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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유배지 문학의 진수(?)
"현대판 유배지 문학의 진수(?)" 내용보기
작가가 제주도로 내려갔다는 말을 들은 지가 얼마 전인 것 같은 데 이년정도가 흘렀단다. 세월의 빠름이란. 나에겐 돌아본들 작가가 가진 그 이년동안 무얼 했는지를 이년정도 더듬어야 할 것 같은데, 작가는 이렇게 알뜰한 작품을 들고 다시 내게로 왔다. 작가의 말 어느 곳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15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작가를 따라 그를 안 지 얼마인지 대략 꼽아보
"현대판 유배지 문학의 진수(?)" 내용보기
작가가 제주도로 내려갔다는 말을 들은 지가 얼마 전인 것 같은 데 이년정도가 흘렀단다. 세월의 빠름이란. 나에겐 돌아본들 작가가 가진 그 이년동안 무얼 했는지를 이년정도 더듬어야 할 것 같은데, 작가는 이렇게 알뜰한 작품을 들고 다시 내게로 왔다. 작가의 말 어느 곳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15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작가를 따라 그를 안 지 얼마인지 대략 꼽아보니 10년 정도인 것 같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작가의 작품도 참 많이 변한 듯하다. 내가 그를 안지 5년까지는 유난히 행복했던 것 같다. 단행본은 물론이거니와 문학지에 실린 그의 글을 발견하는 날은 왠지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를 알고 난 5년부터 이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작가만큼 초조했던 것 같다. 솔직히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짝사랑을 계속 유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조금은 고민도 한듯하다. 숫제 나의 평일지 모르지만, 작가가 가진 제주도에서의 2년이란 유배생활과 다름없었으리라, 심신을 다독이는 기회와 다시금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인고의 세월이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보면 그의 이번 작품은 현대판 유배문학의 법주에 넣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작가에게 관심을 가진 만큼 작품의 깊이는 느껴진다. 물론 작가가 가진 그 고민의 천분지 일도 안되겠지만. 작가에 대한 짝사랑의 결말은 유배지로 보내야 할 것 같다. 한 오년 정도는 더 지켜보면서 그 결론을 내려야겠다. 어떻게 변해갈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s********k 2005.09.27.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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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호랑이는 바다로 사라졌지만
"윤대녕의 호랑이는 바다로 사라졌지만" 내용보기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리뷰어당첨에서 떨어지고 홧김(?)에 책을 구해 읽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쁘거나 가슴벅차오르지 않았다. 작가는 2년간 제주에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을텐데 난 도대체 작가가 무얼 말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호랑이를 죽이지 않고 극복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거? 환영과 환청을 키울 만큼 과거 어두웠던 대학생시절 시대적 상황과 형이
"윤대녕의 호랑이는 바다로 사라졌지만" 내용보기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리뷰어당첨에서 떨어지고 홧김(?)에 책을 구해 읽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쁘거나 가슴벅차오르지 않았다. 작가는 2년간 제주에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을텐데 난 도대체 작가가 무얼 말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호랑이를 죽이지 않고 극복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거? 환영과 환청을 키울 만큼 과거 어두웠던 대학생시절 시대적 상황과 형이 프락치로 몰려 자살하도록 방관하고 일조한거? 그로 인해 소원해진 병상에 계신 아버지와의 관계? 세상을 냉소적이고 한껏 물러서 이도 저도 아닌 경계인으로 사는 불안한 현대인을 이야기하려고 한 거였나? 누구나에게 있는 트라우마를 영빈과 주변인물들을 통해 이야기 해주고 싶었던 걸까?   어둠속에서 봤다는 그 백조일손의 혼백들이 외지인인 영빈만을 제외하고 자신들끼리만 쑥덕거렸던 그 날의 환각때문에 호랑이는 폭풍속에 더욱 거세게 울어댔고 해연의 아버지가 실족했던 갯바위에서 잡은 영물물고기를 놓아 줌으로써 호랑이를 떠나 보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멋진 이야기였다. 다행히 해연과 주인공은 호랑이를 살렸지만 히데코와 사기사와 메구무는 호랑이와 함께 자신도 죽었다는 점에서 자신을 덮칠 수도 잠시 재워두고 평생을 함께 갈 수도 있는 감기 같은 호랑이를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선문답으로 던져주고 있다.    하지만 장황하게 늘어선 낚시이야기, 물고기요리법은 마치 어렸을 때 포커나 블랙잭을 모르고 보던 '도신'類  의 영화를 본 것 같았다.  사실 낚시를 좋아하고 해 본 사람이야  릴이 끌려가는 느낌에 물때가 어쩌구 저쩌구를 실감나게 그려 볼 수 있지만 낚시에 생면부지인 사람은 장황한 글에 대충 읽고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그들이  성수대교붕괴 현장에서 같은 택시를 탔다가  9년이 흘러 우연히 동사무소에서 만났다는 설정자체도 현실과 억지로 엮으려는 것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생뚱맞게, 정말 생뚱맞게도 그가 순수문학에서가 아니라 현실참여적인 요소를 가미하고자 4.3항쟁으로 인한 제주도민의 원한을 슬며서 끼워넣었다는 것이다. (평론에서는 몽환적인 前스타일에서 벗어나 사회역사적인 쪽으로도 참여했다고, 새로운 리얼리티라고 극찬했다)   사실 이 평론을 보고 책을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나중에 학살터에서 꿈꾸든 혼령을 본 것으로 제주4.3항쟁은 끝이었다. 외지인에 대한 식당아줌마의 살갑지 않은 접대에서도 아주 쬐금 나오려다 말았지만. 그랬다.  이것이 날 크게 실망시켰다.   이 글을 쓴 이유가 새 소설을 악의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쓴 것이 절대로 아님을 적는다. 기실 윤대녕의 이전 소설들을 네 권이상 읽은 열혈독자로서 기대했던 새 작품이 소인배의 소심함에 걸렸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n*****9 2005.11.11.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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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기에 호랑이를 항상 곁에 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기에 호랑이를 항상 곁에 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용보기
윤대녕의 책, 두께를 보고 적이 놀랐다. 이거 쉽게 읽혀지지 않겠는걸? 그는 글을 쉽게 쓰지 않는다. 적어도 두세번을 읽어야 그가 하려는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인터뷰에서 그런 말이 있었다. 사람들은 항상 변화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스타일을 계속 고수하면 변화가 없는 인간으로 노력하지 않는 인간으로 치부된다.... 한 작가의 글을 즐겨읽다보면 식상하단
"인간이기에 호랑이를 항상 곁에 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용보기
윤대녕의 책, 두께를 보고 적이 놀랐다. 이거 쉽게 읽혀지지 않겠는걸? 그는 글을 쉽게 쓰지 않는다. 적어도 두세번을 읽어야 그가 하려는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인터뷰에서 그런 말이 있었다. 사람들은 항상 변화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스타일을 계속 고수하면 변화가 없는 인간으로 노력하지 않는 인간으로 치부된다.... 한 작가의 글을 즐겨읽다보면 식상하단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영화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다. 아무리 신곡이라도 같은 작곡가의 음악을 들을 때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하지만 식상하단 것과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과는 약간 다른것 같다. 윤대녕의 글에 항상 나타나는 주제는 자신의 내면세계에서의 갈등이다. 그 갈등이 형체화되서 이번에는 호랑이로 묘사된 것이다. 눈의 여행자에서는 아이로, 에스키모 왕자에서의 성성이 같은 존재이다. 인간이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살고, 이름모를 두려움과 고민속에 방황을 한다. 게다가 누구나 결국 경계인의 시점이 오기 마련이다. 내안에도 아직 형상화되지 못한 호랑이가 한마리 살고 있다. 그 존재는 가끔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막연한 감정을 분명한 존재로 그려내 더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 같다. 주인공들은 모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나 또는 아주 가슴아픈 상처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성수대교의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으로 삶의 급격한 전환을 겪은 사람들이다. 거기에 그들의 주위에는 항상 죽음이 함께 한다. 아버지의 죽음, 성수대교의 비극, 히데코, 남자친구의 죽음 등. 특히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수도 있다. 히데코는 이 상처로 인해 생긴 호랑이를 죽이는 방법으로 자살을 택한다. 여기서의 호랑이는 번민이지만 나의 일부인 존재다. 글속에서도 호랑이를 죽이면 나를 죽이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래서 주인공 영빈은 죽이는 대신 호랑이를 내 밖으로 놓아준다. 호랑이의 빈자리를 공허함을 채워주는 존재로 아이가 등장함으로써 나의 위치와 경계인의 시점을 융화시켜주는 것이다.
r*****1 2005.10.12.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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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제주와 불안감을 생각하며..
"여름날의 제주와 불안감을 생각하며.." 내용보기
이번 여름 여행으로 제주를 다녀왔었습니다. 호랑이는 바다로 갔을까를 읽다보니 그 여름 더운 햇살속에 돌아다닌 제주도의 풍광이 눈에 아른거리네요. 현실과 책의 교묘한 조화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책에는 실존하거나 혹은 했던 인물이 2명이나 등장합니다. 하나는 사기사와 메구무와 김영갑 갤러리의 주인장님이신 김영갑님이시지요. 그래서 이 책이 정말 소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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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여행으로 제주를 다녀왔었습니다. 호랑이는 바다로 갔을까를 읽다보니 그 여름 더운 햇살속에 돌아다닌 제주도의 풍광이 눈에 아른거리네요. 현실과 책의 교묘한 조화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책에는 실존하거나 혹은 했던 인물이 2명이나 등장합니다. 하나는 사기사와 메구무와 김영갑 갤러리의 주인장님이신 김영갑님이시지요. 그래서 이 책이 정말 소설인지 실제 얘기인지 혼동스러워 하면 읽었습니다. 두분 다 직접 만났적은 없지만 김영갑 갤러리엔 다녀온 적이 있어서 더 그런 모양입니다. 누구나 사람들 마음속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습니다. 호랑이란 불안감을 지칭하는 다른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불안감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도 늘 제 맘속에 존재하고 도사리고 있는 그 놈을 잡고 싶어서 힘들때가 있습니다. 그 놈이 있어서 힘든것인지 힘들어서 그 놈이 있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요. 윤대녕 님의 소설 가운데 가장 장편으로 읽은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별로 지루함이 없이 술술 잘 넘어가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하고 의문점 하나가 생겼습니다. 해연과 히데코와의 관계, 그들의 불협화음이 달랑 남자 하나때문이라는 설정말이예요. 그건 너무나한 감정인거 같습니다. 어찌되었던 내 자신에 도사리고 있는 호랑이를 어떻게 제거 또는 조화스럽게 가지고 있어야 할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 좋은 책이었습니다.
c********1 2005.10.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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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호랑이는 무엇일까
"나의 호랑이는 무엇일까" 내용보기
<알다시피 바다는 계속 순환하며 변하고 있어. 해와 달의 기울기를 따라 보름씩 주기적으로 변하지. 거기다 미묘한 다른 변화까지 합쳐져서 말이야. 놀라운 사실이지만 바다는 계속 성장하고 있는 거야. 어느 때부턴가 나는 물때의 변화에 따라 내 몸이 리듬을 타고 움직인다는 걸 깨달았어. 나 역시 태양과 달의 리듬에 흡수돼버린 거지. 물이 살아나기 시작하면 내 몸도 달처
"나의 호랑이는 무엇일까" 내용보기
<알다시피 바다는 계속 순환하며 변하고 있어. 해와 달의 기울기를 따라 보름씩 주기적으로 변하지. 거기다 미묘한 다른 변화까지 합쳐져서 말이야. 놀라운 사실이지만 바다는 계속 성장하고 있는 거야. 어느 때부턴가 나는 물때의 변화에 따라 내 몸이 리듬을 타고 움직인다는 걸 깨달았어. 나 역시 태양과 달의 리듬에 흡수돼버린 거지. 물이 살아나기 시작하면 내 몸도 달처럼 부풀어오르는 걸 느껴.>   사람은 누구나의 상처와 어두운 심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 역시 사람마다 방법의 차이가 있다.   영빈은 어느날 방 한구석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호랑이를 발견한다. 달래고 얼러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그 녀석. 그 녀석을 잡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간다. 그리고 낚시를 하러 다닌다.   제주도의 표면은 아름다운 섬이다. 하지만 내면은 아름답지 않다. 아픈 역사가 있고, 해연의 아버지가 익사한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에서 영빈과 해연, 그리고 히데코가 교차하며 서로 마주한다.   그들은 자신 내면의 호랑이를 끝까지 마주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소설을 만났다. 그리고 조금 우울해졌다. 왠지 내 안의 호랑이를 마주대한것 같아서.     그리고...... 일본인, 남, 여, 그런 속박이 싫어요. 그런 속박의 안에서 안주하는 것도 싫고요."   *사기사와 메구무*   스스로를 '4분의 1의 한국인'이라고 불렀던 일본의 여류 소설가.(할머니가 한국인)  이양지, 유리미씨 등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계 여성작가로 꼽힘. 2004년 4월 11일 도쿄 자택에서 자살.   그녀를 알게 되어 기쁘다. 그녀의 소설들을 찾아 읽어볼까 한다.
p******0 2006.09.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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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잡다....
"호랑이를 잡다...." 내용보기
이 책을 읽고서 느낀 점은 하나의 축소된 고통받고 있는 인간 사회를 들여다 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걸 다시금 인식시켜 주는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은 3사람으로 요약된다. 주인공 영빈과 해연, 그리고 실제이름이 아사카와 유미코인 히데코 이렇게 3사람이다. 3사람 각자 서로다른 과거의 아픈 경험으로 인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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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서 느낀 점은 하나의 축소된 고통받고 있는 인간 사회를 들여다 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걸 다시금 인식시켜 주는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은 3사람으로 요약된다. 주인공 영빈과 해연, 그리고 실제이름이 아사카와 유미코인 히데코 이렇게 3사람이다.
3사람 각자 서로다른 과거의 아픈 경험으로 인해 영혼에 상처를 입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주인공 영빈은 형의 자살과 그로인한 어머니의 죽음 등으로 해연은 한참 사춘기시절 어머니의 외도로 인한 부모님의 이혼으로 히데코는 첫사랑의 상대였던 사람의 자살사건으로...
모두 상처입고 몸부림치는 자기 환영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게 보여지고 있다. 히데코는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주인공 영빈은 구석기시대의 발자국크기가 자기와 일치하는 경험을 계기로 자기환영을 극복하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온다. 해연은 고독감과 절망감을, 어느정도 거리는 두고 있지만 영빈을 통해 위안을 삼으며 살고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호랑이를 잡을 수 있게 된 특별한 이유를 제시하지 안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이점이 더 맘에 든다. 혹 드라마틱하게 어떤 특정한 사건 하나로 호랑이를 잡았다고 썼다면 이 책의 매력을 떨어뜨리지 안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낚시를 하면서 바다의 특성을 알아가는 과정과 해연과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를 극복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그려지고 있다.
해연또한 영빈과 진전없는 관계가 지속되지만 영빈의 제주도여행으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으면서 그리고 히데꼬의 출연으로 전환점이 되지만 그것이 결정적 요인이였다기보다 영빈과 대화를 통해서 지속적인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이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책에서 주인공 영빈이 하는 말에서도 나오듯이 인생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를 받아들이고 자기자신만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소설로서 잘 보여준 책이라고 보여진다.
다만, 몇가지 궁금증이 의문으로 남는다.
책속에는 물고기 요리법을 두 세장에 걸쳐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을 굳이 나열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해연에게 이메일로 물고기요리법을 보냈다는 것만으로 책의 주제를 이끌어가는 데에 아무 무리가 없음에도 말이다.
두번째로는 영빈이 섯알오름(학살터)에 길을 잘못들어 4.3사태 희생자들의 영혼들과 맞닥뜨리는 부분이다. 작가가 의도한 바가 있었을 거 같은데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안는다.  (혹 reviewer 독자중에 이해가 가신 분들이 있다면 리플 부탁드립니다.^^)
정말 오랜만에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긴장감있게 읽은 책이였던 거 같다.
시간날 때 보는책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틈틈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y******6 2023.04.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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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호랑이를 만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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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내내 시큼한 바다 내음을 맡았던 것 같다.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의 시간과 마주치기도 했고 늘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그것과 마주치기도 했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독서였다. 때로는 한 권의 책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너무나 무거운 것들을 얻게 되는 법이다.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야말로 얼마나 무거운가.   작가 윤대녕이 말하는 대로 “돌아보고 싶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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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내내 시큼한 바다 내음을 맡았던 것 같다.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의 시간과 마주치기도 했고 늘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그것과 마주치기도 했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독서였다. 때로는 한 권의 책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너무나 무거운 것들을 얻게 되는 법이다.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야말로 얼마나 무거운가.

 

작가 윤대녕이 말하는 대로 “돌아보고 싶지 않은 것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소설의 몫”이라면, 소설가의 글쓰기란 과거의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들어올린 뜨거운 자기 성찰은 아닐지. 마치 뜨거운 물 위를 걷는 것 같았다는 그의 말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건너뛰고 싶었던 과거의 시간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 일이었을지. 생뚱맞다고 생각했던 호랑이의 정체가 실은 내 삶의 어느 길목에도 버티고 있을 거란 사실이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던 것도 같다. 영빈을 따라 제주도로 내려가 그의 낚시 경험담 속에 푹 빠져들었으면서도, 그리고 정작 호랑이가 나타났을 때 덤덤했으면서도 책장을 다 덮고 나서 나는 문득 내 삶이 불안하게 느껴져 왔던 것이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 한 마리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불안. 언제 어디서 닥칠지 알 수 없는, 삶 전체를 파멸시킬 수도 있을 호랑이 한 마리에 대한 두려움. 내 생을 기본적으로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은 불안의 덩어리들이었다. 어디엔가 숨어있을 호랑이 한 마리였다. 영빈이 우연히 만난 한국계 일본작가 사기사와 메구무가 소설 속에서 말하고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불안한 법이고 불안은 누구한테나 운명적으로 주어진 조건의 일부”이니까.


윤대녕은 내면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영빈과 해연을 통해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제주도에서 낚으려고 했던 것들은 지나갔지만 결코 지나가지 않은 것들, 그냥 덮어두고 싶지만 덮어둘 수 없는 것들이다. 영빈은 호랑이를 잡으러 내려간 제주도에서 지독하게 낚시에 몰두한다. 죽음을 넘나드는 경험을 하면서도 지독하게 낚시에 매달리는 그의 모습 속에서 치유되지 못한 상처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끊임없이 낚아 올리는 물고기들의 세밀한 묘사는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그가 있는 제주의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그가 끊임없이 경험하는 죽음의 이미지나 비현실적으로 큰 몸체를 갖고 있는 물고기나 어느 순간 그를 위협하는 호랑이의 이미지는 그가 존재하는 제주의 공간을 비현실적인 곳으로 만든다. 바다의 근원성에 기대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대로, 영빈에게 제주도는 생의 근원을 경험하는 곳, 영원과 맞닿아 있는 어떤 근원성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죽음의 이미지는 그러한 영원을 상기시킨다. 그는 그렇게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지난 시간들의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수많은 물고기들을 낚으며, 그리고 마침내는 호랑이를 만나며.


영빈에게 다양한 물고기들의 이름과 요리법에 대해 알려주는 해연 역시 내면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집 안 가득한 물건들은 그녀 내면의 텅 빈 공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마음의 공허를 눈에 보이는 것들로나마 채워야 할 것 같은 어떤 급박한 불안이 그녀의 삶을 드리우고 있다. 그녀의 상처는 어머니의 외도로 붕괴된 가족이다. 어머니의 외도로 끊임없이 낚시를 하며 방황하던 아버지처럼 호랑이를 잡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간 영빈의 모습 속에서 그녀는 화해하지 못한 채 흘러가버린 젊은 날의 그 혼란스러웠던 시간들과 만났을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잡았던 물고기들에 대해 영빈에게 설명해 주면서 영빈과 마찬가지로 지독하게 고독한 상처의 시간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영빈과 해연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누구나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을 상처들이다. 치료받지 못한 시간들이다. 영빈의 제주도행은 해연에게도 비슷한 의미의 고독을 제공한다. 그들은 전화선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처음으로 만났던 성수대교 붕괴 현장에서부터 그들은 연결되기 시작했으니까. 그 연결선은 아마도 상처의 시간들에 대한 공유일 것이다. 삶이 무너졌던 그 순간 그들은 함께 있었다.


영빈과 해연 사이에 등장하는 히데코(혹은 유미코)라는 여자 또한 상처의 시간을, 그 아픈 느낌을 전달해주는 인물이다. 그녀 삶의 방황은 자신에게 문신을 새겨준 남자친구의 자살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계 일본인이었던 작가 사기사와 메구무에 대한 묘한 경쟁의식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던 그녀는 한국과 일본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한다. 그녀는 영빈과 해연의 삶 속에서 서성거리다 결국은 그 방황에 혼란스러운 마침표를 찍는다. 그녀를 죽인 것은 상처들이었다. 죽음은 상처의 치유되지 못한 흉터마냥 소설 곳곳에 드러나 있다. 해연의 아버지와 영빈의 형, 히데코의 남자친구, 히데코, 그리고 실존인물인 한국계 일본작가 사기사와 메구무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죽음은 시대적인 폭력과 인간 내면의 근원적인 불안에 내몰린 이들이 선택하는 극한이다. 그들의 죽음은 편안한 휴식의 이미지가 아니라 견뎌내지 못한, 아픈 상처들이 터져버린 듯한 느낌의 죽음들이다. 그 죽음의 이미지 속에서 자꾸만 마음이 아파져 오는 걸 어쩔 수 없다.


소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죽음의 이미지들 속에서 나는 소설가의 글쓰기가 그것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간 시간들 속으로 되돌아가 거기에서 다시 화해와 용서의 시간으로 나아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죽음들을 경험해야 했을까. 화해와 용서로 나아가는 설정이 너무나 상징적이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삶을 극한으로 내몰았던 폭력과 불안으로부터 삶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생의 의지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시대적인 폭력이나 삶의 근원적 불안으로부터 생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막 같은 것 말이다. 굳이 용서와 화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책장을 덮고 나서, 나는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바닷가, 어딘가 웅크리고 있을 호랑이 한 마리도.

a*****1 2007.07.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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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고기를 살려주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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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이후로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읽게 되는 윤대녕의 소설 오랫동안 연락하고 지내지 못한 친구를 보는것처럼 반가움과 함께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다 몇 장 넘기지 않아서 적힌 이 말 "이해한다는건우선 보는 것이리라." 아하, 지금 내가 하는 행위의 이유가 아닌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어나가다...무언가 낯익음을 느꼈다. 기시감같은... 아니 어디서 이런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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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이후로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읽게 되는 윤대녕의 소설 오랫동안 연락하고 지내지 못한 친구를 보는것처럼 반가움과 함께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다 몇 장 넘기지 않아서 적힌 이 말 "이해한다는건우선 보는 것이리라." 아하, 지금 내가 하는 행위의 이유가 아닌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어나가다...무언가 낯익음을 느꼈다. 기시감같은... 아니 어디서 이런 죽음의 냄새를 맡았던가...생선회의 회백색같은...아 그래[천지간]이구나 윤대녕이란 작가를 처음 만났던 것이 [천지간]이었는데 그의 최후의(현재로선) 책을 읽으며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다니 과연 이번 소설은 [천지간]의 진화형일까 아님 퇴보인걸까... 나는 지금까지 윤대형은 단편 만이 볼 만한 작가라고 생가했었다 이번 소설을 보면서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반성한다 낯설면서 익숙한 타인의 제대로 걷기 위한 방황을 공감할수 있는 소재로 리얼리티를 살려, 이렇게 멋지게 보이고 있지 않냔 말이다. 단언하건데 [천지간]의 연장선에 서서 윤대녕의 가장 윤대녕 다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가 있다...아니 있었다일까 영빈과 해연은 오래전 한번 만난 적이 있고 9년이 지나 '권태에 빠진 신이 장난을 치듯' 우연히 다시 만난이후 2년이 지나도록 애매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관계가 정체된 이유는 각자의 불안에 있었다 '새로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쓰던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여자에겐 '벽에 박혀있는 못을 빼내고 남은 구멍'같은 공동(空洞)을 '누군가 자신을 버리고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채워져있고 남자는 현실속에 머물 곳을 찾지 못하는 불안으로 호랑이를 잡기 위해 제주로 내려간다. 생각해보면 이 둘이 느끼는 불안이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별다를것 없는 이둘의 불안이란것에 생명이란것이 걸리면서 남들과 달라져 버렸다 눈앞의 떼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이 이후 제대로된 생활이 가능하겠는가 그런 불안을 호랑이로 키운 영빈은 호랑이를 잡아야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게 된것이다. 그런데 영빈은 왜 하필이면 바다에 가서 호랑이라를 잡아야만 했던 것일까 바다에 대해 '어항만큼도 모르는' 그가.. 본능이 아니었을까 바다 이어야만 하다고 "세상에 태어나기 전엔 누구나 열달이라는 긴시간을 짜디짠 물속에 있었다" 양수와 바닷말의 성분이 유사한 이유처럼 우리가 바다에서 온 것처럼 영빈은 살아가기 위해서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 어느 바다가 아닌 '온통 검고 노란 제주'인것도 연유가 있었다 영빈이 발자국 화석을 취재차 들린 제주에서 자신의 발에 딱맞는 발자국을 만났을 때 '자신의 존재가 비롯된 최초의 지점으로 돌아와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언가 막 시작되려고 하는 태동의 절대 지점' '바로 이 지점에서 삶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이게 한 곳이 제주였으니... 영빈은 이곳이야 말로 호랑이를 쫓아낼수 있는 장소란것을 운명처럼 알게 된것이다. 당장 제주에서 지낼 준비를 하고 해연에게 집을 맡기는 대신 숙제(물고기 요리법)를 떠맡아 제주의 바다에 안겨버렸다 거기에서 낚시를 하면서 호랑이를 잡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호랑이를 낚기 위한 낚시였것만 재밌게도 호랑이는 어느 시점에 다다라 사라져 버렸다. 그가 쫓아내기도 전에... '무수한 목숨들을 낚아 밟아 죽이고 나서야 생명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는 김영갑 화백의 말과 같이 영빈은 낚시를 통해 죽인 수 만큼의 물고기들에게, 목숨을 동냥질하며 그동안 만나 온 죽음에 덧씌워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밟아온 것이다. 영빈과 해연이 처음 만났던 성수대교에서 죽은 목숨들은 각재기와 학꽁치떼들도 낚고,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 작가 메구무의 목숨은 바다의 왕자라는 감성돔으로, 히데코라는 이름으로 거짓된 관계를 맺었던 유미코의 목숨은 호박돔으로 낚아 건지고 섯알오름에서 학살당한 백서른 두명의 목숨은 독가시치와 긴꼬리 벵에돔, 부시리로 낚아올려 겨우 죽음과 삶의 경계쯤 도착한 영빈이 마지막으로 참돔을 낚아 해연을 건지고 해연의 아버지가 잡으려다 파도에 휩쓸려 죽게한 돌돔을 낚아 자신도 건진 것이다. 건져진 목숨, 돌돔의 아가미에 칼을 가져 가다 저절로 멈춰진 것은 등뒤에서 지켜보는 호랑이때문이었다. 이 돌돔을 죽이면 호랑이도 같이 죽게 되리라.... 하지만 영빈은 돌돔의 바늘을 빼내고 조심스레 바다에 풀어주었다 호랑이는 영빈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몸을 돌려 바위너머로 조용히 사라졌다 어쩌면 호랑이는 영빈의 일부로 한 4분의 1쯤의 혈액에 해당하는 진정 그 다운 어떤 일부이지 않았을까 그 일부에 집착하며 아예 없애버리면 그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던 경계인의 시점이 아닌 한 곳에 편중된 사람이 되었을것이다. 4분의 1의 피가 사라지면 생명에 위협을 받는 것과 같이.... 영빈은 그제야 깨닫지 않았을까 자신이 호랑이를 죽이기 위해 온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바다로 와야했단것을 말이다 온전한 자신으로 남기 위해 결국 바다가 그를 치유하고 해연을 화해시키고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하였다 호랑이가 왜 바다로 갔느냐? 살아남기 위해서 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영빈이 제주 추자도에서 참돔을 낚아 올린후 살려 보내는 장면 "그래,바깥 세상을 본건 오늘이 처음이겠지 그게 곧 죽음이랄는 것도 알고 있겠지 떨고 있구나. 어쩌다 너는 물고기로 태어나 이 새벽에 난데없이 죽음의 순간을 맞이 했는가. 돌아가거라 돌아가 삶을 거듭하거라 이제 나는 더 이상 산 것을 죽이지 못한다."
s******o 2005.10.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호랑이와 함께 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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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작가를 두고 존재의 시원을 탐구하는 작가라 한다. 이 책 역시 존재의 시원에 대한 물음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야겠다. 취재차 내려간 제주에서 수만년전 최초의 조상이 남긴 족적과 자신의 발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아 떨어지자 영빈은 ‘영원한 순간과 조우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불어 영빈은 자신의 존재가 비롯된 최초의 지점으로 돌아와 있음을 느꼈다.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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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작가를 두고 존재의 시원을 탐구하는 작가라 한다. 이 책 역시 존재의 시원에 대한 물음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야겠다. 취재차 내려간 제주에서 수만년전 최초의 조상이 남긴 족적과 자신의 발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아 떨어지자 영빈은 ‘영원한 순간과 조우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불어 영빈은 자신의 존재가 비롯된 최초의 지점으로 돌아와 있음을 느꼈다. 무언가 막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태동의 절대지점을 말이다.’ 라고 느낀다. 그것은 상처입은 자신을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 제주도라는 생의 낯선 곳으로 발을 들여놓게 만든 것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면 영빈은 수많은 상처를 만나고, 상처들과 소통하고, 그리고 치유한다. 영빈과 해연 그리고 히데코의 상처에는 죽음이 함께한다. 그리고 파라다이스라는 제주도 역시 죽음이라는 상처를 안고 있다. 형의 죽음과 그것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영빈,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외도로 상처 입고 살아가는 해연, 고등학교때 만난 남자친구의 자살과 문신으로 새겨진 그 날의 상처까지 안고 살아가는 히데코. 이들은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다. 상처 입은 자는 상처를 알아보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들은 서로가 그들의 상처를 소통한다. 그것은 어쩌면 살기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호랑이도 가뭄이 들면 산을 떠나 바다로 간다’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짚어간다. 그리고, 해연과 히데코, 영빈의 상처는 모두 바다에서 치유된다. 해연은 마라도에서 영빈이 욕조 가득 잡아준 물고기떼 속에서, 히데코는 영빈과 함께 간 제주도 삼양해수욕장에서 은빛 멸치떼 속에서, 그리고 영빈은 추자도 절명여라는 곳에서, 각자의 호랑이에게서 벗어 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히데코는 자살로서 두 사람과 사뭇 다른 길을 가게 되는데 이것은 영빈과 해연은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이지만, 히데코만은 몸에 새겨진 문신으로 표현되는 신체적인 외상도 함께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쩌면 히데코의 죽음으로 인해 영빈과 해연은 그들의 상처를 치유를 가속화 했는지 모르겠다. 영빈의 말처럼,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죽으면 안 된다. 그만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순수한 타인들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왜 제주도였을까? 아름다움으로 포장된 섬 제주도도 알고 보면 4.3사태로 인해 대학살이 이뤄진 곳이라는 것은, 우리 삶도 결국은 표면의 평온함 속에 감춰진 상처투성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을까? 모르겠다. --; 첫 장을 펼치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지금껏 읽은 윤대녕 작가의 글과 사뭇 다른 것을 하나 느꼈다. 나만이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바로 색감이다. 그의 단편 혹은 산문집에서는 글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면 이번 소설은 그것과는 다르다. 딱 떨어지는 말을 찾을 수 없지만, 이전의 글들이 한 폭짜리 그림이였다면, 이 소설은 대형 벽화같다. 장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전 장편에서는 느끼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소설이 지금껏 장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처음부터 다시 한번 읽어도 좋을 소설이다. 좋은 글 써주시느라 몸까지 상하신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건필하시길...

[인상깊은구절]
살생을 해야 득도합디다. 그렇게 무구한 목숨들을 밟아죽이고 나니 비로소 생명이 아름답다는 걸 깨닫게 되더이다. 그 업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물고기 몇 마리 죽이는 게 뭐 그리 대숩니까. 사람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게 진짜 살생이지요
YES마니아 : 플래티넘 s****0 2005.10.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슴에 호랑이 한마리를 키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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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소설 책이다 . 작가 윤대녕 님의 상상 속에서 탄생된 호랑이가 등장하는 이런 묘사는 좀처럼 지워지지않는 무서운 불안 한 상태에서 비유되는 상징적 묘사로 주인공 영빈이 서울에서 제주도로 내려가서까지 내내 시달려야 했던 마음 속의 공포로 해석 해 본다. 영빈이 호랑이를 잡으러 환상의 섬이며 , 고향 같은 느낌의 제주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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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소설 책이다 . 작가 윤대녕 님의 상상 속에서 탄생된 호랑이가 등장하는 이런 묘사는 좀처럼 지워지지않는 무서운 불안 한 상태에서 비유되는 상징적 묘사로 주인공 영빈이 서울에서 제주도로 내려가서까지 내내 시달려야 했던 마음 속의 공포로 해석 해 본다. 영빈이 호랑이를 잡으러 환상의 섬이며 , 고향 같은 느낌의 제주도로 피신 아닌 피신 을 하는것은 , 작가가 보여 주었던 주제의 "존재로의 회귀" 즉 존재를 찾고 , 잠재된 불안 감정을 치유하고자 함이며 , 회복 하기 위해서 애쓰는 386 세대의 대표적인 양상을 보여 주려 함 이지 않을까 ? 영빈이 62년생 마흔 살로 , 19살 연하의 해연을 만나는 것 부터가 비범한 , 성수 대교 붕괴 사건 직전의 택시 안에서 의 우연 한 만남이 결국은 같은 피해 망상적 증상의 공통 분모로 결속되어 끝내 연인으로 발전해가는 이야기 전개로 예사롭지 않은 만남의 구성 으로 짜여져 그들의 아픔을 서로 상처릉 쓰다듬어 주는 애정으로 엮어지게 된듯 하다. 영빈과 비슷한 개인사적 아품과 가족의 구성에 대한 에기치않은 변화들이 해연의 여린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 비운 을 겪어야 하는 때에 운명의 결합을 예견 하는 사건 - 성수대교 붕괴 사건 은 비슷한 시기에 발생된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과 함께 이시대 에 겪어야 만 했었던 치명적 시대 상의 한 편린 으로서 , 기억의 끝과 시작을 찾아나선 영혼의 기록 이었다. 해연의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통해서 희망을 찾는 돌파구를 보이는반면 , 영빈은 또 한명의 중요한 인물인 히데코를 등장 시켜서 3각 관계의 묘한 감정과 , 히데코 역시 겪어야 하는 내면의 감정 속에는 할머니로 부터의 시대 역사적 감정의 골육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보여지는 , 이름마저 속 시원히 대지 못하고 할머니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고통을 간직하고 있고 , 비슷한 아품을 자살로서 종식하고 마는 사기사 에구무! 호랑이를 잡는방법을 자살로 택해야 했던 사기사 에구무 외에도 , 제주도의 유명한 오름 전문 사진가 김영갑씨와의 만남과 그 대화는 선문 선답 처럼 이어지는 문어체식 표현에서 작가가 의도적인 방법으로 택한 방식 같은데 , 실존 인물의 자세한 묘사는 리얼 리티적 미학 요소 창조의 장점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그리고 해연과의 이메일 통신 에서 물고기 요리법을 너무도 자세하고 세밀하게 작성하여 보여주는 방식은 이전 의 소설 기법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실험적 시도라 생각되어 특이했었다. 영빈이 낚시 도중 , 물때를 잘못 맞추어 겪어야 하는 파도에 밀리는중 만나는 갯 호랑이 나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호랑이의 두려움에 치유하러 갔던 제주도에도 본질적으로 전해져오는 역사적인 4.3 사건의 참혹했던 현실과 부채가 남아 있음을 알았을때 암울한 실정 이었지만 호랑이를 잡는 거룩한 성소로 환상 하게 되어 제주도의 양면성이 표현 되었다고 본다 . 이제 민주화된 세상에 사고와 표현의 자유의 은덕으로 볼 수 있는 이 소설의 탄생은 환상적 기법을 살려 신화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8.90 년대의 회상과 그 결별 그리고 21세기와의 화해를 고심하는 과정속의 흥미로운 전개가 돋보이는 의미있는 소설이라고 본다

[인상깊은구절]
영빈은 신발과 양말을 벗고 족적을 따라 그대로 걸어가 보았다. 영빈은 키에 비해 발이 작은 편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방금 벗어놓은 신발처럼 화석이 발에 딱 들어맞았다. 발바닥 중간에 무지개 모양으로 패인 아크(arch)까지 영빈의 발에 그야말로 꼭 들어맞았다. 순간 무어라 할 수 없는 전율이 영빈의 몸을 휘감았다. 영빈은 걷기를 멈추고 랜턴 불빛에 의지해 무릎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상한 감동이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영빈은 눈을 감은 채 그대로 몇 분을 서 있었다.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자신의 발자국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발바닥은 차가웠지만 몸은 점점 따뜻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 열기가 맥박을 따라 몸 구석구석 활기차게 퍼져나갔다. 마치 영원한 순간과 조우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불어 영빈은 자신의 존재가 비롯된 최초의 지점으로 돌아와 있음을 느꼈다. - 본문 80~81쪽에서
e*****1 2005.10.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