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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가 아닌 타의로 이루어지는 일들 속에서 그의 마음을 다잡게하거나 깊이 고뇌하게 하는 바다.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보다도 더 와닿는 여름의 바다같은 느낌이었다. |
| 카뮈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다 당시 카뮈의 일상과 감정 느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당시 시대상과 카뮈의 고민을 엿볼 수 있고 날짜가 표기되어 있진 않지만 요일에 따라 넘어가는 형식이 일기라고 볼 수 있다 카뮈의 팬이자 카뮈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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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46년 3월에서 5월까지의 미국 여행과 1949년 6월에서 8월까지의 남아메리카 여행에 관한 여행 기록을 모은 책이다. 각 여행에서 기록한 일기 형식의 노트 두 편을 까뮈 사후인 1978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까뮈 전집 책임 편집자인 로제 키요가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
원고는 까뮈의 부인이 가지고 있었고, 이 책의 편집자인 로제 키요와 까뮈의 부인이 여러 가지 타자본 원고들과 육필 원고들을 정독, 비교하면서 작성했다고 한다.
두 여행은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고, 이러한 상황의 차이가 해당 여행에 대한 까뮈의 반응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의 편집자는 이 책을 통해,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기록한 자료들이 어떻게 다듬어진 작품으로 옮겨지는지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이 책을 통해 독자인 우리는 까뮈라는 위대한 작가가 탄생하기 위한 산고의 순간들을 그의 기록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위에서도 거론했듯이 이 책의 전반부는 1946년 3~5월의 미국 여행에 대한 기록이고, 후반부는 1949년 6~8월 사이의 남아메리카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참고로 전편의 제목이 '미국 여행'이기는 하지만 캐나다 여행에 대한 기록도 담겨 있다.
까뮈의 미국 여행은 강연과 회견, 토론 등을 위한 일정이 대부분이었고(당시에도 이미 문단과 지성계의 젊은 스타였던 까뮈는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대표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외무성에서 필요한 경비를 지원받아 프랑스 외무성 문화교류국이 보내는 공식 사절로 미국에 방문했다), 약 3개월 가량이 소요됐던 1946년의 미국 여행은 프랑스와 체코, 이탈리아 여행에 이어 네 번째 긴 여행이었다.
종전 직후인 1946년 3월 10일 프랑스를 떠난 까뮈는 보름이 지난 3월 25일 뉴욕에 도착한다. 까뮈의 미국행은 대대적으로 기사화되었을 뿐아니라 컬럼비아 대학 등에서 초대받아 강연을 하기도 한다.
전쟁의 폐허에서 온 까뮈는 미국의 발전된 모습에 놀라기는 하지만, 작가로서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그의 눈에 거대한 도시 뉴욕은 하나의 '섬'인 동시에 죽음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보일 따름이다. 까뮈는 이 기간에 레비 스트로스와 함께 차이나타운을 방문하기도 한다. 참고로 1946년 4월 11일, 방미 중에 그의 소설 『이방인』의 영역판이 크노프사에서 출간된다.
흥미로운 점은 까뮈가 뉴욕 체류 동안 갈리마르 출판사를 위한 일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갈리마르 출판사는 생텍쥐페리의 전작을 독점 출판하기로 계약을 맺었는데, 미국의 타 출판사와 계약을 맺어 이미 세 작품이 발표된 상태에서 생텍쥐페리가 죽어버린 것이다. 갈리마르는 미국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는데, 뉴욕에 있는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까뮈였다.
그밖에도 까뮈는 이 기간 동안 다양한 인물들을 만났고, 그의 희곡 <칼리굴라>를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해럴드 브롬리와는 열흘 간 캐나다 여행을 하기도 한다.
뉴욕으로 다시 돌아온 까뮈는 열흘간의 바다 여행을 거쳐 프랑스로 돌아간다. 그것이 1946년 6월 21일이었다.
미국에 돌아온 지 2년 뒤인 1948년, 까뮈는 이집트 여행을 계획한다. 그의 옛 은사이자 친구인 장 그르니에가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당국은 까뮈가 아랍 국가에 가는 걸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일본에서 까뮈에게 막대한 사례금을 제안하며 초청했으나 이 또한 사양한다. 당시 까뮈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밀실공포증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미 여행은 까뮈가 문화 사절로서 경험한 두 번째 여행이자 마지막 해외 여행이었다. 남미 여행의 공식 목적은 라틴 아메리카 제국들과 프랑스의 문화적 연대와 교류, 결속이었다.
당시 파리 문단과 지성계는 소련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도 양분되어 있었는데, 까뮈는 소련과 미국을 모두 비판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소련을 지지하는 지식인 집단과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 이것이 그가 남미여행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다. 그러나 이념적 갈등으로 시끄러운 파리를 대신해서 선택한 남미여행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 남미의 정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1949년 6월 30일 마르세유를 떠난 까뮈는 15일간의 바다 여행 후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다. 미국여행이 그랬던 것처럼 남미여행 동안에도 뱃속에서 상당히 많은 일기들을 기록했는데, 대개는 우울함과 부끄러움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여행과 남미 여행 시 까뮈가 배로 이동을 해서, 그것이 그때의 보편적인 이동 수단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까뮈가 비행기를 기피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남미 대륙은 매우 크고, 그 광대한 대륙 안에서 여러 나라들과 도시들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비행기는 환승도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교통 수단이었다. 까뮈는 비행기를 '금속관'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안에서 종종 '질식의 느낌'을 받는다. <여행일기>의 남미여행 편에는 비행기 여행에 대한 고통과 혐오, 분노가 여러 곳에서 노출된다.
남미여행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갈 때도 까뮈는 비행기를 이용했는데, 그로 인해 까뮈의 남미 여행은 혼란과 고통으로 점철되었다. 거기에 정치적 불안정까지 더해져 까뮈가 느낀 당혹감은 최대치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좋지 않던 까뮈의 건강까지 최악의 상태가 된다. 장 그르니에에게 보낸 편지에서 까뮈는 '너무 빡빡한 일정'으로 인한 피로와 '죽음 같은 하루'의 고통을 호소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부정적인 조건에두 불구하고 남미의 광대한 공간과 풍경, 그리고 원시적 자연의 힘은 까뮈에게 큰 영감을 준다. 까뮈는 남미 체류 기간 동안 일종의 국가 연합, 세계 정부의 구상을 구체화한다. 까뮈는 미소 양대 진영이 문명의 위력을 앞세워 대결하게 될 세계의 블럭화를 예감하면서 제3의 광대한 공간으로서의 남미가 균형자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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