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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책을 밥먹듯이 읽었다. 위로 언니들이 줄줄이 셋, 첫째, 셋째 공부벌레 언니들 말고, 사이에 낀 둘째 언니가 주로 책을 많이 읽었는데, 네째인 나는 네 살 위였던 언니가 보던 모든 책을 함께 읽었다. 초등 6학년 때 난쏘공을 슬픈 동화책인줄 알고 읽었고, 중 1 때는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끼고 살았다. 아, 그리고 중1 때 읽은 백기완 선생의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 같은 책은 나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언니가 보던 야한 책들도 몰래 훔쳐 봤는데,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같은 성애소설을 읽다가 큰언니한테 들켜서 혼쭐이 나기도 했다. 잡식성의 독서는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 끝모를 호기심에 기인한 거였다.
아,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 또한 호퍼와 같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호퍼는 사고로 일곱 살 때 시력을 잃고, 어머니 또한 잃었다. 그리고 15세 때 기적적으로 시력이 돌아왔다. 아버지 또한 마흔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 그는 홀홀 단신이 되었다. 실명 상태일 때 그를 어머니처럼 돌봐 준 마르타에게 들은 "너는 40을 넘기지 못할 테니 앞날에 대해 안달하지 말아라."는 그 말이 가슴에 뿌리내려 그는 노동자로 철따라 떠돌면서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었고, 삶을 관광객처럼 살아왔다 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받은 돈 300달러를 들고 로스엔젤레스로 간 그는 싸구려 방을 하나 빌리고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 돈이 다 떨어지고 나자 그가 직면한 것은 굶주림이었다. 그러나 환희와 열정의 몸짓으로 짝짓기를 하는 한 쌍의 비둘기를 보며 배고픔을 잊는 경이로운 체험을 통해 그가 깨달은 것은 배고픔이 공포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에릭 호퍼의 길 위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삶과 세상에 대한 통찰을 짧은 서술 속에서 드러내고 있는데 이것을 아포리즘이라 한다.
부두노동자로 정착하기 전까지 수 십 년을 철따라 이 농장에서 저 농장으로 옮겨 다니며 수확을 하고, 식당에서 조리보조원으로 일하며, 광적으로 책을 읽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그의 삶의 통찰은 다이아몬드의 결정처럼 빛난다. 특히 그가 엘센트로의 부랑자 임시 수용소에서 수많은 부랑자들과 함께 지내던 4주간의 생활은 그의 이후 50년 동안의 사고의 씨앗이 되었다. 부랑자같은 사회 적응 불능자가 인간사회 속에서 맡은 특이한 역할에 대해 생각하며 그것을 문장으로 나타내는 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하다 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인간의 심리를 읽는 법, 식물학을 공부하다 백화 현상의 원인을 규명해내는 과정, 헬렌과의 만남 등을 읽으며 독학으로 수많은 학문을 섭렵한 자의 천재적인 재능과 자신에게 다가온 사랑조차 구속이 될까봐 껴안지 못하는 방랑자의 삶 그 쓰린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삶엔 하나의 길만 있지 않다는 것을 호퍼의 삶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며, 내게 다가오는 모든 형태의 삶의 길을 회피하지 않고 맞으리란 다짐을 이 책을 읽으며 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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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에서 밝혔 듯, 이 책은 미국의 철학자인 에릭 호퍼가 자신의 삶에서 겪었던 일화중 중요한 것들을 마치 옆에서 들려주듯이 써내려 갔다. 그래서인지 여타 철학자들의 자서전에서(여기서 몇 권 읽지 않았는데 일반화를 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음) 느끼는 어려운 철학 용어를 빌어 써내려 간 사상을 읽을 때 느낀 열패감이나 열등감을 피해갈 수 있었다. 물론, 에릭 호퍼의 철학 사상을 제대로 안다는 얘기는 아니고 그저 "철학자들의 의도는 무엇이 옳은지를 사람들의 코 밑에 가져다 보여주는 것" 이라고 말했던 호퍼의 생각이 의도하는 바를 조금은 짐작할 뿐이라 것이다.
제도권의 교육을 받지 않고 평생을 떠돌이 노동자로서의 삶에서 체득하고 사색하고 깨우쳤던 것들을 바탕으로 그의 사상을 펼쳐갔던 철학자 답게 그의 일화를 통해서 내 삶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꺼집어 내서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졌다. 또한, 그의 글쓰기는 칼럼을 쓸 때도 200자 정도면 그의 생각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을 정도로 축약된 형태라서 결코 가볍게 여겨지거나 흘려보낼 수 없는 구절이 많다. 그래서 그의 철학 사상을 아포리즘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고 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에릭 호퍼는 어린 시절 앞을 볼 수 없었던 불우한 시간들에 이어 아버지마저 곧 잃게 되는 슬픈 삶을 맞게 된다. 하지만, 또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되면서 그가 보였던 엄청난 독서에 대한 열정은 그의 생각을 바꿔놓고, 그의 삶까지 바뀌놓았다. 미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그가 보고 느끼고 겪었던 여러가지 일들에서도 충분히 힘든 삶일 수도 있는데 에릭 호퍼는 삶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에서 철학적 자양분으로 만들었다. 떠돌이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사색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되새겼다.
에릭 호퍼의 책을 읽으면서 또다시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 부분이 무엇이지도 떠올려 보게 된다. 콕 찝어서 이 느낌을 규정하긴 힘들지만,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림은 길고도 긴 듯하다. 무엇보다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그의 열정적인 삶의 모습이 떠오르며, 슬며시 내 안의 무엇이 고개를 쳐들려함을 느낀다.
"교육-'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p23)
살아가면서 이 말은 놓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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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방대수 옮김 최근 『知의 정원』에서 소개된 책이다. 다른 읽을거리를 제치고 읽었다. 가방 끈의 길이를 논하기 이전 정규교육을 받은 사실이 없는 자, 일곱 살에 시력을 잃고 7년 후 운 좋게 시력이 돌아와 다시 눈이 멀기 전에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고자 했던 자, “백치 아이”라 불리어 처음으로 손에 잡았던 책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였고 몇 번씩 주위의 도움이나 본인 능력으로 한곳에 정착하여 진작 안정된 지위를 가져봄직도 했지만 거부하고 노동을 재산으로 방랑했던 에릭 호퍼의 40대에 이르기까지 자서전을 호기심 속에서 잡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슬로건과 같이 책을 스승과 벗으로 삼아 책을 통하여 자아를 발견하고 저술작업을 통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친 철학자로 주로 밑바닥 생활을 영위했지만 보수적인 인물이다. 우리 초중고교에선 에릭 호퍼의 이런 사례를 전파하여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좋겠다. 아직 호퍼의 다른 책은 읽지 못했지만 첫 저서이자 대표작이라고 보는 『맹신자들』에서 대중운동에 대한 그의 통찰이다. “대중운동의 맹신자는 죄의식, 실패,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좌절한 자로, 미래의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 동기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묻어버리게 된다. 자신의 무의미한 생에 의미를 부여해줄 것으로 여겨지는 운동에 열광적으로 투신하는 것이다.” 이는 “머리를 아래로 하고 엉덩이를 위로 한 사유 자세”이자 빈민층을 살아온 그가 마치 사회 지도층의 위치에 있는 자가 할 법한 말을 한 것인데, 밑바닥 방랑자 생활이지만 독서로 지피는 뜨거운 가슴을 지나 냉철한 가슴으로 사유하는 결정체를 보여주는 것 같다. 태어나서 40대 까지를 기술한 자서전 속의 호퍼는 착실하고 말쑥한 자세를 나타내는 온당한 인간이다. 오렌지 행상 때 과일상자를 청소한 후 깨끗한 종이를 깐 다음 단단한 것은 아래로, 익은 것은 위로 쌓아준 자세로 매진사례를 가져온다. 신사 자신은 모르는 구멍난 양말을 손수 기워준 답례를 사양하며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했다”는 곧고 솔직한 마음이다. 어느 날 다가온 헬렌과 충분히 사랑을 잉태하고 해피엔딩도 가능했지만 “그녀의 기대를 정당화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을 소비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냉철한(?) 생각도 대단하다. 특히, 이 부분은 읽는 나를 아찔하게 하고 멍하게 했다. 과연 나는….? 가치관이나 생활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개개의 관점이라 보자. 그러한 호퍼도 40대 후반 들어 이탈리아 이민출신으로 미모의 건장한 여성 『릴리 페이빌리』를 만났다. 짐수레에 걸터앉아 담소하는 동료들이 보이고 책을 주시하는 작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양육 받으며 자랐다면 과연 말년에 철학자의 반열에 올랐을까. 불행을 겪은 만큼 행복을 느끼듯 방랑자 생활의 경험과 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 반열의 좌석은 없었을 것이다. 클로즈업되는 인물이 있다. 『말콤엑스』이다. 흑인으로서 온갖 비열한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입소하고서야 책을 접하게 되고 비로소 세상에 눈을 떠 온건파 흑인운동의 대부 『마틴루터 킹』과 대조적으로 흑인의 인권을 위해 과격한 투사의 면모를 드러내고 결국 암살로 종지부를 찍은 『말콤엑스』도 책을 통한 입지적인 인물인데 이런 점에서 호퍼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대구 출신의 『장정일』을 꼽을 수 있을까. 앞으로 호퍼의 저서 중에서 『맹신자들』이나 『부두에서의 노동과 사색』을 추가로 읽고 싶다. 내게 다가온 『에릭 호퍼』가 주는 말이고 싶은 게 있다. 이 나이에 급진적일 것 같은 생각을 말자. 한걸음 뒤로 물러나 넓게 사고하도록 노력하자. 대중, 다수에 끌려 결코 함몰되지는 말자. 합리적인 보수가 되길 바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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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동녘에서 번역된 호퍼의 책을 읽고 꽤 괜챃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 책도 읽어보게 된 셈이다. 그 책에서 인용이 되었었다. 괜찮다고 생각된 부분들을 인용한다. 미국의 인문학적 전통이 빈약하다는 것은 '얄개전' 정도를 겨우 넘어선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이 미국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 이민자들이 대서양을 건너오면서 유럽 역사의 부담을 털어버리고 왔다면 유럽의 인문학적 전통 또한 신생 미국 문화에 뿌리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문학은 역사로부터 오는 고통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9p 열 다섯살 때 나는 시력을 되찾았다. 돌연한 시력의 상실과 회복에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익숙해질 수 있었다. 마르타는 농담처럼 "호퍼 집안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다. 우리 집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50세를 넘긴 이가 없었다. "에릭, 앞날에 대해 안달하지 마라. 넌 마흔 살밖에 살지 못할 거야." 그 말은 내 가슴속에 뿌리를 내렸고, 내가 몇 년 동안 노동자로 철따라 떠돌면서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는 데 바탕이 되어 주었다. 나는 삶을 관광객처럼 살아 왔다. 19p education The central task of education is to implant a will and facility for learning ; 교육의 주요 역활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주는데 있다. it should produce not learned but learning people. '배운 인간' 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The truly human society is a learning society, where grandparents, parents, and children are students together.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배우는 사회다. 25p Children One might equate growing up with a mistrust of words. 성장과정을 말에 대해 불신하는 과정과 동일시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A mature person trusts his eyes more than his ear 성숙한 이는 자신의 귀보다는 눈을 더 신뢰한다. 57p 호퍼의 글은 전문철학자의 글과 달리 형식에 자유로운 편이다. 그의 글에서 아포리즘(잠언)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도 한다. 철학자들이 이런저런 이론적 틀과 형식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면, 에릭 호퍼는 그 모든것의 위에서 자유롭게 사색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자유로운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이 책에 대한 故 최성일의 글이 있어서 읽어봤는데, 이 책과 에릭 호퍼에 대한 비평과 찬사가 적절히 섞여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 책의 역자는 에릭 호퍼가 한국에서 낯설은 사상가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는데, 최성일의 글에 따르면 그의 글은 이미 여러번 소개된 적이 있다. 에릭 호퍼에 관심이 있다면 예스24 어딘가에 있는 최성일의 글도 참고하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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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센트로의 임시수용소에 머물렀던 4주일 간은 내 일생에서 가장 생생하게 기억되는 기간이었다. 그 전이나 이후에도 내 마음이 그처럼 경쾌하고 풍요로웠던 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