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한 세탁기 cf가 네티즌 사이에서 ''꼴보기 싫은 cf''로 낙인찍혀 다른 cf로 대체된 적이 있었단다. 하지만 의도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그 cf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 상표를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단순히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cf 뿐만 아니라 혐오적, 폭력적, 선정적인 cf들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홍보에 성공하여 목적을 달성한 광고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대는 것이 가능한가? 이 책은 광고에 대해 나름의 시선을 가지고 있는 세 명의 유명인사가 70년대에 ''Advertising Age''라는 광고 잡지에 게재한 글을 번역한 것을 싣고 있다. 편역자가 자문했던 것처럼 70년대의 미국이나 지금의 한국이 광고에 있어서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관대하게 보자면 예술의 한 분야라고까지도 할 수 있는 광고에 대해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이미 70년대에 광고에 대한 견해들이 충돌하고 있는 양상을 보아서는 광고에 대한 시선을 갖는 것도 단순한 일은 아닌듯 하다. ''광고는 단조로운 이미지를 매혹적으로 만들기 위해 속임수를 쓴다.'' 고 말하는 아놀드 토인비는 세 사람 중에 광고도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에 가장 가까운듯 하다. 절제하고 성프란시스의 삶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며 사실 전달 이외의 일체의 광고를 없앨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데오도르 레빗은 ''광고는 필연적으로 왜곡과 위장을 가지나, 그것은 광고가 지닌 합법적 목적이다.'' 라고 말하며 세 사람 중에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듯 해 보인다. 광고의 도덕성을 논하기 이전에 ''미화''와 ''허위''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는 미화의 일종이며 이는 시의 표현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상품 자체를 써보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약속을 사는 것이다. 미화하는 광고가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거짓을 말하는 광고는 이미 과대광고이다. 톰 딜런은 광고회사 회장 답게 모든 광고인의 입장을 대변하는듯한 말을 한다. ''광고는 국민에게 경제적 선택권을 주는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제도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광고와 언론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구독료나 수신료가 아닌 광고가 언론회사를 먹여살리고 있으며, 언론매체에 광고가 잘 등장하지 않는 나라에서 언론은 공영화 되어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광고가 활성화되지 않는 나라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될 수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는 70년대 초 당시의 데이터까지 동원한다. 광고비 비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국민 총 생산량이 높으며 하위를 차지한 국가들은 사회주의 국가들로서 광고비 비율이 0%였던 것이다. 광고가 아무런 도덕적 판단도 없이 오로지 상품 홍보와 매출 증진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안되겠지만 이미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고 세계가 자본주의화 되어가고 있는 이 때에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버린듯해 보인다. 또 광고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주장 역시 비약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광고가 기사의 성격과 내용까지도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아닌가. TV 프로그램 한편을 보기 위해서는 원하지도 않는 몇 편의 광고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과포화 상태인 광고가 과연 소비자의 상품 구매 욕구를 자극하고 있는가하는 물음을 던지게 되게 마련이고 광고라고 하면 부정적 시각부터 가질 수도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이다. 하지만 그래도 광고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새로운 매체를 찾아 변형되어가는 것은 우리가 아직은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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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역사학자 토인비 vs 미국인 경영학자 레빗 vs 미국인 광고회사 회장 딜런
세 가지 입장과 시각이 다른 사람들이 광고에 대해 말하는 것은 퍽 다양한 재미를 전해준다 하겠으나, 세 가지 견해가 모두 『애드버타이징 에이지』에 게재된지 30년이 넘었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세 사람의 견해는 광고에 대해서 적극적인가, 중립적인가, 소극적인가 하는 모습으로 가름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나누어야 제일 재미있지 않겠는가마는..)
역사학자 토인비는 '모든 상업광고의 중지'라는 실로 대담한 글을 마케팅지에 실었다는 게 신기한데, 이상하게도 분량이 12쪽 밖에 안되면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견해이기도 했다. 사실 토인비는 광고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주장의 이유로 드는 것은 산업혁명, 산업화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근거로는 산업의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삶의 질, 우리네 영혼의 문제 등을 든다. 광고는 거짓이미지의 날조, 거짓영혼의 창조라는 부정적인 일면을 부각시켜 말하는 것인데, 나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동조는 못할지언정 이해마저 힘들었던 것은 소유욕을 자극하는 장치로 정의된 광고가 현실을 이미지화 하는 과정이 왜 큰 거짓이 되는지, 왜 광고가 온건히 거짓이미지라고 지적받아야 하는지, 왜 이미지를 보고 거짓영혼이 만들어진다고 하는지, 그 과정들이 명확하게 느껴지지가 않았기 때문인듯 하다. 그저 글 전반에는 광고가 허위이미지, 거짓이미지로만 가득 채워진, 그런 존재라는 억양이 잔뜩 깔려있을 뿐이다.
경영학자 레빗의 경우는 어떨까. 가장 긴 논문을 게제한 레빗은 거의 지금까지도 적용가능한 글을 적어 나라는 독자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소제목만 봐도 전체적인 견해를 가늠할 수 있다. [예술은 높이고 광고는 얕본다], [정어리 깡통에 든 화장품은 팔지 못한다], [인간은 약속을 산다] 등을 재미있는 소제목으로 꼽을 수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광고의 미화이지 허위가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읽을 때만 해도 광고의 허위에 대한 비판글일 줄 알았으나 다 일고보니 광고의 미화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이었다. 왜곡, 과장이 왜 광고에서 합법적인지를 주장해주니 토인비와는 정반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광고가 인간의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이미지, 소망, 상징을 판매하고 충족시켜줌으로써 가지는 광고찬성론의 한 가지 견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마지막 광고회사 사장이라는 딜런. 가장 적극적인 광고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광고에 대해 얘기하자면 빠질 수 없는 돈얘기가 바로 핵심이다. 그 얘기를 극단적으로 끌고 간 것(그 당시 상황에서는 극단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이 광고를 바탕으로 누릴 수 있는 언론의 자유이다. 광고비의 대부분이 매체비로 집행되는 것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그런 돈이 언론매체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언론의 자유의 기초는 언론의 존재 유무이니 크게 잘못된 말도 아닌 듯하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가 없으면 종교의 자유, 정치의 자유 까지 모두 존재할 수 없다며 광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는 말까지는 필요했을까.
책 분량은 100쪽밖에 안되고 그나마 한페이지에 있는 글도 열줄가량이지만 역시 논문형태의 글을 빨리 읽기도 어렵거니와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치만 이렇게 다른 견해를 묶어서 읽는 건 항상 재미를 주는데. 마치 술자리에서 논쟁이나 언쟁을 수시간이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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