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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도 경주. 경주는 992년간 신라의 수도였던 도시이다. 그렇기에 경주 자체는 하나의 박물관이자 , 경주의 역사는 곧 신라의 역사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신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주를 관광 차 많이 가 보았기 때문일 것 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한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안압지, 포석정...등등. 하지만 그 많은 유적과 유물을 보고도 신라인들의 삶, 사회, 정치, 종교, 생각 등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신라는 경주 평야에 있던 여섯 부족의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건국된 나라이다. 그후 밖으로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통합하였으며, 안으로 정치 체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22대 지증왕대에는 국호를 신라(新羅)로 확정 지었으며, 23대 법흥왕대에는 불교를 공인해 찬란한 불교 문화의 막을 올렸다. 이처럼 국가의 면모를 일신한 신라는 그 기세를 몰아 고구려, 백제를 병합하고 677년에는 삼국 통일의 성업을 달성한다. 통일국가 신라는 평화로움 속에서 눈부신 문화적 발전을 이룩해 갔다. -
우리가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신라에 대해 배워 온 대략적인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국사 교과서는 무엇을 토대로 만들어 졌다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는 신라가 망하고 나서도 수백 년이 지난후 고려 사람들에 의하여 선택되고 재생된 이야기 들이다. 어찌 보면 그 이야기는 신라 사람들의 연속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고려 사람들이 편집한 토막 난 외침에 불과하다. 고려 사람들이 신라의 이야기를 끊어 토막 토막 이어 붙였을 뿐인것이다. 그 사이 사이는 신라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것일수 있다. 바로 이것이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원래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왔다. 이렇게 해서는 신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그런 우리에게, 그리고 곧이 곧대로 학교에서 배운 내용만을 알고 있는 내게, 지금까지 지녀왔던 신라의 이미지를 한방에 깨뜨려버릴 엄청난 책 << "화랑세기" 로 본 신라인 이야기>> 를 만나게 되었다. 마침내 신라인이 이야기 하는 신라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놀랍다. 아니,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는 엽기적일 정도다. 5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한장 한장 읽어 나가면서 뒤통수를 한 방 맞아도 단단히 맞은 기분이 든다.
중국의 예속을 기준으로 삼고 저자인 김부식의 지극히 유교적 관점에서 편찬한 <삼국 사기>와 여러 나라의 많은 사실들을 조각나고 생략된 이야기로 전하고 있는 <삼국유사> 와는 비교를 논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화랑세기>> 인 것이다. <<화랑세기>> 에는 신라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그들이 직접 신라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현장 중계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동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소리에만 열심히 귀를 기울여 왔고, 또 그 소리들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화랑세기>>의 소리들을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그러했고. 하지만 가볍게 쉼호흡을 한번 하고 머리를 비운 채, 유쾌한 기분으로 읽어 나간다면 1300여년 전 실제로 신라에 살면서 그 많은 사람들의 관계를 씨줄과 날줄로 묶어 둔 김대문의 <<화랑세기>> 를 통하여 즐겁고 가슴 벅찬 신라 여행을 하게 된다.
한때 고고학과 지망을 절실하게 원 했었다.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웬 소 뒷걸음치는 소리냐'는 구박 아닌 구박을 너무 많이 들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만, 유적 발굴을 위해서 하루종일 쭈그리고 앉아 숨소리 하나 하나까지 아껴가며 붓질을 할 수있다면 원이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책 곳곳에 실린 선명한 유물 사진들을 보면 숨이 멎을 만큼 흥분이 되었다. 오랜 세월 어둠속에 있다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토우" 와 황룡사 옆에 펼쳐진 "신라 왕도 유적 발굴 현장" , 조금도 위엄이 바래지 않은 "금관" 이며 , 아직도 맑은 물이 소리없이 흘러 넘치는 안압지...
고고학자들에게 가장 기쁜 순간이라면 아마 , 유물을 손상하지 않고 제대로 모습을 갖춘 상태로 출토 했을때, 그리고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만한 것을 찾아냈을 때일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전(前)자는 이미 이뤄질수 없는 바램이리라. 화랑세기는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필사본으로써 존재하여 안타깝게도 위작설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후(後)자는 독자에게 달려있다. 저자는 그 열쇠를 찾아내어 우리 손에 쥐어 준것이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천년왕국 신라를 방문하는 일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인상깊은구절] 이제 신라 사람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통하여 전하고 있는 신국의 도를 밝히기로 한다. 13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신국의 도를 파치는 일은 쉽지 않다. 김대문 스스로 신국의 도를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풍월주의 세상을 우리에게 전할 뿐이다. 훈련받은 사람만이 이 책에 숨어 있는 신국의 도를 읽어 낼수 있다. 필자가 가지고 잇는 역사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직관을 가지고 이 책에 숨어 있는 신국의 도를 하나하나 밝히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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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처음 알았던 때는 고교시절 국사수업시간이었다. 이러이러한 책이 있는데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발췌본이 얼마전 공개되었다란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한 귀로 듣고, 입시 나오는 내용만 외우고, 흘려 버렸다.
1999년, 필사본 화랑세기의 번역본이 발행된 해. 텔레비젼의 <역사 스페셜> 을 통해 위작논란을 접했다. 같은 해, 이덕일, 이희근 공저 <우리역사의 수수께끼 2>의 한 부분을 읽고, <화랑세기>에 대한 현재까지의 논란과 진행과정을 짧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잊었다. 이덕일의 역사책이나 김별아의 <미실> 등 소설책을 읽으면서, 간간 다시 화랑세기를 떠올렸을 뿐.
어제, 2000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해설한 <화랑세기> 자체의 내용보다 저자 이종욱 교수, 그리고 저자를 도와준 이들, 화랑세기가 위작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다른 연구자들의 끈기와 열정에 더 관심이 갔다.
이 책의 자세한 내용이야 상세 정보를 보면 다 알 수 있으니 쓰지 않겠다. 내용을 제외하고 구성을 말하겠다. 이 책은 그냥 번역본이 아니고 저자가 해석한 내용별로 재구성한 구성이어서 같은 내용이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읽다보면 그들의 족보를 저절로 외울 정도이다. 저자가 험난한 연구과정을 겪어서인지 좀 거친 표현도 많다.
세계에 천년의 역사를 지닌 국가는 단 셋이다. 로마 제국(비잔틴 제국 합쳐서), 베네치아 공화국, 그리고 신라 왕국(정확히 천년은 아니다.) 앞서 두 나라의 역사 사료는 많다. 그러나 우리의 나라, 신라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있어도 주변 국가나,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후대 고려 시대의 기록이다. 그런데 이 <화랑세기>는 바로 당대 신문왕 시절 신라인이었던 김대문의 기록이기에 그 시대 신라인의 시각으로 신라인의 생활을 생생히 접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현대 우리의 시각이나, 우리가 그동안 생각해온 신라인의 상과 맞지 않는다고 위조로 몰아 가기엔 너무 소중한 자료이다.
위작 논란 이후 진행된, 포석사 등 고고학적 발견 결과는 이 책의 내용을 증명해 준다. 위작 논란을 빨리 매듭짓고, 이 소중한 자료를 우리 고대사 복원을 위해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현명할 듯 하다.
<화랑세기> 진위론과 상관없이 요즈음 나오는 학계의 연구결과나 소설, 심지어 사극 드라마에까지 <화랑세기>의 신라인의 문화와 생활이 반영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
저자를 비롯한 <화랑세기> 연구자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필사본이 아닌 원본 <화랑세기>가 꼭 발견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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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에 대한 진위 여부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그런 점과 상관없이 화랑세기는 참 재미있는 책이다. 우리가 몰랐던 신라의 이야기나 지금과는 또 다른 세상과 문화를 만나게 되는 일이 어찌 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 솔직히 이 책을 제목만 보고서는 막연히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읽어가면서 단순히 재미로 읽을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과 왕비, 풍월주들의 계보가 처음엔 너무 복잡하고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읽어가면서 그들을 둘러싼 신라인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다. 책 자체가 화랑세기 필사본을 주해하고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많아서 좀 난해했지만 제대로된 1차 사료도 별로 없는 옛 신라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볼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것이다. 위작인지 아닌지는 학계의 진지한 토론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고, 이 책에 나타난 신라인의 성풍속이나, 화랑의 모습과 역할이 후세인의 기대나 윤리관에 맞지 않는다고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 편견에 사로잡힌 편협한 모습일 것이다. 힘든 작업을 해낸 저자의 집념과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화랑세기에 대한 열린 시선을 가지고 진지하게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나는 더이상 당시 정권의 입맛에 맞게 재단되고 조작된 국민계도용 국사책을 배우는게 싫다. |
| 고구려는 기백으로, 백제의 경우 문화적 세련미로 다가오지만 신라는 삼국 통일에 대한 찬사보다는 비난을 받아온 시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이야기'는 그런저런 역사적인 평가 이전에 신라인, 혹은 최소한 신라 지배계급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어 충격적이었다. 남편을 두고도 색공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향유해온 여인들의 모습, 그리고 그 내면에 감춰진 각 혈통들의 암투는 그 어떤 드라마 보다도 더 생생했다. 위작이다. 아니다. 화랑세기를 두고 말이 많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건들을 생각해보면 위작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화랑세기를 위작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마도 오랜 유고 문화권으로서의 충격을 표현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유림들이나,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본다면 펄쩍 뛸 일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역시 중국의 풍습이 들어오기 전의 신라 모습에 대한 솔직한 시각이 좋았다. 아마도 또 다른 천년 후에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기록으로 남아 후세에게 정확하게 이런 식으로 비춰지지 않을지 내리는 비를 보며 슬그머니 웃음을 머금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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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고대사에 속하는 삼국시대와 그 후 통일신라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100여전이다. 당시 중국은 수, 당의 시대였는데, 중국의 역사를 공부하면 수, 당은 한, 은, 주 3대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나라로서 당시의 사료는 엄청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와 그 이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사서로는 겨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일 뿐이다. 물론 다른 사서도 존재하지만 모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베껴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도 모두 고려 중기 이후에 쓰여진 것이고,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자신이 유학자이고 유교를 숭상한 나머지 삼국사기를 중국을 중심으로 중국의 사서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고, 유학의 이념에 맞게 사실을 첨삭하여 역사적 진실을 상당부분 왜곡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역사에 불교의 색채를 덧칠하여 또한 사실을 그대로 전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통일신라 이전의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일차적으로는 사료가 빈곤하고 이차적으로는 사실의 왜곡으로 그 실상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그런데 <화랑세기>의 출현으로 이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통일신라의 사회상이 밝게 드러나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랑도는 신문왕 때 김흠돌의 난으로 인하여 공식적으로 폐지되는데, 당시 화랑세기의 저자인 김대문의 아버지 김오기가 화랑도의 장인 '풍월주'를 맡고 있었다. 김대문은 대대로 화랑도의 지도자를 배출한 자신의 가문의 계보를 밝힐 목적으로 이 <화랑세기>를 썼을 것이라고 저자 이종욱은 말하고 있다.
화랑도가 당시 김씨 왕조와 혈연적,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화랑도의 이야기는 자연이 당시 왕가를 중심으로 하는 지배층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당시 지배층의 생활상과 정신세계 등 문화 전반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화랑세기>는 충격 그 자체다. 현재의 우리 관점을 가지고 읽으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고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 부지기수이다. 분방한 남녀관계는 현재의 자유 연애 관점에서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고, 근친간에 이루어지는 결혼은 현재의 윤리적 관점에서는 천인공노할 패륜 그 자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열린 시각을 가지고 그 사회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스러울 뿐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몇 가지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지배층의 독특한 결혼 제도와 가족관계를 알 수 있다. 지배층의 한정된 인적 풀에서 배우자를 골라야 했으므로 근친간의 혼인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되고, 그 근친간의 결혼을 이른바 '신국(神國)의 도(道)'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합리화하고 있었다. 둘째, 역시 결혼 제도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은 모계로 이어지는 신라만의 독특한 신분제도이다.
셋째, '골품제'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넷째, 막연하게 알려져 왔던 '화랑도'의 구성과 그들의 활동 내용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왕위계승, '마복자' 제도, '색공', 아내를 이용한 신분상승 등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고정된 시각을 일단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라인의 본모습을 결코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한가지의 史實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점은 십분 이해하지만 너무 중언부언을 반복하여 지루한 감이 있었다. 그리로 한가지 제언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은 거의 <화랑세기>를 소개하는 것에 주요 목적을 둔 것 같은데, 앞으로는 당시 주변국의 역사를 비교하고 분석하여 신라만의 독특한 제도가 왜 이루어졌나 하는 것 등을 밝히는 작업을 했으면 싶다.
예를 들어 무덤 양식과 그 부장품 등을 분석한 결과 신라 지배층의 조상은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중앙아시아의 기마 민족의 일파로 알려지고 있다. 아마도 중국 사서에서 말하는 흉노족과 가까울 것이라고 짐작되는데,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연구되어 온 흉노족이나 그 밖의 기마 민족의 역사를 비교 연구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화랑세기>의 저술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화랑의 세보를 저술하는 것이었다. <화랑세기>의 분문에는 많은 사람들의 출생과 관련해 부모, 조부모들에 대한 기록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본문과 찬에 이어 나오는 세계에는, 각 풍월주의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그 윗대의 인물들에 대한 기록들을 전하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세보와 세계의 내용에는 중복되는 사항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
| 오래 전에 한국방송공사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방송하는 '역사스페셜'에서 '화랑세기' 필사본이 진본을 필사한 것인가 아니면 필사자 박창화씨가 창작한 '위작'에 불과한 것인가를 놓고 두 진영(진본임을 주장하는 소수의 무리와 위작임을 주장하는 다수의 무리)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것을 보고 혼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신라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이종욱 교수의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는 필사본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창작물이 아닌 진본을 보고 베끼거나 요약한 역사적인 사료임을 여러가지 증거와 정황들을 제시한 역작이다. 사실 일반인들에겐 옛 고서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연구자들의 수고와 땀이 깃들어 사료의 내용들이 현대어로 번역되고 분석된 다음에야 그 혜택을 볼 수 있음을 볼 때 사료의 객관적인 진실성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더 많은 이들이 옛 사료들에 대한 연구를 한다면 화랑세기 뿐만 아니라 아직도 묻혀 있는 많은 수의 고서나 유적들이 천년의 침묵을 깨고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 기대한다. |
| 화랑세기 필사본이 학계에 알려지자 신라화랑의 시대에 대한 충격적인 기사를 그대로 받아들일수 없어 일제하에서의 악의에 찬 위작이나, 창작소설이라는 비난과 의혹을 사왔다. 저자 이종욱은 화랑세기를 분석하여 신라왕가의 독특한 집단 계급체제의 원리를 찾아내고 현재 유교적 관점에서는 문란하기 그지 없어보이는 기사가 사실 분명히 그 내부에 규칙을 갖고 구성원들이 인정하고 따랐던 사회였음을 주장한다. 사회,정치,경제,가족관계등을 전부가 아닌 발췌본 화랑세기를 통해 곰곰이 뜯어보고 자기가 지금까지 집필한 논문을 이 책에 집대성한다. 수많은 토우사진과 다양한 신라경주의 모습을 컬러사진으로 실어서 신라사람의 입장에서, 화랑세기의 입장에서 유물들을 관찰해 확대해 보여준다. 아직 학계에서 부정하고 있지만 나름데로 향가나 포석사,구지등의 유물적 증거가 단순히 일제하에서 한 개인이 위조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지은이는 화랑세기의 위조를 반박한다. 신국 신라에는 신국의 풍속이 있다..로 요약되는 그의 주장이자, 화랑세기의 기사는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우리나 남을 자신의 잣대로만 제어보려했던가를 반성하게 해준다. 사실 일본천황가의 결혼풍습같은 것은 화랑세기가 보여주는 근친혼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신라통일이후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후, 그 눈으로 보는 화랑세기의 신라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상한 사회였을지는 몰라도 처용가를 부르는 신라사람의 모습은 오히려 화랑세기가 보여주는 신라인의 모습에 더 가까이 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거대한 기존 학계에 맞서는 일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더구나 역사학계처럼 인맥이 작용하는 곳에서 확증은 없지만 자신의 믿음에 전부를 걸고 이렇게 진지하고도 열성적으로 저술활동을 하는 이종욱이라는 사람에게서 화랑세기의 진위를 떠나 공감과 격려를 보내면서 두껍고 중복되고 생경스러운 용어와 상황이 가득한 이 책을 덮는다. |
| 김대문의 '화랑세기'는 제목만 남아있는 책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필사본 화랑세기가 존재하며 그것을 통해서 지금까지의 통념과는 다른 신라인들의 모습을 재구해내고 있다. 근친혼이나 화랑, 새로운 향가 등의 흥미로운 내용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답답했던 것은 아직도 필사본 화랑세기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탓이었다. 근본적으로는 원본을 찾아야 풀릴 문제일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찬반 양측의 입장이 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대부분의 학자들은 필사본 화랑세기를 위작으로 보고 있고 저자를 비롯한 소수의 학자들만 진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저자가 일본 어딘가에 있을 원본을 찾고 있다고 했으니 그 성과에 기대를 해본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지금까지의 신라사회, 더 나아가 고대 사회 전체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주는 충격과 흥미가 과연 사실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