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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지도 벌써 25년이나 되었나 보다. 인도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였는데 짧은 영어실력과 생소한 장면장면에 혼자 쩔쩔매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나를 혼란하게 만들었던 장면이 하나 있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구걸꾼들의 표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구걸꾼들은 지하철 입구 같은 곳에서 무슨 죄인이라도 되는 듯한 자세로 엎드려 지나가는 행인의 자비를 구하지만, 이들의 표정은 우리나라에서 보는 모습과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정말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내가 너에게 적선할 소중한 기회를 주니까 그 기회 놓치지 말라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도인들은 '우리는 모두 무언가 베풀 것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베풀고 또 배풀어야 한다'는 기본적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한다.
이러한 베품의 정신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고 모범을 보여준 인도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회개혁가로 비노바 바베라는 분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분에 대한 평론이다. 나에게는 생소한 인물이지만 법정스님 추천도서에 소개되어 있어 읽게 되었다. 열살의 어린나이에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인류를 위해 헌신하기로 서약했다니 될성부른 나무라 떡잎부터 달랐던 것일까? 청년시절에 간디를 만나 비폭력 저항운동을 체득한 그는 흔들림없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비폭력을 실천하고 영성을 추구하며, 사랑과 베품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회운동에 헌신하게 된다. 영국 식민지 시절 시민불복종 운동을 주도한 죄로 감옥생활도 경험한다.
그의 생에 관한 많은 일화들이 저자에 의해 소개되지만 크게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는 두가지이다. 첫째는 인도 독립후 그가 추진한 토지헌납운동(부단)이다. 그는 모든 인간은 공기와 물과 햇빛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땅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류시화님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 소개된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2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그는 인도 전역을 걸어다니며 지주들을 만났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땅을 내어주도록 설득한다. 그 결과는 정말 놀랍다. 사랑으로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스코틀랜드의 넓이에 해당하는 400만 에이커의 땅을 정말로 내어 주었다고 한다. 그런 건 안 된다고 미리 자포자기해버리는 우리들에게 정말 진실되게 믿고 온 정성을 다해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기적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둘째는 마을공동체 운동에 관한 부분이다. 비노바는 인도의 최고계급인 브라만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육체노동자의 길을 택한다. 특히 인도사회가 천시하고 경멸하는 형태의 노동을 몸소 실천한다. 즉 똥 치우는 일, 옷감 짜는 일, 목수의 일, 농사 등을 몸소 행하며 마을에서 가난을 몰아내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직접 모색한다. 그의 말 한마디가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 땅을 내어놓는 곳까지 가기까지에는 그의 진정성에 바탕을 둔 참된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폭력의 방법으로 사회질서를 세우려고 했던 그의 순결한 마음은 무소유의 삶, 베품의 삶의 모습을 보인 성자의 삶이었다고 결론내려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마하트마 간디 이후 비보바 바베가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로 느껴진다.
참으로 훌륭한 분이었다고 결론짓고 이 책을 덮어버리려고 하니 무엇인가 잊은 듯한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현실은, 그리고 나는 어떤 어떤가?' 하는 질문이 계속 귀를 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삶의 윤택함으로 이어지려면 우리도 모두가 존경하는 그런 지도자들을 만들고 키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내가 가진 조그만한 재산이나 재능, 마음도 이웃과 함께 나누는 넉넉한 마음들을 키워가야 하지는 않을까? 진정 이러한 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조용한 혁명은 아닐까? 순결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의 삶을 보면서 내 마음이 점점 착잡해지는 것은 아직 내 마음속에 너무 큰 티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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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노바 바베는 평생을 겸손한 침묵과 진실한 행함으로 살았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사람들 사이에 높이 쌓여있던 벽을 허물었다. 헐려진 벽 뒤에 숨어있었던 반짝임을 사람들은 보았고, 내안에도, 그리고 다른 사람 안에도 그러한 반짝임이 있었음을 보았다. 이것이 바로 ‘기적’을 만들었다. 그는 리더로서 스승으로서 우리에게 많은 배울 점을 보여주고 있다. 1. 영감과 실천 어떤 일을 추진해나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이고, 이를 잘 수행해낼 수 있는 조직을 갖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비노바는 인도에서 일어날 새로운 혁명을 이루는데 있어서 ‘조직’이라는 것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걸림돌로 보았다. 비노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직을 가지고는 결코 혁명을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조직은 틀이며, 그것은 지배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조직 안에 있으면 우리는 하나의 고정된 도식에 따라서 일해야 하고, 또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직에는 정신의 자유가 없다.” 비노바는 ‘혁명은 정신의 일이며, 따라서 혁명이 명령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비노바는 가난한 자들에게 땅을 얻게 하기 위해 ‘헌납’이라는 혁명적 패러다임을 제시하였고, 이는 토지헌납운동이라는 기적을 이루어내었다. 비노바는 인도의 갱생을 위하여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희망처럼 보이는 일을 현실로 만드는 추진력과 결단력은 분명 교사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사람을 움직이며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머리가 주는 지식이 아니라 가슴과 행함에서 보여주는 감동이다. 비노바는 어린시절 그의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여러 모습들에서, 어머니가 보여준 거지에 대한 동냥, 함께 살았던 아저씨의 죽음, 예배, 순결한 언어, 아픈 이웃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에서 이러한 사실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토지헌납운동’은 그의 꾸준한 실천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운동을 추진하기에 앞서 비노바는 하리잔들을 위해서 일했다. 그는 그곳에서 분뇨를 치우는 일을 했었는데 어느날 사람들은 비노바에게 “도대체 이일을 언제까지 할 셈이오?”하고 묻곤 했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 이십년 쯤은 걸릴 거요.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길을 만들어 놓아야 하니까요. 이건 사람들의 정신상태를 바꾸어놓는 문젭니다.” 그는 사람들의 정신상태를 바꾸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의 꾸준한 실천과 행함이 없었다면,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이상들을 결코 이룰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신상태를 바꾸는 일은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이는 비노바가 말한 것처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이룰 수 있는 문제이다. 교사들이 아이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일화이기도 하다. ‘실천하는 지성’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성인 것이다. 2. 변화 비노바는 많은 곳에 아쉬람을 세웠다. 북부 먼 지역에 세 군데, 동부 먼 지역에 세 군데, 남부 먼 지역에 세군데, 그리고 중앙지역에 또 세 군데를 세웠다. 만일 그 아쉬람들이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들은 온 나라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12개뿐인 아쉬람들이지만 그 안에 있는 생명으로 인도 전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변화한다는 것은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한다는 의미도 포함할 것이다. 성장이 멈추었다는 것은 죽었다는 의미이며, 죽음은 곧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비노바는 인도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이러한 생명으로서의 아쉬람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발전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아쉬람은 그들이 처한 지역에서 발전소처럼 봉사해야 한다. 그 힘이 이웃 전체에 느껴지도록 하자. 그리고 그 힘이 우리가 전심전력을 다하여 세우려는 사회를 만드는 힘이 되게 하자.” 우리는 이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할을 우리나라에도 적용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역할을 ‘한국사회 내 지역사회에 속해있는 학교가 해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한국사회에 희망을 주며, 에너지를 공급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학교들이 해야 이 나라에는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학교들은 지역사회에 속해서, 그 지역사회들과 긴밀한 관계를 갖은 학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를 교실 삼아서, 세상안의 구석구석에 배우고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이 우리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생명’으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길러내어야 할 것이다. ‘생명’의 역할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겠지만, 지역사회를 선도하는 의미로서 ‘리더-일꾼’의 역할도 포함될 것이다. 3. 행동하는 지성 인도인들의 정신을 고치려고 했던 사람. 인도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사람. 행동하는 지성으로 평화와 온유를 가지고 인도를 변화시켰던 사람. 이 시대의 한국에서 우리는 비노바에게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고, 스승의 모습이다. 그는 인도를 사랑한만큼, 인도만큼 위대해졌다. 우리도 그의 삶을 통하여 스승의 모습을 배워야 할 것이다. 비노바는 인도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대안을 찾아내었다. 그것이 비록 너무도 이상적인 방법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그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 나갔으며 기적같은 일들이 인도 전역에서 일어났다. 비노바의 삶은 기적을 만들어 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소유보다 더 큰 기쁨은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공유이다. 기쁨을 함께 나누어 더 커진 기쁨을 소유한 공유야 말로 더 큰 가치이자 즐거움이다. 인도의 많은 지주들은 땅을 소유했다. 비노바를 만났던 지주들은 자신의 땅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며 그 기쁨을 함께 만들어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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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한 책들]에 소개되어 있는 50여권을 올해 중에 다 읽는 것이 년초 목표였는데 여의치가 않다. 이 책은 소개된 책 50여권 중 13번째 책으로, 칼린디가 쓴 현대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인 비노바 바베의 인물전(평전)이다. 비노바는 자신의 생애에 관하여 이야기를 꺼리고 또 자서전을 집필하는 것을 거부하였지만, 친밀한 협력자이자 제자였던 칼린디는 비노바의 이야기를 모아 그의 생애와 회고와 기억들을 엮어냈다.
비노바는 세계적인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회개혁자이며, 동시에 20세기에 마하마트 간디, 사티쉬 쿠마르와 함께 인도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 천년 동안 전세계인들에게 정신적, 종교적 영감과 철학을 제시했던 부처, 예수, 마호메트와 마찬가지로 태어나고 성장한 장소와 관계없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정신적, 종교적 영감과 철학을 제공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비노바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어쩔 수 없이 현대사회의 가족, 교육, 사회, 문화, 그리고 개인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가족 내에서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말과 행동, 영성과 신념, 삶과 지향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된다. 근현대 교육제도와 학교의 모습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 비노바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인도의 기존 학교와 대학이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하인들’을 훈련시키는 커다란 공장에 불과하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21세기 전세계 학교와 대학은 당시 인도의 그것과 크게 다를까?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을 키우는 교육제도가 한국을 비롯한 OECD 국가들 중 얼마나 될까? 비노바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간으로서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실천했다.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최소한의 의식주를 누려야한다는 데 뜻을 세우고 신의 뜻에 살기로 마음먹은 후로 비노나는 스스로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동시에 바깥에 있는 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실천하기 시작한다. 비노바는 ’토지헌납운동(부단)’을 시작으로 ’모든 사람이 베풀 것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베풀어야 한다’고 설득하면서 인도 전역에서 20년 넘게 사람들과 만났던 것이다. 비노바는 힘들고 나약하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부당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개혁하는데 참여하지 않는 어떤 종교도 ’신의 참 뜻’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수 많은 종교를 접하고 경전들을 연구하였으나 결국 모든 종교의 핵심 가르침은 ’돕고 함께 나누고 정신적인 충만’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스스로 실천해 나간 것이다. ![]() 내가 처음 비노바에 대한 글을 읽은 것은 사티쉬 쿠마르의 자서전 <끝없는 여정>에서였다. 1960년대에 인도에서 영국, 미국, 일본까지 직접 걸어서 핵무기 없는 세상과 평화를 전파했던 쿠마르는 1955년부터 1962년까지 비노바의 ’토지헌납운동’에 참여한 바 있었다.
비노바는 법정스님만큼 내가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사상가이자 실천가이자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인류의 스승이라 할 수 있다.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 평생에 걸쳐 지켜온 무소유의 삶, 늘 책을 읽고 공부하는 자세, 어려운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 불의와 부정의에 대한 단호한 배격, 정치와 권력과 조직에 대한 태생적인 거부... 이 모든 비노바의 생애는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무엇을 잘못하고 살아온 것인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깨닫게 해주고 있다. 부끄러운 삶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비노바의 말 한 마디, 그 정신과 실천을 내가 잊지 않는 한 나를 끝없이 깨우치고 채찍질할 것이다.
인류의 정신과 미래를 제시하는 위인들의 삶과 정신에는 늘 공통점이 있다. 비노바는 ’무소유’와 ’자신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정진’이라는 측면에서 법정스님의 생애(법정의 [무소유]와 [아름다운 마무리])와 비슷하다. 간디와 함께한 ’비폭력저항(샤티야그라하)’의 정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박홍규 교수 역 [시민의 불복종]), 마틴 루터 킹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 학교제도에 대한 비노바의 태도는 이반 일리히의 [학교없는 사회]와 동일하며 태양과 달, 공기와 물, 숲과 땅이 오로지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으며 인류와 생명체 전체가 함께 누려야할 소중한 존재라는 비노바의 정신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정신(류시화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과 통하는 것이다.
비노바는 스스로 가장 크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샹카라’와 ’즈나나데바’와 ’간디’라고 하였지만... ’샹카라’는 철학자로서 그가 건설한 수도원들의 후대의 우두머리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상카라차리야 1세라고 한다. ’즈나나데바’는 위대한 시인이자 성자였던 ’마라티’를 말한다.
--------------- * 칼린디는 누구인가? -----------------------------
칼린디는 비노바 바베의 제자였다. 칼린디는 1960년에 비노바를 만났다. 바로다 대학교에서 사회복지 석사학위를 받은 직후의 일이었다. 비노바와 절친한 사이가 된 칼린디는 그의 강연과 대화를 꼼꼼히 기록하였으며, 언론 출판 관계에서 그의 대변인 역할을 하였다. 1964년 비노바가 힌두어 월간지 <마이트리>를 시작하자 그녀는 편집장을 맡아 오랫동안 그 일을 이어갔다. 그녀는 비노바가 파우나르에 창설한 ’아쉬람 브라마비디야 만디르’의 회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영문판 원본은 원래 1985년에 <마이트리>의 특집편집본으로 출판되었다. -----------------------
이 책은 서문과 맺음말, 그리고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비노바 자신이 쓴 자서전이 아닌 칼린디가 쓴 평전이지만, 책의 내용은 ’1인칭’으로 다루고 있다.
[시작하면서]에는 비노바의 인생에 대한 태도와 사상을 정리한다. 문장 하나 하나는 평생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과 진리 속에서 실천한 그의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랑과 사상만큼 강한 힘을 가진 것은 없다’, ’나는 매순간 변하는 사람이다’, ’나는 브라만으로 태어났으나, 자발적으로 그 카스트와 결별하였다.’, ’나는 이념들을 가지고 있으나 고정되어 굳어버린 견해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모두가 나의 친족이요 나도 그들의 친족이다.’, ’나는 어떤 문제를 보면 그 문제 깊숙이 뚫고 들어가 그 근원까지 파악하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 문제가 아무리 큰 것일지라도 결국 그것은 인간의 문제이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지성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한 사히의 삶과 개인의 삶 안에 있는 모든 종류의 문제들을 찾아내고, 그 문제들을 비록력으로 극복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나 자신에 대해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만났던 행운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나는 외적인 형편들이 너무나 순탄하였다는 것을 회상하게 된다.’,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행운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가 느끼고 있듯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이다.’ (p.30~37)
제1부. [야생마와 같던 청년시절 (1895~1916)]에는 비노바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까지의 삶이 서술되어 있다. 그는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의 콩간 지역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냈다. 비노바는 카스트 계급 중 가장 높은 ’브라만’ 계급이었고 그의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돌아다니기와 책읽기가 취미였다. 그렇지만 그의 삶과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은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서였다.
지주였던 그의 할아버지는 힌두교의 독실한 신자였으며 규칙적으로 서약을 하고 단식을 하였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릴 때마다 비노바를 참석토록 하였다. 비노바는 자신이 정신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면 할아버지로부터 연유한 것이라고 말한다. 비노바는 어머니에 대해 말할 때, "나의 정신을 형성함에 있어서 어머니가 했던 역할에 버금갈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는 위대한 신앙인으로서 매일의 일상 속에서 진심으로 기도하고 감사함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비노바가 매일 식사하기 전에 툴시 나무에 물을 주게하고 음식을 따로 떼어 동물들에게 베풀 수 있도록 하는 등 그가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고 비노바는 그것을 가장 큰 선물로 기억한다. "우리는 먼저 베풀고 나중에 먹어야 하는 법이란다."(p.63) "우리가 무엇인데 누가 받을 만한 사람이고 누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 판단한단 말이냐?"(p.66)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먹을 음식의 양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단다. 그러니까 오래 살려거든 적게 먹도록 해라"(p.86)
과학자이자 요가 수행자였던 비노바의 아버지는 비노바에게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고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공경하며 이웃을 돕는 것을 가르쳤고 비노바가 잘못한 것들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들이 열여섯이 되면 그를 친구로 대해야 한다."(p.84 이 말은 전설적인 현인 마누가 지은 책 [마누스므리티]에 들어있다. )
비노바는 열 살 때 브라마차리야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고 스물 한 살에 집을 떠났다. 그는 길을 떠나기 가지고 있던 모든 자격증들을 불살랐고 어머니에게 자신은 ’월급 받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제2부. [멍에를 받아들이다 (1917~1950)] 비노바는 출가했을 때 벵갈과 히말라야에 끌렸으나 출가한 이후 간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간디의 ’사티야그라하 아쉬람’에 찾아갔다. 그는 간디에게서 히말라야의 ’평화’와 벵갈의 ’혁명적인 정신’을 모두 발견했던 것이다. 비노바는 아쉬람에서 정치적 자유와 정신적인 발전을 하나의 동일하고 동시적인 목표로 삼는 간디를 발견하고 기뻐했다. 비노바는 ’카르마-요가’ 즉 영적인 행동의 길의 의미에 대해 배웠다. 그것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었고 비노바는 그것에 매혹되어 평생 간디를 스승으로 삼았다.
간디의 비폭력은 내적인 비폭력이었으며 정신의 폭력은 공개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나쁜 것이었다. 그 내적인 비폭력은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간디의 아쉬람의 목적은 "세계 전체의 복지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우리 나라를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서약을 받아들인다." 서약은 열 한개로 진실, 비폭력, 절도 금지, 극기, 육체적 노동 등이었으며 비노바는 그 서약을 평생토록 지켜나갔다.
간디는 비노바를 인도의 지도자로 인정했고 1940년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제안하면서 그를 대표자로 선정했다.
![]() 비노바는 간디를 정신적, 실천적인 스승으로 삼은 후 30년 동안 교육과 건설활동에 투신했고 그 활동의 근거가 되어야 할 원칙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는 가르치고 공부하고 성찰하는 일 등을 하였지만, ’사티야그라하’ 이외의 정치적인 활동에는 거의 가담하지 않았다. 그는 ’사티야그라하’ 운동을 통해 평생 3회에 걸쳐 7년간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그는 "내가 진정한 아쉬람 생활을 경험한 것은 감옥 안에서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감옥 안에서도 성찰과 정진, 봉사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비노바는 아쉬람에서 처음 옷감 짜는 일을 배운 후 인도 사람들이 옷감짜는 일로 삶에서 독립을 이룰 수 있도록 연구하고 물레를 개발하고 실험하고 보급하였다. 도한 마을 봉사활동을 거듭하면서 카스트 제도의 가장 낮은 계급인 ’하리잔’들과 하나가 되고 그들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인도 사회에서 가장 낮게 인정받는 일, 즉 똥 치우는 일, 가죽일, 천을 짜는 일을 했다. 그는 그러한 일을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는 것이 ’사람들의 정신상태를 바꾸어 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3부. [멍에를 지다 (1951~1969)]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1948년 간디가 암살당한 후, 비노바는 "우리는 이미 정치적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이제 보다 더 철저하고 훨씬 더 어려운 과제에 착수할 때가 되었다. 그 과제는 바로 사회적 경제적 혁명이다. 옛 방식들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p.227)라고 생각했다.
1948년 인도의 중앙 행정부와 지역 행정부는 토지를 하리잔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치다가 포기했다. 1951년 3월 도보로 여행을 시작한 비노바는 사르보다야 대회를 끝내고 4월 우타르 프라데시 주를 여행하면서 포참찰리 마을에 도착한다. 그가 토지를 필요로 하는 하리잔들과 토지 소유자들과 면담하면서 설득하는 중에 지주인 ’쉬리 라마찬드라 레디’가 하리잔들이 필요한 토지를 헌납했다. 이로써 비노바의 ’토지헌납(부단)운동’이 시작된다. 비노바는 다음과 같은 말로 지주들을 설득했다. "모든 인간은 공기와 물과 햇빛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땅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한 개인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땅을 차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가 땅을 내놓을 때는 그 스스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놓아야 한다."(p.249) 그는 지주들에게 ’헌납 토지 = 1/ (아들의 수 + 1)’의 토지를 헌납하기를 요구했다. 1951년부터 1969년까지 20년간 비노바는 지지자들과 함께 인도 전역을 걸어 다니면서 지주들에게 토지를 헌납하도록 설득하였고 하리잔들이 헌납받은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면서 공동체 마을이 자립적으로 운영되도록 이끌었다. 그는 20년 동안 무려 인도 국토면적의 1.33%인 400만 에이커(16.7만km2 = 50억 평)의 스코틀랜드 국토와 맞먹는 땅을 헌납받을 수 있었다.(남한 국토면적 10만km2) 그는 그 과정에서도 공부하기, 가르치기, 공동체 만들기, 하리잔 돕기,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비노바는 마을들이 스스로 자치를 해나갈 수 있도록 1957년부터 ’토지헌납운동’과 더불어 ’평화군(산티 세나)’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는 인구 오천 명당 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1958년부터는 ’삼팟티-단(재산의 육분의 일)’을 헌납하는 운동을 병행했고 1961년부터는 ’비가-카타(20분의 1)’ 운동도 시작한다. 비노바는 그 과정에서 아쉬람 여섯 개를 창설하고 수 많은 마을에 마을 자치가 이루어지도록 사람들을 교육하고 조직하였다. 그는 인도의 "가장 큰 과제를 인간 사회 전체를 비폭력의 사회로 만들어내는 일, 바꾸어 말하자면 비폭력적이고 강하고 자립적이며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두려움과 증오로부터 벗어난 그런 사회를 만들어내는 일이다."(p.353)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는 영적인 삶을 위해 기도, 침묵, 명상, 정신을 뛰어넘는 일, 선한 것을 공경함, 애정을 기르는 것, 식사 제어하기, 두려움의 정복, 빵을 위한 노동,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를 강조했다.
제4부 [멍에를 벗고서 (1970~1982)] 비노바는 1969년 토지헌납운동과 아쉬람 건설, 교육과 조직화를 마지막으로 몇 년간의 준비 끝에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자신의 남은 삶을 성찰하고 정진하기 위해 외적 행위로부터의 자유, 책으로부터의 자유, 가르치는 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했다. 그는 여행도 포기하고 기도와 명상을 하며 내적인 삶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맺는 말] 1982년 건강이 악화된 비노바는 의사와 병원의 치료를 거부하고 80일 간의 단식 끝에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쇠약하고 지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이 온전하며 그의 얼굴은 영적인 광채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p.456)
비노바는 평생 동안 인도의 정신적 전승에 대한 연구는 물론, 세계의 큰 종교들의 거록한 전승에 대한 연구에 정진하였다. 그의 사회적 활동은 그러한 연구에 기초한 것이었다. 비노바가 태어난 지 백 년 만에 빛을 보게 된 이 회고록은 흔들림 없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비폭력을 실천하고 영성을 추구하며 사랑의 힘을 간직해온 한 위대한 인물의 내적인 삶과 위적인 삶을 두루 밝혀준다. 그의 사상과 생애는 인도 전역에서 수 많은 제자들과 민중들에 의하여 전파되었고 칼린디와 같은 외부 협력자들을 통해 전세계에 전파되었다. 알게 모르게 간디와 비노바의 사상이 현대의 지성인들과 학자들,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쳐 현대사회가 비폭력과 저항을 통해 ’파괴와 붕괴’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간디는 1947년 비폭력 저항운동을 통해 인도의 독립을 이끌어내면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이자 성자로 거듭났다. 독립 당시 종교적인 갈등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는 것은 간디도 막지 못했다. 1947년 동파키스탄으로 존재하던 방글라데시는 인도군의 무력개입으로 1972년 독립하였다. 간디와 비노바의 사상과 실천은 독립 이후 인도에서 자주, 자립, 협동, 비폭력 등으로 이어졌다. 비노바는 인도 정부에 의존하기 이전에 민중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마을자치와 공동체운동, 토지헌납운동을 전개했고 정치권과 모든 인도 국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비노바의 사상과 실천이 국가적인 정책으로, 국민 전체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물론, 아직 인도에 많은 자치와 자립마을이 남아있고 비노바와 같은 사상가들의 정신과 실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비노바의 사상이 인도 내부에 뿌리깊게 퍼지지는 못했다. 기존 종교의 모습은 ’카스트 제도’의 모습으로 남아 있고 어느 순간 ’대량생산, 대량소비’와 ’황금만능주의’가 새로운 종교로 인도를 잠식하고 있는 것 같다.
인도는 1980년대까지 간디와 그의 제자인 네루의 철학과 정책을 유지했으나 민중들의 삶을 개선시키는데 실패했다. 1990년대 들어 인도 정부는 자본주의 경제방식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면서 인도의 전체 GDP는 늘려가고 있으나 하층 민중들의 삶이 개선되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으면서 가난한 방글라데시의 현실이 독립이나 무력분쟁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비노바의 사상과 생애가 그 이후 인도와 세계의 지성과 민중들에게 어떤 지침을 주었고 삶을 안내했는지 알고 싶다...
* 책 속의 책 : [바가바드기타], [우파니샤드], [마누스므리티], [요가-사트라], [즈나네스와리], [베다], [신약성서], [코란], [법구경], [담마파다], [자푸지], [나마고샤]
[ 2011년 6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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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똥을 치우는 일에서부터 요리를 하는 일까지 아쉬람에서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함께 했습니다. 그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고, 천성이 타고난 학자지만, 거의 모든 시간을 실 잣는 일로 보냈습니다. 그는 그 분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전문가입니다. 그는 실을 잣고 베를 짜는 일이 마을을 가난에서 구제하고 죽은 마을에 생명을 불어넣는 핵심적인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타고난 교사인 그는 힌두스타니 탈리미 상그의 아샤데비 아리야나야캄이 공예를 통한 교육계획을 발전시키는 일에 가장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간디가 인도와 세계사람들에게 비노바를 소개한 성명서의 일부입니다. 인도의 간디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비노바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행했던 토지헌납운동은 간디의 비폭력저항 운동과 더불어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뤄나가는데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 '비노바 바베'는 자서전처럼 쓰인 비노바 바베의 전기입니다. 인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배경을 잘 모르는 내가 읽기에 그리 쉬운책은 아니지만 똥을 치우는 일조차 거부하지 않은 브라만 계급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생을 살아간 비노바 바베가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다면 '비노바 바베'와의 만남을 망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노바 바베는 신이 영원한 해결책을 약속하지는 않았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선함, 하느님께로 향하는 신앙을 일깨워 행동하게끔 합니다. 세상의 평화는 누군가에 의해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되는 것일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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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으로 좋은 일을 한다지만, 내적으로 지쳐가고 빈곤해지는 경우가 있다. 오만해지는 경구가 그런 경우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데, 정작 자기는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는 경우도 그렇다. 동지들을 배신하기 싫어서 억지로 따라가는 경우도 그런 경우다. 이외에도 많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지 않냐고? 100%로 즐거운 일이 어디 있냐고? 참으면서 살라고, 그게 행복이라고 ?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런 생각을 떨쳐 낼 수는 없다. 그 일이 정말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이라면 나도 동시에 행복하고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는 성장하는 데 나는 왜 이렇게 점점 작아지는 것일까. (성령 충만한 관계를 도시 한 가운데서 만들 수는 없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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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거리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보았다. 아니 많이 들려왔다.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행복하지 않은 것인지, 행복해하지 않는 것인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대통령을 갈아치우면 나아질 것이다.”라고. “다음에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다.”라고. 기대에 부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그렇게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내 행복이 정치인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 온당한 생각인지를….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자기가 다방면으로 느껴온 불행의 근원이 대통령 한 사람 때문인지를…. 사람들의 기대에 찬, 혹은 실망에 찬 목소리를 듣자니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이 내 기억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는 바로 비노바 바베. 1895년에 태어나 1982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인도를 개혁하기 위해 제 한 몸을 불사른 사회개혁가이자 현대 인도의 정신적 지주.
그는 일찍이 정규교육이 더 이상 자신에게는 의미없다고 선언하고 사회운동에 투신한다. 간디는 그의 전부였고 그의 영웅이었고 그의 교과서였다. 그는 간디에게서 욕망이 넘쳐나는 인간이 자기가 속한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 행보를 하였던 간디와는 달리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비정치적인 운동을 벌였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바로 토지헌납운동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회운동과 공동체 운동이다. 토지헌납운동-. 생계를 위한 땅 한 뙈기조차도 없고, 게다가 정치적으로 탄압 받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인도.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땅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는 인도 전역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다니며 호소하였다. “당신의 땅을 조금만 나누어 주십시오!” 인도의 일반 가정에서는 평균 아들 다섯을 두고 있는데 비노바 바베는 가난한 사람들을 여섯 째 아들로 여겨달라고 설득하였다.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 모든 자식에게 재산을 골고루 남겨주듯이 딱 그 마음으로 인도 땅의 6분의 1을 땅이 없는 빈민과 천민에게 나누어주면 그들이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지금처럼 새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되자마자 가장 먼저 땅값이 오르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볼 때, 땅을 내놓는다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노바 바베의 호소를 가난한 사람들이 기대에 가득 차서 듣고 있었다.
".... “만일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땅을 얻어줄 수 있다면, 여러분은 모두 함께 일해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 각각에게 개인적으로 땅을 나누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그러마고 하였고, 땅을 함께 갈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런 취지로 진술서 하나를 써주시오. 그러면 내가 주 정부에 여러분의 탄원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바로 그때 거기에 동석해 있던 쉬리 라마찬드라 레디라는 사람이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내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하리잔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100에이커를 내놓겠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사람들은 땅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을 걸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무상으로 헌납을 하다니.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건 분명히 신이 행하신 일! 밤새도록 나는 잠을 못 이루고 그 일을 생각했다. 그것은 계시였다. 사랑으로 감동을 받으면 사람들은 땅까지도 나눌 수 있다. ........" 결국 비노바 바베는 인도 전역에 걸쳐 스코틀랜드만한 크기의 땅을 기증받았다. 이 쯤 되면 비노바 바베는 민중들의 지도자로 우뚝 설만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인품을 일찍이 간파한 간디는 1940년에 자신의 ‘비폭력저항운동’을 이끌 최고의 지도자로 이 사람을 선정하였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것처럼 그도 “나는 변화를 원한다. 먼저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는 개인의 생활습관에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 사회구조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나는 삼중적 변화, 삼중적 혁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변화를 원하려면 외부의 그 어떤 것보다도 자기 마음이 변화되어야 한다. 아무리 자기 마음이 세상에 비해 턱없이 하찮은 것일지라도. 나는 대통령에 대해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이 평소 얼마나 ‘무집착’이니 ‘마음 도리’이니 하였는지를 보았다. 정작 자기의 실리가 걸려 있는 시점에서 그들이 그토록 말하던 그 고상한 가치들은 다 어디가고 그 모든 불행이 대통령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비노바 바베는 평생 사회운동에 투신하면서 공동체 설립과 운영에 가장 초점을 맞추었으며 여성의 지위향상, 교사의 가치를 역설하였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운동과 이념이 정치적으로 오염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였다.
“방법만 있다면 나는 정치와 신발을 종교 밖에 벗어두게 만들고 싶습니다. 정치는 신발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정치라는 게 인도에서나 세계적으로나 그렇게 자랑스럽게 머리에 이고 다닐 만한 것이 못 됩니다. 기껏해야 그것은 발에 신을 수 있을 정도지요. 그런 신발을 신고는 그 어떤 사원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신의 집은 악마의 소굴이 될 테니까요.”
개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정치인 한 사람이 그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절대로! 게다가 정치가 종교의 너울까지 써버린다면 세상은 악마의 소굴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우리 사회도 결코 비켜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장황한 그의 독백보다도 나는 책 후반에 이어지는 ‘죽음을 향한 준비’에 대한 내용에서는 말할 수 없이 진한 감동을 받았다. 글쎄! 내가 어떤 책을 읽고서 ‘감동을 받았다’라는 말을 자주 썼을까? 비노바 바베는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철저하였듯이 나이를 들어가면서 차츰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천천히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여 간다. 그는 이제 모든 공식적인 활동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하며 스스로 자기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첫째, 외적인 행위로부터의 자유이다. 둘째, 책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셋째, 공부로부터의 자유이다. 넷째, 가르치는 일로부터의 자유이다. 뿐만 아니라 나를 가장 강하게 뒤흔든 것은 다음의 문장이다. “나는 앞으로 일 주일 동안에 대해서만 계획을 세우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상쾌해졌고 동시에 경각심도 생겼다. 일 주일을 계획했던 곳에서 일 년을 머물게 될지 사람의 앞일을 누가 알겠는가!(중략) 내가 간디 선생에게서 받아들이지 않은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옛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다. ‘과거에 대한 일체의 집착을 버려라, 미래에 대한 일체의 염려를 떨쳐라’고 한 옛 사람들의 말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나는 과거를 기억하지도 않고 미래에 대해서 염려하지도 않는다. (중략) 왜냐하면 나는 ‘잊어버리기를 잘 하는 비노바’이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잊어버렸고 또 계속 잊어가고 있다. 나는 과거가 나의 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차츰 음식을 줄여나갔다. 자신의 행위를 줄여나갔다. 말을 줄여나갔고 생각을 줄여나갔다. 침묵에 돌입하였다.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글을 쓰지 않는 것도 뜻한다.” “나는 매일 잠자리에 들면서 죽는 연습을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죽을 때 해야 할 일을 오늘 하라, 즉시 하라고 말한다.” 책의 마지막에는 1982년 11월 5일과 15일에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하여 1982년 11월 15일 오전 9시30분에 그는 ‘호흡을 멈추었다.’ 인도의 정신적 지주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다수 있다. 그중에 간디는 암살당하였고 암베드카르는 병사하였고 비베카난다 역시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태어나는 것이 내 의지로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노력만 하면 내 마지막은 자신의 두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는데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아주 심장이 그야말로 둥둥 요동을 친다. 내게는 무척 드문 일이고 이런 적이 거의 없었다. 책을 덮고는 그대로 엎드렸다. 마구 뛰는 심장을 바닥에 대었다. 다소 가라앉는다. 다시 반듯하게 누웠다. 눈물이 배어나왔다. 어찌된 일일까? 나는 이 책의 3분의2 정도를 읽을 때까지 그리 감동을 받지 못했다. 몇 번이고 책을 덮었고 그리고 불평을 토하기도 하였다. 역자의 문체가 별로라느니, 비노바 바베가 너무 처음부터 초인인 듯 행세한다느니 하면서….
하지만 책을 다 읽고서 그 마지막 페이지 여백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2007년 12월 28일 금요일 새벽 1시20분, 내가 70세가 넘어서 꼭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책”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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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단점이 있을리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소득은 정신적인 것이 될 것이다. 특히 정신이 비폭력이라는 거대한 생각을 흡수할 수만 있다면, 비폭력에 대한 연구조사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경험으로만 알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그것을 지켜볼 작정이다. 거기에서는 문필가들의 모임이 있을 것이고, 그 모임 후에 비노바 바베는 숲속에 거주하기를 그만두고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