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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여자인 것이 좋다. 어릴 적에는 ‘남자로 태어날 걸.. ’의미 없는 한탄을 한 적도 있지만, 커서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가장으로서의 삶이 고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혹은 군대가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빗질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만약 남자도 가수 김경호처럼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릴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꽃을 마음 놓고 만질 수 있어서 좋다. 남자라도 제프리 김처럼 감각적인 플로리스트가 있다고 한다면, 나는 아기자기할 수 있어서 좋다. 세심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남자들을 주위에서 찾는 게 어렵지 않다고 한다면, 나는 어머니가 될 수 있어서 좋다.
“물론 나는 가장 위대한 여성성은 모성애를 통해 구현된다고 생각한다. 모성애는 사랑의 절정이요, 완성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퍼내고 또 퍼내도 다시 사랑이 고이는 사랑의 저수지이다. 어머니로서 자녀에게 삶을 긍정하는 정신을 가르치고,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것, 그것만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모성애만큼은 전혀 훼손되지 않는 것만 보아도 그것이 가진 고정불변한 힘을 알 수 있다. 대립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삭막한 현대의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의 품은 어제나 모든 것을 사해주고 감싸 주는 포근한 고향이다.” (본문 중에서) 故최민식 작가의 『우먼』은 제목 그대로 각계각층, 다양한 나이대의 여성이 주인공인 사진집이다. 생선을 늘어놓고 좌판을 벌인 아줌마부터, 곱게 화장을 하고 춤을 추는 여인, 치렁치렁한 겉옷을 입고 타이트한 모자를 쓴 패셔니스타 아가씨, 볼이 빨간 귀여운 여자 아이가 공평하게 책 속에서 한자리를 잡고 있다. 남자도 그렇겠지만 특히 여자의 경우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나이가 들수록 외모가 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같은 마흔다섯 살 이라고 해도, 풍요로운 집 사람과 가난한 집 사람의 외모가 다르다. 주름의 개수 차이가 아니다. 그건 치장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게다. 천만다행히도 여자는 그런 차이를 메울 수 있다. 흰 셔츠에 검정 치마 하나라도 잘 빨아서 깨끗하게 다려 입으면 맵시를 살릴 수 있다. 헌 옷도 얼마든지 소박한 빈티지 제품으로 보이게 입을 수 있는 센스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그 여자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여자가 예쁘게 치장하지 않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가정과 자식을 위해서라면 美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 만큼의 단단한 아름다움이 여자에겐 있다. 나는 외모가 예쁘지는 않지만 아이를 키우는 정신이 튼튼한 여자라서 참 좋다. 나는 돈이 많진 않지만, 아이들에게 풍요로운 마음을 전해 줄 수 있는 여자라서 참 좋다. |
| 내게 '여성'이라는 이름이 부여되는 과정에 내 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스물 다섯, 다소 철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여자아이로 날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것은 거역하기 힘든, 하나의 운명이었다. 누군가의 딸로서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나는, 조금 더 여성스럽게 살아지도록(?) 길들임을 당해왔다. 세상에는 수많은 삶의 모습이 존재하지만, '여성'에게 허락된 삶은 그리 다채롭지 못한 듯했다.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사는 듯해 보일 때 내가 느꼈던 것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아름답지만 고통스러운 것. 사람들은 전자에 대해 끊임없이 찬미하기만 할 뿐, 후자를 일컫는 것은 소위 못난 여성들의 몫인 듯 여겨졌다. 어쩌면 나는 못되고도 못난 여성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객관적이다. 사진사의 주관적인 시선이 개입하지만 동시에 굳게 고정된 평면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그것을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여성의 모성을 찬양하면서도 동시에 지금과는 다른, 보다 당찬 여성들을 꿈꾼다던 최민식 님의 이야기가 책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더디게 변화하는 혹은 그저 지난날을 부여잡기에 급급한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여성들은 악독해져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작가가 예찬했던 여성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을 단지 아름다움이라 표현할 순 없을 듯했다. 속화된 나의 시선이 아름다움보다는 다른 요소들을 지독하게 포착해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해맑은 여자아이의 표정이 '무지'의 결과물로 보여졌다. 그녀의 미소가 삶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이 내 안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누구나 나이듦을 경험하고, 하루하루의 삶에 지쳐가면서 미소를 잃어가고... 사진 속 인물들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날씬한 몸매, 관능적인 표정들, '그들의 젊음도 세월을 받아들이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나의 마음은 흑백사진이 주는 차분함의 무게만큼 가라앉았다. 끝없이 이어지던 사진들. 아무렇게나 막 걸친 듯한 옷, 가슴을 다 드러낸 여인에게 매달려있던 남자 아이. 그래, 남자도 여자도,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어머니'라는 존재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아마도 나는 잊고 있었나보다. 숭고한 이름, 어머니. 그 고귀함을 감당해내기 위해 세상과의 다른 끈은 모두 놓아버린 나의 어머니... 당신도 여성이었음을..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몇몇 사진집에서 볼 수 있었던 사진을 방해하던 짧디 짧은 문구들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책의 끄트머리에 도달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글들이 전개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 그들이 경험한 여성으로서의 삶 앞에서 나는 다시금 서글픔을 느낀다. 사랑하면서도 외로운 존재, 함께 있기에 갑갑했던 순간들 하지만 벗어나는 순간부터는 실패한 인생이 되어버리고 마는... 지금껏 내겐 만남도, 사랑도 그리고 이별도 없었지만, 물 흐르듯 흘려보낸 사진들과 상승효과를 일으키면서 그들의 글은 한껏 구슬픈 소리를 냈다. 그래서일까? 내겐 사진도 무채색이었고, 글도 무채색이었다. ... |
| 책상태가 너무 안좋아요. 선물용으로 주문한건데 표지도 그렇구 중고책을 구매한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