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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멕시코에서 시작한 돼지독감이 빠른 속도로 지구촌에 확산된 경우를 보더라도 급성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접종을 기피하거나 방역당국을 피하기 위해서 해열제를 복용하는 사럼도 있었다고 합니다. 불과 한 세기도 안된 20세기 초반 스페인독감으로 인하여 수천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을 보면 이러한 변화가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혹자는 의학수준의 향상으로 급성전염병을 통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건위생개념의 확립과 국가주도로 급성 전염병통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 백신, 항생제 그리고 보조적인 치료수단이 한 세기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급성전염병은 어느 정도 통제가 이루어져 국지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수준으로 순화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하지만 진화의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폴 W. 이왈드교수의 저서 <전염병시대>를 읽어보면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 역시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진화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전염병에 대한 저자의 재미있는 해석을 옮겨 보겠습니다. “전형적인 급성전염병은 단기이익을 위해 재빠른 이윤을 노린다. 급성전염병으르 유발하는 병원체는 기업사냥꾼들이다. 대상 기업의건강성은 무시한 채 단기이익 챙기기에 골몰한다. 만약 자신들의 이익이 그 기업의 건강성에 달려 있다면 기업사냥꾼도 그 기업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할 것이다. 기업사냥꾼은 착취나 이동의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숙주기업은 위기를 맞고 파산하기도 한다. 병원체는 돈대신 먹이를 노린다는 점, 이 먹이를 물질적 풍요대신 번식에 쓴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세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면역체계라는 매우 우수한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균은 자신이 살아서 번성하기 위해서는 세균과 숙주 간에 특별한 관계가 충족되어야만 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병원체를 위한 자연의 선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전략적 선택은 2종 경기에 비유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합은 숙주 안에서 벌이는 시합이다. 이 시합에서는 증식을 위해 숙주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쪽이 유리하다. 두 번째 시합은 새로운 숙주로의 이동에서 결판난다. 한 숙주 안에서 증식에 성공한 병원체들이 이번에는 아직 전염되지 않은 숙주로 침입하기 위해 경쟁한다. 새로운 숙주로 이동하지 못한 병원체는 죽는다. 일단 이동에 성공한 병원체는 면역계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만 않으면 숙주가 죽을 때까지 한정된 미래가 보장된다.” 사스의 경우는 강력한 전염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독성이 너무 강해 숙주를 조기에 희생시키게 되어 공멸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급성전염병이 백신을 비롯해 항생제와 기타 보조적인 치료제의 발달로 통제가 가능해지면서 인류의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보건의료문제는 당뇨와 같은 대사성질환을 비롯하여 각종 암과 퇴행성질환과 같은 만성질환입니다. 의학자들은 이들 만성질환을 정복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만성질환의 원인을 유전 및 환경적인 요인으로 설명하고 이를 제거하거나 치환하는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신질병매균설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암이나 알츠하이머, 죽상경화증과 같은 만성질환 역시 세균에 의하여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궁경부암의 경우는 인체유두종바이러스(HPV)에 의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전염이 원인이 되는 암은 15~20%에 이르며, 나머지 암들도 증거들이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대부분 전염과 관련이 있다. 전염성 병원체의 도움없이 발병하는 암은 전체 암 가운데 5%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보이지 않는 전염이 어떻게 암과 심장질환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는가?”라는 부제를 단 이유입니다.
전염성 병원체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사자와 얼룩말과 같은 포식자와 피포식자의 관계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사자가 잡아 먹는 얼룩말이 전멸하면 사자도 뒤따라서 멸종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자와 얼룩말은 균형이 맞춰지는 수준에서 집단의 규모가 평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전염성 병원체와 인간 역시 균형을 맞추기 위한 변이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면역체계의 방어력이 증강되면 될 수록 병원체는 면역체계의 인식을 피하기 위한 변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독성이 약하면서 숙주를 오랫동안 착취할 수 있는 만성질환의 형태로 진화된 병원체만 살아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질환이 성을 매개로 하여 전파되는 전염병이라고 주장합니다. 매독, 임질, 성기헤르페스, 인체유두종바이러스, B형간염 그리고 에이즈 등입니다. 현재로는 에이즈가 제일 심각한 질환입니다. 만성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지 않거나 독성이 약한 병원체와 독성이 강한 병원체를 경쟁시켜 독성이 없는 세균과 인간이 공존하도록 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주장입니다.
저자는 생물학무기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습니다. 1763년 펜실베니아에서 있었던 인디언에 대한 천연두균의 살포, 2차 세계대전당시 러시아로 진격하던 독일군의 발을 잡은 야생토끼병의 예를 들면서 생물학무기는 적 뿐 아니라 아군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예상치 못한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런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쏟아질 수 있는 비난여론이 오히려 사용측의 입지를 궁색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세균을 통제하기 위한 최선의 전략은 적절한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모든 목표 미생물의 변종을 모두 제거하는 전략보다는, 정말 위험한 병균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거나 온순한 변종에게는 호의적인 백신을 개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위험한 병균만이 가지고 있는 독성항원을 이용하여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1972년 루이스 토머스가 <뉴잉글랜드 의학잡지>에 발표한 에세이에서 소개한 의료행위의 세 가지 단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비(非)기술’ 단계로, 아직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질병에 걸린 환자들의 건강회복을 돕는 보조적인 치료행위다. 구체적으로 그는 난치병인 암, 심각한 류마티즘성 관절염, 다뱡경화증, 진행성경화증 등에 대한 현재의 의료행위를 이 범주에 포함시켰다. 또 여러 가지 정신질환도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중간기술’단계로, 질병에 대한 임시방편적 처치들을 여기에 포함시켰다. 세 번째는 ‘결정적 기술’단계다. 이 것은 너무나 효과가 뛰어나서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따라서 일반인들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기술이다. 소아마비 환자용 철폐(iron lung)은 중간기술이고, 소아마비백신은 결정적 기술이다. 결핵환자의 폐에서 병원체에 전염된 조직을 잘라내는 수술은 중간기술이고 항결핵제인 아이소나이아지드와 리팜핀은 결정적 기술이다.”
최근들어 각종 만성질환에 대한 결정적인 치료기술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현대의학에 대하여 대체의학 혹은 전통의학이 대안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나서는 상황입니다. 대체의학 혹은 전통의학은 루이스 토머스의 분류에 따르면 첫 번째의 ‘비(非)기술’ 단계에 머물러 온 초보적인 의술입니다. 지난 수천년 동안 인류의 질병극복사에 과연 얼마나 기여를 해왔는지 과거의 인간의 평균수명의 추이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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