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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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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다음 내용이 알고싶어서 속도를 내며 읽는 소설이 있는 반면, 문장 하나 하나가 감탄스러워서 천천히 음미하고 곱씹으며 소화시켜가면서 읽는 소설이 있다. 노래하던새들도지금은사라지고는 이 두가지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중편을 모아 장편으로 만든 소설인 만큼 전개 속도가 빠르고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강해서 빨리 다음 내용을 알고싶어 빨리 읽다가다도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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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다음 내용이 알고싶어서 속도를 내며 읽는 소설이 있는 반면, 문장 하나 하나가 감탄스러워서 천천히 음미하고 곱씹으며 소화시켜가면서 읽는 소설이 있다. 노래하던새들도지금은사라지고는 이 두가지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중편을 모아 장편으로 만든 소설인 만큼 전개 속도가 빠르고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강해서 빨리 다음 내용을 알고싶어 빨리 읽다가다도 절제된 묘사와 각 인물들에 대한 세세한 감정의 기술은 책이 끝나가는 것이 아까워서 속도를 늦추고 음미하면서 읽고 싶어하게 만든다. 결국은 흡인력에 져서 시간이 날 때 단숨에 다 읽고말았다. SpoilerWarning - 결정적이진 않지만 작품 내용에 관한 가벼운 언급이 있습니다. 소설은 세대를 내려가면서 진행이 된다. 이런 서사적인 구조를 가진 경우 자칫 내용 기술이 주가 되고 각 세대별 인물은 역할만 담당하는 장기말적인 존재가 되어 감정이입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본서에서는 각 세대별 인물에 대해서도 세밀한 감정묘사를 하고 있어서 각각에 대해서도 충분한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고 그만큼 몰입하며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클론 간 유대관계와 고립을 다룬 것은 르귄의 '아홉개의 생명' 1 이 연상이 되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그 논의를 더 확장하고 있다. 과연 그런 클론이 새로운 인간 다음의 세대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그 부분을 더욱 강조하면서 사고실험을 하는 SF를 쓰지는 않았다. 양쪽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면서 갈등관계속의 인물들에 대해 다루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다 읽은 후에도 장면 장면이나 인물들에 대한 여운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소설이었다. P.S. 1. 인간복제나 클론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단순히 유전자 정보가 같은 타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 과학적인 부분에 대해서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그게 중요한 소설이 아니니. 2. 해설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니 해설까지 꼭 읽어보시길 3. 소설 첫 시작 부분은 공감 120%로 읽었다.
n****y 2005.09.21.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성과 기계성의 배치와 긴장이 돋보이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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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와도 새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판과 숲, 습지에는 오직 기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사과나무에 꽃은 피었지만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이 없어 수분이 일어나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했다. 예전에는 그토록 아름답던 길가에는 마치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갈색으로 시든 식물만이 서 있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이 떠나간 그 자리엔 고요함만이 자리했다. 죽음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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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와도 새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판과 숲, 습지에는 오직 기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사과나무에 꽃은 피었지만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이 없어 수분이 일어나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했다. 예전에는 그토록 아름답던 길가에는 마치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갈색으로 시든 식물만이 서 있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이 떠나간 그 자리엔 고요함만이 자리했다. 죽음의 그림자는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 곁에 슬그머니 다가와 있으며, 상상 속의 이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진짜 현실이 되어 우리 눈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새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았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이렇게 시작한다. 케이트 윌헬름의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침묵의 봄’ 이후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새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 인간은 번식이 중단되었다. 봄(생명)을 알리는 속삭임이 사라진 것이다. 이 책들이 출판하던 시기에 대중의 심리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홀로코스트의 기억들이다. 그리고 전쟁 이후의 냉전, 핵무기, 방사능, 화학물질에 의한 오염 등 60~70년대에 벌어진 일들은 심각한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 왔을 것이다. 포스트홀로코스트를 다룬 이 작품의 태생적 배경은 사회적 불안과 대중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SF 소설 또한 현실문제와 인간 사회에 대한 고민이 한껏 묻어 있음을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다. 생명, 생명이란 무엇이고 그것의 가치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생명공학이 사회적 이슈가 된 요즘 시대의 물음이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귀는 닫혀 있다. 철학 없는 과학과 자본 사회가 만들어 낸 ‘비이성적’인 카니발을 쫓아 스스로에게 종속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로지 배아복제, 줄기 세포, 유전자 조작들이 가져올 혜택들이 일종의 광맥처럼 비춰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의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기술의 진화는 언제나 편리함 이상의 희생을 치렀다는 역사적 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인간 복제를 다룬다. 번식을 하지 못하게 된 인류 중 극소수의 사람들이 인간 복제를 통하여 종을 유지해 나간다. 하나를 복제해 농구팀 정도 만들고, 야구팀 정도를 만들다 보니 분대단위 수준까지 마구 찍어낸다. 자연과 격리된 그들의 생존력은 마을을 벗어나지 못한다. 클론들은 독립된 활동을 할 수 없는 나약한 군집일 뿐이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만으로 자기 복제만을 하다가 소멸될 미래만을 기다리는…. 개체성의 상실, 마치 개미마냥 노동과 복제로 하루 하루를 보내는 그들의 일상은 그로테스크하다. 클론 생산이 가능한 ‘선택받은 여성’은 복사기 뚜껑처럼 쉼 없이 다리를 열고 닫는다. 난교와 기계적인 결합, 쌍쌍바처럼 늘 붙어서 다니는 클론들의 의식에서는 생명을 느낄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인류의 모습 3대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인류, 클론 1세대, 클론 2세대. 이 책 소개에 보면 원래 한편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하나씩 추가 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속도감 있게 읽혀진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각 세대에서 피어난 아슬아슬하고 비극적인 사랑, 운명적인 대물림이 책을 아름답게 장식한다는 점이다. 인간과 과학, 개체와 군집, 인간성과 기계성의 배치와 긴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희망적인 결말로 생명과 인간의 본성을 담아낸 작가의 시선을 통해서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는 작업은 흥미롭고도 의미심장하다.
k*******0 2005.11.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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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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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매혹, 아름다우면서도 비극적인 긴장 등의 수사로 꾸밀 수 있는 이 소설은 케이트 빌헬름(윌헬름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발음 그대로 빌헬름을 고집하련다)의 장편 대표작으로서 세 편으로 나뉘어 있는 문명과 인류에 관한 소설이다 - 포스트 홀로코스트라는 장르라고 한다. 1. 문명에 의해 파괴된 문명 역설적이게도 수 천년을 이어 온 인류 문명을 파괴해 버린 것은 바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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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매혹, 아름다우면서도 비극적인 긴장 등의 수사로 꾸밀 수 있는 이 소설은 케이트 빌헬름(윌헬름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발음 그대로 빌헬름을 고집하련다)의 장편 대표작으로서 세 편으로 나뉘어 있는 문명과 인류에 관한 소설이다 - 포스트 홀로코스트라는 장르라고 한다. 1. 문명에 의해 파괴된 문명 역설적이게도 수 천년을 이어 온 인류 문명을 파괴해 버린 것은 바로 문명 그 자신이다. 크게는 근대 이후 계속된 산업화로 인한 토양과 대기의 오염, 방사능의 유출, 생태계의 파괴, 자원의 고갈 등이 인간의 생활을 뒤흔들고 인류의 멸망을 가져왔다고 볼 수도 있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작가가 창조한 ''문명에 의한 문명의 파괴''는 위에 말한 저런 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인류가 당할 참사를 예견한 한 집단이 자신들만이라도 그것을 극복해 보고자 ''복제''라는 수단을 동원했지만 결국 그 노력이 인간의 멸종을 생물학적인 면에서는 막았지만 - 지연시켰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지도 모르지만 - 참다운 인간성, 개성과 창의성은 말살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참으로 대단한 역설이지만 이런 역설이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1부, ''아름답게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문명에 의해 문명이 파괴되는 역설적인 이 상황을 그리고 있다. 2. 뱃노래 ''셰난도아''는 종래의 인류가 없어진 지구에서 새로운 인류 - 클론들 - 가 살아가는 공간과 바깥 공간의 중간이다. 이 골짜기는 바깥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출입구가 되기도 하고 바깥과 안을 구분하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리고 행동하기에 따라서. 가만히 살펴 보니 기가 막힌 장소 설정이다. ''셰난도아''는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강의 이름인데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에도 이 강이 나온다 - 이 이름을 본딴 뱃노래가 미국에서 널리 불리우고 있다.* 민요, 뱃노래 이런 것들이 어찌 획일화되고 전체화된 사회의 산물일 수 있을까? 창의성과 미적 감각을 고루 지닌 집단만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인 민요, 셰난도우. 2부 ''셰난도아''에서 클론 사회의 모범생이었던 몰리는 셰난도우를 통해 바깥으로 나가고 거기서 자연의 소리를 듣고 거기서 인간의 본성을 깨닫는다. 자연에서 함께 하는 인간과 예술과 사랑과 철학은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이치를 깨달은 자는 인간 본연의 정신에 자신을 맡길 수 있는 것이다. 3. 아이러니 속에서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사실 작가가 단체 지향의 사회를 선호하는지 개별 인간을 중시하는 사회를 선호하는지는 알 수 없다. 작가에게는 인간의 ''행복''이 가장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에 위에 말한 두 가지 사회의 방식은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의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은 3부 ''정점에서''의 주인공 마크의 눈을 통해 여러 차례 표출하고 있다. 그가 본 클론 사회는 몰인간, 몰개성의 극치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곳이지만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행복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의 행복, 이런 것을 보고 마크는 고민하고, 마크의 고민은 작가의 고민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세대를 거친 후의 클론 사회, 개별 인간의 창의와 독창성이 완전히 말살된 사회는 옳지 않다는 메시지 만큼은 분명히 전하고 있다. 개체를 억누르는 그런 공동체는 결국 공동체 자체도 파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문명이 문명을 파괴하고, 이 사태를 극복하고자 만든 문명이 또다시 문명을 파괴하고, 이런 역설 속에서 ''마크''라는 인간을 통해 개성과 창의성이 발현되는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 이 작품이다. 이 작품을 추천해 주신 분이 작품을 일컬어 ''예민한 감수성''이라 소개해 주었는데, 말 그대로 예민한 감수성과 우아한 냉혹을 느끼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을 읽으면서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남아 있는 페이지의 줄어듦에 아쉬움을 느낄 정도로 재미나게 읽었으며,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강한 여운이 남는 명작이었다. 번역자의 역량이 좀 부족한 듯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틀린 맞춤법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지만 다음 번 쇄에서는 고칠 수 있으리라 믿는다.
j****s 2006.02.1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