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 율미는 책 한 권 내지 못한 서른 살 소설가. 그녀는 매번 애인의 집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순간이 가장 어색할 정도로 결벽에 시달리며 보수적이다. 그녀의 엄마는 여자가 절대 남자 집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할머니는 드라마를 보다가도 남자 집에 따라 들어가는 여자를 미친년이라고 욕을 한다. 스물 일곱 살까지 남자를 몰랐으며 너무 나이브하게 살아서 시장통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 같은 건 죽어도 못 쓸 거라는 애인의 혹평을 듣는 그녀. 하지만 애인, 이철수에겐 꼼짝 못하며 심지어 같이 살자고 애원한다. 그녀에게도 한때 남자에게 큰소리 치던 시절이 있었다. 괴테의 샬포테 부프, 이상의 금홍이처럼 작가의 뮤즈가 되고 싶었으나 정작 자신이 글을 쓰게 되자 그녀는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남자친구의 겉멋에 질려 버려 악을 쓴다. “개새끼. 난 이제 글 쓰는 남자 필요 없어. 예전엔 내가 글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널 만났던 거야. 지금은 내가 글을 쓰니까 너 따윈 필요 없어.” 자기 연봉 꽤 많이 받는다고, 시집 오라고 대학시절에 이어 두번째로 건네오는 선배의 프로포즈도 단칼에 잘라 버린다. “오빠한테 아침밥도 차려 줄 수 있을 것 같고 같이 지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빠랑 아기 데리고 있는 건 상상이 안돼.” 그런데 그녀는 도무지 결혼을 꿈꾸지 않고, 유학 준비에만 여념이 없으며 오히려 조건 좋은 남자와의 맞선을 주선하는 명색의 애인, 이철수에게 자존심 따윈 내던지고 매달린다. “오빠, 나 데리고 살면 안 돼? 절대 안 돼?” 하지만 냉정한 철수씨, 집어치우라고 한다. 결혼은 픽션이 아니라 현실일 뿐이라고, 자기는 누가 부담 주는 것도 싫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마흔까지 얼마든지 혼자 있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도 그녀는 그가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못한다. 그녀가 안고 있는 이철수의 몸은 따뜻하지만 그의 체온이 닿지 않는, 그녀의 벗은 등은 춥다. 내숭과 가식, 계산과 자존심을 버린 사랑은 이렇게 춥고 현실적이다. 소설가로 살아가는 고민마저 심각한 그녀. 작가라면서 왜 책을 안 내느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통장 잔고가 40만원인 그녀에게 결혼한 동창이 땅을 사자고 한다. 자유롭게 살아서 좋겠다던 친구가 곧 서른 다섯 되면 재취 자리밖에 없다고 다그칠 때, 작가로서 하나의 세계를 가질 수만 있다면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자신이 있었던 그녀의 각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가볍지 못하고 쿨하지 않으면 신파로 간주되는 이 세상을 심플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그녀의 고민에서 나 또한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을 본다.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고 돌아서며 쓴 눈물을 훔치고야 마는 우리를 마주 본다. 구어체 문장이 상큼발랄하게 뛰어다니는 이야기가 한편 짠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리고 어김없이 떠오르는 물음표 하나. 나는, 당신은 지금 누군가의 천사나 마녀가 되어 어떤 연애 소설을 쓰고 있는가. 어쨌든 우리들의 연애 소설이 현재진행형 문장으로 가득하길 바란다.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사랑을 읽고 또 읽어 나가기를. |
| 예스24에서 책을 주문했는데, 신간을 모아서 알려주는 광고지가 따라왔다. 처음도 아니고, 대부분 그냥 버리는 편인데, 이상스럽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책이 있었다. 이 책. 본문 중 대사 몇 줄을 뽑아서 늘어놓았다. 아......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순수한 여자를 상상했다. 그 카피들은 철저히 이기적인 남자를 상상할 수 있도록 장치되어 있었다. 옮기고싶지는 않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그 카피에 속은 것이다. 책을 주문했으므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다. 도대체 어디가 갈등이고, 어디가 절정이고, 어디가 결말인지를 모르겠다. 꼭 그런 것들이 있어야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어느 한 페이지 정도 에서는 두어 줄씩 건너 뛰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무엇을 얘기하려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하다못해 아랫도리 불끈하게 하는 힘도 없다. 두 시간 만에 독파가 가능한 분량. 남의 책에 너무 박한 점수를 매기는 게 아닌가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발전을 위해 이럴 수 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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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코웃음을 친다. 그게 뭐 대수냐. 돈 없으면 못 살아도 사랑 그까짓 거 없어도 산다, 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소설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소재다. 사람들이 여전히 사랑에 울고 웃으니. 삼류라고 혀를 끌끌 차면서도 말이다.
살아가는 데도 그런 날이 있다. 우아한 척, 센 척하던 모습 다 집어던지고 통속적인 이야기에 몸을 홀딱 담가버리고 싶을 때 추천한다. 유현종의 <너는 마녀야>. 사랑, 일에 대한 환상 따위 개나 줘버리라는 듯 주인공을 발가벗겨버리는 오현종의 글 속에서, 읽는 이들은 솔직한 자기 모습을 만나게 된다.
연애소설이다. 그러나 시작하는 연인의 달콤함도, 위험한 사랑의 긴장감도 없다. 아옹다옹하는 귀여운 연애의 모습도 없다. 가식이라곤 1%도 존재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소설. 자존심도 갖다 버린 채 매달리는 여자 율미가 주인공이다. 덜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율미를 놓지 못하는 남자 이철수가 상대역이고.
이철수 이 놈 나쁜 남자의 전형이다. 자기가 보고 싶을 때만 연락하고, 만남은 자기네 집 앞에서 만이다. 그러면서도 확실히 연애 생활을 끝내지도 않는다. 참다못한 율미가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라고, 그러면 사라져 주겠다는데 말을 돌려버리는 놈이다. 어쩌면 진짜 매달리고 있는 건 이 놈이었을지도. 솔직하지 못한 놈, 나약한 놈, 사랑하고 있는 놈.
율미, 제대로 하는 일 하나 없어, 독립적이지도 못해, 그저 살아가는 이유란 이철수 한 놈뿐이다. 사랑 받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미치도록 원하기에 놓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불쌍한 여자. 삼류 중에서도 하급 인생. 그런데 그렇게 질기게 한 사람 바라보며 사는 일, 생각보다 힘들지 모르겠다. 되레 강한 여자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사랑이란 거, 아니라고 해도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의 만남이다. 그나마 51, 49 정도면 행복하게 사는 거고, 얘네들처럼 19, 81 정도면 주위에서 보기에 영 아니올시다싶게 사는 거다. 그러나 밖에서 보이는 숫자가 어떻든 자기네들이 만족하면 그만 아닐까. 세상엔 더 주는 게 좋은 사람도, 더 받는 게 좋은 사람도 있을 테니. 율미와 철수도 좋네 싫네 하면서도 못 떨어지는 걸 보면 말이지.
어느 날 부푼 사랑의 꿈에 지쳐 나가떨어질 것 같으면 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꼭 예쁜 사랑만이 진짜배기는 아니란 걸 알게 해 줄 테니. 우리에게 진짜 위로가 되는 건 때로는 삼류 이야기라고 하면 좀 서글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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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여자들은 매번 자신들을 힘들게 하는 남자들에게 더 호기심을 느끼고, 더 집착하고, 더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남자의 입장에서 이런 일을 상상하는 일은 꽤 번거롭다. 물론 반대의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남자들도 간혹 자신들을 힘들게 하는 여자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더 물고 늘어지고, 결국 허물어져버리기도 하니까... 그렇대도 일상다반사, 빈도수를 놓고 보자면 전자의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소설의 주인공 김율미는 소설가를 사귀다가 헤어진 이후 짜증이 나서 덜컥 자신이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데뷔만 했을 뿐 변변한 작품집 하나 내놓지 못하고 글품을 팔아가며 생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율미는 선배의 소개로 남자 이철수를 만났고 그를 지극히 사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이철수는 항상 자신이 율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놓고. 그럼에도 율미는 끊임없이 이철수의 방을 찾고, 이철수와 몸을 섞고, 간혹 이철수가 기어이 소개해준 남자를 별 수 없이 만나기도 하고, 술에 취해 그의 방을 찾았다 돌아서기도 한다. 그렇게 훌쩍 이별을 통보하고 해외에 나간 이철수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 그곳을 율미는 또 찾아든다. 『 “많이 아팠어?” “응.” “나 때문에?” “응.” “아직도 오빠가 좋아? 응?” “응.” “왜? 왜 내가 좋아. 너를 힘들게 하는데. 난 이기적인데.”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뭐하러 늘 내 사랑을 확인하려는 걸까.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지만 대답을 했다. “오빠 옆에 있으면 소설을 쓰는 순간처럼 내가 살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쓰지 못할 얘기가 없는 것처럼 할 수 없는 일이 없을 것 같아.”』 조금은 바보 같은 대화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혹시 나 또한 저런 대화의 기억이 있지 않나, 흠칫 하게도 된다. 남자는 이기적이고 여자는 이타적이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남자는 이기적이고 여자는 사랑할 뿐이다, 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랑의 방식이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해야 하는 사람과 그 사랑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란히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내가 미소지을 때마다 매번 행복하냐고 확인을 한다.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만족스러워하는 그의 표정이 보기 좋아서 꼭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는 나를 행복하게 하면서 또 불행하게 하는, 죽이면서 살리는 존재였다. 한 방울은 치명적인 독이 되고, 다른 한 방울은 치유약이 된다는 고르곤의 피와 같은 존재가 바로 그였다.” 사랑을 해야 하는 사람과 그 사랑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사람이 만나고 있으니 그녀는 불행할까?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불행하지만 행복하다. 슬픔도 괴로움도 허망한 욕망도 그 남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서 불행하고, 또 그래서 행복하다고 그녀는 믿는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그 사랑을 포기한다, 기 보다는 그 사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이제 미래가 기약되지 않는 순간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를 향해 사랑하지 않는다, 라고 말해도(그래봐야 혼잣말 같은 것이지만) 견딜 수 있을만큼 튼튼해졌다고 느낀다. “...내가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중요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순간일 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 유치해, 라고 되뇌이기도 했지만(간혹 어떤 장면에서는 귀여니류의 인터넷 소설인 것처럼 넘겨 짚게도 될 정도다. 뭐 읽어본 적이 없기는 하지만) 그러다가 또 사랑에 빠진 여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유치하다잖아, 라고 다독이기도 했다. 사실 취미삼아 소설을 쓰다보면 어떤 경우에는 매우 잘 써질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도 그 유치함에 치를 떨어야 할 때도 있다. 혹시 작가도 그런 굴곡을 겪고 이를 적절하게 수정 보완하지 못한 게 아닐까 의심해본다. 유치함을 보완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흠이 크지만 헐렁한 마음으로 본다면 그럭저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