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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작품마다 개별적인 특색과 이야기가 있어서 읽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돈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는 문맥에 맞지않는 듯 당황스럽고 엉뚱하게 전개되는 문체가 독특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미국의 소도시 블랙스미스에 사는 잭의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이야기속에서 현대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마저도 현대문명으로 넘어서려는 잭과 베비트의 모습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잭과 배비트는 현대문명의 맹신자이면서 희생양이다. 잭은 유독가스의 오염물질에 노출되어 기약없는 사망선고를 받지만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배비트는 죽음의 공포를 망각하게 하는 신약 다일러라마의 개발에 참여하지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배비트와 육체적 관계를 맺은 신약개발자, 그에 대한 분노로 살인을 감행하지만 연민을 느끼고 병원으로 후송하는 잭의 모습에서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작은 희망을 보았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죽음의 공포에 질식된채 사랑을 잃어버린 잭과 배비트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하얀소음이라는 단어를 내뱉어낸다. 작가가 말하는 하얀소음은 무엇일까? 현대문명이 가져온 현실 짓눌려 괴로워하는 인간내면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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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할 정도로 재미있는 스토리"
"우리 시대의 가장 모험적이고 독창적인 소설"
"지적이고 매력적이며 유머러스한 언어"
책 뒤에 적혀 있는 이 책에 대한 찬사이다. 번역의 문제일까, 나 자신의 문제일까, 이 책을 읽으며 어디에 모험이 있으며 어디에 유머가 있고 어디에 잔인할 정도의 재미가 있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어진다. 내가 느끼기에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냉소적이며 왠지 가슴이 답답해오는 분위기를 계속 유지해 나갔고, 나는 책을 펼치고 100페이지를 채 넘기기도 전에 책을 닫아야만 했다.
화이트 노이즈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현대 테크놀로지의 소산물인 텔레비전, 휴대폰, 라디오가 뿜어내는 보이지 않는 소음들 모두를 지칭하고 있는 듯 했다. 이 하얀 소음이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허상의 세계이기도 하다. 대중은 이 허상에 열광하기도 하고, 안심하기도 한다.
책은 처음부터 내내,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비뚤어진 시선을 가지고 모든 것을 조명하는 듯 하다. 평범한 나로써는 이 모든 것이 답답하고 이해 못할 이야기로 보여진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한 가족의 이야기, 끝까지 나는 이 가족을 이해하기가 싫었다. 이 갑갑함을 중화시켜줄 유머는 번역의 과정에서 누락되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일까, 결과적으로 너무나 답답해져 버렸다.
책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내용 중 마음에 들고 공감가는 글귀 하나 : "대재난만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법이요. 우린 그걸 원하고 필요로 하며 거기 의존하고 있소. 다른 곳에서 발생하기만 한다면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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