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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보통은 남녀간의 애틋한 감정, 달콤한 언어, 애정어린 몸짓들이 생각날 것 같다. 아니면 부모의 자식을 향한 조건없는 사랑, 헌신이 떠오를 수도 있다. 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사랑의 형태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연애시절의 열정적 감정의 교류를 통한 에로스. 함께 살아가며 많은 것을 공유하고 공감하게 되는 친구 같은 모습의 우정. 그리고 한 가정에서 서로를 위해 각자 담당해야 할 역할에서는 책임감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 루이스는 <네 가지 사랑>에서 책의 제목과 같이 사랑의 종류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애정, 우정, 에로스, 자비. 저자는 네 가지 종류의 사랑을 언급하기에 앞서 책의 초반부에서 사랑의 형태에 대해서 설명한다. 필요의 사랑과 선물의 사랑, 그리고 감상의 사랑. 필요의 사랑은 엄마의 도움을 찾는 아이의 모습에서, 그리고 친구를 찾는 우리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랑의 형태이다.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사랑으로 인해 필요의 사랑은 채워지고 만족하게 된다. 선물의 사랑은 연인의 모습에서 부모님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무엇이든 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다. 루이스는 필요의 사랑과 선물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선물의 사랑이 보다 본질적인 사랑에 가깝다’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책을 마무리하려 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필요의 사랑과 선물의 사랑과는 다른 감상의 사랑이 존재함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 대상을 좋다고 판단하고, 일종의 의무감으로 그것에 주목하며, 설령 즐길 수 없다 해도 그것이 그대로 존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단순히 사물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가질 수 있는 자세이다. 어떤 여인에 대한 자세일 때, 우리는 찬사라 부른다. 어떤 남자에 대한 자세일 때, 우리는 영웅숭배라고 부른다. 하나님에 대한 자세일 때, 우리는 예배라고 부른다.’ 책은 세 가지 형태의 사랑에 이어 ‘인간 이하의 것들에 대한 애호’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자연 사랑과 애국심을 말할 수 있는데,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단어로 또는 단순한 설명으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우주의 광대함,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그 안에 숨겨진 질서들을 통해 ‘영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국가에 대한 사랑, 애국심도 비슷한 배움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개인적 이기심을 넘어서게 해 주는 것이 ‘가족愛’라면 가족의 이기주의를 넘어서게 해 주는 것이 ‘국가愛’이다. 저자는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예시들을 적용하며 국가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게 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개인적인 행동에 부당한 대의를 내세우게 되었을 때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우스워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네 가지 종류의 사랑중에 루이스가 제이 먼저 언급하는 것은 ‘애정’이다. 애정은 인간의 삶 뿐만 아니라 동물의 삶에서도 발견되는데, 자신을 분통터지게 만드는 사람도, 못생긴 사람도,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도 얼마든지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애정을 느끼고 있다면 그 대상은 나에게 있어서 친숙하고 꽤 오래된 것이다. 에로스나 우정에 비해 애정의 감정은 천천히, 언제 시작되었는지 인식할 수 없게 시작된다. 애정은 다른 사랑과 섞여서 나타날 때 가장 온전한 맛을 볼 수 있다. 우정과 함께일 경우 친근하고 소중한 감정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고, 에로스와 함께 할 경우 천사와 동물같이 어렸을 적 가장 친근한 단어들을 마음속에 떠오르게 만들어 준다. 어떤 탁월성을 보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불가능했던 사랑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랑의 형태라고 설명할 수 있다. 책은 이어 나머지 세 종류의 사랑- 우정, 에로스, 자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세 가지의 사랑 모든 루이스 특유의 탁월한 논리와 예시를 들어 설명하며 사랑의 형태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만 뒷 나머지 사랑에 대한 부분은 직접 읽으실 분들을 위해 남겨두려고 한다. 루이스가 말하는 ‘자비’는 신앙과 관련된 부분이어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저자의 뛰어난 필체와 독자를 끌어당기는 흡입력은 읽는 이로 하여금 충분한 만족을 주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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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루이스의 사랑에 대한 사색. 루이스는 책에서 애정, 우정, 에로스, 자비의 순서로 사랑의 네가지 부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밀도있게 잘 설명하고 있다.
루이스의 책 대부분에서 느낀 바가 있다. 그것은 책의 첫머리(들어가는 말, 또는 각 장의 서두)에서 루이스가 정의하는 단어의 의미를 잘 파악해 두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그의 생각을 잘 읽어낼 수 있다.
루이스는 그가 첫머리에 제시한 개념들을 책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고통의 문제>에서 '누미노제(일종의 경외)'의 개념을 예를 들어 길게 설명하고 있는 점 이라든지, 이 책 <네가지 사랑>에서의 하나님과 가까움(nearness to God)을 설명하면서 '유사성으로의 가까움(likeness to God)'과 '접근으로서의 가까움(nearness of approach to God)'을 구별한 것이라든지 즐거움의 종류를 '필요의 즐거움'과 '감상의 즐거움'으로 구분하고 있다든지, 사랑을 '필요의 사랑', '선물의 사랑', '감상의 사랑'으로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 등이다.
루이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참 지적으로 이렇게 탁월할 수 있는가'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지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글로 논리정연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써서 남긴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인상깊은 구절을 통해 내가 느낀 바를 대신하고 싶다.
꼭 읽어보시기를.
[인상깊은 구절] 즐거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입니다. 먼저 욕망이 생겨서 비로소 즐거움(필요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 그 하나고, 그런 앞선 욕망 없이 그 자체로서 이미 즐거움(감상의 즐거움)인 것이 나머지 하나입니다. 전자의 예로 물 마시기가 있습니다. 만약 갈증을 느꼈다면 물 마시는 것이 즐거움이고, 갈증이 크면 클수록 즐거움도 큽니다. 그러나 갈증도 없고 의사의 지시도 없는데, 순전히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물을 들이키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후자의 예는 찾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어떤 좋은 냄새-아침 산책길에 만날 수 있는 어느 콩밭의 내음이나 잘 익은 스위트피 냄새-를 맡게 될 때의 즐거움입니다. 그 냄새를 맡기 전에도 당신은 아쉬운 것 없이 흡족한 상태였습니다. 대단히 큰 그 즐거움은, 말하자면 요청없이 덤으로 받은 선물입니다....중략...
아무튼 두 가지 종류의 즐거움이 있다는 점의 중요성은, 그것이 인간의 '사랑'의 특징을 암시해 준다는 데 있습니다. 목이 말랐다가 방금 물을 한 사발 쭉 들이켠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 얼마나 마시고 싶었던지(I wanted that.)" 그러나 아침 산책길에 스위트피 향기를 만난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좋은 냄새인가 How lovely the smell is." 마찬가지로 유명한 클라레(프랑스 보르도 산 적포도주)를 처음 맛본 술 감정가는 "이건 대단한 술이야 This is a great wine"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듯 필요의 즐거움을 느낄 때는 자기 자신에 대해 과거시제의 표현을 써서 말하는 반면, 감상의 즐거움을 느낄 때는 그 대상에 대해 현재시제의 표현을 써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필요의 즐거움은 일단 얻고 난 다음에는, 증오까지는 아니더라도 놀라울 정도로 급격히 또 완전히 '시들해집니다....중략...
감상의 즐거움은 매우 다릅니다. 이 즐거움은 단순히 우리 감각이 만족되었다는 느낌뿐 아니라, 무언가 그건 감상을 받아 마땅한 대상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술 감정가가 클라레에서 얻은 즐거움은, 추운 날 발을 따뜻하게 할 때의 즐거움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는 그 와인을 자신이 전적으로 주목해야 마땅한 가치 있는 것으로 느낍니다. 그 가치는 그 술을 만드는 데 들어간 모든 전통과 기술, 또 그런 맛을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미각을 훈련해 온 그간의 모든 시간을 정당화해 줍니다. -30-34p
필요의 사랑은 어떤 여자에 대해 "그녀 없이는 못 살아"라고 말합니다. 선물의 사랑은 그녀에게 행복과 위로와 보호를-가능하다면 부(wealth)도-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감상의 사랑은 가만 숨죽여 그녀를 응시하며 그런 찬탄할 만한 여인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합니다. 설령 그녀를 얻지 못한다 해도 완전히 낙담하지 않으며, 그녀를 전혀 알지 못했던 것보다는 더 나은 일이라 여깁니다. -39p
완벽한 우정 관계에서는,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 각자의 마음에 이런 감상의 사랑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흔히 저마다 자신이 친구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지금 내가 뭐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과 친구가 된 것을 행운으로 여깁니다. 특히 모두가 함께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서 가장 좋고, 가장 지혜롭고, 가장 재미있는 면들을 이끌어 내는 시간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때는 정말 황금과도 같은 시간입니다. -127p
에로스는 모든 사랑 중에서 가장 단명하기로 악명높은 사랑입니다. 세상은 온통 그의 변덕스러움을 원망하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당혹스러운 것은, 이러한 변덕을 가진 에로스지만 그는 늘 자신의 영원성을 확언한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늘 상대방에게 일평생 충실하겠다는 결심을 품고 또 그것을 약속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랑은 늘 맹세합니다. 그런 맹세는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에로스의 첫마디는 "난 영원히 변치 않을 거야"입니다. -192p
윌리엄 모리스는 <사랑으로 충분하다>라는 시를 쓴 일이 있는데, 누군가가 그 시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말로 간단히 논평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요지가 바로 그러합니다. 자연적 사랑은 결코 스스로 충족될 수 없습니다. 그 감정이 계속 달콤한 감정으로 지속될 수 있으려면 다른 무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 다른 무엇이란, 처음에는 '건전한 양식'으로 막연히 묘사되다가 나중에는 선으로, 마침내는 특정한 관계에서 본 그리스도인의 삶 전부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이는 자연적 사랑을 깎아내린 말이 아니라 그들의 진짜 영광이 어디 있는지를 가리켜 줄 따름입니다. 어떤 정원이 저 스스로 울타리를 치거나 잡초를 제거하지 못하며 과일 나무의 가지치기도 못하고 잔디밭을 고르거나 깎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 정원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정원은 좋은 것이지만, 다만 이런 종류의 좋은 점은 갖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누군가가 정원에 그 일을 해 줄 때 비로소 정원은 황무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하나의 정원으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정원의 참된 영광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지속적이 잡초 제거와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가 그 영광을 증거해 줍니다. 정원은 생명으로 충만합니다. 천국과도 같은 색깔과 냄새를 발하며, 여름날이면 매시간 사람이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고 상상도 못했던 온갖 아름다움을 발산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정원의 공헌과 정원사의 공헌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면, 그 정원이 길러내는 가장 흔한 잡초와 함께 정원사의 괭이,갈퀴,원예용 가위,잡초제거도구들을 한번 나란히 놓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아름다움과 에너지와 생명력 넘치는 것들 옆에 생명 없고 흉측한 것들이 나란히 놓여진 모습을 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예의범절과 건전한 양식'을 사랑의 온화함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우중충하고 죽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정원이 최고로 영광스러운 절정에 도달했을 때 그 영광을 위해 정원사가 기여한 공헌과 자연이 기여한 공헌을 비교해 보면, 하찮게만 보일 것입니다.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생명 없이는, 비 없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과 열 없이는 정원사는 결코 아무일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러 일을 했지만, 결국 그가 한 일이란 자신이 아닌 다른 원천에서 발하는 힘과 아름다움을 여기서는 북돋아 주고 저기서는 꺾어 준 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공헌이 비록 이렇게 작은 것이긴 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수고가 많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정원을 만드신 다음 그곳에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두셨고 그 사람을 자기 아래 두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분은 인간 본성이라는 정원을 만드시고 거기서 사랑이 꽃피고 열매 맺도록 하셨으며 그것을 잘 '손질'하라는 임무를 우리의 의지에 맡기셨습니다. 그 정원의 사랑과 비교할 때, 우리의 의지는 메마르고 차갑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총이 비와 햇빛같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리 도구를 사용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가 하는 그런 수고-대가는 효과가 없는-는 필요불가결한 것입니다. 만일 그런 일이 낙원 상태의 정원에서도 필요했다면, 하물며 토양이 나빠져서 상태가 가장 좋은 곳에서조차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지금 같은 때에는 얼마나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일을 도덕군자나 스토아 학파와 같은 태도로 임하는 것은 하늘이 금지하시는 바입니다. 우리가 뽑아내고 잘라내는 일을 할 때에도, 지금 뽑고 자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이성적 의지로는 결코 만들어 내지 못할 그런 광채를 풀어 놓아 주는 것, 그것이 도달하고자 애쓰고 있는 그 상태에 온전히 이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왜소한 잡목더미가 아니라 키 큰 나무를, 돌능금이 아니라 달콤한 사과를 맺도록 하는 것, 이런 것이 우리 목적의 일부입니다. -119-2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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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류의 사랑은 어떻게 왜곡되고 위험해지는가? 독창적 관점, 명쾌한 예증, 순전한 변증이 돋보이는 C.S. 루이스의 사랑론. 지금까지 사랑의 참된 본질에 관해서는 수많은 책이 저술되어 왔다. 그러나 이 책 『네 가지 사랑』처럼 간결하고 명쾌하지는 않다. 낡디낡은 주제라 할 수 있는 사랑에 관한 이 영감 있고 독창적인 책은 사랑을 네 가지 범주―애정Affection, 우정Friendship, 에로스Eros, 자비Charity―로 나누어, 모든 종류의 사랑이 어떻게 일그러지고 심지어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명쾌하게 보여 준다. 이 책 들머리에는 중심되는 개념으로 ‘필요의 사랑Need-love’과 ‘선물의 사랑Gift-love’이 언급된다. 필요의 사랑이란 “그녀 없이는 못살아” 하고 부르짖는 사랑이며, 선물의 사랑은 ‘가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내놓고 헌신하는’ 사랑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루이스가 산책과 토론을 즐겼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나이 든 사람보다는 젊은이들 편을 든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루이스는 아이가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보다 부모가 아이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이 훨씬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그는 사랑의 왜곡을 매우 날카롭게 분석하지만, 네 가지 사랑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며 왜곡되지 않을 때 그것은 하나님과 천국의 본질을 반영한다고 강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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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사랑. 우리는 흔히 사랑을 논할 때에
믿음, 소망, 사랑을 이야기 하거나
사랑의 종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들어 왔던 사랑의 종류는
아가페, 필로스, 스톨게, 에로스 등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실체적으로 나타난 사랑이다.
이러한 실제적인 레벨에서의 사랑론을
성경에 근거해 다루는 책으로는
<더 블레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의 종류에 관계 없이 우리에게 사랑은 어떠한 효용을 가져다 주어야 진정한 사랑인가??
그것은 바로 두려움을 내어 쫒는 것이라고 요한 일서는 말씀한다..
오늘날 세속에 의해서 많이 오염된 "사랑"이라는 개념을 그 탈색을 하여 표현 한다면, 어떤 단어가 효용적인 동의어가 될까???
그것은 바로 실제적인 격려이다..
루이스의 책은 그의 체취와 영감과 지성이 느껴진다 어떤 책이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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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쓰는 리뷰입니다. 이 책이 저로 리뷰를 쓰고 싶어지게 하네요. 빌려서 책을 읽었는데, 도저히 그냥 한번 읽는 것으로 멈출 수 없어서 사러 들어왔다가 리뷰를 남깁니다. 사랑은 만세의 주제이지만 사랑을 정확히 명확히 정의 내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사랑의 노래와 사랑의 글이 정말로 홍수 처럼 범람하는 지금의 세대에 젊은이들과 그리스도인들과 인생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꼭 이 책이 읽혀지길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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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중학교 때 부터 종교및 철학에 관한 책을 대학교 형들하고 같이 읽었다. 자랑이 아니라 그냥 이쪽 부분에 다른 사람보다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C.S루이스 책은 어렵다. 어떤 책들은 대충 빨리 읽어도 대략 이해가 가지만 루이스 책은 마음과 생각안에 있는 길을 설명하는 것 같아서 어느 한 순간이라도 놓치면 그 이후의 길을 아무리 설명을 해도 따라 갈수가 없다. 루이스책은 대부분 그런거 같다.
이책은 2번째 읽는 책인데도 잘 이해가 안간다. 하지만 애정과 우정 그리고 에로스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기 때문에 자기의 감정 상태를 좀더 객관적 아니 정확하게 분석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도움이 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에로스 부분이다. 32살, 결혼 적령기에 에로스라는 부분이 아무래도 가장 관심이 가는데 내가 가장 약한 부분을 잘 집어 주었다. 나의 약한 부분? 나는 루이스가 예시를 든 사람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이 하나님이신줄 알았다. 사랑의 소리를 마치 하나님의 소리로 듣고 실수 한적이 있기 때문이다. 에로스의 속성-나를 완전히 헌신하고, 나를 완전히 포기하는 인간 사랑의 극치,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으로 인해 이 사랑 자체에 도덕적 권위를 두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도 그랬다.
혹시나 사랑과 신앙때문에 혹은 하면 안돼는 사랑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강력히 권하고 싶다. 특별히 이런 일이 없더라도 마음속에 드는 감정에 대해서 잘 정리가 안돼는 사람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루이스책은 다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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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성숙한 영성과 지성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순전한 기독교], [나니아 연대기], [스크루 테이프의 편지]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것 같은데 사실 루이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 어떤 저서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책이다.
[순전한 기독교]에서 그가 변증했던 '기독교의 사랑'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경이로움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었다면, 그 충격적이고 놀라웠던 변증들은 이 [네 가지 사랑]에 와서 한층 더 성숙한 열매를 맺는다.
독신으로 살아가며 한창 학문 활동에 정진했던 루이스가 썼던 이론서가 [순전한 기독교]라면, 실제로 아내 Joy와 결혼도 해 보고, 참된 사랑을 '하고' 나서, 쓴 책인 [네 가지 사랑]은, 그 깊이와 넓이가 학문의 틀을 뛰어 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같은 'Storge' ... 남녀간의 사랑인 'Eros'.... 신적 사랑의 지표로 쓰이곤 하는 'Agape' ... 친구간의 우정을 나타내는 'Philia'
이 책에서 말하는 이 4가지의 사랑은 , 우리가 실제로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실질적인 유용성과 혜안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선다.
아주 쉬운 일례로 만약 우리가 '사랑' 에 대해서 한 가지 관념(ex) 에로스)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 순간순간 '감정의 노예' 가 되어, 실수를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마치 사랑이 '신'인 것처럼, 그 로맨스에 모든 것을 가져다 바칠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 삶 속에서 살아 숨쉬는, '사랑'에 대한 깊은 고찰...
그는 상당히 독특하게도 '우정의 사랑'에 가장 높은 점수를 부여해 주는 듯 한데, 그 이유와 논증을 듣고 나면 새로운 통찰력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단차원 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과 '다차원' 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viewpoint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의 삶 속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학의 새로운 갈래를 만들었다고까지 평가되는 그의 수작을 감사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깊은 이해와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그 삶을 도전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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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할 수 있지만 아무도 사랑의 실타래를 쉬이 풀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은 인생최대의 화두이자 피할 수 없는 난제 가운데 하나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사랑하지 않은 적 없다. 때문에 사랑이 남기고 간 무수히 많은 흔적들이 역사 속에 깃들어 있다. 때로는 너무 치열하여 파괴적이고, 때로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이다. 그러나 파괴적이라고 해서 ‘천박하다’ 할 수 없고, 희생적이라 해서 ‘숭고하다’ 할 수 없다. 십자가의 사랑은 파괴적이지만 숭고하고, 가미가제는 희생적이지만 천박해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평생 사랑을 빚어내는 조각가다. 붙이고, 깍아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들 나름대로의 사랑을 평생 빚어간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인생 최대의 과제이면서 자연스러운 본능이기도 하다. 루이스의 말을 빌리자면 ‘유사성’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과 가까움’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일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어진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조각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사랑은 어렵고도 복잡한 감정이다. 그러니 사랑을 네 가지로 조각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의 『네 가지 사랑』은 다른 어떤이가 빚어낸 조각보다도 정확하고 섬세하다. ‘네 가지 사랑’이라는 완성된 작품은 필요의 사랑과 선물의 사랑, 감상의 사랑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진다. 각각의 재료가 얽히고 설켜 애정과 우정, 에로스와 자비라는 완성된 조각품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이 조각들을 빚어가는 일에 참여한다. 친숙한 것들, 이를테면 가족으로부터 애정이 조각되어지고, 사심없는 동료로부터 우정이라는 조각이 빚어진다. 연인들이 사랑에 빠짐으로써 에로스가 빚어지고, 주고자 하는 풍부함으로부터 자비가 빚어진다. 다만 루이스는 이런 사랑의 형태가 찌그러져 버릴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다. 모자람 없는 사랑속에서 하나님을 닮은 어떤 면을 보게 될 것이다.(234p) 하지만 넘치는 사랑은 때로 그 자체로 신이 되거나 악마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의 삶의 한 부분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조각한 사랑이 단순히 철학적 사유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예기치 못한 기쁨을 맛보았다. 그것 자체를 갈망하게 될 때 신이 되기도 하고 악마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기치 못한기쁨, 239-262p) 비록 8살 때 어머니를 잃는 슬픔을 겪었지만 그 속에서 충분한 애정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의 삶을 더 풍성하게 이끌어준 동료(톨킨과 같은)로부터 우정을 빚었을 것이다. 3년 2개월이라는 짧은 순간이지만 조이를 아내로 맞아 에로스를 조각해냈다.(쉐도우랜드) 1929년 어느 여름 밤에 만난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깊이 체험했다. 그의 삶으로부터 조각되어진 작품이기에 완성도가 있다. 때로는 섬세하게, 정확하게 빚으려는 장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랑을 조각해가는 과정가운데 있는 연인, 부부가 함께 읽어야할 사랑학 개론이자, 참된 사랑을 조각하고 싶은 그리스도인의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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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루이스의 사랑에 대한 논증입니다. 루이스는 사랑을 네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철학자/종교인이 제시하는 세 가지 사랑과는 다릅니다. 루이스가 이 책에서 다룬 사랑은 애정, 우정, 에로스, 자비인데 애정은 친숙한 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고, 우정은 같은 것에 관심을 갖는 자들이 느끼는 감정(사랑), 에로스는 육적인 것을 포함한 남녀 간의 사랑, 자비는 신적인 존재가 주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사랑 전체가 이 네 가지 사랑에 포함된 게 아닙니다. 한편 그는 독특한 분류를 하였기 때문에 독특한 정의를 함께 내리고 있습니다. 정의가 내려진 상황이라면 그 정의를 먼저 (적어도 그 책 내에서는 적용하겠다는 생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 책(주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정을 다룰 때에 언급되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의 차이점은 이 책이 나온 지 50년이 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왜 그 동안 별로 언급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최근에는 오히려 루이스가 비판한 그 주장이 더 많이 우리의 눈과 귀에 보급되었었죠. 뒤로 갈수록 신학적인 뜻이 많아진다는 것을 감안하고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100708/100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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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간의 사랑이란 사랑 자체이신 분의 사랑을 닮은 한에서만 비로소 사랑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고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 13p 즐거움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입니다. 먼저 욕망이 생겨서 비로소 즐거움이 되는 것이 그 하나고, 그런 앞선 욕망 없이 그 자체로서 이미 즐거움인 것이 나머지 하나입니다. 전자의 예로 물 마시기가 있습니다. 만약 갈증을 느꼈다면 물 마시는 것이 즐거움이고, 갈증이 크면 클수록 즐거움도 큽니다. 그러나 갈증도 없고 의사의 지시도 없는데, 순전이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물을 들이키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후자의 예는, 찾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떤 어떤 좋은 냄새를 맡게 될 때의 즐거움입니다. 그 냄새를 맡기 전에도 당신은 아쉬운 것 없이 흡족한 상태였습니다. 대단히 큰 그 즐거움은 , 말하자면 요청 없이 덤으로 받은 선물입니다. ...30p '필요의 즐거움' <-> '감상의 즐거움. 31p '감상의 사랑' ... 그런데 감상의 사랑은 가만 숨죽여 그녀를 응시하며 그런 찬탄할 만한 여인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합니다. 설령 그녀를 얻지 못한다 해도 완전히 낙담하지 않으며, 그녀를 전혀 알지 못했던 것보다도 더 나은 일이라도 여깁니다. ..39p 감정의 '순수한 상태' <-> '악마적 상태. .... 사실 그 감정이 어떤 상태든지간에, 그 자체가 국가적 행위를 일으키는 실제 원인이 못 됩니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나라간 행동의 주체는 통치자들이지 국민이 아니기 떄문입니다. 국민의 애국심이 악마적이라면 통치자가 악한 행동을 하기가 더 쉬울 것이고, 국민의 애국심이 건전하다면 통치자의 사악한 행동은 어려워질 것입니다. 악한 통치자들은 자신의 악을 묵인받기 위해 여러 선전을 통해 악마적 상태의 애국심을 부추길 것이고, 선한 통치자들이라면 정반대의 일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반 국민들이 자신의 애국심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를 늘 세심히 살펴야 하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47p ....애국심은 아주 쉽사리 천상 사회의 탁월한 주장들을 빌어 와서는 자신의 가장 혐오스런 행동들을 정당화하는데 이용해 먹습니다. 제가 쓸 생각은 없지만, 꼭 나와야 할 책이 하나 있다면, 그간 인류가 행한 모든 잔학하고 배신적인 행위 가운데 기독교 사회가 구체적으로 가담한 부분에 대해서 기독교계의 철저한 참회를 담은 책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그런 부분과 공개적으로 절교하지 않는 한, '세상'은 우리에게 귀 기울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59p ...자식의 사랑이 필요의 사랑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선물의 사랑이라는 점도 그렇습니다. ..........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필요의 사랑이지만, 그 필요는 무언가를 주어야 하는 필요입니다. 그것은 선물의 사랑이지만, 그 대상의 필요롤 필요로 하는 사랑입니다. ..... 64p 이렇듯 '붙박이로 고정 된',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애정의 특성은 무시무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애정의 또 다른 특징인 편안함과 격의 없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무례하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저 역시 나이든 사람이니 응당 나이든 세대 편일 것이라도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저는 부모를 대하는 자녀들의 태도보다는 자녀를 대하는 부모들의 태도에 흠칫 놀랄 때가 훨씬 많습니다. ....80p 애정 관계란 편한 옷을 일을 수 있고 서로 편하게 대해도 결례가 되지 않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편한 옷을 입는 것과 똑같은 옷을 냄새가 날 때까지 입는 것은 별개입니다. .... 이처럼 사회생활 예의와 구별되는 가정생활 예의란 것이 있습니다. 두 예의 모두 뿌리가 되는 원칙은 동일합니다. ........ 반면, 더 친밀히잴수록 덜 형식적이 되나 그렇다고 해서 예읜가 덜 중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애정은 공적인 예의와 비교될 수 없을 만치 더욱 섬세하고 민감하고 깊은 호의를 최선을 다해 베푸는 것입니다. .... 81,82p 90-91p '피제트 부인' (집에서 필요의 사랑을 잘 채워줬지만 자기만의 형식 이기에 갖게 될 결과... 본인 만족을 위한 사랑의 예) 108p 평가절하 된 우정. 그 배경 등. ... 이러한 우연적인 요소 중 어느 하나로도 우리는 남남으로 남았을 텐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리스도인에게 우연이란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예식의 주재자(Master of the Ceremonies)께서 보이지 않게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 우정은 서로를 알아본 우리 자신의 뛰어난 분별력이나 안목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닙니다. 우정은 우리가 서로의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수단입니다. .... 다만 우정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게 해 주신 것뿐입니다. 그 아름다움이란 다른 모든 아름다움이 그렇듯 그분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며, 참된 우정에서 주님은 그 아름다움이 더욱 자라게 해 주십니다. .....153,154p 사람아, 너의 창조자를 기쁘게 해 드리고, 즐겁게 지내라. 세상에 대해선 심각할 것 하나 없으니 Man, please thy Maker, and be merry, And give not for this world a cherry -William Dunbar (1463-1530 스코틀랜드의 시인) 155p ....(고전 7:5) 그가 염려했던 바는 배우자에 대한 몰두, 항시 남편 또는 아내를 '가쁘게 해 주어야' 하는 일, 복잡한 가사 일로 마음이 분산되는 상황 등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중단 없는 섬김의 삶을 방해하는 것은, 결혼생활 자체이지 부부의 침실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생각은 정말 옳지 않습니까? 저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말한다면, 신앙생활에 가장 큰 방해요소는 세세한 현실적 문제에 대한 염려입니다. .......167p (마술피리 파파게노 파파게나를 인용하는 루이스..). 171p ... 그리고 모든 좋은 그리스도인 연인들은, 이러한 일이 듣기에는 쉬워 보여도 실은 겸손과 자비와 신의 은총 없이는 실행될 수 없는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특정한 각도에서 바라본 그리스도인 삶의 전부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195p 자연적 사랑은 자신이 원하는 상태로 유지되고자 한다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제2인자로서의 위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멍에에 참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엎드릴 때 더 커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실 때 가끔은 거기 있던 토착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실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계속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두시며, 그들의 권위를 하나님의 자신의 권위에 종속시킴으로써 비로소 그들의 권위가 확고한 기초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204p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무엇이든 사랑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은 분명 아픔을 느낄 것이며, 어쩌면 부서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아무 손상 없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면,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 마음을 당신의 이기심이라는 작은 상자 안에만 넣어 안전하게 잠가 두십시오, 그러나 그 작은 상자 안에서도 그것은 변하고 말 것입니다. 부서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깨뜨릴 수 없고 뚫고 들어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207p 만일 우리 마음이 부서질 필요가 있다면, 만일 그것이 그분이 선택하신 방법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 길을 감수해야 합니다. 208p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진술은, 하나님의 계시 속에서 다른 것에 대해 깨닫게 된 지식과 그 지식에거 이끌어 낸 추정extrapolations일 뿐입니다. ...214p 우리는 사랑했던 이들에게서 등을 돌려 어떤 낯선 존재에게 가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날, 결코 그 얼굴이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지상에서 만났던 모든 순수한 사랑의 경험 속에 이미 함께 계셨고, 그 경험을 만들어 내고 뒷받침해 주셨으며, 그 속에서 매순간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234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