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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몇 개월 만에 읽은 것 같다.) 한두 시간이면 족히 읽을 수 있는 분량(134쪽)이지만, 느낌은 잔잔하게 오래 남는다.
'나'라는 존재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은 바로 '나로서 나를 살 때'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데미안','큰 바위 얼굴'이라는 책이 오버랩된다. 물론, 다른 두 책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주제 면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흔히들 말하는 '내가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문제는 사춘기 시절 내내 골몰했었던 것이기도 하다. 지긋하게 매달렸던 그 문제에 어렴풋이나마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은 <데미안>덕분이었다. 그때 이렇게 결론(?)지었던 것 같다. '결국 사는 것은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우러르다가 데미안과 닮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처럼, 자기 안의 진정한 자아(데미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싱클레어)이다.' 다시 말해, '내 안의 나에게 귀 기울일 때, 들을 수 있는 그 아우성에 응답하는 삶'이다. 그러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남들의 것이 아닌 '나의 생각'을 가지고, '나의 목소리와 몸짓'를 내는 것"이 결코 말처럼 간단치는 않다. 죽는 날까지 풀어가야 할 화두인지도 모르겠다. |
| 책은 단지 정보만 전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책은 내용 뿐만 아니라 표지와 장정 그리고 제본까지 모든 것이 중요하다. 그 점에서 <북회귀선>의 작가로 알려진 헨리밀러의 <사다리 아래에서의="" 미소="">는 아주 좋은 책이다. 거침없는 표현과 대담한 파격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 <북회귀선>은 재미는 있지만 뭔가 부담스러운 책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뭐랄까, 이런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온화한 느낌이다. 이 책은 양장본이지만 내요은 딱딱하지 않으며 후안 미로의 눈에 띄는 그림을 담고 있지만 (그것도 10장이나) 폭발적인 여론을 불러일으킬 만큼 민감한 문제를 소재로 다룬 것도 아니다. 오히려 헨리 밀러와 후아 미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무 부담없이 그저, 소장용으로 갖고 있기에 딱인 그런 책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만만한 것은 결코 아니다. 왜? 너무나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나는 나로서 살 수 있는가?' '무엇이 행복인가?' 그대는 아시는가? 내용은 이렇다. (내용을 미리 써 놓는 것은 독자들에게 실례일 수도 있지만, 이 책 구하기가 그렇게 쉬운 것 또한 아니기에...) '어거스트'란 광대가 있다. 광대란 대본에 따라 사람을 웃기는 사람이다. 광대는 웃지 않아도 이미 분장을 통해 웃고 있다. 서커스단의 광대가 주는 웃음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다. 어거스트는 관객들의 웃음을 진정한 기쁨으로, 강물과 같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그 기쁨으로 바꾸고 싶어졌다. 어느날 밤 어거스트는 자신의 열망을 현실화한다. 무아경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평소 무아경에 빠진 그의 모습에 열광하던 관중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날밤 관중들이 어거스트에게 돌려준 것은 어거스트가 열망했던 진정한 기쁨도, 평소의 허무한 웃음도 아닌 욕설과 조롱 그리고 폭력이었다. 이제 설 곳을 잃은 어거스트는 택시를 잡아타고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간다. 나무 아래에서 꿈을 꾼다. 연옥에 갇혔다고 느낀다. 죽음을 본다. 마지막 순간을 무한히 지속적인 순간들로 미분한다.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우연히 한 서커스단에 합류한다. 허드렛일을 한다. 한 사람의 관객이 되어 동료의 공연을 관람하는 사치도 즐긴다. 광대라는 자신의 역할을 벗어버린 어거스트는 자유로웠다. 그런데 어느날 광대 '안토인'이 몸져눕는다. 어거스트는 안토인 대신 무대에 선다. 유명했던 광대 어거스트가 아닌 무명의 광대 안토인의 이름으로. 공연을 통해 그는 '어거스트'를 죽인다. 그리고 '안토인'으로서의 '안토인'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갑자기 유명해진, 병상의 안토인은 사장으로부터 사실을 전해 듣고 심장마비로 죽는다. 어거스트를 없앴고 안토인 마저 죽인 '어거스트'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기 위하여. 왜냐하면 광대는 다른 사람이 될 때에만 행복하지만, 어거스트는 이제 바로 자기 자신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빼 놓을 수 없는 것 한 가지. 어느 책이나 뒤에 저자나 역자의 짧은 글이 들어간다. 이 책의 번역후기를 쓴 철학자 김수영의 짧은 글 역시 헨리 밀러의 글과 후앙 미로의 그림과 어우러져 있다. 후기는 이렇게 쓰는 것이리라. 역자는 우리에게 권한다. '햇볕 많은 수요일 오후' 자기가 찾고 있는 행복은 어떠한 것인지 느껴보라고.북회귀선>사다리>북회귀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