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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일반명사로 우리에게 느껴지는 보보스(bobos)는 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의 합성어이다. 한국에서는 묘하게도 성공한 자의 색다르게 반항스러운 모습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보보스의 참 모습은 신구가 조화된 현대인의 특성을 가리키고 있다. 세계는 계급적 특성 속에서 발전해 왔다. 그러한 계급은 각 계층의 반항을 불러왔고 계급적 신장을 기본적 욕망의 하나로 간직하게 하였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가진자와 못가진자, 부자와 예술가의 대립까지 다변화된 계층적 구조에 대한 저항으로 변화하였고 결국 그 저항의 정신은 오늘날 모든 계급구조의 특성을 함께 향유하는 세대를 탄생시켰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보스는 현대를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며 변화하는 시대의 중심적 컨셉이다.
주류와 비주류가 혼재하고 경건과 쾌락이 공존하며 소비의 다양성으로 대변되는 보보스의 컨셉은 기실 현대를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이것은 절대 별도로 존재하는 집단의 이야기도 아니며 우월한 계급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책에서 고급스러운 엘리트 집단의 특성을 이야기 하지만, 이미 책이 씌어지고 디지털타임이 훨씬 흐른 지금 이제 보보스는 현대적 특성의 일반적 표현이 되었다. 분열하고 대립하고 함께 변화하는 것이 세상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는 변화의 중심에 서있다라는 표현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책 보보스는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중간적 점검의 의미를 지니며 그 점검의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는 예전의 것과 새로운 것이 혼재해 있다. 도덕적 판단이 그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해가 그러하다. 아직도 계급의 속성을 염두에 두고 비천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사람은 수구주의자밖에는 없다. 어쩌면 세상은 보보스를 지나 더 치열한 상호합성과 역설적인 개인화가 꾸준히 진행될 것이다.
저자는 자칭 엘리트이다. 그리고 미국인이다. 책의 부분적으로나마 역겨운 부분도 없지 않다. 계급과 대립의 혼재와 합성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은근히 보헤미안적 사고와 취향을 비웃는듯한 글들과 민중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의 혁명적 변화는 도외시한 체 엘리트의 자기희생의 결과물로써 현대를 말하는 모습은 가소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현대인의 모습을 인류학적으로 고찰한 결과가 되어버린 소비의 행태로서의 이야기 전개는 다양한 개인적 특성을 함께 지닌 현대인을 적절히 설명하고 이해 시키는데 일조하였음에는 틀림없다.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엑기스만 뽑아서 이해한다면 보보스는 단지 현대인의 특성을 말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인의 특성은 기실 우리 자신도 잘 모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직도 메인스트림 운운하는 수구세력과 지역감정을 자신의 계급적 우월성에 엮어 이용하려는 존재들이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통합과 그 통합에 저항하는 세력간의 싸움이 현대를 설명한다는 저자의 설명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현대인의 모습은 보보스의 색채를 보여주고 있음은 분명한 듯 하다. [인상깊은구절] 오늘날의 핵심 갈등은 60년대와 80년대의 갈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갈등은 60년대와 80년대를 통합한 사람들과 그런 통합을 거부하는 사람들간의 갈등이다. |
| 당신은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계층입니까? 위 물음에 대한 답은 '보보스'를 읽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항목을 체크하는 식의 시험문제지는 아니지만, 보보들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미래에 관해서 한번 쯤 진지하게 생각하게 끔 해준다. 우리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으며 성취지향적인 기득권 계층을 통상 Bourseois라고 부르고, 주류가치에 도전하는 반항적, 자유주의적 정신을 소유한 지식인 계층을 Bohemian이라 부른다. 60년대 히피의 가치를 대변하는 보헤미안의 영역에 한쪽발을 딛고 있으면서, 다른 한쪽발은 80년대의 여피의 가치를 대변하는 부르조아의 영역에 두고 있는 디지털시대의 신 엘리트 계층을 지칭하는 말로, 앞의 두 'BO'를 따서 저자는 'BoBo'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보보의 특징은 무엇일까? 이책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는 보보들의 등장에서부터 그들의 소비행태, 라이프 스타일, 정신세계, 지적세계 등 보보들에 관한 모든 것을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과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보보들은 '고도로 교육받은(High-Educated)' 계층이다. 보보들은 과시적 소비는 지양하지만 자기개발이나 실용적인 곳에는 일반인들이 엄두조차 못내는 액수의 돈을 소비한다. 보보들은 성공지향적이고 성취욕이 강하다. 보보들은 자신의 지식 수준을 드러내고 자랑하지는 않지만, 상대방으로 하여금 느끼게끔 만든다. 보보들은 일과 여가를 구분하지 않는다. 일이 곧 여가고 여가가 곧 일이다. 보보들은 한가지 가치만을 고집하지 않는 다원주의자들이다. 보보들은 자유분방하여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다. 보보들은 '통합자'이다. 일반인들에게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보보에게는 통합되어야 할 무엇이다. 보보들은 대립 지양적이며, 화합 지향적이다. 혹자는 이 책을 두고 신 기득권계층을 찬양하기 위한 교조적 사회과학 서적이라고 폄하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보보들, 사회현상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고시열풍, 서울대만능병, 전문직의 부상, 과외병 등 우리가 보고, 겪고 있는 우리 주위의 사회현상들이 이 책의 분석대상이고, 우리가 원하는 사회 지위가 저자의 주제이다. 그리고, 이 책은 보보라는 특권계층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현상을 통합적, 분석적 시각으로 통합함으로써 지금의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미래 사회의 힘의 흐름을 진단할 수 있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계층인가?' 쉽게 답할 수 없다면 '보보스'를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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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잡지나 인터넷 사이트에 '보보스'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데, 정확한 뜻이 어떤지, 그들을 특징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디지털시대의 엘리트"라는 부제를 보며 나는 과연 이 시대의 엘리트인지도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90년대 이후 사회 발전을 위한 대학의 변화로부터 교육받은(High-Educated) 엘리트가 과거 전통있는 기득권층인 부르주아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들은 부르주아적인 권위와 기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득권층에 반항하고 자란 보헤미안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였다. 보보스 계층은 절대 융합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가치와 특성을 조화시키며 독특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행태를 보여준다. 그들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정보사회의 아이디어와 비즈니스의 통합에 그 원인이 있다. (정보사회에서는 아이디어만으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수와 진보, 전통과 현대를 통합하는 실용주의자, 합리주의자이며, 새로운 미국의 문화적 동력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 자신들의 가치를 입히면서 문화적 완성도와 경제적 부흥,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는데도 기여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매우 인상적이였던 내용은 그들의 소비에 관한 것이다. 책 내용 중 "하지만 적어도 정보시대에서는 계급이 소비 수단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p. 67)"라는 글이 있다. 보보스 역시 정보시대의 주인공으로써 그들만의 특이한 소비성향을 나타낸다. 그들은 과시적 소비는 지양하지만 자기개발이나 실용적인 곳에는 일반인들이 엄두조차 못내는 액수의 돈을 소비한다라고 책에는 써있지만, 사실 그들이 부엌에 (정작 사용할 필요도 없고, 사용할 사람도 없는) 최첨단 장비를 갖추기 위해 지출하는 돈은 어마어마 하다.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런 추세는 비슷하다. 또한 그들은 정말 안전한 산악 등반을 하기 위해 별 필요없는 최고급 산악장비를 마련한다.
과연 이것이 과시적 낭비가 아닌 자기개발이며, 실용적인 투자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지금 보보스들이 과시적 낭비라고 생각되는 몇몇 물건이나 시설은 부르조아에겐 실용적인 투자였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개인적으로 아직 보보스가 못 되어서인지 그들의 소비문화 역시 굉장한 과시적 낭비라고 생각된다. (물론 자기 자신과 아이들에게 사용하는 교육적 투자에 대해서는 그 비용이 아무리 비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용적 투자라는 데에 이의는 없다.)
어쨌든, "조화로운 개인주의"와 "고상한 자기중심주의"의 보보스의 특징을 실생활에서 실천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 두 단어는 사회적 책임을 버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개인주의이지만, 남을 배려하고 생각할 줄 알며, 자기중심주의지만 역시 남도 존중하는 것이다. 개인주의인 동시에 "다원주의"를 추구한다.
다양성과 복합성을 깨닭고 나와 다른 다른 사람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 역시 보보스의 특성이며, 내가 실생할에서 실천해나가야 할 일이다. 책에서는 은연 중에 사회에 대해 책임감이 없던 (사관학교에 가지 않고, 자원봉사나 종교활동에도 무관심한) 과거의 보보스에 대해 질책한다. 사회의 엘리트층으로서 책임의식을 가진 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이 책에서는 약간 보보스에 대한 찬양이 느껴진다. 이미 작가가 보보스의 일원이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는 잘 교육받았고, 기사나 책을 쓰는 보헤미안적 직업을 가졌으며, 그런 직업이 우연히 가져다 준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상업성과 귀족주의만을 중시하던 부르주아나 현실감각없는 자유주의자인 보헤미안의 중간자적 입장에서 사회적 성취와 예술적 가치를 모두 아는 보보스는 그 둘보다는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사실 보보스들은 쓸데없는 과소비, 예를 들어 자기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또는 자신감을 표현하기 위해 거금을 들여 명품을 사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강남사는 명품족이 우리의 보보스가 아닌가.
훌륭한 혈통을 타고나지 않았어도, 부유한 부모님을 만나지 않았어도, 자신의 노력으로 "열려있는 지배계층"인 보보스가 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과연 보보스가 정말 열려있는 지배계층인가에 대해 약간 회의적이다. 선진국에서는 보보스의 계층이 천천히 굳은 계층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지... 교육을 잘 받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여건과 교육환경, 더 많은 책과 과외활동을 지원해 줄 수 있고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보보스가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모의 훌륭한 유전자 (우수한 기억력과 창의력, 호르몬이나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를 물려받기까지 하지 않았나. 우리 사회에서도 열린 계층이 닫혀져 가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보보스의 유연함에 의해 사회가 안정적, 발전적으로 향해가는 것만은 의심할 바 없다. [인상깊은구절] 출신 대학, 대학원 학위, 사회 경력, 그리고 부모의 직업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네 가지가 오늘나 미국의 상류계급을 특징짓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보헤미안의 영역에 들어와 부르주아의 특성을 주입했고, 비슷한 방식으로 부르주아적인 태도에도 물을 탔다. 하지만 그들이 시야를 높여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될 때, 미국을 도 한번의 황금 시대로 이끈 계층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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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소비하느냐를 가늠하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서 추천해주셔서 읽어봤는데 꼭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변사람들이 소비하는 모습들이나 패턴이 정말 책 내용하고 맞아떨어져서 그냥 하나의 트렌드를 짚어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책 내용이 엄청 명쾌하고 중간중간에 경제학과적유머(?) 같은게 있어서 혼자 빵 터지고 뭔가 무릎을 탁치면서 아!하는 느낌이 들어서 단시간에 빨려들어가듯이 읽게되는 책이었다 뭐 성공이나 돈에대한 부분은 내가 아직 무언가를 성공했다라고 보기도 내 주변사람들도 성공이라고 보기보다는 그냥 일상을 살고있는 편이라서 엘리트 계층 이런건 잘 모르겠지만 소비패턴이나 생활양식들이 정말 딱 맞아떨어진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빈티지에 열광하지는 않는데 주변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왜 내가 보기엔 벼룩시장 물건인데 그걸 숍에서 사는건지도 얼핏 이해가 가능할것 같기도 했다. 어 몇가지는 아무래도 미국인이 10년도 더 전에 쓴거라서 우리나라하고 안맞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큰 맥락같은건 얼추 맞는듯하다는 인상이다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던건 어렸을때 중학교 선생님이랑 지난학기 유럽문화 교수님도 문화의 흐름같은게 항상 유럽에서 시작되서 미국으로 갔다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경향이 있고 유럽에서 2년전 미국에서1년전 일본에서 6개월전의 트렌드가 우리나라에 들어온다고 보면 은근히 맞는것이 많다고 하셨는데 책을 읽으면서 정말 그런걸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전에 뉴스와 신문에 나온 비만세같은경우도 정말 미국에 있을때 처음 들어봐서 그거가지고 토론했었는데 작년 말쯤에 일본친구들이 일본에서 비만세 도입하려고한다고 해서 마구 비웃었는데 그게 또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된걸 보면서 그냥 단순한 소비재등의 상품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사상같은면에서도 그게 얼추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난 원래 친구들에 비해서 취향이 조금 어른들이랑 비슷한데 최근에 미국보다는 유럽이 유럽중에서는 스페인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뭘까 궁금하고 앞으로 어떻게 판도가 변하려나? 하는 궁금중도 생겼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 책에 언급되었나 책표지에 쓰여있었나 보보스족 여피족 히피족 무슨족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도 몇년전까지만 해도 좀 쓰이다가 최근에는 그냥 개인으로 무슨녀 무슨녀 무슨남 이렇게 불리는걸 보면 또 미묘하게 달라진것도 같다 아니면 개인하나를 더 중시하는것보다는 보보스족이 의미하는 커다란 범주를 포괄하는 새로운 종족(?)을 발견하지 못했기때문에 우리는 보보스족의 시대에 살고있고 그 안에 세부적인 ~녀, ~남이 있는지도- 이것도 읽자마자 썼으면 아마 생각나는게 엄청 많았을텐데 지금 기억나는것만 생각해보면 버버리사건과 프리미엄진 내소비패턴 캘리북부분위기 네가지 과거와 달리 단순히 추세가 단순히 돈만을 따라가서 성공한 사람들이 존경을 덜받고있다 그 덕에 안철수나 시골의사 박경철 김태원등 새로운 멘토들이 뜨고 있다 (뭐 이런 추세외에도 우리나라 교육과정과 20대의 특수성같은 여러가지 이유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소비에서도 단순히 브랜드나 명품을 소비하는 모습이 전혀 선망의대상이라던가 하지 않아지고 있다 오히려 자신만의 센스를 갖고 샤넬백도 동대문에서 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산 옷과 어울리게 입는 사람이 더 멋있는 사람이 된다. 아무리 명품만으로 입는다고 해도 옷을 센스입게 입지 못하면 왜 돈을 저렇게 쓰지 하고 오히려 안좋은 소리륻 듣는 세상이니까. 예전에 소풍을 갔을때 반 남자애가 모자부터 신발까지 버버리풀코디를 하고 왔는데 정말 이상했던게 기억났다. 물론 버버리 체크무늬때문에 더 그런걸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부터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그 때의 바둑판 코디는 충격 그 자체였다... 여자들하고 있을때도 화장품을 사용 할 때 단순히 유명브랜드의 스테디셀러만 쓰는것보다는 저렴한 브랜드의 비슷한 기능을 가진 제품을 잘 찾아내는 친구들의 능력도 돋보이고 중고딩때까지만하더라도 로드샵이 막 생겨나서 그런탓도 있지만 센스없다는 이미지에서 이젠 잘 섞어쓰는 사람이 센스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또 책에서 경험이나 배움이 하나의 권력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는데 이것도 완전 공감 와인이나 커피도 이젠 그냥 마시지 않고 뭔가 여러가지 지식을 알아야하고 화장품같은 경우도 그 저렴한 브랜드가 왜 좋은지 설명 가능한 사람이 되야한다. 또 이 과정에서 뭐랄까 사람들의 마음이 또 중요해진게 비싼 화장품과 저렴한 화장품을 둘 다 구입해서 써보고 선택해서 사용하는 경우에는 자신 스스로도 현명한 소비자라고 생각하지만 비싼 화장품을 써볼수는 없지만 저렴한 화장품만 잘 쓰는 경우에는 그래도 비싼 화장품 혹은 카피화장품의 오리지널을 써보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것도 뭐랄까 경험들이 권력이 되는것하고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소비에서도 단순히 모든것에 과감하게 사용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것에만 과감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소비를 줄이는 모습도 주변에서 많은것 같다. 나부터도 물건을 소비하는것보다는 서비스나 여행에 소비를 많이하고 어떤 오빠는 먹는것에는 인색하지만 청바지는 프리미엄진이 아니면 취급하지 않는다던가 옷이나 다른데는 관심 없지만 새로운 노트북/핸드북/카메라는 다 사서 써보는 친구들등 이런 모습이 몇년전에는 아 저 사람은 저 부분에 돈을 너무 많이쓴다라는 이미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것는 돈을 잘쓰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뀐듯하다 책에 나온 뉴욕어딘가와 보보스의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지역으로 캘리 북부가 나왔는데 다행히 내가 다녀왔던곳이 그쪽이라서 정말 히피들인 애플제품에 대한 느낌 생활방식등이 아 그래서 그런거였구나 하고 조금 이해가 수월했던것 같다 이 외에도 읽는동안 진짜 수만가지 생각들이 엄청 많이들었던 책이었다 마지막 부분 종교파트랑은 잘 이해가 안되면서도 정말 사람들이 개개인의 삶을 중시하면서도 최근들어 내 주변 사람들도 무교에서 갑자기 종교생활을 하고싶어한다던가 봉사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게 마음의 안정이랄까 관계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필요성에서 찾게되는 부분에서는 동의 정치하고 규범부분은 결국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공약을 세워서 결국 별 차이가 없어진다고 했는데 우리나라도 비슷한것 같다 그래서 노무현대통령이후로 우리나라 선거에서 뭔가 음... 떠오르는 사람? 스타성?이 있는 사람들이 선거에서 유리했던것 같고 아! 규범은 너무나 다른 가치관과 생활을 가지고 있다보니까 하나의 규범을 원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종교를 찾아가서 공동규칙을 찾으려고 한다고 책에 되어있는데 이것도 공감 정말 학교를 다니면서도 교수님에 따라서 어떤 교수님은 전화를 직접하면 무례한거고 어떤 교수님은 문자를 보내면 무례한거고 어떤 교수님은 무조건 이메일로 먼저 연락해야하고 솔직히 강의 첫 날 교수님의 스타일을 말해주시면 아, 이렇게 해야지 하는데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정말 헷갈리는것 같다. 일상생활에서도 남자가 여자한테 해주는 매너로 차문을 열어준다던가 여자들끼리도 문을 잡아준다던가에서 어떤 사람한테는 너무 당연한건데 어떤 사람은 정말 신경써서 하는 매너이고 일상에서도 문자로 연락을하고 전화를해야하는 사람이 있고 전화를 안받으면 음성메시지로 남겨야확인하는 사람이 있고 정말 공동규범이 좀 필요한것 같다는것에 동의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스티브잡스가 세상을 떠나 슬프지만 너무 세상이 급격하다 못해 과격하게 변화하면서 이런 부분들에 대한 사회적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을 좀 정리하라고 세상을 떠난게 아니신가 싶기도 하고 그랬다. 요즘 학교폭력같은것도 학교에서 어차피 공부라는 부분은 별로 도움도 안되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받아들이는것도 다르니까 공부는 좀 포기하고 인성교육이나 사회적인 공동규범같은걸 교육하는데 더 집중하는게 맞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하면 좀 학교폭력이 줄어들지 않을까하는생각 생각나는게 너무 많은책이라 나중에 다시 읽으면서 정리를 해야할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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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스에 관해 여러분들이 쓰신 리뷰를 읽어보았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보보스를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잘라 말해서, 보보스라는 단어를 들을때, 넥타이에 스티커즈와 자전거를 매치시킨, 광고에서 폼잡는 정우성을 연상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것이다. 정우성과 보보스는, 굳이 비교하자면, 신용카드와 예술성의 관계만큼이나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보보스"라는 책을 집어들을때,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합성어라는 점보다, 미국의 문화 "엘리트"라는 점에 주목했던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보보스라는 개념은 우리에겐 퍽 생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보보스란 쉽게 말해서, 미국의 히피세대가 직장인이 된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386세대가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쉽다. 그러니 보보스는 "제 3의 길"에 대한 문화적 응전이다. 마르크시즘이 아직도 지구상에서 일말의 희망이 남아있는듯이 연명해가고 있던 80년대에는 미국도 60년대의 히피세대들이 가정으과 직장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90년대가 되었다. 미국은 천상천하 유아독존하는 대신 그 이질적인 무엇인가를 문화적으로 흡수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정치적이어서는 안되었고, 문화적이고 사적인 방식으로 발현되는수 밖에 없었다.
한국의 많은 독자들은 분노했을것이다: 왜 우리가 그들의 소비행태 따위를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야 하지?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시대정신이다. 아마 20년후에는 우리도 "보보스"가 왜 그렇게 쓰여졌는지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나는 20년후라고 했다. 그때쯤이면 우리는 되돌아보게 될것이다:왜 보보스라는 한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서 스타벅스의 커피잔에 쓰여진 문구가 등장하고, 왜 보헤미안의 역사적 기원에 파리의 플로베르와 네르발이 등장해야 하는지, 제인 제이콥스의 저서를 인용한것이 얼마나 예리한지, 그들의 섹스문화와 행태를 그렇게 자세히 설명한 것은 정치적 에너지가 사적이고 프로이트적인 방식으로(이런 표현을 쓸수밖에 없다) 발현된것이라는 사실을...... 그 때에 가서야 우리는 무릎을 치며 이 책이 얼마나 진보적인 책인지를 알게 될것이다.
물론, 우리도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사실, 나는 이 책을 덮는 순간부터 예상은 했다: "보보스"란 말이 얼마나 상업적으로 우스꽝스럽게 이용될지를. 디자인 계열에서 일하면서 웨스턴 바에 가서 양주를 홀짝거리는 겉멋만 있으면, 한국에서는 보보스라는 명함을 내밀수 있는것이다. 하물며, 나이트 클럽 이름도 "보보스"로 되어있음에랴....!! p.s: 제 4장 '지적인 삶'에서 지식인과 그들의 수입의 불균형을 추적하는 대목은 압권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들은 카탈로그를 샅샅이 뒤져 많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품이라고 믿고 있는 스위스제KWC 수도꼭지를 마침내 찾아낸다. 이런 식으로 작은것에 정성을 쏟는 논리적 배경은 당신의 두뇌력이 아주 풍부해서 수도꼭지를 찾는 일에도 노력을 쏟을 만큼 여유가 있음을 보여 주자는데 있다. 전에 유기화학 기말 시험과 물리학 리포트 작성에 쏟아부었던 정신력은 이제 좋은 차고를 고르는데 사용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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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는 부르주아 보헤미안(Bourgeois Bohemian - BoBo)의 약자로 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가 만든 단어이며,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와 보헤미안으로 대표되는 진보적이고 자유적인 가치를 혼합한 제 3의 지성인으로 정의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기에 시대적인 사상의 조류도 변화를 겪는 듯 하다. 미국이 60년대의 히피로 대변되는 보헤미안 문화와 80년대의 여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문화가 있다면 한국도 그와 비슷하게 과거 성공이 최우선이었던 경제발전형 문화와 9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민주화 문화의 상충되는 문화가 있을 것이다. 한쪽은 개인의 자유나 진보보다는 우선은 발전이 먼저라는 관념이 강한 것이고 다른 한쪽은 집단 우선의 논리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 평등을 추구하는 관념이 아닌가 싶다. 이런 대립되어 보이는 사상간의 대통합이 과연 가능할까?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생활에 필요한 소득을 벌고 있으며 더 많이 벌고 성공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영혼을 팔면서까지는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둘 다를 추구하지만 그 경계가 모호한, 섞인다기 보다는 어쩡정하게 두 가지가 공존하는 개념일 수도 있다. 베버의 관념론인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이 맞을지 아니면 마르크스의 유물론인 "자본론"이 맞을지는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어느 한 부분이 더 부각되는 것이지 실체는 두 해석의 복합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자본이라는 물질간의 경쟁은 분명 "자본론"에서 설명하고 예측하는 노동소외를 일으키는 듯 하고 자본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소비위주의 물질만능시대로 이끌어 가는 듯 하다. 관념에 해당하는 초기 개신교 정신도 소비라는 단 맛을 맛본 후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어 보인다. 그러니 이 관점으로 봐도 자본주의는 자본론의 예측처럼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 진원지의 핵심은 보보이고, 대립의 극단보다는 어쩡정해 보이지만 봉합과 통합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만약 자본주의가 이와 같은 보보스들에 의해 수정, 발전된다면 자본주의의 미래도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보보스가 주류적인 현상일지, 대립에 지쳐 싸움은 피하고 보자는 현상일지, 변혁을 겪어봤으나 별 차이 없더라는 역사적인 경험에서 온 일시적인 현상일지는 시간이 흘러봐야 판명될 일일 듯 하다. 이책에서 지적인 삶, 즐거움, 영적인 삶 분야에서 보보스의 정체성에 대한 글을 보면, 보보스는 경제 발전과 사회 민주화를 겪은 사회에서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집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복고풍의 제품이나 유행도 이 집단의 사상과 연관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지위-소득의 불균형"은 사회적인 지위와 실제 소득간의 괴리로 느낄 수 있는 공허함이나 무력감을 이야기하는데, 이런 무력감은 삶에 있어서 돈이 최고가 아닌가 하는 금권주의의 유혹을 느끼게도 한다. 보보로서의 삶의 균형감은 쉽지 않아 보인다. 8/13/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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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이 왜 그다지도 화재가 되었으며, 보보스라는 단어가 일반명사화 되어가고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과연 미국에서는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해서 그 후광효과를 한국에서도 누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출판업계에 종사하고 계시는 분들과 언론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음모론적인 야합에 의해 만들어진 베스트셀러인지... 우선, 우리나라에 과연 보보스 계층이 있을까? 미국처럼 60년대 전후 가치관의 혼란기에 출몰한 반항적인 보헤미안 계층이 형성되어있었는지, 아니면 미국처럼 80~90년대 (잠시 일본 경제가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왔던 때를 제외하고) 엄청난 성장기를 구가한 부르주아 계층이 있었는지 한번 돌아보기나 한 것인지. 돈 많은집 자식이 반항적인 태도로 앞에 끼어든 티코 운전수를 구타하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원대한 통합인 보보스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도 압구정에 가면 보보스들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보보스라는 말이 주로 어디에서 쓰이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면, 패션잡지에 명품을 팔기 위한 판매촉진의 수단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 같다. 또는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삼성에서 삼성냉장고를 내놓지 않고 괜시리 사람들의 고소득층에 들어가가고 싶어하는 심리자극을 위해 지펠냉자고를 선보였듯이, 굳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사는 '진짜 있는집 사람들'이 아닌 보보스라는 가상의 계층에 속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아주아주 좋은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닌지. 뭐 미국에서는 그 뜻이 아니었는데, 한국에 들어와서 변질되었다는 식의 '유자탱자 이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용되고 있는 이 책을 보면 어지되었건 그리 좋은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은 이 책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어지지 않은 것 같기 때문에. 그리고 기본적으로 저자가 스스로 보보 계층이라고 하면서 맨뒤의 몇 페이지를 제외하고 칭찬만을 일색한 것은 기본적으로 잘난척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우리네 정서에 비추어 보았을 때 비위에 그리 썩 맞지만은 않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몇페이지에 걸쳐 보보 계층을 칭찬만 하고싶지는 않다며 비판한 것을 보면, 과연 그것이 칭찬인지 비판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메스껍게 만드는 구석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정말 잘난 모양이다.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것을 보면, '나르시즘'의 정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면, '음...정말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고 말로 시작하면서 슬쩍 자신도 보보스라고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식으로 쓴 것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
| 저자의 이력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알지 못하나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저자는 스스로를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고 밝힌다. 그런 까닭에 엘리트인 자신이 쓴 이 책을 읽는 이들 또한 엘리트에 속할거라는 가당치않은 동의를 요구하며 글을 시작한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사회를 좌지하는 엘리트로서 저자와 독자들의 암묵적 동의하에 귀족에서 상인 그리고 보헤미안을 짜깁기한 부르조아를 위한 변명과 찬양에 심혈을 기울인다. 분명 wasp의 일원으로 여겨지는 저자는 시종일관 지금까지의 사회변혁의 힘이 온전히 wasp의 자기 희생과 양보에서 비롯된 시혜적인 성격의 것임을 강변한다. 그들이 누린 부와 권력이 민중의 고통속에 기반한 것임을, 지금까지의 사회변혁이 민중의 땀과 피로 이루어진것임을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엘리트의 절제와 자기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라나. 거기에 자기의 희생의 대표적인 wasp으로 부시를 드는 것은 정말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저자는 부르조아와 보헤미안을 대비하며 보보스의 특징을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저자가 열거하는 부르조아와 보헤미안의 특징이라는 것이 결국 보헤미안에 대한 독설로 이어진다. 보보스의 소비를 통한 자기현시의 치졸함은 미덕으로 칭송되고 내적 덕묵과 물욕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의 분열상을 내심 즐기는듯하다. 한마디로 이 책을 평한다면 저자가 인용한 칼 마르크스의 말 처럼 지배계층을 공공히 하기위해 결국 피지배계층의 뛰어난 자들을 흡수하는데 편리하도록 다소 열린 형태의 지배체제를 공공히하기 위한 보수층의 어줍지않은 시도라 할수 있겠다. |
| 영원한 것은 없다. 만약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욕심 뿐일 것이다.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한, 그래서 궁극적으로 편하고 효율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인간들의 구극의 욕심만이 영원할 것이다. 이 책을 만난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다. 요즘의 세태를 제대로 포착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들 사이에 '귀차니즘'이란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나보다 불과 10살도 차이 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이 세상살이의 따분함에 물들고 있다. 그냥 세상사가 귀찮다는 것이 그런 사람들의 의식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책을 권하고 싶다. 항상 새로움을 쫓으면서 도전하며 그리고 생을 즐길줄 아는 보보스족으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할 생각이 없는지 묻고 싶다. 이 책의 저자는 세상의 흐름을 예리하게 포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하여간 요즘 세태를 생각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