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입니다. 연말과 연초에는 이래저래 지인들에게 선물할 일이 많아집니다.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는 좋은 선물용 책입니다. 지금까지 선물로 20명 넘게 주었습니다. 올해도 대략 5권 정도를 주문했습니다. 4년전 너구리에게 선물로 받았던 책입니다. 무척 인상이 깊었던 <데라야마 슈지>의 자서전격인 책입니다.
데라야마슈지는 시,단가,하이쿠,소설,평론,에세이,영화,연극,사진 등 다채로운 장르에 걸쳐 전방위적인 활동을 하다가 4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일본의 천재 예술가입니다. 1935년 아오모리 현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부터 시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와세다대학교 문학부 재학 시절에 이미 천재적인 시조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59년 무렵부터 라디오 드라마,희곡,시나리오를 쓰면서 <미궁담> <지우개> <토마토케첩 황제> 등의 실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실험영화들을 보고싶습니다. 물론 구하기 힘듭니다.
대학을 중퇴하던 1967년에 연극실험실 <텐조사지키(天井棧敷)>를 설립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아오모리현의 곱사등이 사내> <모피의 마리> <노비훈> <거리극 노크> 등 숱한 화제작들을 무대에 올리며 새로운 표현양식의 실험연극을 선보임으로써 일본 언더그라운드 연극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는 소극장연극의 기반을 쌓았습니다. 또한 이 책과 동명의 영화인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극영화로 진출하였습니다. 기세를 몰아 계속하여 <전원에 죽다> <복서> <방주여, 안녕> 등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국내외의 수많은 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영화계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의 예술이 지향한 바는 바로 ‘가치관의 전복’이었습니다. 한결같이 상식을 뒤엎는 전위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출 입문》 《자살학 입문》 등 일탈 매뉴얼이라 할 만한 그의 저서들과 기존 연극계의 전통을 일거에 전복시킨 새로운 시도의 연극작품, 매 작품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킨 실험영화들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일본의 학교와 가정에서는 청소년들이 그의 책을 읽지 못하도록 금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을 추동하는 놀라운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모든 장르에 다채로운 재능을 쏟아놓던 그는 1983년 간경변으로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97년 그가 태어난 곳인 아오모리에는 그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한 ‘데라야마기념관’이 건립되었습니다. 2003년에는 사후 2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그의 작품에서 이름을 딴 네 종류의 술이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2005년 현재 그의 사후 22년이 지났지만 일본 각지에서는 해마다 데라야마 슈지의 업적을 되돌아보는 영화제나 연극제 등의 이벤트와 그의 예술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모임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업적들은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일본 문화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표지를 뒤집어 씌워보세요. 또 하나의 표지가 있습니다.
따라합니다.
정말 다른 표지가 있습니다. 출판사의 세심한 배려가 마음에 듭니다. 이마고 출판사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도 출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입니다.
옮긴이의 글
인간은 불 완전한 시체로 태어나,편생에 걸쳐 완전한 시체가 된다는 그의 말을 빌자면, 결국 47년만에 <완전한시체>가 된 것이다.
다 읽고 나면 이 책을 던져버려라. 그리고 밖으로 뛰쳐나가라. 이 책이 너에게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켜주길 바란다. 너의 집에서, 너의 서재에서 그리고 너의 생각에서 벗어나라.
사실 어머니와 내가 자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며, 아버지와 내가 같이 자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홍당무라는 한 재수생은 매일 아침 자기 아버지와 관계를 갖고 성적인 요구를 떨친 후에야 비로소 책상에 앉곤 한다. 쾌락이란 그것을 얻은 자에게는 하나의 재산이다. 사람은 누구와도 함께 잘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그때 장애물이 되는 것은 이미 행방불명된 하나님이나 <정상적인 것>에 대한 타성적 습관이 아니라 단지 질투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점에 우리의 견해는 일치하고 있다. 질투가 없어진다면 성에 관한 온갖 터부는 일시에 무너져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자고 싶어하는 상대가 아버지든 어머니든 선생님이든 아니면 낯모르는 사람이든 마치 한잔의 커피를 마시듯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를 애무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도덕이란 원래 권력자가 질서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낸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모두 알고 있다.
공감이 됩니다.
일생을 망칠 정도의 도박이 아니라면 진짜 도박이라고 할 수 없죠
만일 마음이 전부라면 사랑스러운 돈은 뭐가 되는거지?
자연이 신생에게 정해준 입구는 하나밖에 없지만 출구는 수천개나 된다.... -몽테뉴-
나는 G.빌케네르트의 <검은마술>이라는 책에서 구텐베르크가 얼마나 고생하며 인쇄기를 발명했는지를 읽었다. 그런데 그의 고생은 사실 <시인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한 것>이 되었다. 인쇄활자가 발명된 이후 시인들은 말이 아닌 문자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때문에 시인과 그 시를 받아들이는 이들 사이의 <대화>는 사라진 채 단지 자신의 기나긴 모놀로그가 존재할 뿐이다. 나는 그점이 못 마땅하다.
데라야마슈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참 힘듭니다. 그나마 www.terayama.co.kr 이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출판사인 이마고에서 만든 사이트입니다. 데라야마슈지와 그의 작품들에 대해 잘 나와 있습니다. 올해는 누구에게 선물을 줘야 할지 고민합니다.
|
| 제목만 보고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간다면 당신은 멍청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제목을 따라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간다면 인생을 조금 더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될 것이다. 데라야마 슈지(寺山修司)의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약 40년 전에 쓰인 글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고 여전히 먹힐만한 것들이다. 작가, 연극 연출가, 영화감독, 아마추어 권투선수, 권투․경마 평론가를 넘나드는 등 전방위적이며 전위적인 예술가였던 데라야마 슈지. 그는 야쿠자가 되는 법, 경마와 경륜, 도박 예찬론, 가출하는 법, 자살학 입문을 제시한다. 도발과 역설로 가득찬 이 책은 직설적 어법과 풍부한 위트, 상식을 전복하는 과격한 자신감의 복합체이다. ‘낡은 외투’같은 생각과 관습의 틀을 파기하고 자신의 삶을 좀 당혹스럽게 해보면 어떨까? 저자는 느리고 꾸준하게 제자리를 맴돌다 끝나버릴 삶 대신 비록 노숙을 하더라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한 가지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라는 ‘일점호화주의’를 제안한다. 어느 라디오에서 들었던 사연이 떠오른다. 형편에는 택도없는 미니 쿠퍼를 구입해서 아르바이트 비용 100만원을 전부 할부값과 유지비에 쏟고 있다는 어떤 젊은이. 어쩌면 그는 ‘네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라고 묻고, 답을 찾은 자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 책을 보다 보면, ''엄마랑 섹스할 수도 있다''는 논지의 글이 나오는데, 미친거 아닌가 싶다가 막상 읽어보면, 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설득력을 갖고 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사실, 내게는 그렇게 파격적이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고 테라야마 슈지에 관한 정보들을 접하다가, 이 만만치 않은, 백남준 같고 조영남 같은, 좌충우돌 창의적인 일본 남자에게 매력이 느껴졌다. 다재다능하고, 요절한. 천재의 덕목을 갖춘 남자. 그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난 그를 만나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을 지도 모르겠다. |
|
시스템의 사상검열과 문인들의 자기검열이 유난히 강한 한국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식인의 유형은 소크라테스가 비유한 등애와 같은 상상력과 도발의 지식인이다. 반면에 파리떼처럼 야단스레 금권만을 뒤쫓는 폴리페서와 "까마귀 가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식의 보신주의자들과 은둔자들이 대부분이다. 상식을 뒤엎는 전위적인 예술가들을 한국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지배적인 사회문화담론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일탈의 예술가'로 나는 데라야마 슈지(1935-1983)를 꼽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그의 작업과 담론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한국사회의 길들여지고 타성적인 모습이 바로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라는 에세이집에서 그가 강력하게 비판하고 조롱한 양태이기 때문이다.
데라야마 슈지는 시,단가,하이쿠,소설,평론,에세이,영화,연극,사진 등 다방면의 영역에서 전위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했고, 4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18편의 독립영화, 7편의 장편영화, 20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1967년에 설립한 연극실험실 ‘텐조사지키’ 극단은 새로운 양식의 실험연극을 선보임으로써 일본 언더그라운드 연극의 선구자가 되었고, '가치관의 전복'이라는 전위 예술가다운 문제의식을 작품에 담았다. 다음은 이 책에서 취록한 데라야마 슈지의 어록들이다.
나는 빠른 속도를 동경한다. 느린 거북이보다는 빠른 토끼가 좋다.
질투만 없어진다면 성에 관한 온갖 터부는 일시에 무너져버릴 것이다.
리틀 아메리카화하고 있는 일본의 현 실태는 마크 트웨인이 미국 부흥기에 쓴 소설 주인공의 모습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톰 소여형 인격의 완성을 꿈꾸며 그 아이가 성장해서 소시민적 가정을 이루기를 기대하는 어머니들과 허클베리 핀형 인격을 동경하는 아이들이 그것이다. 냉장고를 중심으로 한 평화나 텔레비전의 홈드라마, 세탁기와 주간지 그리고 ‘한 잔의 차와 동정심’만으로 끝낼 수 있는 타인과의 교제 등을 보면, 현재 우리들을 둘러싼 톰 소여형 평화는 그럭저럭 달성된 듯싶다.
나는 달만 쳐다봐도 눈물을 글썽이는 가련형의 여성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여성은 대체로 재수가 없다. 아무리 큰 재난이 닥쳐도 언제나 미소 짓는 여성들이 있다. 그런 여성에게서 진정한 슬픔을 발견할 때 진정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른바 카레라이스를 즐기는 사람들은 현상유지형의 보수파가 많고, 라면을 즐기는 사람들은 욕구불만형의 혁신파가 주류를 이룬다. 이것은 인스턴트 식품을 제외하면, 카레라이스가 가정의 맛인 반면 라면은 길거리의 맛이기 때문인 듯싶다.
인간은 불완전한 시체로 태어나, 평생에 걸쳐 완전한 시체가 된다.
|
|
완전한 시체로 진화한 테라야마 슈지는 불완전한 시체로 태어난지 47년 만에 은하수에 있는 경마장으로 화물 트럭을 타고 떠나 버렸다. 세상의 시간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한 삐닥이의 반기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생각의 정의를 내리고 경주마의 속도로 일찍 사라져 버렸다.
어쩜 세상사람들에게 '달의 뒷 표면을 본 적이 있느냐'는 一言을 통해 기존 상식과 개념을 완전히 360도 뒤틀려 비비 꼬운 뒤 우리에게 넌지시 던져 놓고, 뒷짐 지고 총총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이단의 변종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의 제목은 앙드레 지드의 작품인 '지상의 양식'의 서문에서 '다 읽고 나면 이 책을 던져 버려라. 그리고 밖으로 뛰쳐 나가라. 이 책이 너에게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켜 주길 바란다. 너의 집에서. 너의 서재에서 그리고 너의 생각에서 벗어나라.'라고 적고 있다. 아마 슈지는 이 중 너의 생각에서 벗어나라라는 측면의 강한 메세지를 담고 싶어 이 책의 제목을 달지 않았나 싶다. 즉 '행동하라'라는 지상명령인셈이다.
슈지는 사회 금기로부터 과감한 희롱과 새로운 해설. 아웃사이더 인물들에 대한 자유방임적 생각을 거침없는 자기 해설로 주장하고 있다. 보수와 권위의 상징인 어른 세대에 대한 결별 선언은 그들의 모든 잣대에 도끼질을 하고 자기 독립선언을 한다. 성적 경제력의 우위에 선 기성 세대들의 젊은 여자 찬탈 행위는 엄연히 성과 경제력을 분리해야 하는 性經分離를 주장하고 있다. 거대한 남근 중심의 겨루기를 본다면 엄히 아랫도리 팔팔한 청년들의 승리이며, 이들은 성적 르네상스를 열어야 된다는 청춘의 특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평범한 여인상을 갈구하기 보다 최고의 여자 적어도 소피아 로렌이나 엘리자베스 테일러 정도의 여자를 품을 수 있는 클라크가 주장한 청년의 야망이 아닌 더 큰 엉덩이를 품어라고 강조하고 있다. 기존 질서에 대한 그의 반기는 성의 자유에서 일탈하여 도박으로 치닫는다. 파친코와 경마로 대변되는 도박. 사실 경마 매니아였다. 그래서 많은 분량에 걸쳐 경마에 관련된 글을 적었으며, 결국 도박이 삶의 보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좀더 짧은 시간 안에 알 수 있는 방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즉, 도박이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손실을 파악할 수 있는 확실성의 게임인 것이다. 아마 그 당시 불확실성의 일본 사회에서 이만큼 확실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감히 도박자체를 쉽게 돈들 벌려고 하는 행위라고 일컫는 기성 세대들에게 카운트 펀치를 날린다. 파친코와 경주에 돈을 거는 것은 정치적 행위이며 전후 일본사회의 평균화된 일상생활과 지출이 가치균등하게 분배된 경제생활, 일탈과 재미를 꿈꾸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 생활에 대한 새로운 사건인 셈이다.그래서 그는 속도의 게임에 오른손을 들었는지 모른다. 그의 도박성은 새로운 주의주장인 일점호화주의로 치닫는다. 이는 경마와 관련성 놓은 새로운 생활 이데올로기이다. 기존 어른 세대들은 느린 속도를 옹호한다. 즉 행복이란 차분히 급여의 일부분을 저축함으로써 일상 생활에 필요한 지출을 하나둘씩 마련해 가는 가치 균등의 지출방식을 원하고 있다. 그래야만 아이의 교육비와 주택비, 노후 생활비 등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거북이의 방식이며 일명 그의 말대로 밸런스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슈지는 과감히 이런 방식을 걷어 치워버리고 일점호화주의를 주장한다. 이 매혹적인 이데올로기는 고정적인 수입과 가치 균등하게 잘 배분된 지출구조에서는 에로스적인 생활인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한가지를 위해 나머지를 포기하는 자유' 즉, 자기 존재 중 모든 것을 쏟아 부을만 한 가치가 있는 곳에 집중적으로 모든 자금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하는 바대로 생을 산다는 행복의 방식으로 본다면 일면 이해가 될만한 애기가 될 수 있다. 어차피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지구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 밖에 없다고 하는 유한적 삶이라 할 때, 스스로 가치 있는 곳에 모두를 걸지 못하고 잘 짜여진 지출 계획대로 경제생활을 한다면 그 어떤 행복의 사상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며 자기 손 안에 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의 손안에도 그러지 하지 않은가? 그것이 어쩌면 슈지의 한 곳에 모든 것을 거는 도박과 비슷한 마음가짐인지도 모른다.
그의 유꽤한 상상력의 유희는 역발상의 전환으로 이어진다. 그는 매사 바쁘기 일수인 플레이보이를 지향하기 보다는 예의가 없는 無禮한 즉 일본식으로 부레이보이를 향한 백서를 발간한다. 그래서 사교장에서 교양과 품위가 넘치는 표준말 대신 지방 사투리를 사용하라는 방법을 제시하고 플로우에서 절대 춤을 추지 말 것이며, 아주 우스꽝스러운 남성용 속옥을 입고 심지어 그것을 드러내고 사교장으로 가라고 한다. 또한 검은 선글라스도 끼지 않은 채 묵직한 침묵으로 무대를 응시하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역발상적인 제안이 도리어 그 상반된 행동을 요구하는 지도 모른다. 부레이보이를 지향함으로써 플레이보이가 완성된다는 생각말이다. 그리고 그는 사회적 금기인 가출과 자살로 그 끝을 치닫고 있다. 가출은 반복적인 일상으로 부터 탈출이며, 그 사상적 행위를 통해 자아의 반성과 새로운 출발의 지향을 찾을 수 있다며, 자꾸만 가출을 부추긴다. 이것을 그는 일점파괴주의라고 한다. 이를 통한 새로운 인간성의 회복......일탈과 질서의 파괴 속에서 새로운 탄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완전한 파괴는 자살로 귀결된다. 하긴 일본 처럼 자살문화가 사회적 코드화 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 코드화된 자살 문화를 그는 아주 우스꽝스럽게 개그화하고 있다. 가령 고통없이 자살할 수 있는 기계장치를 해괴한 상상력으로 설계한다든가. 유서를 잘 쓰는 방법, 또한 자살 라이센스를 발급하여 자살의 질적 가치를 고양하자는 그의 의견은 폭소를 자아내개 한다. 특히 성기가 작다고 고민하여 자살하는 사내는 자살세계에서 영원히 추방하자는 그의 주장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가 밝힌 14가지 자살로 인정하기 힘든 사례는 도리어 자살 절대 금지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자살미학을 추구하는 비관주의자가 아닌가 생각할 있지만 그의 글에서 밝혔듯이 결국 자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자조한다. 결국 그는 간경변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그는 단가라는 시의 장르 뿐 만 아니라, 연극,영화, 소설, 평론, 방송,경마, 복싱 등 다양한 분야에 파격적인 실험적 예술 작품을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그 모든 작품을 일일히 감상하지 못해 그의 천재성을 감상할 수 는 없지만, 이 단 한권의 책만으로 도 시대와 다른 방향으로 고속질주했던 그의 보통스럽지 않은 사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
그는 거침이 없다. 생각이 자유롭다.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삶 자체를 문학의 일부로 삼기 때문에 정통 문학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의 테마는 데라야마 슈지의 자아발견을 통한 메시지다.
슈지의 기발한 상상력은 상식을 뛰어넘어 섬뜩하게 하거나 조금 난감해서 읽는 도중에 덮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다시금 들고 읽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한번으론 모자르고 곁에 두고 가끔씩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고 싶게 만드는는 매력이 있다.
데라야마 슈지의 대해 모르는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살펴보고 읽는것이 훨씬 이해하는데 도움 될거라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어머니에게 같이 자고 싶다고 하면 어머니는 정색을 한다 어째서 거부하는 것일까? 복싱으로 단련된 내 육체에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느냐고 물으면 그런것은 짐승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머리를 만지는 것은 사랑이고 유방을 만지는 것도 사랑이라면서 그 행위가 성교로 이어지면 갑자기 짐승 같은 짓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지극히 종교적인 논리에서 파생한 듯하다. |
|
일본출신 특이한 예술가, 작가인가보다.(데라야마 슈지) 딸아이가 읽어보겠다고 빌린 책인데 목차를 보니 눈이 번쩍이는 재미난 주제가 많았다. 다 읽지는 않았다. 앞장을 읽다보니 미친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 책을 읽고 내가 무엇을 생각해야하는지 좀 난감해질 것 같아서... 그렇다고 내가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너무 앞서나간 일본 작가의 말에 동요될 것 같은 불안감과 무서움. 그걸 방지하지하기 위해 독서를 포기했다고 할까나??? 인상깊은 구절 하나 남긴다
성과 경제력을 분리되어야 한다 무슨 얼어죽은 ‘노인의 날’이란 말인가. 어차피 지금은 노인들이 모든 실권을 장악한 채 횡포를 일삼는 ‘노인의 시대’가 아닌가. “쉰 다섯에 정년 퇴직하고 남은 생을 쓸쓸히 보내는 고독한 노인!(본인이 원하기만하면 양로원에 들어갈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말뿐이며, 현실은 전혀 다르다. 가령 일본의 내각 각료들을 살펴보자. 노인이 아닌 대신이 대체 몇이나 되는가? 모두가 ‘보살핌과 위로를 받아야 하는 세대’라야 할 노인들뿐이다. 그리고 그 노인들은 정치적 주도권뿐만 아니라 성적주도권까지 장악해가고 있는 것이다.
청년이 경제력으로 노인과 어깨를 겨루는 것은 무리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노인들은 섹스까지도 돈으로 장악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과 경제가 일치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돈의 현실적 유무와는 상관없이 성을 해방시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청년들의 특권이며 ‘성경분리(性經分離)’ (예전에는 ‘정경분리’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가 청년들의 성적 복권을 위한 우선조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