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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씨가 석방되었다. 이러한 수퍼 갑의 횡포는 비단 대한항공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만연한 부끄러운 자화상들이다. 물질 만능주의속 인간실종에서 비롯된 최고 갑의 추락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사회도 군대처럼 일이 터져야만 그 때뿐, 나아지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자본에 의해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에 적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앞에서 점차 노동에 대한 가치는 희석되어 노동이 사람에게 주는 값진 땀의 선물들은 왜곡되어져 온 결과들의 산물들만 난무하다. 이 책의 저자 강준만 교수는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로 글을 써 온 인물이다. 나 또한 한국 현대사 산책을 의미있게 보았다. 저자는 최근에 출간한 이 책 '개천에서 용 나면 안된다'에서 갑질 공화국의 비밀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저자의 의도에 가깝게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우선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진작에 끝이 났음을 말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개천에서 용 나도 사회에서 제대로 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구실을 해도 개천에서 용 나는 건 그저 발악과 몸부림 뿐 포기하고 실용적인 노선을 선택하는 것이 살 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정상적인 시스템들속에서 벌어지는 한국만의 사회문제와 오류들을 지적하며 바로 잡기를 외친다. 남이 문제일 수 있지만 남을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책임을 남탓으로 돌려 사회문제를 외면시하고 무슨 짓을 하든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행태들을 보이는 갑질 공화국에서 남이 아닌 우리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경제만을 외치며 달려온 세월속에서 문제는 경제라는 빌미를 내세워 국민들을 생각하지 못하게 세뇌시켜 버렸다는 데 있다. 뉴스는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려면 세계경제가 살아나야 한다고 말하면서 모든 걸 우리가 아닌 밖의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어 버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밖이 아닌, 우리나라 자체가 문제이다. 가계빚이 문제이고, 실업이 문제이며, 국내경제가 문제인 것이다. 국민들은 속고 있다. 아니, 속고 있는 것 같지만 먹고 살 만하니까 가만히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말을 듣고 아까운 청춘들이 저 차디찬 바닷가에서 죽어 간 것을 벌써 잊었는가 그대 그래도 그들은 어른들 말을 믿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대보지만 우리는 무언가? 속고 있는 걸 알면서도 나라가 잘못가고 있음에도 가만히 있다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라 말인가, 남이 아니 우리가 문제다. 정부도 문제지만 깨어나지 못하는 국민들이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은 기적을 이룬 나라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교육을 비롯 사회 전반적인 문제들을 짚으며 희망의 나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덴마크는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정착이 된 나라다. 이런 분위기는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도 포함되지만 모든 국민이 인식하고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것은 "그저 이렇게 하자"고 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박근혜 정부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들은 그저 대통령이나 해먹고 물러나면 그만일 뿐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그러했다. 무언가 지속되는 위대한 정신들이 없다. 때문에 4년에, 5년에 한번씩 자리 이동만 있을 뿐 우리 삶은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 더 이상 희생은 그만두어야 하고 중지 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 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내가 아닌 우리가 함께 공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의 자녀들이 대한민국에서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를 긍정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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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답게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은 오지 않는 걸까.사는 재미가 갈수록 희박해져 간다.삶에는 다양한 시기,해야 할 삶의 목표,희망 등이 있을 것인데,내 의지에 의해 뭔가를 도모하여 하나 둘씩 이룩해 나가려 해도 개인를 둘러싼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요인은 개인의 꿈과 희망까지 뭉개버릴 수 있다는 것이 한국 사회로부터 불어 오는 맵싸한 분위기이다.잠재적 재주와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태어나면서 물려 받은 가정의 경제,환경적 불우함은 개인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 보지도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는 압축 성장을 하면서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려 왔다.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유일신으로 여기고 오로지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추었던 지난 시절은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 매고 내 자식,내 새끼만 출세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간주하여 청춘의 특권마저 포기한 채 자식 농사에 전념했다.나아가 사회,국가는 가난에서 탈출하여 모두 잘 먹고 잘 살자는 허울 좋은 슬로건을 내세워 혹세무민 정책을 써 왔다.결국 한국인의 GDP가 경이로울 정도로 제고되면서,'한강의 기적','4대 아시아 용'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겉으로 보이는 성적이 좋기에 한국인으로 살아 간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여겨지던 시절이 엊그제만 같다.
그런데 압축 성장의 이면에는 찌든 부정부패,죽지도 않는 패거리 문화,세습 재벌,기회주의가 버젓하게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IMF 즉 외환위기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인 부패도는 어디까지 치달았을까.나라를 이끈다고 하는 위정자들은 입만 열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말을 밥먹듯,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잘도 읊조린다.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되돌아 보면 부정.부패의 점철이었다.정경관언이 짜고 치는 고스돕과 같이 찰떡 궁합마냥 유착(癒着) 관계를 보여 주었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도 각계의 유착 관계는 음양의 조화를 보이고 있다.그들은 그것이 살아 가는 수단이고 방편이라고 변명을 내세울지 모르지만 그러한 사회 양태가 누적되면서 힘없는 계층은 늘 소외되면서 낮은 삶의 질이 세습화 되어 가고 사회,국가도 힘없는 계층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실상이다.
현재 한국은 OECD국가 가운데 삶의 질이 가장 낮은 국가로 나타나고 있다.자살율,이혼율,3포(연애,결혼,출산) 현상,비정규직 양산(量産)은 사회 구성원 간의 이질감 조장,지니계수 높음(인구와 소득 관계상 불평등)현상으로 이어지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절망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경제 계획이 사회 구성원의 가난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주었지만 부와 권력을 갖은 계층은 그 이전부터 존속되어 오고,고도 성장기에 부와 권력에 대한 항상심을 사유재산쯤으로 여겼던 것은 아니었을까.인간의 본능,속성은 큰 것에서 찾을 필요가 없듯,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은 탓할 사안은 아니다.부와 권력을 어떻게 획득하고 가치 있게 활용했는가,부와 권력이 절대 다수의 국민들의 땀과 눈물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것을 함부로 사용해서도 휘둘러서도 안될 것이다.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는 정.경.관.언계의 계층들은 스스로 사회의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여기면서 모든 분야에서 최고라고 여기면서 관계층간의 돈독한 유대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 힘을 쓰고 있다.
한국 사회의 환부,부조리 등을 조목조목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미래의 보다 밝은 한국 사회를 제시하고 있는 강준만 저자는 한국학의 대명사로 생각된다.작금 한국 사회는 갑이 사회를 불도저로 밀어 재끼는 형국에 놓여 있다.일일이 말할 수는 없겠지만 대한항공 회항(回航)사건을 필두로 갑이 을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은 비단 오늘 어제 일은 아니건만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소수의 계층들이 다수의 을 계층을 사노비 다루듯 마음대로 부려 먹는 작태를 그냥 계속 놔둘 수는 없는 사회적 문제이기에 강준만 저자는 갑 계층이 되기 위해 기회 비용을 아까워 하지 않고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서 현재의 입장과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삶의 이력을 비롯해서 해서는 안될 갑질의 횡포,폭언,비하,수치심 안기기,자존감 무너뜨리기 등에 이르기까지 갑 계층이 행하고 있는 모든 단면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갑질을 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계층는 뭐니뭐니해도 정치인,고위공직자,고용주,직장상사가 아닐런지.내가 첫직장에 들어 가면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는데 계약서상에는 갑과 을이 있었다.서류상의 갑과 을의 관계는 말 그대로 사규에 맞게 일하라는 것이고,이를 어겨 회사에 중대한 문제 및 (경제적)손실을 안겼을 경우에는 사규 및 일반법에 의해 처벌된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부모는 논과 밭을 팔아서라도 자식을 서울로 서울로 유학을 보내 좋은 대학,좋은 학과를 나와 좋은 직장,괜찮은 규수를 찾아 혼인에 골인한다.당사자는 그의 유전자를 뿌려 자식을 낳아 자신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어 나가고 있다.이것은 극히 인간이라면 갖을 수 있는 본능이고 속성이다.그런데 개천에서 용이 난 당사자는 미꾸라지가 될 수도 있었던 시절은 아예 상기하기도 싫은 듯 현재의 신분과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비슷한 계층끼리 패거리 문화를 조성해 나간다.눈 하나 깜박하지도 않고...현재 한국 사회는 고인력 포화 상태에 있는 나라로 사회 구성원의 의식 수준도 사상 최고 수치이다.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보이고 있는 무능 사회,사회 안전망 부실은 국민들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겠는가.'세월호'침몰 사건,4대강 사업,자원 외교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왜 한국 사회는 정의,상식을 운운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단 말인가.신자유주의는 자본 및 자본가에 의한 돈과 물질을 숭상하는 시대의 전형이다.갈수록 삶은 재미가 없고 팍팍하기만 한데 10%도 되지 않은 계층들이 현재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생산해 내고 있다.'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없듯 모든 계층이 부정과 비리로 얼룩져 있는 가운데,힘없는 계층들의 피와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이 도서를 읽는 계층은 아무래도 한국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이 글을 읽다 보면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솓구칠 것이다.또한 머리로는 이해는 되지만 부조리를 뿌리 뽑기 위해 적극 나서려는 마음은 거의 없을 것이다.안타깝게도 나도 그런 부류이지만...갑 계층에게 고한다! 부와 권력이 시민의 힘으로 나올진대 함부로 갑질을 해대서야 되겠는가.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갑 계층이 되었을지라도,태어나면서 은수저를 물고 나와 갑 계층이 되었을지라도,기회를 잘 타 갑 계층이 되었을지라도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나는 다음 대선에선 정의와 상식을 살려 나가려 하고,절대 다수의 을 계층의 피와 눈물을 닦아 줄 후보자에게 한 표를 아낌없이 던지겠다.그리고 이러한 사회 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한 캠페인 및 연대 운동이 있다면 적극 동참하겠다.개인의 힘으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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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나는 케이스는 과거에 비하면 그 수가 현저히 줄었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이런 케이스가 발견될 때마다 언론은 그 뒷이야기나 숨은 눈물을 조명하면서 얼마나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무언의 압력을 준다. 개천에서 나오는 용의 케이스가 몇 만명 중에 한 건만 나타난다면 실패의 책임은 개인에게 돌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의 경우만 보더라도, 금메달 이후에 그가 살던 비닐하우스 집이 크게 부각된 바 있다. 열악한 환경과 불리한 조건 사이에서 큰 성과를 올린 그의 결실은 '타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서라도 나만 노력한다면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양학선의 금메달로 인해 운동선수들이 겪고 있는 불리한 처우, 열악한 조건은 배부른 소리가 되고 만다. 이런 일들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개천에서 용나는 이런 케이스의 장본인들이 결국은 자신이 빠져나온 개천을 더 짓밟고 못살게 한다고 한다. 체계화된 시스템의 상단부로 올라온 개인이 겨우 올라온 자리에서 피라미드가 무너지길 바랄리 없다.
최근 그 사용 빈도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어난 단어가 있다면 바로 '갑'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계약서상 주도권을 쥐는 쪽과 상대적 약자인 '갑'과 '을'에서 유래되었다. 지금 우리는 갑질 횡포에 제대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 또한 언제든 갑의 위치로 변한다는 것이다. 사업상 을의 위치에 있던 사람도, 편의점이나 주유소에 가면 갑으로 변해 그들 위에 군림하고자 한다. 누구나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은 갑을 목표로 삼고 언제든 을의 지위를 짓밟을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이를 다른식으로 확대시킬 때 모든 것에 순위를 메기고 더 가치가 높은 것을 정하는 것은 갑과 을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저자는 그 시작이 6.25 전쟁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와 돈 버는 과정이 정당화 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지표와 최악의 인간지표가 병존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만들어 냈다.
뉴스에서 조현아의 뉴스나 백화점 모녀 무릎 꿇림 사건이 보도 되면 의견은 양분된다. 참을 수 없는 갑의 횡포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의견 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 시스템이 만들어 낸 희생자라는 반대 의견도 보인다. 서열화된 위계사회에서는 어느 위치에 있더라도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누구든 이러한 시스템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하물며 아랫단에 위치한 구성원 대부분은 어떻겠는가. 오직 상단으로 올라가는 것 밖에는 탈출의 방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결국 학벌의 노예, 수직관계의 공고화 등을 생산해내고 능력주의라는 허울좋은 슬로건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승자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환상에 빠져서, 부모나 주변에서 받은 기득권 따위는 애써 외면하게 된다. 상대적 성공은 대학 서열화나 직장의 차별화로 젊은 세대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저자는 이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결국은 사회 전체적으로 큰 손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국 전쟁의 유산으로 시작된 결과나 성과 위주의 사회가 경제 발전을 거치면서 서열화 과정을 거치고 밑바닥에서 올라온 용들이 마침내는 개천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지금 우리 현실이다. 이는 특히 학력에서부터 시작되어 직장 및 서울, 지방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고, 젊은층에서부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우리는 비교의 저주에 빠져서 모든 가치 평가의 기준을 남에게 맞춰놓고 있다. 지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개천에서 용나오는' 시스템에서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그래서 저자는 맺음말의 제목을 '비교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라고 했다. 어쩌면 그 말에 모든 답이 들어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뀔 희망은 있는가에 대해 여전히 강준만 교수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이는 여전히 지금의 체제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는 꿈 꿀 수 없음을 인정하고 적응하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가 시사하는 바는 그런의미에서 가볍지 않다. 우리는 그 속에서 여전히 희박한 '용'의 확률만 믿고 스스로를 낭비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메가스터디 신화의 주인공 손주은의 최근 바뀐 생각은 한번쯤 되새겨 볼만하다.
목숨 걸고 공부해도 소용없습니다. 생각이 모자랐어요. 취업공부, 고시공부에 목매는 건 두렵기 때문이에요.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다. 안전망이라도 찾자는 것죠. 양극화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발버둥일 뿐입니다. 공부해서 취업한들 대기업 부속품밖에 더 되니까. 얄팍한 인생밖에 더 됩니까. 이제 공부는 구원이 아니라, 기득권층 뒷다리만 잡고 편하게 살자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p.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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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우리 사회는 갑과 을의 사회로 이분화되었다. 회사에서도 거래처간에 갑과을이 존재하고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갑과 을은 여전히 존재했다. 학교를 가도 갑과을은 쉽게 찾아낼 수 있고, 사회의 어느 단면을 보더라도 갑과 을은 우리의 시야에서 항상 눈에 띄었다. 어느때부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갑과 을은 우리 곁을 맴돌고 있었다.
이 책은 옛날 우리 어렸을 적에 가난한 집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면 상류사회로 진출 할 수 있었던 그 가능성이 있었던 그 시대에 많이도 써먹었던,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을 비틀어 놓은 듯한 제목에서부터 '개천에서 용 나면 안된다'는 말로 우리 사회, 갑질 공화국의 사회적인 문제들을 파헤쳐 놓은 책이다.
대한항공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신문에서, 방송에서 그리고 인터넷에서 한동안 들끓었던 갑질사회의 진면모를 볼 수 있었던 사건. 모두가 알겠지만, 사건은 미국의 케네디공항에서부터 시작한다. 메뉴얼대로 응대를 하지 않는다고 소리지르는 오너가의 부사장. 그리고 메뉴얼대로 응대했다고 말하는 사무장과 허둥지둥 오너가의 부사장을 대하는 태도는 갑질사회에서 충만한 대우를 받던 이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며 고통이었나보다. 그리해서 허허벌판 이국의 공항에 버려진 박창진 사무장, 그가 그 곳에서 느꼈을 비참함, 모욕에 치를 떨어야 했던 그 시간들을 이 책을 읽으며너 감정이입이 되어 순간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인터넷에서 오르내릴때는 내일이 바빠서 그 감정에 동요되지 않았는데, 새삼스럽게 우리가 사는 사회가 그러한데 새삼스럽게 유난을 떠는가보다. 그런식으로 메마른 감정속에서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책 속에서는 그러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결론은 박창진 사무장의 외로운 길, 내부고발자의 길을 응원하기로 했다.
부천의 모 백화점에서 주차알바하던 어느 청년에게 무릎까지 꿀리고 사과를 받았던 모녀사건이며 배달원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도록 하는 어떤 아파트들. 그리고 이제는 확실하게 자리잡은듯한 젊은 대학생들의 신입대학생들 군기 잡기 문화, 강남의 모 아파트에서 있었던 경비아저씨의 안타까운 죽음.
"내가 누군지 알아?" 하면서 자신의 위치르 부각시키려고 하는 갑질을 하고자 하는 이들. 그들에게 손석희씨는 "당신은 누구시길래?"라고 도리어 물어보라고 했다는 말에 약간은 시원한 쓴 웃음이 밖으로 나간다.
조선시대보다 더한 계급사회? 맞다 우리는 조선시대보다 더한 계급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계급의 상위층으로 가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를 한다. 엄마의 지긋지긋한 '공부해라'는 잔소리를 어쩌면 잠결에도 들었을 사람들이 아마도 많을것이다. 이 사회가 계급사회가 더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이 계급사회가 점점 더 견고해지고, 비 정상적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우리는 알았기에 우리의 자식들이 공부도 하지 않고 사회로 나가서 갑이 아닌 을로 살아야 할 때 얼마나 무릎을 꿇어야 하고, 굽신거려야 하는지를 눈으로 보지 않아도 뻔한 결과물이기에 어쩌면 그들의 인생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잔소리를 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취업하지 못한 청춘들은 이제 이 사회에서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청년들의 미래를 강바닥에 처박았다는 말로 이명박정권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며 4대강으로 22조 원을 쓰는 대신에 '청년경제' 혹은 "청년뉴딜'의 이름으로 4대강과는 다른 방식의 재정정책을 했더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과연 이대로 좋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제발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자신들의 미래의 삶에 대해 더 고뇌하고 깊이있는 생각으로 그에 맞는 실천을 할 수 있는 청년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사고방식은 출세해서 편하게 살자는 기존의 틀이 아니라, 출세한 나는 대단한 사람이고 나를 모르는 것은 대단히 무식한 자라는 것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그들의 사고방식, 자기네들끼리 개천에서 난 용의 갑질스러운 혜택을 받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용이 되겠다며 태야을 향해 계속 날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예 생가고차 하지 않은 채 관성과 타성에 따라 계속 나아간다면, 전쟁 같은 삶의 토대위에서 번성한 갑질 공화국 체제하에서 '지금 이대로'를 고수한다면, 그건 바로 '생각하지 않는 범죄'가 될 것이라고 아픈 충고를 날려준다. 강준만 교수는.
2015.6.12.소지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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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 용과 미꾸라지를 구분하는 신분 서열제를 깨자. ‘사회 진화론’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갑을 관계가 생기고 ‘갑질 공화국’이 탄생된다. ‘억압 이양의 원리’에 따라, 상층부 갑질은 지위의 고저에 따라 낮은 쪽으로 이양된다. ‘갑질 공화국’ 탄생 비밀의 열쇠는 “개천에서 용 난다”시스템 때문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 시스템에는 사회적 신분 서열제와 더불어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 즉 ‘갑질’이라는 실천 방식을 내장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개천에서 난 용’은 자신을 배출한 개천을 돌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데에 앞장선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의 사회적 기회비용이다. 개인과 가족 차원에서 용이 되기 위한 ‘각개약진’에 몰두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공동체와 사회는 와해되어가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된 후 승자 독식을 하는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깨지 않는 한 지금의 과도한 지역 간 격차, 학력ㆍ학벌 임금 격차, 정규직ㆍ비정규직 격차와 그에 따른 ‘갑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1장 ‘갑질공화국’의 파노라마 한국을 가난에서 구제하고 마침내 우뚝 서게 한 그 경쟁의 힘이, 오늘날에는 한국인을 괴롭히는 심리적 원인(비교중독증)이 되고 있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불안과 공포라는 괴물을 피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경쟁사회이고, 사회적 지위나 재산이라는 기득권이 사람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현대판 세습사회다. 그렇다면 옛 것을 없애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텐데, 그건 정치의 몫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갑을관계의 진짜 비극은 갑의 갑질에 있다기보다는 갑질을 당한 을이 자신보다 약한 병에게 갑질과 다를 바 없는 을질을 한다는 데에 있다. 한국이 ‘갑질 공화국’이 된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압축성장의 부작용(황금만능주의 등), 효율을 기하기 위한 1극 중심주의가 낳은 서열주의,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 중심의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위계화, 수출지향형 경제정책으로 인한 기업사회 구축, 부정부패와 출세주의, 법치의 실종, 연고주의ㆍ정실주의ㆍ패거리주의 등 무수히 많은 요인이 얽혀 있다. 이 모든 요인은 “개천에서 용난다.”시스템과 관련 있다. 제2장 ‘갑질’을 가르치는 교육 한국 교육의 근원적인 불행은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외에는 다른 삶을 향한 출구가 이 사회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즉, 교육은 누가 용이 될 것인가를 가려내는 선발의 의미만 있을 뿐이다. 이런 교육시스템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의 ‘더불어 사는 능력’이 세계 꼴찌 수준이고, 한국의 가정교육은 사실상 ‘갑질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그런 교육을 받고 모교의 현수막에 등장하는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대학 서열을 신분 계급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대학의 수능점수 배치표 순위가 대학생들의 삶을 지배한다. 그들에게는 수능은 생존투쟁이고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게 된다. 능력주의의 슬로건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허구이거나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
능력은 주로 학력과 학벌에 의해 결정되는데, 고학력과 좋은 학벌은 주로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성공은 오직 자기 노력과 힘으로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20대들이 수능점수를 능력의 중요한 지표로 간주해 그에 따른 차별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그런 미국식 능력주의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부풀려 받아들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능력이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되는 ‘세습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제3장 지위 불안과 인정투쟁 자신의 지위가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이것이 ‘지위 불안’이다. ‘이웃 효과’에 따라 비교대상을 누구로 삼느냐에 따라 자신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달라지고 불안정도도 달라진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남들처럼 살고 싶어 하지만, 하향 비교는 없고 오직 상향 비교만 하면서 산다. 이웃에게 기죽지 않으려는 심리도 적잖이 작용한다. 세계적인 명품업체들이 첫 출시를 한국에서 하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전 국민이 ‘남들처럼’이나 ‘남들보다 더’를 외치며 살아간다. 제4장 갑과 을, 두 개의 나라 낙수효과는 세계은행마저 “불평등 성장은 부유층에만 이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012년 국내 상위 10퍼센트의 소득 비중은 45.5퍼센트로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52퍼센트)보단 낮지만 프랑스(32.7퍼센트)와 일본(40.5퍼센트)보다 높다. 상위 10퍼센트와 하위 10퍼센트 간의 소득격차는 1990년 8.5배에서 2014년 12배로 벌어졌다. 독일(6.7배)이나 프랑스(7.2배)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양극화가 소비를 억제해 경기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음에도 한국에서 낙수효과에 대한 신앙은 ‘경제적 종교’라고 할 만큼 여전히 강고하다.
“삼성에서 임원 하면 2~3대가 먹고살 수 있다”는 말은 ‘코리안 드림’의 슬로건이 되었다. 우리는 삼성을 바꾸고 개혁하기보다는 나와 내 가족의 各自圖生을 위해 삼성에 들어가는 길을 택했고, ‘공평한 분배’보다는 오히려 자녀교육에 투자해 ‘가족의 영광’을 실현하겠다는 各個躍進 의식과 행태를 갖고 있으며, 이게 낙수효과의 든든한 터전이 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이 부추기는 경쟁은 진정한 경쟁이 아니다. 그런 경쟁에서 탄생한 용은 나라야 망가지든 말든, 좋은 자리 있을 때 최대한 내 몫을 챙겨 떠나겠다는 ‘먹튀 바이러스’에 감염된 용이다. ----------------------------------------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없애고 다른 어떤 모델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이 뚜렷이 없는 것이 아쉽다. 다만 해결책으로, 저자는 첫째 학력ㆍ학벌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여 S대 가는 것만이 용 되는 것이 아닌 사회를 만드는 것과 둘째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을 슬쩍 언급하고 있다. 둘 다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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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적부터 우리 사회에서 내려오던 금과옥조와 같은 격언.실제로 그런 사례가 벌어질때면 언 론을 비롯한 여러 매체들은 연일 대서특필을 쉬지 않는다. 그런 현상을 두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우리사회는 이를두고 적극 장려하거나. 본받을 일로 여겨지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이에대한 강준만 교수의 분석과 비판은 어떻게 전개될지 상당히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상당히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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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난다.의 사전적 의미는 미천한 집안이나 변변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훌륭한 인물이 나는 경우를 이르는 말. 비슷한 속담으로는 개똥밭에 인물 난다,시궁에서 용난다,시궁창에서 용이 났다가 있습니다. 이 책제목 개천에서 용 나면 안된다? 뭐지?라는 궁금증에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것이기에. 그리고 소제목으로 갑질공화국의 비밀 또한 그 이유가 너무나 호기심을 유발했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짙은 안개처럼 그 앞을 내다볼수 없는 나만 보이고 타인은 전혀 볼수 없는 그런 상황들이 펼쳐집니다. 뉴스나 각종종편방송, 인터넷 등 수없이 많이 나오는 사건과 사고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 모습이 일그러진 거울처럼 보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대한민국의 모습을 여러 사람들의 글과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비빔밥처럼 되어있습니다. 저자는 저자의 이야기만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다른 시선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독자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꼭 토론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읽으면서 나의 모습의 일부를 들켜버렸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야하는 한 국민으로써 무엇을 봐라봐야하고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게되었습니다. 이 책의 구성은 갑질로 해외토픽이 되었던 사건으로 시작해서 교육,주거지,외모,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왜 개천에서 용이 나면 안되는지를 신랄하게 꼬집어주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채워진것일까요?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고 너무나 빠른 급성장으로 인해서 이같은 부작용현상들이 나타난것일까요? 체했을때는 민간요법으로 손을 따서 피를 보거나 약을 복용해야 나아지는데 이럴때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저자는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연대적 개인주의 또는 개인주의적 연대로 새로운 길을 열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는 것. 여기서부터 출발하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시선을 중시하며 서열과 계급을 만들어 집단이기주의 가시덤불 울타리속에서 이제는 스스로 걸어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용중에 동국대네팔인 유학생이 인도와 네팔의 카스트제도에 대해서 비판하지만 그는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카스트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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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 사건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전반에 만연해있는 '갑질'에 대해 논하는 책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책, 먼저 제목을 보면 살짝 이상하다. 개천에서 용 나면 왜 안 된다고 하는걸까? 그것이 갑질 공화국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고 세상을 다시 한 번 낱낱이 살펴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칼로 도려내는 듯한 날카로움을 느끼게 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의 끝을 찾아낸 듯해진다. 제목에서 느낀 의아한 느낌은 머리말을 읽으며 공감으로 바뀌었고, 책을 읽어나가며 불쾌하면서도 시원한 생각이 든다. 현 시대를 살아가면서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것을 콕 짚어내어 해석해주니, 이제야 비로소 '아, 그런 거구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개천에서 난 용을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꿈과 희망을 품는다.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보면서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마저 갖는다. 그런 확신은 충분한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국제사회에선 '개천에서 난 용'이기 때문이다. (7쪽) "개천에서 용 난다"는 단순한 속담이 아니다. 그건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모델이자 심층 이데올로기로서 무게와 중요성을 갖는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코리언 드림'의 토대지만, 동시에 사회적 신분 서열제와 더불어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 즉 '갑질'이라는 실천 방식을 내장하고 있다. (9쪽) 우리는 개천에 사는 모든 미꾸라지가 용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이론적 면죄부를 앞세워 극소수의 용이 모든 걸 독식하게 하는 승자독식주의를 평등의 이름으로 추친하는 집단적 자기기만과 자해를 저지르고 있다. (11쪽)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는 말은 용과 미꾸라지를 구분해 차별하는 신분 서열제를 깨거나 완화시키는 동시에 '개천 죽이기'를 중단하고 개천을 우리의 꿈과 희망을 펼칠 무대로 삼자는 뜻이다.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는 말은 '국가'니 '전체'니 하는 말을 앞세워 일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 물론 성공을 거둔 뒤에도 희생을 당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 '철면피 심리'를 끝장내자는 뜻이다. (12쪽)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념적,정치적 선악 이분법에 사로잡혀 남 탓만 하기에 바쁘며, '너희들 때문'이라고 하는 증오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는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모든 문제의 주범은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라고 말한다. 이 책의 시작이자 독자가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현실이다. 어떤 논리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책을 읽어나가며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목차만 읽어보아도 무엇인지 모를 화가 치밀어오른다. 자세한 내용이 담긴 글을 읽다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뒷골이 당긴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말도 안되는 일이 즐비하다. 이 또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고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갑과 을이 존재하며, 갑이 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수많은 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것을 추구하며 불에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자신을 소모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떠올리며 '독일 철학자 니체는 "광기란 개인에게는 예외가 되지만 집단에게는 규칙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287쪽)'는 말에 집중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시대의 모습이고 문제점을 깨닫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문제 자체를 문제라고 생각지도 못하던 때에서, 문제라고 인식함으로 인해 첫 발걸음을 내딛는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갑들의 갑질 문제를 근원적으로 들여다보면 갑질을 조장하는 사회가 보이고, 우리 내면을 조심스레 직면하게 된다. 생각의 살얼음을 깨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틔워주는 책이다. 아프고 불편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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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난 사람을 부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가 언제던가.. 되짚어본다. 우리의 아버지시절, 그러니까 50년대 ~60년대에 태어났던 사람들에겐, 한 사람이 잘나서 한 집안이 일어난다 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흔한 드라마 내용처럼 장남 한 명만 공부 시키고 대학에 보내고.. 용이 날 수 있도록 다른 식구들의 희생이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0년뒤, 우리 나라는 너무나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신분을 바꾸기가 그 어느 때 보다 어려워졌다. 기득권이 쥔 부와 권력이 너무나 막강하여 그 아성을 헤집고 들어가기도 어렵거니와, 원래 상류층의 권력자가 아니었다면 하류층에서 정말 똑똑한 사람이 용이 되어 하늘을 날으려 했을 때 그를 짓밟고 땅으로 추락시키는 행위가 종종 일어나게 된다. 정치판이든, 경제판이든 간에 어김없이 원래의 권력자들끼리 삼삼오오 끼리끼리 모인다. 강준만 교수는 이런 현실을 이 책 속에서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여러가지 사회 문제가 있고, 그것을 도려내고 옳게 고치려고 하는 정치인이 없는 실정에서 우리 나라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요새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80만원 세대에서 쑥 자란 그들은 이제 돈이 없어서 결혼을 꿈꾸지 못하는 30대가 되어 있다. 열심히 일해도 정규직이 되기 어렵고, 정규직의 숫자를 점점 줄인다고 하는데 노동법은 정규직인 사람만을 보호하고 비정규직인 많은 사람들은 공장의 조립품같은 대우를 한다. 쓰고 버리고 하는 과정에서 서민과 노동자의 삶은 갈수록 각박해진다. 이에 맞추어 갑질에 대한 사회적인 분노는 더욱 커져간다. 나와 너무 다른 삶을 살면서, 법의 테두리 밖에서 살려고 하는 기득권의 모습이 분노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저자는 '개천에서 용났던 '것은 비단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70-80년대 눈부신 경제 성장이 있었고 그들 중 소수의 대기업이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된 것도 대한민국이라는 개천에서 용이 난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 집안에서 한 아이가 성공하려면 다른 식구들의 희생이 필요했듯이, 한국이라는 불모지에서 세계적인 거대 기업이 생겨난 것은 바로 서민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키워놓은 아들이 이제는 '갑질'을 시작하면서 다른 식구들을 분노하게 한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무시하고 버리고 짓밟는 행위이다. 아무말 하지 않고 근근히 먹어 살아야 조용한 가정의 평화가 찾아온다. 갑질을 행사하는 장남에게 대들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강준만 교수는 이에 준엄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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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차가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여가며 읽어나갔다. 어휴. 부제인 '갑질 공화국의 비밀'을 다시 살펴본다. 이 책이 그 '비밀'을 밝히고 있는 책이던가? 그건 아니다. 비밀이랄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너무도 쉽게 '갑질'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하는 사람이 인식하지도 못한채로 내재화된 갑질을 하다가 '재수없게' 매스컴을 타게 된 경우도 많다. 땅콩항공 사건만 해도 관련자들의 증언을 보면 이건 '운이 없어서' 걸린것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1심 판결까지만 다루고 있는데 얼마전 있었던 2심 판결까지 다룰 수 있었다면 뭐라고 언급되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아, 다시 목차를 살펴보니 우리나라가 '갑질 공화국이 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학생때부터 갑질을 가르치는 교육 때문이었다. 꼬마일때 혹시 이런말을 들어본적이 있는지.
'공부안하면 나중에 커서 OOO된다.'
여기에 들어갈 단어가 머리 속에서 몇개는 떠오르는 나자신도 '갑질 공화국'의 패러다임에 갇혀있는 것이 아닐까 반성도 해본다. 물론 학생으로서 공부를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게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 아니냐는 반박을 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핵심은 당연하게도 그게 아니다. 덴마크에서 한 아이에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에 원하는 음악을 들으려 즐거운 노동을 할 수 있는 벽돌공이 되고 싶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에 해답이 있다. 벽돌공의 급여가 대학교수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으며 사회적으로도 전혀 직업에 따른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연세대와 원세대를 필두로 지방의 식민지화를 비판하고 있는 2부를 보면서는 전에 보았던 엄기호씨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내용이 떠올랐는데 이 책에도 언급되어 있었다. 아르바이트 하던 원세대생의 에피소드. 호텔 결혼식장에서인가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이런저런 일을 막 지시하던 관리자가 우연히 출신학교를 묻고 연세대라고 대답하자 갑자기 대하는 태도가 변하며 자식교육 조언을 구하기에 차마 분교라고 덧붙이지 못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 오래전 대학입학 후 초반에 동기들과의 술자리를 통해 얼큰히 취한 상태에서 시험운이 없어 더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노라며 서로 아쉬움을 토로하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다들 학교 로고가 새겨진 야구잠바 같은건 입을 생각도 안했으니 이건 다른 의미에서 다행이려나.
한전에서 있었던 맞춤형 뇌물 사건을 보면서는 정말 기가찼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착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더 무서운 것은 서민들마저 대기업 편을 들고 있다는 거다. 광주 기아자동차 노조를 비판하던 택시기사 아저씨 이야기는 나도 거의 같은 경험을 한적이 있었던 터라 정말 '이해 안가는' 공감이 되기도. 구조적 접근을 통한 비판을 할 생각은 안하고/못하고 서로 끌어내리기에 혈안이 된 우리 사회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라고 쓰고나서 다시 그 부분을 보는데 일자리 늘리기 측면에서 긍정하고 있는, 조금은 접근이 다른 이야기로 보인다.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급여차이가 2배 이상 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듯. 어렵다.
맺는말은 '비교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를 테마로 개천을 우리의 꿈과 희망의 무대로 삼자고 주장한다. 지인중에서 근시일내에 소위 '다운 쉬프트'를 계획하고 있는 분이 있는데 아이러니 한 것은 이분의 직업은 더 많은 학생들을 서울 명문대 입학시키기라는. 아무튼 우리사회의 공동체, 연대의식의 복원은 정말 필요한 일인것 같다. 한해에 전국민의 1/5가까이 이사를 하고 있다는 통계는 무엇을 말하는가. 나의 내가족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며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기가 아닌가 싶다. 생각나는대로 끄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