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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은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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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한겨례신문에서 ‘휴가를 보낼 때 읽을 만한 책’들에 관한 기사를 본 것이다. 암살주식회사는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사람을 대신 죽여주는 회사다. 기사의 내용중에서 암살자들이 모여 회사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별로 독특한게 아니었지만, 내 눈길을 끈 부분은 암살자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윤리적인 토론을 계속 반복한다는 데에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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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한겨례신문에서 ‘휴가를 보낼 때 읽을 만한 책’들에 관한 기사를 본 것이다. 암살주식회사는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사람을 대신 죽여주는 회사다. 기사의 내용중에서 암살자들이 모여 회사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별로 독특한게 아니었지만, 내 눈길을 끈 부분은 암살자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윤리적인 토론을 계속 반복한다는 데에 있었다. 과연 그들이 ‘살인’이라는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어떤 기준과 논리를 펼칠 것인가 궁금했다. 그리고 책을 읽었고, 나는 그들의 논리의 빈약함에 대해 실망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암살주식회사의 보스는 어느날, 한 청년의 암살 의뢰를 받는다. 청년의 암살 의뢰의 대상은 바로 암살주식회사의 보스였다. 윤리적 정당성을 중시여기는 보스는, 청년과 함께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토론한다. 결국 둘은 암살주식회사를 만든 것이 사회적 이익을 침해 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보스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자신의 암살을 명령하고 도망친다. 부하들은 조직의 규칙을 위해 보스의 뒤를 쫒는다. 그렇다면, 청년과 보스가 토론을 통해 내린 ‘보스 암살’에 대한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사실 두 학자는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면이 매우 강했고 형이상학적인 것을 꺼려했으므로, 사회적 이익을 결정적 요소로 받아들였고, 그것이 가장 윤리적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결국 이 특별한 척도에 의해 판단된바, 윈터 홀(청년)이 승리를 거두었다. (중략) “나는 사회적 요소를 충분히 강조하는 데는 실패했던 거요. 지금껏 행해진 암살들은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 사회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지. 개인 간의 일로 본다면, 절대로 잘못된 것이 아니었소. 하지만 개인은 단지 개인인 것만은 아니지. 그들 스스로 모여 만들어낸 하나의 집합체의 일부이니까. 바로 그 점이 나의 실수였소. 이제 명확해졌소. 나는 정당하지 못했소. 그러니 이제... ...” -암살주식회사, 71쪽- 보스는 암살이 개인 대 개인간의 일로 본다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고, 또 암살이 사회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었기 때문에 윤리적 정당성이 결여되어있다고 설명한다. 과연 사회적 이익이 윤리성을 판단하는데 가장 결정적 척도일까? 보스의 이론은 공리주의에서 사회적 이익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행위의 결과가 선과 악이 있을 경우 선에서 악을 뺀 양이 최대가 될 때, 그 행위를 하는 것’라고 공리주의를 정의하자. 이 때, 보스가 말하는 사회적 이익은 공리주의의 선에 해당한다. 공리주의는 별다른 논의를 거치지 않고 쉽게 행위의 정당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이유로 쉽게 윤리적 행위의 판단 기준이 되어왔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쉽게 적용되는 만큼 그 약점도 크다. 우선 공리주의의 선과 악의 크기는 그 가늠부터 불가능하다. 가령, 암살을 통해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경우, 분명 그로 인해 손해와 이익을 입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만약, 그 암살을 통해 한 사람이 일 억원 정도의 이익을 보고, 열 명이 백만원의 손해를 보았다면, 분명 금전적인 사회적 이익은 플러스이다. 하지만 과연 돈을 번 사람이 부유한 재벌이고, 백만원을 잃는 사람들이 극빈층이라면, 과연 그것이 사회적 이익이 플러스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기쁨과 슬픔은 서로 계산 할 수 없는 개념이긴 하지만, 분명 일억을 번 재벌의 기쁨보다는 백만원을 잃은 극빈층의 슬픔의 크기가 더 크다는게 보편적인 견해일 것이다. 공리주의가 윤리적 기준이 되기 어려운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무릇 결과란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되는 것이므로, 암살이란 행위를 통한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될 것이다. 이로써 또다른 이익과 손해가 생겨날텐데, 공리주의를 제대로 적용한다면 이 모든 인과관계를 통한 이익과 손해를 모두 계산한 뒤 행동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행위가 야기할 모든 결과들을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그 이익과 손해를 계측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므로 원천적으로 행위의 윤리적 기준에 공리주의 자체를 적용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설령 공리주의가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올바른 기준이라 하더라도 보스와 청년의 논쟁중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더 있다. 우선 보스는 암살이 살인이라는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대 개인간의 일일때 그것이 어떻게 정당한 행위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또한 보스는 암살이라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어떤 이익과 손해를 야기시켰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즉, 보스는 암살이라는 행위가 사회에 이익보다 손해를 더 많이 끼친다는 생각아래 암살에 대한 정당성이 결여 되어 있다고 결론을 내리지만 암살이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자료나 근거, 논리가 없다. 더군다나 보스는 암살이 사회적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암살하게 한다. 이는 모순이다. 마지막으로 전직 교수와 학자들로 구성된 암살자들도, 논리적으로 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원자, 모기, 광기등 여러 가지 들에 대해 토론하지만, 정작 자기들이 왜 보스를 죽여하는지, 그 정당성에 대해서는 토론하지 않는다. 보스의 암살을 그만두고 조직을 와해하라는 청년의 제의에 암살자들은 ‘규칙’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계속 보스를 쫒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암살자들은 그 규칙에 대해서 어떤 윤리적 정당성이 있는지 논의하지 않는다. 암살주식회사의 보스에게 보스의 암살을 의뢰한다는 설정은 꽤 참신하다. 마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살인을 방지하는 경찰관이 살인자가 될 것임을 예견하는 것처럼. 하지만 암살주식회사는 ‘암살에 대한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논의’라는 또다른 참신한 요소를 소설에 삽입시켰지만, 그것에 완벽한 논리적 체계를 갖추고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는데는 실패했다. 뭐,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암살이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임을 인정하고,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를 하기 위해 총들고 거리를 뛰어다니는 것보단 낫겠지만.
m******d 2006.08.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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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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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받고 다른사람의 목숨을 없애는 사람들을 가르켜서 암살자라고 말을 하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혼자서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을 이루어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를 하고 활동을 하고 있다면 어떠한 느낌이 들고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행동을 하여야 될까에 대한 이야기일수 있다. 자신들의 조건에 맞는 인물들만을 살해를 한다는 것을 내걸고 활발한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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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받고 다른사람의 목숨을 없애는 사람들을 가르켜서 암살자라고 말을 하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혼자서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을 이루어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를 하고 활동을 하고 있다면 어떠한 느낌이 들고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행동을 하여야 될까에 대한 이야기일수 있다.


자신들의 조건에 맞는 인물들만을 살해를 한다는 것을 내걸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조직이 있는데 그 조직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는 어떠한 행동이라도 불사를 할수가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신념은 사회에 암적인 존재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의 돈을 받고 죽여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을 한다.


그러한 암살에 대하여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암살단을 찾아와서 조직의 리더의 신념을 가지고 내기를 하여서 리더의 신념을 무너트리고 조직의 해체를 권하는데 조직의 리더는 조직의 목적을 지킨다는 신념에 맞게 행동을 하기 위하여서 리더인 자신의 암살을 조건으로 돈을 지급한 주인공의 의견을 받아 들여서 조직에 자신의 암살을 명령을 하고 자신은 그러한 조직을 피해서 다니면서 조직의 해체를 위해서 조직원들을 죽인다는 내용을 이루고 있다.


리더의 딸을 사랑을 하여서 결혼을 원하는 주인공은 리더의 죽음을 원하지를 않고 조직의 해체만을 건의를 하지만 리더는 그러한 일들은 자신의 신념에 위배가 된다는 말로 조직원 암살에 나서면서 그동안에 같은 이상을 가지고 행동을 하였던 사람들간의 피를 흘리는 전쟁이 시작이 된다.


조직을 구성을 하고 있는 조직원들은 길거리의 불량배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서는 무슨일이라도 할수가 있고 약속은 꼭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래의 장인을 죽이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사람들과 그러한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리더의 말에 자신의 약속을 위반을 할수가 없기 때문에 조직의 활동을 도와주고 그런 주인공의 모습에 아무런 위화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도 이 책에 등장을 하는 구성원들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는것 같다.


신념과 약속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지켜야 하는 일은 맞지만 그러한 것들이 계속 하여서 변화를 하는것이 당연한 일인것 같은데 잘못된 일이라고 알면서도 그전의 약속을 지키려고 자신의 모든것을 희생을 하는 모습은 모순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3 2011.05.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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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당착에 빠져 제로섬게임을 한 암살단 이야기!
"자가당착에 빠져 제로섬게임을 한 암살단 이야기!" 내용보기
이 작품은 잭 런던이 다 쓰지 못한 작품을 로버트 L. 피시가 이어서 쓴 작품이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따지자면 두 작가의 공저라 할 수 있다. 분량 면에서 보더라도 반반으로 나뉘니 딱히 잭 런던의 작품이라고 하기도 뭐한 작품이다. 돈을 주면 누군가를 암살해주는 암살단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나 암살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원칙은 살 가치가 없는 자들을 암살하는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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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잭 런던이 다 쓰지 못한 작품을 로버트 L. 피시가 이어서 쓴 작품이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따지자면 두 작가의 공저라 할 수 있다. 분량 면에서 보더라도 반반으로 나뉘니 딱히 잭 런던의 작품이라고 하기도 뭐한 작품이다.

돈을 주면 누군가를 암살해주는 암살단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나 암살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원칙은 살 가치가 없는 자들을 암살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만 계약이 체결되고 한번 체결된 계약은 파기할 수 없다. 이때 한 남자가 암살단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우두머리를 암살해 달라고 제의한다. 그의 분명한 논리에 따라 우두머리는 자신의 암살을 부하들에게 지시하고 피해 다닌다. 이제 암살단 우두머리와 암살자들과의 추격전이 전개된다.

한 사람의 암살자가 죽을 때마다 그들의 동료는 비통해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암살한 자들에게는 어떤 동정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신념이 그들을 암살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들에게 보수 한 푼주지 않고 신념에 의한 암살자가 되어 달라고 누가 말하고 그런 조직을 만들자고 한다면 가담할 자들이 몇이나 될까. 여기서부터 이 작품의 모순은 들어난다.

자가당착이란 말이 있다. 언행의 앞뒤가 맞지 않을 때 우리는 이 말을 쓴다. 이들의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감히 징키즈칸의 미개한 아시아인들을 몰살한 것과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을 저울질하는 행태라니... 그러면서도 전쟁을 걱정한다. 자기들이 죽으면 안 되는 거고 남이 죽으면 상관없는 논리... 이들의 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란 것이 이런 것이다. 그러니 이때나 백년 후나 변하지 않고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것이겠지 싶다.

226쪽의 말이 내게는 자가당착(自家撞着)으로 들렸다.

"모험이라, 그 단어 마음에 드는군. 모든 인생은 모험이야. 하지만 우리는 위험에 처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모험인 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지. 언제 끝나냐고 물었나? 우리가 끝날 때 아니겠나? 우리 두뇌가 기능을 멈출 때, 우리가 구더기가 되어 더이상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될 때. ......"

자신들의 인생, 모든 인생은 모험이라고 말하면서 차별적 언행을 하고 자신들조차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것, 이것이 암살주식회사의 캐치프레이즈이자 동시대 사회주의 사상과 아나키즘, 그리고 미국식 자본주의와 우월주의가 빠진 모순을 범죄와 살인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약 소위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자에 대한 암살 의뢰를 이런 집단이 있어 누군가 한다면 그래서 그가 죽어 더 이상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도 생각했다. 법으로 벌할 수 없는 자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지 않은가. 우리도 때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건 다른 일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죄는 죄를 낳고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로버트 L. 피시의 결말은 그나마 나았다. 잭 런던의 메모나 극적으로 보이는 차미언 런던의 결말보다는. 하지만 너무 신파적이다. 신파적임에도 불구하고 암살자와 그 우두머리의 쫒고 쫓김은 박진감 있고 스릴 있었다. 단지 정의와 논리, 철학과 사상만 들먹이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다. 그랬다면 잭 런던 자신이 완성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제로섬게임 식의 스릴러 작품이었다. 

d*****g 2009.03.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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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철학자들 '암살 주식회사'
"미치광이 철학자들 '암살 주식회사'" 내용보기
스릴러: ★★★★☆스토리: ★★★★☆주관적만족도: ★★★★★ 이 소설은 반쯤 미치광이 소설이다. 윤리와 사상에 중독된 암살자들과그들의 보스였던 도망자이자 사냥꾼인 이반 드라고밀로프. 이 소설에서 중요한키워드들은 신념, 윤리, 도덕, 살인,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극도의 이성일 것이다.1916년 11월에 세상을 뜬 작가의 소설이 20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뒤흔들며철학에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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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
스토리: ★★★★☆
주관적만족도: ★★★★★
 이 소설은 반쯤 미치광이 소설이다. 윤리와 사상에 중독된 암살자들과
그들의 보스였던 도망자이자 사냥꾼인 이반 드라고밀로프. 이 소설에서 중요한
키워드들은 신념, 윤리, 도덕, 살인,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극도의 이성일 것이다.
1916년 11월에 세상을 뜬 작가의 소설이 20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뒤흔들며
철학에 답이 있는가?하는 의문을 일깨우고 자신의 신념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한다.
지적허기까지 만족시켜주는 모험과 스릴을 원한다면 이 책은 탁월할 것이다.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만 제거하는 비밀스런 조직 '암살국'과 그 존재를 알게되고는
이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5만달러를 준비하는 이야기속의 화자.
암살주식회사는 소설적인 재미의 충족도와 강렬한 캐릭터성-이반 드라고밀로프에게
집중되어 있는- 지적허기를 모두 달래주는 책이었다.
보통의 책이 긴 아쉬움, 만족감과 더불어 벅차오르는 행복감을 준다면
이 책은 만족감, 호기심, 계속되는 사고(思考)를 남겨주었다.

사회를 위한 살인(온갖 더러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고위관료)은 과연 정당한가?
사회적으로 정당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개인과 개인으로의 관계로 넘어가면,
(집에서는 좋은 아빠,남편등) 그 살인은 불공정한 것일까?
사회적살인과 개인적살인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다는건 논리적인가, 비논리적인가?
그것이 비록 공정하다 할지라도 그 살인이 한 기업(미묘하지만)에 영리적인 이득을
가져다준다면 그건 비사회적인 일이 아닌가? 대체 이 미치광이들은 어디까지 갈 셈이지?

다시는 이렇게 유쾌한 살인마들이 나오는 책을 보기 힘들 것이다.
'윤리'란 이름에 묶인 정신나간 철학자들. 약속이란 것, 또는 자신의 정의를
지켜주는 신념이란 것 때문에 '살인=죄'에 대한 이콜을 '같지 않다'라 주장하는
암살자들의 말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운동가들을 떠올렸다.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운동가들과 이 소설속의 인물들은 닮은데가 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인간은 판단할 수 없어요. 단지 판단될 수 있을 뿐입니다.'

굉장히 인상적이고 굉장히 무서운 말이다. 신념이든 윤리든 무엇이든,
개인이 어떤 사고를 하던간에 이 말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판단된다는 뜻이다. 그게 정의든 아니든간에. 그 안에 무엇이 내제되어있든.
아무튼, 지금의 사람들이 에드거 앨런포를 높이 평가하지만,
누군가 그를 '그냥 병신같은 정신병자의 망상을 끄적이는 무말랭이'라고 한다면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그렇게 판단될 뿐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판단은 사회와 국가에 가려질지도 모르지만 ...
바보같은 소리일 수도 있다.
'인간은 (자기자신을 스스로)판단할 수 없어요. 단지 (타인이나 사회,조직에 의해)판단될 수 있을 뿐입니다.'

책 내에서 화자의 주장이었고 이반과 홀 사이에서
오가는 잭 런던의 또다른 주장이었을거라고..생각한다.

결국 사상이라는 것도 저 틀에 딱 들이맞으니깐.

이 책은 완성되지 못한 유작이지만 추리소설 작가인
로버트L피시의 솜씨덕에 소설적인 재미를 더 잘 살려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몰개성했던 몇몇 캐릭은 후반에 가서 생명력이 드러났으니 ^^;
이만큼 만족스러운 결말은 앞으로 오랫동안은 보기 힘들 것 같다.

p****z 2008.04.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