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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너무나 인간중심적인, 그리고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한 오만 가득한 정의일 것입니다. 오히려 이 책을 읽는 내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만물의 파괴자라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만약 인간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이 지구라는 푸른 별은 더욱 행복하고 평화로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그 지혜롭고 이성적이라는 인간에 의해서 자행되어온 멸종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출현은 전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다른 종(種)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種)은 다른 종(種)들과 평등하며, 그들에 비해 우월한 권리를 부여 받았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자신들이 이 세계의 주인인 양 다른 종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소멸시키고, 심지어는 같은 인간마저도 서슴지 않고 멸족시켜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기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습니다. 생명의 진화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먹을거리에서부터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진행되고 있는 경제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단일 양식으로 체계가 구축되고 있습니다. 다양성이 아닌 표준화, 획일화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문명은 인류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것입니다. 물질적 풍요는 누리고 있으나-그나마도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만- 그 풍요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뿐인 지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을 뿐입니다.
더 늦기 전에 다른 민족과 언어에 대한 존중과 공존은 물론이고,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는 것 말고는 별 다른 대안이 없어 보입니다. 경제의 덩치를 키우는데 들이는 수고의 절반만 관심을 기울여도 세상은 정말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인간의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덜 쑥스러울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종(種)에 의해 영원히 사라져간 수많은 종족과 생물들에게 덜 미안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인류가 인류 스스로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