지, 사망을 애도한 만시가 담긴 문집을 자주 보게 된다. 그들에게 반촌 시절은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인간관계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많은 이에게 반촌은 합격보다는 불합격을, 성공보다는 실패를 안기는 장소였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낯선 한양에서 과거 급제의 꿈을 함께 꾸던 이들의 꿈과 좌절의 사연이 저들이 남긴 시문에 가슴 뭉클하게 표현되었다. -p152 성균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인 반촌을 조선의 대학로라 부른다. 지금의 대학로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지역에 옛 대학로라니, 켜켜이 쌓여가는 역사가 그대로 느껴진다. 조선의 대학로는 지금과 얼마나 다를까, 기대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하나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공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했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그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생각들이 결집되며, 시간이 쌓이는 것은 반촌이라는 하나의 마을이 형성되며, 그 마을 안에서 살아가는 반인들을 만들어낸다. 안대희의 '조선의 대학로'는 제목 그대로 조선의 성균관, 반촌의 모습을 고증 자료와 함께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료가 더해져서 글의 내용이 보다 풍부해지니, 독자로서 읽을 맛이 난다. 이 책을 들고 옛 성균관 자리를 거닐면 그 기분이 어떠할까.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만나는 것은 말료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일 것이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고시원 같은 곳에서 사는 우리네 현실과 다를 바 없었던 반촌. 유생이 거처로 삼았던 집주인과의 밀접한 관계 또한 흥미롭다. 숙소의 주인을 반주인이라 일컬었는데, 유생이 시험에 합격하여 좋은 자리로 가게 되면 그 만큼의 보상을 반주인에게 했다고 한다. 꿈과 욕심이 얽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사람 사는 모양은 어쩜 이리 비슷한지. 사료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적혀 있으니 페이지에 첨부된 사료들을 살피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성균관 유생들과 그들이 모여 사는 반촌, 반촌 안에서 허용된 반인들의 이야기까지, '조선의 대학로'는 한 마을을 깊고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해 준다. 조선 시대, 반촌과 관련된 사람들의 생활상을 선명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니,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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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절 데이트하러 혜화역 4번 출구로 올라와 창경궁을 지나 성균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아주 줄기차게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냥 대학가의 평범한 거리라고만 생각했는데 몇세기전에도 공부하는 공부를 하려는 공부하는걸 도울려는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걸었을 생각을 하니 뭔가 뿌듯했다. 지금은 바뀐 건물과 거리 속에서도 시간이 겹쳐 있는 듯한 느낌이 있다. 특히 성균관 명륜당 앞을 지키고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는 약 500년이 넘는 시간을 버티며 서 있다고 한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행단"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그때 성균관 학생들도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공간의 역사 속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라 너무 기대가 되었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단순히 성균관 이야기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성균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주변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세계까지 함께 보여주는 책이었다. 반촌은 성균관에 속한 공노비인 "반인"들이 살던 마을이다. 이들은 성균관 유생들을 뒷바라지하는 역할을 맡았고 성균관의 운영에도 깊이 관여했다. 그런데 이 마을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성균관 주변의 생활 공간이 아니라 법적으로도 꽤 특별한 지위를 가진 공간이었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도 묘사되었지만 반촌은 일종의 치외법권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성균관 문묘를 관리하는 특수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포졸이나 형리가 함부로 들어와 수사를 하거나 체포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범죄자가 반촌 안으로 도망치면 쉽게 잡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드라마를 보면서 "왜 저런 설정이 나왔지?" 하고 생각했던 부분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성균관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주변에 반촌이라는 마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설명한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국가 운영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성균관을 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고려 시대 교육기관에서 일하던 노비들이 함께 옮겨 오면서 자연스럽게 반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공동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성균관과 밀접하게 연결된 독특한 마을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반촌사람들은 그냥 잡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균관을 운영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생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숙식과 생활을 도와주기도 했고, 지방에서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올라온 유생들의 하숙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반촌 사람들이 생각보다 높은 문화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 천민이고 백정이고 해서 양반앞에 머리를 조아리거나 흙발로 짚으로 만든 집에 살줄알았는데 성균관 바로 옆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문과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실제로 시를 짓고 글을 남긴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반촌 사람들의 작품을 모은 "반림영화"라는 시집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신분의 한계가 있었을 뿐 지적 수준 자체는 결코 낮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사회인거 같다. 유생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 장사를 하는 사람들, 학문과 문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던 복합적인 공간이었다. 지금 대학가 주변에 형성된 상권이나 문화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이미 조선 시대에도 존재했던 셈이다. 다만 읽는 과정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저자가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있어서 인지 반촌의 위치나 한양의 지명, 그리고 인물들의 가계와 관계가 자세하게 설명되다 보니 한자어와 옛 지명이 꽤 많이 등장한다. 족보나 가문 이야기가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약간 전문적인 역사서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 기대했던 가벼운 역사 에세이보다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연구서에 가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밖에 3월인데도 눈이 내리고 있다. 혜화동 거리를 걸으며 초코에 듬뿍담겨져 올린 와플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그냥 공연 보러 가는 거리로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성균관 담장 옆을 걸을 때면 "이 길을 수백 년 전 유생들도 걸었겠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 같다. 조선 시대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과거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꽤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 대학로와 혜화동을 자주 오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익숙한 거리 위에 겹쳐 있는 또 하나의 시간을 발견하게 해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스클럽 #조선의대학로 #문학동네 #안대회 #성균관대학교 #혜화동 #교수님한자자비좀 #한자어어려워 #반촌사람들 #성균관유생 #반촌꼬리곰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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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혜화에 있는 대학로라고 하면 왠지 낭만이 느껴집니다.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열리는 마로니에 공원, 크고 작은 연극이 올라가는 소극장들, 각각 개성있는 카페와 음식점, 그리고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청년들 등 마냥 걷기만 해도 좋을것 같아요. 대학로 근처에는 많은 대학이 몰려 있어서 이름 그대로 자연스럽게 대학로라고 불리게 되었네요. 대학로에는 지금은 이전을 하였지만 서울대가 있었고, 더 멀리로는 조선의 고등 교육 기관인 성균관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성균관은 교육 기관이어서 별로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성균관은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성균관을 둘러싸고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었네요. '조선의 대학로' 에서는 성균관 및 성균관 바로 옆의 반촌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개국을 하면서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겼습니다.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에 성균관을 세워 체계적으로 양성하였습니다. 고려가 개성에서 학교를 운영할때 잡무를 하던 노비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한양으로 오면서 성균관 옆에 자리를 잡아 반촌이 생겨났습니다. 반촌에 사는 반인들은 한양에 와서도 개성에서 쓰던 말을 그대로 쓰고, 반인들끼리 결혼을 하면서 자식을 낳는 등 마치 국가 안에 있는 또다른 국가 같은 느낌이었네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반촌 안으로 숨어들어도 성균관이라는 특성상 형리들의 출입을 금했다고 하니 정말 유대인들끼리 모여 살았던 게토를 연상케 합니다. 반인 사람들은 오직 성균관을 위해 존재하였습니다. 애초에 개성에서도 교육 기관을 위한 노비였기 때문에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한양에서 같은 역할을 하였는데 성균관 사람들이 반촌에 기거하면서 숙식할때 도움을 주었고, 지방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의 하숙집 역할도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하숙 관계가 아니라 유생이 관직에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쏟아부었기에 만약 유생이 과거에 합격하기만 하면 당당히(?) 그동안의 지원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였습니다. 막 관리가 된 유생들은 돈이 없으므로 백성들을 수탈하기도 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네요. 반인들은 상업 활동도 활발히 하였다고 하니 인재에 대한 계산도 빠른것 같아요. 반인들이 상업 활동에 종사하고 유생들의 하숙집 역할을 하였다고 해서 지식 수준까지 낮았던 것은 아닙니다. 성균관은 고등 교육 기관으로 학문에 대한 연구를 하였기 때문에 반촌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반인 중에서도 학문에 뛰어난 사람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들이 쓴 시로 엮은 '반림영화' 는 반인들의 문학 수준이 어떤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분의 한계상 관리로 등용되기 어려웠지만 만약 과거 시험에 제한이 없었다면 반인들 중에서도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 충분히 나왔을것 같아요. 조선의 전성기에는 반촌의 역할이 중요하였지만 후기로 갈수록 국력이 약해지고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성균관이 무너지자 결국 반촌도 해체되었네요. 지금은 과거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대학로를 중심으로 주변이 크게 바뀌었는데 책을 읽고나니 대학로가 새롭게 느껴지네요. 주말에 시간이 되면 혹시 남은 흔적이 있는지 한번 걸으면서 찾아봐야 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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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평생 서울을 오가며 참으로 많은 변화를 목격했다. 전차 소리가 들리던 거리에는 지하철이 들어섰고, 낮은 기와집들이 모여 있던 골목은 거대한 빌딩 숲으로 변했다. 그중에서도 혜화동 ‘대학로’는 우리 세대에게 젊음과 낭만, 그리고 예술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안대희 교수의 저작 <조선의 대학로>는 우리가 알던 20세기의 대학로를 넘어, 18세기 조선의 지성과 예술이 꽃피었던 ‘진짜 대학로’의 뿌리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책은 성균관 주변, 즉 ‘반촌’이라 불리던 동네를 주목한다. 오늘날 우리가 대학로라 부르는 성균관대 앞 일대가 조선 시대에도 이미 젊은 유생들의 지적 열기와 중인들의 예술적 감수성이 충돌하고 융합되던 거대한 문화 특구였음을 저자는 치밀한 고증으로 증명해내고 있다. 70대의 눈에 비친 이 대목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가 그저 ‘공부하는 곳’으로만 알았던 성균관 주변이 사실은 시와 술, 음악과 토론이 밤낮없이 이어지던 조선의 심장이었다는 사실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다시 보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성균관 유생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뒷바라지하며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던 반촌 사람들, 즉 ‘반민’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신분 질서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반촌은 유교적 원칙과 세속적 활력이 공존하던 경계의 공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세대가 겪었던 격동의 시기를 떠올려봤다. 시대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삶을 일구었던 우리네 모습이, 수백 년 전 반촌에서 시를 짓고 소고기를 팔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던 그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발굴해낸 반촌의 에피소드들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처럼 생생하다.
70대에 들어서면 산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세상과 대화하는 과정이 된다. 이 책은 대학로라는 익숙한 공간 위에 ‘역사’라는 투명한 지도를 덧씌워준다. 혜화동 로터리를 지날 때, 성균관 담장을 따라 걸을 때,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조선 문인들의 필치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저자의 유려한 문장은 마치 해박한 지식을 가진 노학자와 함께 호젓한 고궁 뒷길을 걷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인문학적 깊이가 있으면서도 문장이 명료하여, 눈이 침침해진 노년의 독자에게도 막힘없이 읽히는 배려가 고맙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공간이 가진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건물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그 땅이 품은 기운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선의 유생들이 고민했던 정의와 진리, 중인들이 탐닉했던 예술의 향기가 오늘날 소극장이 가득한 대학로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통찰은 노년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이 책은 서울을 사랑하는 동년배들에게는 추억을 반추하는 보석 상자가 될 것이고, 손주 세대들에게는 자신들이 걷는 거리에 깃든 자부심을 가르쳐주는 훌륭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 인생의 황혼에서 만난 이 책 덕분에, 나의 다음 대학로 산책은 훨씬 더 풍요롭고 찬란할 것 같다. 역사를 잊지 않는 민족에게 미래가 있듯, 공간의 기억을 소생시키는 안대희 교수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책을 덮고 나서 다시금 혜화동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사는 공간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다정한 안내서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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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최대한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조선의 대학로 안대회2026문학동네 가끔 퇴근길에 혜화동 언저리를 걷다 보면, 화려한 조명 사이로 왠지 모를 낡은 공기가 느껴질 때가 있어요. 지금은 젊음의 거리로 불리지만, 이 땅이 품고 있는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 궁금했거든요. 그러다 안대희 저자의 조선의 대학로를 만났는데, 책장을 넘기는 내내 지금의 대학로 위로 조선 시대 성균관 마을인 반촌의 풍경이 겹쳐 보여서 마음이 묘하더라고요. 이 책은 단순히 옛 지도를 훑어주는 역사서가 아니었어요. 성균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형성된 특수 마을, 반촌의 탄생부터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는데 그 서사가 참으로 절절하게 다가왔어요. 사회생활을 하며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시선으로 보니, 성균관이라는 거대한 권력 곁에서 치열하게 삶을 일궈냈던 반인들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특히 혜화동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옛 자취들을 짚어주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어요. 무심코 지나쳤던 골목길이나 물길의 흔적들이 사실은 수백 년 전 반촌 사람들의 숨결이 닿았던 곳이라는 사실이 놀라웠거든요.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지금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온도로 느껴지니까, 익숙했던 대학로 풍경이 완전히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어요. 한 마을이 어떻게 태어나고 번성하다가 결국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지는지를 지켜보며 인생의 덧없음과 동시에 기록의 소중함을 다시금 절감했네요. 보도자료에나 나올 법한 딱딱한 정보 나열이 아니라, 저자의 깊이 있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저도 조선 시대 대학가의 한복판을 거닐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성균관 유생들의 호기와 반인들의 애환이 뒤섞인 그 시절 대학로의 에너지가 책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달까요. 책을 덮고 나서 다시금 혜화동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봤어요. 이제는 빌딩이 들어서고 간판이 바뀌었지만, 그 땅이 기억하는 반촌의 기억은 여전히 흐르고 있겠지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사는 공간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다정한 안내서 같았거든요. 요약 우리가 사는 공간, 그 시절 대학로, 기록의 소중함 #성균관유생 #반촌사람들 #조선고시촌 #조선의대학로 #안대희 #문학동네 #성균관 #서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