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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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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속의 콜롬비아에 이어, 이번에는 브라질로 남미대륙에 대해 꿈을 꾸게 하던 두번째 책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그저 '브라질'이라는 남미국가에 대한 호기심과 붉은 색으로 온통 장식된 책 표지가 주는 강렬한 인상에 끌려 무작정 집어든 책이지만 이런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음은 커다란 기쁨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한마디로, [하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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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속의 콜롬비아에 이어, 이번에는 브라질로 남미대륙에 대해 꿈을 꾸게 하던 두번째 책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그저 '브라질'이라는 남미국가에 대한 호기심과 붉은 색으로 온통 장식된 책 표지가 주는 강렬한 인상에 끌려 무작정 집어든 책이지만 이런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음은 커다란 기쁨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한마디로, [하멜표류기]류의 책이라 부를 수 있겠다. 별다른 실험정신은 없이, 그저 무척이나 다른 삶을 사는 '신기한' 사람들을 향한 관찰서라 할 수 있는 [하멜표류기]보다는 주제의식과 새로운 대륙에 대한 사명감-실은, 프랑스가 꿈꾸는 '남국의 프랑스'라는 낭만적인 목적을 띄지만, 사실은 그 모든 과정들이 프랑스가 이제껏 철저히 숨기고 싶어하고 절대적으로 부인하고 싶어하던 그들의, 그 고상한 평화주의자 프랑스인들의, 인디오들을 향한 약탈과 침략의 역사일 뿐이다-을 가지고 그 속에 제대로 녹아들고자 했던 이야기로, 하멜의 기록과는 다르게 다가왔던 작품이다. 역시나 별다른 배경지식이 없었던 탓이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토록 치밀한 묘사로 스크린에 재생되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니, 무척이나 대단한 상상력을 갖췄군.'하며 혼자서 감탄했었는데,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라는 작자의 후기에 또 한번 놀랐었다. 프랑스의 수십 개에 달하는 많은 문학상 중, '영광의 상'이라 불리는 공쿠르 상을 이 책이 수상했던 일은, 자신의 습성을 과감히 버리고 인디오들이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 용기있게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그들과 함께 벌거벗고 춤추며 깃털을 달고 그들의 평화를 이해하고야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자유의 정점을 경험하는 소녀, '콜롱브'의 용기에 대한 찬사가 아니었을까. "1555년, 붐비는 항구 브르타뉴에서 세 척의 선박이 브라질을 향한 긴 항해를 시작한다. 배 위에는 서로 다른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각기 다른 목적을 안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조용히 이들을 기다리는 붉은 땅 브라질. 이 모험에 기쁘게 동참한 자는 아무도 없다. 형 집행을 대신해 승선한 자, 조교박해를 피해 도망치는 자, 베네치아의 스파이, 원주민과의 통역을 휘해 잡아들인 부랑아와 고아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배에 태워진 불행한 남매 쥐스트와 콜롱브... 이들을 이끄는 자는 남국의 프랑스 건설을 꿈꾸는 빌가뇽 부제독,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험난한 정글과 신인 풍습을 자니 인디오들, 극단으로 치닫는 종교 갈등이었다." "우린 적을 괴멸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인디오들은 적과 섞이려 하지. 인디오들은 자기들에게 적대적인 것을 흡수하는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한가지, 이 책속에 등장하는 종교간의 갈등에 특별히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은, 요즘에 내 마음 속에 싹트기 시작한 '종교의 본질'을 향한 많은 물음들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를 움직일 만한 힘을 지녔다 할 만한 기독교가 가톨릭의 부패에 맞서 일어섰던 진정한 종교정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모습 어디에도 진짜 하나님, 진짜 예수님의 모습은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 지금까지의 내 주장들처럼, 종교란-신앙이란-신과 나와의 일대일 관계로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의 교회가 정말 돈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예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여겼던, 신을 빙자한 장사꾼들 뿐인 교회를 그냥 이대로만 두어도 되는 건가. 결코 신이 아닌, 그 외의 어떤 사람들을 보고 신앙생활을 해왔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교회 어느 곳에도 하나님이 계실 만한 곳은 결코 없다. 책 속에서 정말 불필요한 것들로 다툼을 일삼는 그때의 가톨릭이나 개신교도들의 행태를 보는 것도 그렇고 현재까지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과 전쟁의 꼬락서니를 보는 내 맘이 특별히 더 많이 불편했던 것도 그렇고, 부패한 사람들이 관여해서 제대로 흘러가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이것저것들이 거슬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지만, 사건전개도 그렇고 치밀한 인물묘사에 역사감각까지 하나도 빠지지 않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j********6 2005.10.3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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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되는 책과 괜히 길지도 않은 삶의 시간을 낭비케 하는 책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전은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갖는다. 비록 때로는 혐오스런 인간과 그 갈등을 그리더라도 작가가 가진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과 동일시를 지울순 없다.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의 어떤 면과 그것을 갖는 소수의 인간이 아닌 인간 모두를 아우르는 어떤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그것에서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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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되는 책과 괜히 길지도 않은 삶의 시간을 낭비케 하는 책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전은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갖는다. 비록 때로는 혐오스런 인간과 그 갈등을 그리더라도 작가가 가진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과 동일시를 지울순 없다.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의 어떤 면과 그것을 갖는 소수의 인간이 아닌 인간 모두를 아우르는 어떤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그것에서 삶의 이유를 찾는다는 것이다. 고전은 새로움이 있다.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이 등장하기는 어렵다해도 새롭다는 것은 깊다는 뜻이다. 남들이 겉핥기만 할때 작가는 깊이를 뚫고 내려가 우리를 놀라고 또 공감케 한다. 그들은 이런저런 상상의 짜깁기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에서 발견한 어떤 것을 풀어보여준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발견한 것은 진실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진심이 아닌 것이 어떻게 인간을 위로할 수 있으랴?] 그래서 고전은 기쁨을 준다. 이 기쁨은 삶에 대한 의욕이고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며 또한 나른하기만한 나의 삶에 대한 상쾌한 각성이기도 하다. 책장을 덮을때 간지러움이든 무거움이든 가슴저미는 슬픔이든 고전은 사무치는 기쁨을 준다. 이런 저런 이름의 상과 선전문구, 훌륭한 번역, 약간의 재미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런 것이 없다. 때로 잘못된 선택과 시간의 낭비도 인생의 소중한 자산과 귀중한 것을 더 잘 음미케 하는 가치는 갖는 것이라 위로할 수 밖에는 없는 것 같다.
s***y 2006.03.0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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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논픽션, 힘찬 픽션
"숨겨진 논픽션, 힘찬 픽션" 내용보기
붉은 브라질 장 크리스토프 뤼팽 저, 이원희 역 작가정신 *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인 ''콩쿠르상''을 수상했다는 홍보 문구는 사실 이 책에 대한 선입견만 줄 뿐입니다. 이 책은 생각보다 상당히 스피드하고 ''백인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거의 잊혀진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브라질 식민지 개발 실패를 다루고 있는 은 제3세계를 돌며 ''국경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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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브라질 장 크리스토프 뤼팽 저, 이원희 역 작가정신 *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인 ''콩쿠르상''을 수상했다는 홍보 문구는 사실 이 책에 대한 선입견만 줄 뿐입니다. 이 책은 생각보다 상당히 스피드하고 ''백인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거의 잊혀진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브라질 식민지 개발 실패를 다루고 있는 <붉은 브라질>은 제3세계를 돌며 ''국경 없는 의사회''의 부회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한 저자답게, 꽤 균형감 있는 시각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쉽사리 경계를 넘어서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분명 ''백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 책에서 묘사되는 종교 전쟁 시기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제국주의''의 모습이며, 브라질의 인디오들은 쉽사리 납득하기 힘든 풍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즉 이 책은 ''인종''이나 ''민족''의 문제로 사건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프랑스인''라는 문명의 야만과 종교적 광기에 대해서는 냉소적이며 인디오에 대해서는 ''이해''하려는 정치적 공정함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우린 적을 괴멸시키는 것이 당연화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인디오들은 적과 섞이려 하지. 인디오들은 자기들에게 적대적인 것을 흡수하는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어. (......) 그들은 모든 것이 서로 섞여들어 풍요로워지는 숲,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는 숲에서 그걸 배웠던 거야. 인디오들이 생각하기에, 오직 유익한 것만 지키기위해 온갖 종을 소멸시키는 우리의 정신보다 더 이상한 건 없어. 인간을 위해서 금하는 것보다는 식물을 위해서 금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이댜." (본문에서..) 특히 프랑스 태생으로 인디오들을 이끄는 ''파이-로''라는 인물은 작가의 이런 시각을 대변하는 인물로, 프랑스인들의 종교적 광기와 제국주의적 열정을 비판하는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신이 성체 속에 내재하는지, 아니면 어디에도 없는지 알기 위해 서로 으르렁대는 저들을 봐. 창조물로부터 신을 몰아내더니 이제는 또 신에게 보잘것없는 자리를 주겠다며 궤변을 쏟아놓고 있어." (p.449) 그리고 당시 유럽인들의 종교 뒤에 숨은 문명의 야만성을 고발한며 이는 이 소설의 주요 등장 인물이자 실존 인물이었던 템플 기사단 출신의 빌가뇽이라는 인물로 형상화된다. 그는 브라질에 ''제2의 프랑스''를 심겠다는 확신에 찬 카톨릭 제국주의자의 모습으로 보이는데, 최소한 전반부에 보여주던 인간적인 모습조차도 칼뱅주의자들과의 충돌에서 종교적 광기의 모습으로 변질된다. 소설의 후반부에 보여지는 프로테스탄트와 빌가뇽을 위시한 카톨릭 측의 신경질적인 대립은 유럽의 ''종교 전쟁''의 축소판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프로테스탄트들 역시 지나친 자기 확신에 빠져 상대방의 사고나 풍습을 이해못하는 편협한 유럽 중세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역시 ''파이-로''의 모습에 담겨있는데... ''인디오들을 인간으로 만들어 구원하겠다는 의욕을 상실한 종교 개혁자들은 짐승이나 식물을 바라보듯 미개인들의 풍습을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들이 표시하는 존중의 이면에는 미개인들을 인류에서 제외시키는 절대적 무관심이 숨어 있었다. " (p.460) 이는 종교 분쟁을 겪는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모두 겨냥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책의 이런 메시지는 후반부에야 명징적으로 드러난다. 중반까지 이 소설은 그런 주제를 크게 드러내지 않고 주인공 쥐스트와 콜롱브의 운명적인 모험담을 담아낸다. 서로를 의지하는 이 남매는 사랑과 우애의 경계선에 서 있으며 그 미묘한 관계의 긴장감을 통해 흥미롭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사실 쥐스트와 콜롱브는 브라질에 전해지는 민담 속의 주인공들을 소재로 차용된 인물들인데, 오빠인 쥐스트가 카톨릭(빌가뇽)과 프로테스탄트(콜롱브의 연적이기도 한 오드) 사이에서 방황하는 유럽적인 문제 안에 있다면 콜롱브는 기꺼이 원주민들의 삶 속에 뛰어드는, 신세계를 접한 두 가지 타입의 유럽인들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붉은 브라질>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유럽의 수치스런 역사를 바라보는 힘찬 서사 로맨스 소설이면서 동시에 유럽의 식민주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정치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상깊은구절]
''인디오들을 인간으로 만들어 구원하겠다는 의욕을 상실한 종교 개혁자들은 짐승이나 식물을 바라보듯 미개인들의 풍습을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들이 표시하는 존중의 이면에는 미개인들을 인류에서 제외시키는 절대적 무관심이 숨어 있었다. " (p.460)
YES마니아 : 플래티넘 p*****o 2006.03.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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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개인이라 불렀던 식인종들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책
"우리가 미개인이라 불렀던 식인종들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책" 내용보기
이 책은 엄밀하게 말하면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런 냄새를 전혀 풍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프랑스로서는 드러내놓고 싶지않은 역사였겠으나 몇몇 남겨진 보고서들로 인해 파헤쳐지고 멋진 소설로 재구성되었다. 그러나 그게 실제 있었던 사실이든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든 상관없다. 다만 실제였다는 사실이 약간 놀라웠을 뿐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책을 잡았고 보통 역자후
"우리가 미개인이라 불렀던 식인종들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책" 내용보기
이 책은 엄밀하게 말하면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런 냄새를 전혀 풍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프랑스로서는 드러내놓고 싶지않은 역사였겠으나 몇몇 남겨진 보고서들로 인해 파헤쳐지고 멋진 소설로 재구성되었다. 그러나 그게 실제 있었던 사실이든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든 상관없다. 다만 실제였다는 사실이 약간 놀라웠을 뿐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책을 잡았고 보통 역자후기를 먼저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러지도 않고 책을 다 읽은 다음에 뒤에 붙어있는 후기를 읽으며 새삼 머리를 치며 감탄했다. 1550년 브라질에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프랑스 선박 로제호에 탑승한 여섯 명의 소년들에 대한 글이 이 소설의 뼈대가 되었다. 어린이일수록 외국어를 잘 습득한다는 데 착안하여 통역으로 길러질 아이들인 것이다. 주인공인 쥐스트와 콜롱브도 이런 통역감으로 발탁되어 배에 태워진다. 물론 음모가 없을 순 없다. 그 사실을 모른 채 배를 타는 오누이. 또한 투피족 인디오에게 전해져오는 설화에는 새 인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로 오누이 같은 한 쌍의 남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쥐스트와 콜롱브가 인디오 마을에서 살아가게 되는 결말 부분이 이를 연상시킨다. 결국 이 이야기 둘이 작가의 손끝에서 비벼져 아주 맛깔스러운 소설로 태어났다. 열다섯과 열세 살(실제는 두살씩 더많지만)의 쥐스트와 콜롱브의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두 주인공의 내면세계의 변화를 표현해냈기 때문에 청소년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데 그리 큰 의미는 없지만 그 시절을 그렇게 보낼 수 있다면 나도 그런 청소년기를 보내봤으면 하는 막연한 동경은 생겼다. 또한 이들이 인디오마을에 들어서며 벌어지는 유럽의 문명인과 그들이 미개인이라 부르는 인디오들과의 화해와 충돌을 그리고 있으며, 인간과 자연에 대한 통찰 그리고 몇 가지 종교 갈등이 주된 흐름을 이끌고 있다. 먼저 인디오 세계에 동화되어 자연과 하나되는 맛을 알아가는 콜롱브에게 마지막 남은 한가지 거부는 식인행위였다. 그러나 그걸 풀어가는 상황에서 저자의 생각에 심심한 동의를 하며 많은 생각이 교차되었다. 종교 갈등에 대한 내용은 작가가 의도했던 것이든 아니든 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성체에 대한 신심을 우상숭배로 몰아가는 개신교 목사와 가톨릭 신자들 간의 성체배령(영성체), 포도주에 물을 타는 행위에 대한 왈가왈부.. 이런 것들과 아주 사소하지만 웃으면서 읽을만한 이단들의 이야기도 하나의 큰 줄기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만나서 함께 바치게 되는 성찬식(미사라는 말을 싫어하는 개신교 목사를 위한 표현)에서 보여준 가톨릭교도들의 성체신심에 대해 심한 반발을 보이던 개신교 신자의 한마디는 “식인종”이었다. 식인종이 실제 존재할까를 궁금해 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절대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어느 날 깨지면서 겪었던 심한 갈등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번에 느낀 식인종 아니 식인행위에 대해 풀어쓴 이 글에서 새로운 세계를 접했다고 할만큼 충격적인 생각의 전환이 생긴 것이다. 인디오들의 세계로 들어간 콜롱브와 이미 오래 전에 인디오들의 세계에서 살고 있던 영적 지도자 격의 파이-로와의 대화에서 파이-로는 식인 의식에 직접 참여는 하지 않지만 식인행위의 참 뜻을 알려준다. 파라구아수의 남자친구 카라야의 사형식이 되었을 때 그동안 콜롱브에게 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효과였을까 그 둘은 도망쳐서 파이-로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때 파이-로가 인디오들을 향하여 해주는 말.. 스무번의 보름달이 뜨면 잡아먹는 법칙이었으나 파이-로는 50년이 넘었다. 그는 말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너희들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나를 먹었어. (중략) 이제부터 그는 너희들에게 소속되어 있으니 너희들은 이미 그의 힘과 정신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너희들 중 한 사람이 되었으니 법은 실행된 것이다.” 그러면서 죽음에 다다른 파이-로가 카라야에게 자신이 죽을 때(정령들에게 갈 때) 그를 데려가겠다고 한다. 이제 남는 사람은 카라야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 저 아이의 이름은 앙가투가 될 것이며 누구도 저 아이에게 복수하지않을 것이라고 얘기해준다. 성경에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도 이름을 바꾸어주시는 장면을 묘사한다. 바울로도 사울에서 이름을 바꾼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에 대해서 길게 얘기할 수 없지만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이전 사람은 죽은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식인행위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치러내던 방식에서 이름을 바꾸는 행위로의 전환이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체성사의 현장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으라”하시며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신다. 빵과 포도주를 살과 피로 표현하신다. 성찬례를 하는 중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사실을 믿어 고백하는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들이다. 이를 거부하는 위그노들에게서 식인종이라는 표현을 받는 순간과 저 파이-로가 인디오들에게 그동안 내 몸과 피를 너희들이 다 먹었듯이 이 카라야를 먹기에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니 실제로 죽여서 먹지 않아도 먹은 것이다라는 요지의 구절은 묘하게 일치하며 저자가 드러내고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유럽인들이 내내 싸우고있는 종교적인 이슈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해주는 것이다. 그들이 미개인이라고 치부하던 자들의 의식에 대비해서. 물론 소설 속에 들어있는 내용들 중 일부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했던 식인종들에 대한 이야기 -몽테뉴 수상록에 있던 이야기라는데 사실 이 책을 읽어보지못했다. 이것도 다음에 읽어봐야겠다- 에서 첨예한 문제였던 성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는 것이었다.

[인상깊은구절]
“인디오들은 만물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숲, 죽는 순간과 태어나는 순간 사이에 그 에너지가 영속적으로 교환되는 숲에 살고 있어. 그들이 적을 잡아먹는 것은 그들의 관습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적들의 힘을 흡수하기 위한 것이야. 그래서 포로들을 오랫동안 자기들 속에서 살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YES마니아 : 로얄 k********i 2006.01.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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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오들은 자기들에게 적대적인 것을 흡수하는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어
"인디오들은 자기들에게 적대적인 것을 흡수하는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어" 내용보기
콜롱브, 우린 적을 괴멸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인디오들은 적과 섞이려 하지. 인디오들은 자기들에게 적대적인 것을 흡수하는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어. 네가 음악을 들려주면 그들은 그걸 축제를 위한 장신구로 사용할 거야. 그들은 모든 것이 서로 섞여들어 풍요로워지는 숲,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는 숲에서 그걸 배웠던 거야. 인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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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롱브, 우린 적을 괴멸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인디오들은 적과 섞이려 하지.

인디오들은 자기들에게 적대적인 것을 흡수하는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어. 네가 음악을 들려주면 그들은 그걸 축제를 위한 장신구로 사용할 거야. 그들은 모든 것이 서로 섞여들어 풍요로워지는 숲,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는 숲에서 그걸 배웠던 거야.

인디오들이 생각하기에, 오직 유익한 것만 지키기 위해 온갖 종은 소멸시키는 우리의 정신보다 더 이상한 건 없어. 인간을 위해서 금하는 것보다는 식물을 위해서 금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드이야.

 

콜롱브에게 파이-로가 남긴 말.....

h****a 2008.01.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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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대에 바라본 신대륙 원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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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쿠르상에 빛나는 작품들은, 적어도 그 만큼의 빛나는 부분은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비록 시대는 다르더라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과 인식은 분명 놀라운 수준이다. 하지만 어떤(혹은 나와 같은)이들에게는 조금 지루할 지도 모른다. 포루투갈과 에스파니아의, 신대륙에 대한 불타오르는 의지가 끝없이 이어지던 시대를, 한 없이 사랑했었던 한 사람으로서는, 조금 식상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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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쿠르상에 빛나는 작품들은, 적어도 그 만큼의 빛나는 부분은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비록 시대는 다르더라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과 인식은 분명 놀라운 수준이다. 하지만 어떤(혹은 나와 같은)이들에게는 조금 지루할 지도 모른다. 포루투갈과 에스파니아의, 신대륙에 대한 불타오르는 의지가 끝없이 이어지던 시대를, 한 없이 사랑했었던 한 사람으로서는, 조금 식상한 소재이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크게 문제될만한 것은 아니다. 작품 자체의 흡입력과 나름 유려하게 번역해 놓은 문장들이 전부 상쇄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z******i 2006.01.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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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데까지 갔나, 갈 데로 가고 있나
"갈 데까지 갔나, 갈 데로 가고 있나 " 내용보기
만남이, 언제나 유익한 건 아니다. 멀리서 그리며, 거기 존재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영원히 확실하게는 모르는, 아스라한 만남이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만나는 순간보다 필요할 때가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원시와 문명의 만남은 비극과 재앙을 만들어낸다. 이 두 존재가 만날 때마다 세계는 엄청난 충돌과 끔찍한 희생을 생산해낸다. 만나지 말아야 할 대지의 판이 만나 지진이 일
"갈 데까지 갔나, 갈 데로 가고 있나 " 내용보기
  만남이, 언제나 유익한 건 아니다. 멀리서 그리며, 거기 존재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영원히 확실하게는 모르는, 아스라한 만남이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만나는 순간보다 필요할 때가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원시와 문명의 만남은 비극과 재앙을 만들어낸다. 이 두 존재가 만날 때마다 세계는 엄청난 충돌과 끔찍한 희생을 생산해낸다. 만나지 말아야 할 대지의 판이 만나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제국주의니 식민주의니 전체주의니 하는 허울들은 아직까지도 도처에서 환하게 웃으며 날카롭게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파괴력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무수한 지뢰처럼.   물러설 수 없는 소모적인 제국주의의 신념과 거룩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프랑스 인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발견되었으나 아직 온전히 하나님과 왕의 영토로 확정되지 않은 땅을 찾아 기나긴 항해를 시작한다. .1500년 포르투갈 사람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Pedro Alvares Cabral)은 항해의 끝에 그들은 브라질을 발견하게 되는데 포르투갈을 견제하기 위해서 프랑스에서는 브라질로 선단을 보내 견제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프랑스를 떠나 새로운 낙원 '남국의 프랑스'를 이룩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브라질'이라는 이름은, 붉은 염료를 만들어내는 나무의 이름에서 유래가 되었다. 나라의 이름이 철저히 서양의 잣대와 소용에 휘둘려 지어졌다. '노다지'라는 단어의 유래와 별반 다를 바 없어 서글프고 씁쓸하다. 그럼에도 차라리 피해를 주는 쪽보다는 받는 쪽이 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억울해도 이게 옳다.   소설은 소설로 이해하되, 그 속에 내포된 암묵적인 동의와 이미 전제된 명제들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짚어봐야 할 게다. 더구나 이 소설은 실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쓰여진 역사소설이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한다는 시도 속에 자신의 관점으로 억압받은 제3세계에 대한 또다른 오해와 덧대어지는 억압의 논리가 깔려있는지 분석해봐야 한다. 프랑스 사람이 그네들의 관점으로 선조들의 부끄러운 과오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가가 내게는 우선 중요했다. - 일본 작가가 임진년 한반도를 점령하기 위해 출병 나가는 조상들의 항해 내역과 전쟁, 희생에 대해 쓴 소설이 있다면 우리는 이런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 남의 것에 말할 때보다 스스로의 것에 대해 말할 때 더욱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n******s 2005.11.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