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와 소설의 행복한 만남이다.” “이제 문학도 한류(韓流)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본격문학 작가가 상업적 목적을 위해 정체성을 포기하고 영화에 의탁한 꼴사나운 일이다.” “영화를 소설로 옮긴 것을 순수문학이라고 봐야 할지 의문스럽다.” 김형경의 신작장편 <외출>(문학과 지성사)에 대한 반응들이다. 일찍이 소설 한 편을 놓고 이토록 엇갈리는 반응이 나왔던 적이 있었던지 궁금할 정도다. 외설시비도, 이데올로기 갈등도 아닌 바에야 말이다. 중요한 건 그런 작품 외적 반응들이, 그것이 어떤 의도와 의미를 내포한 것이든 간에, 독자의 고유한 권한인 감상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심지어 선입견과 편견을 조장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은 오로지 소설로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대체 소설 <외출>이 어떻다는 건가. 김형경 소설들이 대개 그렇듯 <외출> 역시 예의 세밀한 심리묘사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상황전개, 극진한 경지가 느껴질 정도의 탁월한 문체가 압권인 작품이다. 그것만으로도 모든 시끄러운 작품 외적 반응들을 잠재우고 남음이 있다. <외출>을 읽은 지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머리가 얼얼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대체 이 감동적인 소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서 리뷰를 써야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일단 줄거리나 요약하고 불륜이라는 말의 민감성 따위나 논하는 한심한 리뷰를 써서는 곤란하다는 데에까지만 생각이 미쳐있을 뿐이다. 거두절미. 아마도 충격 때문에 세 번 정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것 같다. 첫 번째 충격은 32쪽에 이르렀을 때 받게 된다. 인수가 의식불명인 채 누워있는 수진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대목이다. “내일 만남에 대비해서 몸과 맘 준비 중. 많이 보고 싶다.” 경호가 수진에게 보낸 메시지다. 절대 들키지 말았어야 할 은밀하디 은밀한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순간 되도 않는 질문을 던져본다. 만약 당신이 배우자 몰래 타인에게 그런 문자를 보낸 사람이었다면? 엉뚱한 질문에 이어 저절로 고개를 흔들어 본다. 수진이나 경호의 심정이 안타까워서가 아니다. 나 자신 답답함과 황망함을 가눌 길이 없어서다. 나 역시 아내 몰래 누군가에게 그토록 살갑고 유들유들한 문자들을 날려 오지 않았던가. 이럴 때 쓰라고 감정이입이라는 문법이 있었나 싶다. 인수의 일그러진 표정이 내 의식의 깊은 곳에 이입된 느낌이다. 응당 담뱃불을 붙여 가능한 한 가장 깊은 내면으로 들이 삼킬 수밖에... 그래도, 그렇게 해봐도, 의식은 오히려 또렷해지고 명료해지기만 하고... 아아, 어떻게 그런 일이. 그런데 이상하다. 앞서 나오는 동영상 속 경호의 꼴사납고 능청스런 행동을 확인하는 서영의 모습을 보면서는 이 정도로 충격을 받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뭔고 했더니, 그건 글이 아닌 말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선명한 문자가 아닌 작가의 설명을 통해 확인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거부할 수 없는 ‘문자의 힘’이란. 새삼 몸서리가 쳐진다. 두 번째 충격은 98쪽에서 받았다. 상처받은 두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선술집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둘 다 어느 정도 취했을 무렵, 서영의 입에서 툭 하고 불거져 나온 한마디. “우리, 그냥 사귈래요? 두 사람 기절하게.” 작가는 서영이 마치 탁구공을 넘기듯 가볍게 말을 던졌다, 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 탁구공은 얼마나 무겁고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얼마나 거센 회전력으로 사람의 예측을 어긋나게 하고 당황스럽게 할 건가. 때로 우린 절망의 끝에서 환상을 보게 된다. 그게 신기루인지 잘 알면서도 그 환상을 붙잡고 싶어 안달하곤 한다. 절망해본 자만이 그 신기루의 소중함을 안다. 어쨌든 기회가 닿는다면 신기루를 붙잡아야 한다. 언젠가 그녀가 내게 그랬다. 우리 이대로 도망갈래? 세 번째는 다소 차분하고 자잘하며 지속적이었다. 아니 그건 굳이 충격이라 말하긴 뭣하다. 차라리 몰입이었고 함몰이었다고 말해야 옳을 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소설에 온전히 무장해제 당한 채 버둥대며, 습관적으로 페이지 넘기기를 반복했다. 바로처럼, 정말 바보처럼. 그 속에서 때로 인용하고 싶고, 때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몇몇 문장들에 밑줄을 쳤다. 소설에 밑줄을 치는 일이란... 그 문장들은 아침햇살처럼 선명하게 내 뇌리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당신 몸은 몸 이상이에요.”(139p) “몸에서 음악소리가 나고, 소리에서 색깔이 나오고, 그 색에서 다시 향기가 퍼져요. 봐요. 당신 살 냄새가 얼마나 향기로운지.(140p)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을 때, 그의 떨림이 온몸으로 감지될 때, 서영은 그때 알았다. 그를 놓을 수 없음을, 이 사랑의 영원성을 약속받지 못하더라도 당분간은 그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알았다. 1분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지옥과 천국 사이를 오가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이 원래 그렇게 감정 동요가 심하고, 엎치락뒤치락하고, 불안한 것임을.”(148p) 그리고 소설은 종래 모든 이의 가슴속에,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굴레와 거부하고 싶은 진부한 일상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멍울 하나를 찍어놓은 뒤 홀연히 막을 내린다. “식물이 싹틀 때 보면 떡잎이 꼭 두 장씩 짝지어 올라와요. 왜 그럴까요?” 하나, 외롭지 않으려고. 둘, 한 장만 돋아나면 한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셋, 보험 같은 게 아닐까요? 한쪽 이파리에 무슨 일이 생길 때에 대비하는 생존법 같은 거요. 외출>외출>외출>외출> |
| 훌륭한 작가의 소설이나 서점에서 초대박을 친 책들의 경우는 책이라는 한계때문에 가질 수 있는 길지 않은 수명을 크게 연장하여 롱런할 수 있는 행운을 제공받기도 한다...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져냐를 따지고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책이 훌륭하냐 영화가 더 재미나냐를 따지고 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거리를 없다고 할 수 있는데...이는 보는 이의 성향과 관점에 따라서 그 평가가 크게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영화라는 매체가 보통 120분...길어야 180분 이상을 넘어갈 수 없는 시간적 한계와...최근에야 CG덕분에 좀 나아지긴 했지만 인간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나래의 공간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백번 양보한다손 치더라도 책이 영화보다는 더 무게를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따라서 영화와 책을 동시에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대중들의 경우...크게 두 가지 접근 케이스를 가지게 되는데...첫 번째,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게 되는 경우에는 책을 통해 독자 스스로 한껏 펼쳐보았던 상상력이 스크린에 얼마나 잘 반영되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다소 심사위원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기 싶다...그럼 그렇지...제 깟 넘이 난다 긴다하는 배우들이랑 엄청난 돈질알을 해댄들...저자가 책을 통해 줄 수 있는 감동의 반의 반이라도 따라갈 재간이 있간? 하는 비아냥이 하늘을 찌르게 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잘 봐주어도...훌륭한 작품을 그저 히히덕거리며 웃고 넘어가 버릴 영화로 만들어 낸 감독을 조롱섞인 미소로 예술도 모르는 촌닭으로 비난하게 되는 것은 바로 책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깊이에 있다고 하겠다...반대로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의 원작인 책을 읽게 되는 심리라 한다면...영화에서 받은 감동이 매우 짠하여...원작의 깊이가 매우 심오함을 스스로 예상하고...영화보다 더 길고 깊은 감동을 받아보겠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이 경우 독자들은 영화에서는 보도듣도 못했던 감동적인 장면들을 반갑게 맞이할 기회를 제공받게 되며...다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휙 하고 지나쳐 버렸던 영화속 장면들이 요런 장면에서 연유하게 되었음을 차차 깨닫게 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어떤 것을 먼저 만났건 간에 상관없이...오방의 입장에서는 원작이 영화보다는 한 수위에 있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려 스크린 쿼터제를 사수하며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영화인들에게는 미안하게 되었군 ㅋㅋ...하지만 위의 이론은 다분히 오방이 밤늦게 감기약을 주워먹고 몽롱한 상태에서 두서없이 지껄인 궤변이었음을 감안해주길 바라마...영화라고 해서 수준이 낮은 저질의 문화이며...원작이라고 해서 항상 스크린 위에 군림하여야 함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니 너그러이 받아들여주길 아울러 바란다... 어릴 적 완전감동으로 사로잡아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후의 일이긴 하지만 원작을 읽을 기회를 갖게 해주었던 그 첫번째 작품은 바로 ''죽은 시인의 사회''다...로빈 윌리엄스가 아직도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인상깊은 키팅 선생님으로 등장하여 머리가 곤두서는 감동의 전율을 느끼게 해주었던 이 영화는 엔딩씬이라고 할 수 있는 키팅 선생이 괴상스런 교육정책으로 학생들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해직을 당하게 될 때...너나 할 것없이 책상 위로 신발을 신은 채 밟고 올라갔었던 장면에서 압권을 이루게 된다...오방 그 감동을 잊을 수 없어 원작을 읽어보게 되었지만...역시 극적인 장면은 스크린이 한 수 위였던 까닭에 인지하지 못했던 내면의 심오함을 느끼긴 했지만 전율까지는 이르지 못했었던 기억이 생생하도다...이 책은 그 내용의 복잡다단함보다 욘사마와 손예진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청순가련의 대명사 손예진이 ''18금禁'' 영화에 출연하여 숨겨져 있던 새하얀 속살과 육감적 몸매를 드러냈다는 점 때문에 화제를 모았던 영화 ''외출''의 원작이다...오방은 평소 손예진을 친동생 이상으로 사모해 왔었던 덕분에 욘사마의 멱살을 휘어잡고 싶을 때도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커다란 스크린을 가득 메울만큼 손예진의 풍만한 바디가 등장할 때마다 가정용 비상약으로 숨겨놓았던 우황청심환을 뚝 잘라 꿀꺽 삼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만한 말초신경의 자극을 받았던 기억에 아직도 아찔하기만 하다...손 양의 몸매를 감상하는 것을 영화관람의 제1의 목표로 삼고 영화관을 찾았던 덕분에 마른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베드씬이 언제 나올까 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 덕분에 배우들의 내면연기와 고통스러운 상황은 안중에도 없었음을 지금에야 고백하고자 한다...ㅎㅎㅎ 용서를 구하는 사죄의 심정으로 영화의 원작을 뒤늦게 만나게 되었는데...이걸 어쩐댜 ㅋㅋ 책 읽는 내내 손 양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머릿속을 흐리고 만 것을...하지만 스크린에서는 그저 심드렁하게 지나갔던 주인공들의 맘속까지 소상하게 설명해주는 원작의 심오함과 재미만큼은 영화팬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엄연한 사실...혹시 오방처럼 몸매 감상을 목적으로 영화를 접했던 속물 독자들이라면 고해성사를 보는 마음으로 슬쩍 읽어보심이 어떨지...강추하는 바이다...인수(욘사마)와 서영(손예진)은 인적이 뜸한 삼척의 어느 병원 중환자실 앞에서 처음 만난다...아니 만났다고 하기에는 다소 부끄럽지...전혀 안면이 없는 이들은 그때까지만해도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였다...인수의 아내, 그리고 서영의 남편(편의상 이들을 몹쓸 남녀라고 부르기로 한다 -_-ㅋ)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게 되기전까지는...몹쓸 남녀는 업무상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는 해서는 안될 엄청난 구라를 치고 삼척에서 얼씨구 절씨구 떡방아를 찧고 다니다가 천벌을 받아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지...처음에는 몹쓸 남녀의 불륜 사실을 꿈에도 믿을 수 없었던 인수와 서영은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었지만 혼수상태를 깨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욕지거리하며 비난할 정도로 모진 마음을 가지지는 못했다...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해 그 잘난 입으로 자신들의 불륜을 변명할 수 없는 몹쓸 남녀를 간호하며 같은 아픔을 겪는 기간동안 인수와 서영은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고...서로의 감정은 불같이 달아올라 결국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야 말았으니...인터넷에서나 떠돌던 스와핑을 연상시키는 이 충격적 드라마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빨리 알고 싶다면 영화를...깊이 알고 싶다면 이 책 먼저 일독하시길 권하노라.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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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게 뭘까? 도대체 사랑이란 녀석의 정체는 뭘까? 도대체 사랑이란 게 무엇이길래 사랑때문에 살고, 사랑때문에 일희일비하며 사랑때문에 목숨도 거는 걸까? 사랑은 언제 어느때 어떤 식으로 시작되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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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김형경 작가의 책을 열심히 읽어온 독자입니다..
<외출> 역시 재빨리 사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한나절도 안 지나서 다 읽었구요..
역시 김형경씨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마도 영화 <외출>과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모양이네요..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책을 다시 들춰봤습니다..
그런데, 글쎄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심리 묘사나 자잘한 일상의 체험들, 그리고 작가의 독특한 문체들을 영화에서는
어떻게 소화시켰을지...... 그게 더 궁금해졌습니다..
(저 역시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를
아주 좋게 봤고, 이번에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으리라고 보지만......)
그런데, 문학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영화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은
각기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출> 곳곳에 등장하는 김형경 작가의 놀라운 묘사력을
(특히, 믿었던 사랑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두 남녀의 심리를...)
영화에서는 소화하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영화도 개봉하면 꼭 보고 확인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주 재밌는 체험이 될 듯합니다..
올 가을은 <외출> 때문에 가을다운 가을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저 썰렁한 사랑 이야기는 이제 식상했는데..
이렇게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읽었고, 또 영화로도 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
시큼한 햇사과를 한입 베어 문 기분입니다..
인수와 서영의 사랑이 불륜인지 아닌지는, 도덕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경우도 사랑은 사랑일 테지요?
어색한 시큼함에 인상은 좀 찌푸려보았지만, 남은 사과도 아삭아삭 씹고 싶은 기분!!
다른 독자들과 함께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인상깊은구절] 그들도 이렇게 사랑했겟구나...... 다시 한 번 되뇌일 때 서영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마음이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을 따라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350년 된 회회나무나 5천 년 된 암각화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이미 새로운 일이 없으며,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으며, 해서는 안 되는 일도 별반 없다는 것을. 서영은 인수와 함께 팔을 앞뒤로 크게 흔들며 해변을 걸었다. 긴 해변 끝에 도달했을 때는 몸도 마음도 많이 가벼워져 있었다.외출>외출>봄날은>외출>외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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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순수소설 내지는 비참여소설에는 더더욱 그렇지요. 순수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에서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 글, 격렬한 삶을 비유로든 직유로든 묘사하지 않고 피해가는 글을 읽는다는 건 시간낭비 같거든요. 그런데 뭐.. 읽어보니 그래도 나름대로 느낌이 오는 게 있긴 했습니다. 사회과학 서적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문체, 서술, 묘사에서의 수려함이라고나 할까..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더군요. 마침 이 책은 영화를 소설로 다시 만든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배용준과 손예진이 주연한 ''외출''. 이것이 바로 이 소설 ''외출''의 원작이지요. 정확히는 영화로 만들기 전 시나리오 상태에서 작가가 보고 소설로 옮겨썼다고 합니다.
내 배우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갔는데, 실은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다 같이 사고를 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기분이 어떨까요. 온 빛이 새하얗게 변하는 느낌일까요 아니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가전제품이 된 느낌일까요. 배우자의 부정을 알게 된 두 사람이 서로 가까워지고, 그러다 다시 멀어지고, 서로에게 기대며 상처를 치유하고, 빠져드는 서로를 경계하며 망설이다 결국엔 사랑하게되기까지의 묘사를 따라가다보면..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해봤던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아.. 정말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감정이 넘쳐흐를 것 같지만 그것을 억지로 억누르면서 그 사람 앞에서는 태연한 척 모르는 척하는 그런 상황 말이죠. 그러다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일순간에 터져버리면서 모든 걸 생각의 경계 바깥으로 밀어내고, 너와 나 둘만 남아 ''우리'' 둘만 생각하게 되는 그런.. 가슴 떨리는 경험. 문장으로도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적절하게 억누르기도 하고 펼쳐보이기도 하는 남자와 여자의 감정 묘사가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이유에는 작가가 색을 통해 그것을 표현해준다는 점도 해당하는 듯 합니다. 수진을 묘사하는 노란색, 서영에 대한 첫인상의 색이었던 갈색, 둘을 매개해주는 흰색이나 한강 다리의 조명,그리고 안타까운 느낌의 동굴 속 조명.. 이 소설을 보면서 새삼 색이 많은 감정을 말 없이도 표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인수 때문에 서영이 그랬듯이, 조명의 배치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다닐 것 같군요.
두 사람의 사건이 주로 벌어지는 곳은 삼척입니다. 그곳에 있는 환선굴이 중요한 공간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하지요. 3년 전에 제가 여행을 다녀온 곳이기도 해서 소설 안에서 묘사하는 여러가지 삼척의 모습들-절벽, 정자, 강..-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소설의 끝에서 서영과 인수는 서로를 지우기 위해 각자 다시 삼척으로 찾아갑니다. 정말 지우기 위한 여행이 되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공간이 있다는 것, 괜찮지 않나요? 그 둘에게 삼척이 갖는 그런 의미가 저에게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좋은 것일 수도 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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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돌아갈 수 없는 너무 먼 외출" ㅡ상처와 운명을 넘어선 치명적 사랑 이야기
인수는 가수가 꿈이었지만 자질이 없음을 알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차에 여전히 음악을 함게 할 수 있는 조명일을 권유받아 직업으로 가지고 있다. 작업이 있을때면 집을 비워야 할 때 아내 수진에게 몹시도 미안했지만 다행히 광고쪽 일을 하고 있고 자신과는 달리 대인관계가 좋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내 이외의 여자는 관심조차 없고 아내 수진을 색깔로 표현하면 노란색깔이라고 생각한다. 화사하고 희망적이고 따스하고...자신의 소소한 일상까지도 챙겨주어 습관으로 만들어주고, 쭈볏거리는 작업장에 꽃다발을 가지고 와 응원해주는 아내가 자랑스럽고 은근 자랑하고픈 마음이다. 다만 아내가 원하는데도 자식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 많은 것들중 딱 1개의 정자만을 달라고 애원하는 아내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서영은 전업주부로 마지못해 나간 선에서 남편 경호를 보고 첫눈에 반해 결혼을 했다. 남편은 직장인였다가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전환하여 집을 비우는 게 너무도 아쉽기만 한 불만이다. 그렇지만 바로 적응하여 이제는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그 지방의 특산물을 사오라 부탁도 하고 어느새 그걸 기다리는 재미도 알아간다. 다만 노력해도 생기지 않는 아이땜에 시험관수술을 생각하는 단계였다. 언젠가 정전이 되었는데 청소기도, 밥솥도, 티포트도, 음악도, TV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을 때 문득 남편이 자신에겐 전기같은 존재라 여겼었다. 그만큼 만족한 생활이었다.
인수가 달려간 수술실 앞에 나무의자 끝쪽에 한 여자가 앉아있다. 수술하는 사람이 내 아내 강수진 맞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그 여자는 넋이 나가 앉아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중환자실로 옮긴 아내를 보고 있는데 그녀도 들어온다. 아마도 남편인가 보다.
장기 간호를 위해 병원 앞 모텔에 투숙했다. 그녀도 투숙했다. 경찰서의 호출을 받고 가니 교통사고 가해자인데 조사 결과 남편 윤경호가 운전했고 아내 강수진이 옆자리에 탔는데 음주상태였단다. (아내는 술을 못하는데...) 각자의 소지품들을 비닐봉투에 챙긴다.
아내 회사에 전화하니 아내는 휴가중이었단다.(이런...) 아내의 휴대폰을 연다. 잠겨있다. (아내는 이런 사람이었나...) 알고 있는 모든 번호를 동원하여도 비밀번호는 알 길이 없다. (내팽개친다...)
남편의 것이라 여기고 가져온 디카를 열어본다. (헉~ 내 남편 맞는가...) 나한테는 한번도 보여주지 않은 맑은 얼굴, 맑은 미소(남편은 신사적이었다...) 메세지를 확인한다(...)
복도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본다. 그 남자의 등을 본다.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맞춰 병실앞에 선다. 그녀는 여전히 촛점이 없다. 아내를 내려다본다.(왜 그랬니?) 남편을 내려다본다.(당신 그런 사람이야?) 잠을 잘 수가 없다. 잠이 오질 않는다. 약국을 갔다. 그녀가 있다. 수면제를 산다. 그녀가 간다. 나도 수면제를 샀다. 술만이 잠시라도 날 잊게 한다.
이동통신회사앞을 우연히 지나게 되어 비밀번호를 푼다. 1026. 그남자와 관계있겠지. 뻔히 짐작은 했어도 가슴 한 켠이 또 무너져 내린다.많은 메세지 중에 윤경이 많다. 윤경호, 영특하게도 윤경이라 써있다. 출장가던 날 아내는 말했다. 나없는 동안 바람피지마, 혹 피워도 나모르게 해. 그때는 자신감으로 들렸던 그말이 사실은 자신의 방어를 위한 말이었다니. 그날따라 아내의 손길은 왜그리 부드러웠던지. 가슴에 통증이 인다.
그녀와 마주쳤다. 찻집에 앉았다. 핸드폰을 교환해 보고 디카의 화면을 보았다. 나와 아내만이 알고 있고 알아야 할 비밀을 다른 사람도 알고 나눠야 한다니. 얼마나 소중한 모습이고 둘 만이 허락된 모습인데... 술을 마셨다. 술이 나를 마셨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저기요 문좀 열어봐요.제발 문 좀 열어봐요.> 무시하고 있으려니 신경이 쓰인다. 문을 열었다. 술에 취한 그가 옆방 문을 두드리다 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바닥에 엎어졌다. 왜 그 얼굴이 보였을까? 긴 속눈썹에 얼굴이 많이 상했다. 관리인을 부르려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 참 안됐다. 밖으로 나가려다 메모지를 들었다. 냉장고에 물 있습니다. 머리맡에 놨다.
<중략>
후배가 이삿짐을 풀다 말한다. <형 냉장고에 물 있어요?> 수첩을 뒤적인다. 메모지가 보인다. 이 메모지와 휴대폰에 저장된 한서영이란 이름과 번호가 아무렇지 않을 때 그녀를 다 잊은거겠지. 그전에 한 번 꼭 가보고 싶다. 그 소도시 병원과 모텔이 있던 그 곳에. 후다닥 눈오는 밤길을 달린다.
남편에게만 의지했었던 자신을 깨닫고 몸과 맘을 추스른 후 출판사에 출근한다. 창 밖의 이상한 낌새에 눈을 들어보니 흰 눈이다. 그 날도 눈이 왔는데... 저 눈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때 그사람을 다 잊었다 할 수 있겠지. 그 전에 한 번 꼭 가보고 싶다. 그 소도시 병원과 모텔이 있던 그 곳에. 교정을 보던 채로 나간다. 심야 고속버스가 아직은 있겠지.
오랫만에 가슴아픈, 가슴시린 책 한 권을 읽었네요. 이 책을 보는 독자층 따라 갖는 느낌이 너무도 다를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미혼인 사람, 결혼한 사람, 결혼하여 아이까지 있는 사람. 보는 관점도 매우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섬세하니 잘 그려낸 필체앞에서 작가의 책을 또 찾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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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인한 상실감이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이 예리한 칼날로 다가와 생을 위협할 때, 그런 위기의 순간에도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랑은 한 사람의 생을 처참히 무너뜨리는 칼날을 가지고 있지만 또다시 그 상처를 아물게 하는 보드라운 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소설 <외출>에서 다시금 확인한다.
<외출>은 상처입은 사랑이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김형경은 사랑의 무너짐과 사랑의 치유력을 그녀만의 섬세한 언어로 표현해내고 있다. 그녀는 사랑이 부서지고 상처입고 또다시 아물고 뜨거워지는 그 과정들 속으로 천천히, 천천히 우리를 불러들인다. 그 섬세하고 미세한 삶의 감각들, 그 뜨거움과 차가움의 감각들 속으로. 배우자의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온 두 사람 인수와 서영은 수술실 앞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세상에서 가장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로. 그러나 그러한 불안과 걱정도 잠시. 그들의 소지품을 통해 인수와 서영은 각자의 배우자가 불륜의 관계였음을 확인하게 되면서 처음 사고소식을 접했을 때 들었던 걱정과 충격은 치명적인 좌절과 상실감으로 변해간다. 인수는 상실감을 이기지 못해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그의 아내 수진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너,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랬니?” 그 치명적인 상실감은 서영도 마찬가지다. 무난하게 결혼 생활을 유지해왔다고 생각해온 서영에게 남편의 외도는 언젠가 경험해보았던 암흑같은 정전과도 같다. 암전. 그 막막한 어둠같은 느낌. 견고하게 지어진 콘크리트가 한순간 먼지로 변해버리는 듯한 느낌. 기대어 왔던 그 든든한 믿음이 일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그런 느낌. 더 이상의 삶도, 믿음도 무의미할 것만 같은 그러한 어둠 속으로 그녀는 서서히 내려앉는다. 그녀는 더 이상의 생활도, 더 이상의 사랑도 없을 것 같은 그런 곳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잠을 자고 싶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가 가장 고통스럽고 상처입은 순간 만난다.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남자, 혹은 여자의 배우자로서. 그들의 관계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관계이지만 그들의 만남에는 피할 수 없는 사랑이 예정되어 있기에 더더욱 운명적인 만남이 될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누구보다 서로의 아픔을 더 잘 어루만져줄 수 있으니까. 그들은 그렇게 그저 주저앉고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시간을 서로에게 기대어 견뎌내게 된다. 쉽게 잠들 수도 없고 울음도 나오지 않았던 그 시간들 속에서 놓아버렸던 생활의 끈들을 다시 되찾기 시작한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걷고, 같이 술을 마시면서. 그리고 그 위안과 위로는 같이 장을 보고, 같이 영화를 보고, 같이 잠드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금기라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느끼면서도 마음의 타오르는 불같은 뜨거움을 어찌할 수가 없다.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그들의 남편과 아내가 했던 대로 똑같이 그들은 서로에게 빠져든다. 내가 미쳤나봐, 라고 서영은 생각하지만 인수의 따뜻한 손길을 뿌리칠 수가 없다. 사랑으로 인한 상실감은 사랑으로밖에 치유될 수 없음을 그들 몸은, 그리고 마음은 그들의 머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던 그 수직의 무너짐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상승하는 부드러운 곡선 같은 것이라는 것을 그들의 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으로 인한 상실감이 사랑으로 점차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김형경의 내밀한 문장들은 섬세한 내면과 천천히 번져오는 또다른 사랑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특히 빛을 발하고 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의 감각적인 묘사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노란 빛으로 서로를 애무하고, 점점 붉은 색의 열정으로 향해가고, 이윽고 보랏빛의 정점에 다다른다. 그리고 휴식같은 초록색을 지나 현실감을 상기시켜주는 흰 빛의 침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사랑은 무수한 빛들과 색깔들의 덩어리이고 또한 그것을 느끼는 그들의 감각이다. 김형경은 사랑의 언어는 바로 빛의 언어임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빛에 민감한 인수를 통해 서영이 새롭게 느끼는 미세한 빛의 가닥들처럼, 사랑도 그렇게 미세한 빛의 감각이라고, 서로의 지친 그림자를 거둬주는, 깊고 따뜻하고 미세한 감각들이라고 말이다. 어둠의 끝에서 맞이하는 환한 빛 한 줄기가 무너질 것 같은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사랑도 바로 그러한 존재의 무너짐을 버티게 해주는 빛과도 같은 것임을, 소설은 말해준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의 삶 끝자락을 붙잡는, 여리지만 따사로운 빛이다. 그 미세한 색깔과 빛 속에서 그들은 사랑을 나누고 서로를 바라본다. 그들이 서로를 쓰다듬고 그들 내면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 순간, 그들 삶은 무채색의 짙은 고통에서 벗어나 드디어 고유한 색깔을 되찾는다. 그렇게 사랑은 상처 입은 내면의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가장 내밀한 상처까지 어루만져주는 빛이 되어 짙은 고통의 어둠 속에서 그들 자신의 색깔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저 무너질 것만 같았던 삶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들 삶을 무너뜨린 사랑을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들 곁에 온 그 사랑으로써. 그것은 어쩌면 사랑이라기보다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위로이며 휴식이다. 서로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위로할 때 삶은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색칠하는 건지도 모른다. 또다시 봄이 오고 마치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 같은 그 시간들 위로 새하얀 눈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그들 앞에 쌓이는 새하얀 눈은 이제 그들의 오래된 색깔들, 내면의 고통스런 어둠을 지우려는 듯 하얗게, 하얗게 쌓여간다. 흰 색은 이제 더 이상 현실의 참혹함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만들어주는 색깔이 아니라 어둠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아 현실의 고통을 보듬어주는, 눈부신 고요를 안겨다주는 색깔이다. 그 참혹했던 고통의 순간을 견뎌낸 이들에게 선사해 주는 가장 부드러운 색깔의 위로이며 안식인 것이다. 차가운 칼날같은 시간을 견뎌낸 이들에게 가장 눈부신 고요를 안겨다주는 봄눈. 그 봄눈의 편안하고 눈부신 위안이 아팠던 상처의 시간들을 조용히 어루만지고 더욱 따뜻하고 찬란한 봄을 싹틔워 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영이 공원에서 만난 350년 된 나무와 5천년 된 암각화, 그리고 5억 3천만년 된 동굴을 보며 느꼈을 그 아련한 감정들 속에서 우주, 그 무한의 시간 속에서 한 순간의 빛으로 사라질 우리의 생 가운데서 사랑은 가장 눈부시고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단 한 순간의 빛이라는 것을 감히 믿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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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웃긴 일이다. 아내가 사고가 나서 가보니 다른 남자와 함께 사고 당해있다는 것. 한마디로 바람을.. 더 웃긴 건 그 남자의 아내가 그 자리에 와서 그걸 확인했다는 것이다. 너무 웃긴다. 미치도록 슬픈 그런 웃긴 이야기. ‘외출’은 영화로 먼저 알았다. 그래서 내용이 대충 그려졌다. 그래도 본 것은 아무래도 영화와 소설에 다른 뭔가가 있지 않으려나 하는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믿음은 잘 지켜졌다. 남자와 여자가 다시 바람을 피우는데 그 감정이 잘 나와있다. 김형경이라는 작가를 소설가라기 보다는 애매한 상담가 정도로 생각했는데 ‘외출’은 그래도 괜찮은 것 같다.
영화의 이미지가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배우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서 좀 그랬다. 그래도 읽을 만한 소설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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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영화가 떠오르고 있었다. 영화를 본 것도 아닌데 영화 주인공이 책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주인공이 너무 유명한 사람들이어서 그런가. 영화를 통해 만들어진 소설이라서 그런가, 다른 소설들처럼 자유롭게 읽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게 꼭 소설 읽기를 방해했다는 것은 아니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사람을 주인공으로 쓰는 것이 좋을까 마음대로 상상을 해 보게 된다. 그랬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과정을 거꾸로 더듬어 들어가보게 되는 경험이 신선했다. 배용준을, 손예진을, 그들의 외모와 표정과 심리를 이 작가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구나, 이렇게 비유하고 있구나, 절묘하고 신기하고 대단했다. 이제까지 김형경의 소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어온 나로서 이 책에서도 만족스러운 느낌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왕이면 영화관에 책을 들고 가서 한 장면 한 장면 비교해 가면서 보고 싶다는 생각. 어떤 부분을 생략하고 어떤 부분을 더 세밀하게 그렸는지 영화감독과 소설가의 차이까지도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 소설을 소설만으로만 읽은 것이 아니어서 새로웠다는 느낌이 오래 남아 있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