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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년전 야현 세자와 묘선의 현실에서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을 이루기 위한 현실안의 틈새, 혹은 현실 밖으 공간. 이 공간에서 세상위에 당당하게 사랑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랑들이 현실의 시선을 피해, 자의식과 규율, 통제를 피해서 사랑을 이룬다. "취 화 당"
나와 그녀는 당당함으로 인해 지상위에 취화당을 짓고산다. 현실세계에 자연스레 합류하여 모두 앞에서 공개됨을 즐기지만, 때로는 끝없이 갈라지는 길을 지나 현실 밖으로 나가고 싶을때도 있다.
뜨거운 열정에 비해 이를 받아들여주는 현실의 메마름을 느낄 때, 오로지 세상에 둘만이 존재하고, 둘만을 위해 세상이 존재한다고 느끼고 싶은 순간..
이런 순간에는 모든 연인들이 그들만의 취화당을 찾아나설것이다. 끝없이 갈라지는 두 갈래 길. 지하로, 지상으로, 그 길위에 싸인 발자국의 흔적과, 흔적을 남긴 이들의 기억으로 인해서 길은 다져지고,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너는, 지금 어느 길위에 서서 어느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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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이면(裏面)이 많다. 속, 안.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속사정이란 국어사전의 정의만으로는 이 단어를 설명하기에 턱 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감추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또 같지만 틀린 존재가 있다. 거울 앞에 서서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라. 닮지 않았는가? 거울에 비치고 있는 모습이 자신이라고 누가 의심하겠는가? 닮아도 너무나 닮았다. 당신은 흔한 오른손잡이인가? 그럼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행동을 취해보라. 거울 속 당신을 닮은 사람도 똑같은 행동을 취할 것이다. 여기서 유심히 바라보자. 오른손잡이인 당신은 오른손으로 어떤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당신은 왼손잡이로 보일 것이다. 이래도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당신이라고 믿겠는가? 닮았지만 전혀 다른 존재이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에서 말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현실의 보이지 않는 뒤쪽, 현실과 비현실, 사실과 허상, 현재와 꿈. 모든 것이 공존할 수 없는 대립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 모든 것을 담고 있지 않을까?
이승우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의 쓰임새를 밝힌다. 힘든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땅 속으로 나 있는 길을 소개했다. 라고 고백한다.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문득 사랑에 붙들려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러지,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 어떤 지원도 누구의 보호도 요청할 수 없는 사람들,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 스스로의 몸으로 현실 밖으로 길을 내야 하는 사람들, 다른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마음 따라 몸을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 열정은 뜨겁지만 착한 사람들, 아직도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을 위한 한 통의 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승우는 약간의 설레임만 가지고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
랜턴과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준비한다. 김소령이 건네 준 열쇠꾸러미만 있다면 광화문 지하 어딘가에 숨어있을 법한 취화당에 가고 싶다. 그녀의 손을 꼬옥 잡은채 취화당에 데리가고 싶다. 200년 전의 아현세자와 묘선의 사랑을 가슴 아파하며 200년 후 되돌려주고 싶다. 광화문 한복판 지하에 숨어있는 취화당이 무척이나 그리운 나이다. [인상깊은구절] 힘든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 누구의 이해도 구할 수 없느 사람들, 사랑하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이 아니라, 예컨대 자발적인 의지의 작용으로 사랑에 나선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문득 사랑에 붙들려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러지, 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 어쩔 줄 몰라하면서 끌리는 사람들, 그렇지만 어떤 지원도 누구의 보호도 요청할 수 없는 사람들, 다만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 현실에 없는, 현실에 없으니까, 현실에 없음을 의심하지 못하니까 스스로의 몸으로 현실 밖으로 길을 내야 하는 사람들, 그 길만이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다른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마음을 따라 몸을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 열정은 뜨겁지만 착한 사람들, 혹은 어리석은 사람들, 여전히 아직도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 …… |
| “사람들은 믿지 않을 테지만, 왜냐하면 나도 믿지 않았으니까, 광화문 한복판에 땅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여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는 소설은 각 챕터의 서두를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세 개의 챕터는 위의 문장 이후에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같은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세 개의 챕터도 토씨가 조금 틀리지만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까 나는 8월 25일 밤에 종로에 이는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라는 찻집에 세 번째 들른 참에(단락 안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지만 그녀와 함께) 김소령이라는 위인으로부터 광화문 한복판에 땅굴이 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것... 조금 미리 이야기 하자면 소설은 완화된 (보르헤스적) 환상적 리얼리즘의 글쓰기에 한국적 불륜(또는 사랑) 소재가 결합되어 있는 형국이다. 실은 덕분에 보르헤스의 책을 오랜만에 빼어 들었다. 극중에 나오는 보르헤스의 책은 예원출판사의 『바벨의 도서관』이었고, 내가 주섬주섬 빼어든 책은 민음사에서 나온 보르헤스 전집의 두 번째 권인 『픽션들』이었고, 이 두 권의 책에 공통으로 실려 있는 단편소설이 바로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이다. 등장인물인 나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하게 같은 자리에 앉게 된 그녀와 똑같은 책을 읽게 됨으로써 모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우연은 서울의 종로 한 귀퉁이에서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라는 찻집을 만나면서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작중 인물들과 보르헤스의 연관들은 소설로 확대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나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김소령이라는 사실을 비롯하여(보르헤스의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군인이다) 아마도 다양한 장치들이 보르헤스의 소설과 맞닿아 있다고(그런 장치들을 찾아내는 것은 한량을 자처하는 독자의 몫은 아니니, 넘기도록 하고...) 여겨진다. 물론 보르헤스는 머릿속에서 지우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도 좋다. 소설은 연애 소설의 외양을 한 보르헤스풍의 픽션이 아니라 보르헤스의 외투를 설핏 빌린 듯한 연애 소설이니까... 연애 소설로 읽는 것이 좋겠다. 소설에 이르는 시간의 시작은 이렇다. 친구의 출판사에 기획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있는 나는 친구의 배려로 파리의 도서전시전에 갔다 오는 길에 자신과 똑같은 책을 읽고 있던 한 여자를 비행기 안에서 알게 된다. 그리고 유부녀인 그녀의 신분과 상관없이 희미하지만 예측이 가능한 윤곽을 지닌 사랑의 아우라에 휩싸이고 서울에 도착한 이후에도 몇 차례의 만남을 갖게 된다. “... 사랑의 대상인 애인을 세상에 노출되지 않도록 은밀히 감추려는 욕망과 반대로 세상에 드러내놓고 알림으로써 자신이 사랑에 빠졌고 또 사랑을 받고 있다는 자부심을 표현하려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다.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자신들의 사랑과 신상에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런 종류의 어려운 사랑을 하고 있는 경우조차도 그 안쪽에서 꿈틀거리는 노출에의 욕구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랑에 도달하는 일은, 더군다나 세상의 일반적인 도덕률에 부합하지 않는 사랑을, 그것도 사랑의 일탈과 세상을 향한 반격에 익숙하지 않은 지긋한 나이에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럽고 그래서 우유부단하고 욕망의 숨김과 욕망의 드러냄 사이의 번민으로 가득 찬 만남을 이어간다. “... ‘어찌할 수 없다’가 언제나 ‘할 수 있다’를 이긴다. ‘할 수 있다’가 자유의지라는 깃발로부터 나온 구호라면 ‘어찌할 수 없다’는 운명론이 불러낸 고백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사이 신학적인 혹은 철학적인 사유에 능통한 작가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다양한 잠언들을 심어 놓고, 사랑에 이르는 과정 혹은 사랑의 국경을 넘나드는 밀입국의 쾌감을 은밀하게 설파한다. “... 사랑이 알게 하는 앎은 정보가 아니라 이해이다. 양이나 부피가 아니라 깊이이다. 세목이 아니라 핵심, 순간이면서 영원한 어떤 포착이다... 만나면서 서로를 알아보자는 그녀의 말은, 그녀가 자신의 의도를 이해했든 이해하지 못했든, 이미 자신의 내부에서 시작된 사랑이라는 새로운 감정을 조심스럽게 누르는, 그러나 마침내는 완전히 누르지 못하고 표현하고야 마는 어법이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나이와는 상관없이, 도덕률의 부합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또한 사랑인 것은 확실하여 나는 때때로 그녀를 시기하고 그녀와의 관계로 괴로워한다. 질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하는 자의 특권이자 사랑하는 자가 지고 가야 할 짐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귀뜸하기도 한다. 그리고 육체적인 맞닿음과 그걸 잔혹하게 거부하던 두 사람의 두터운 외피는 김소령이라는 위인의 허황된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에 현혹된(혹은 현혹되어야만 자신들의 사랑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이 마침내 찾아낸 땅 속의 아지트에서 드디어 벗겨지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소설은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었던 공간과 그들이 사랑을 나누었던 지금까지의 시간으로 족한 것일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나름의 품격을 지니려고 꽤 노력한 흔적이 여실한 소설을 읽은 것으로 족해야겠지... 오랜만에 읽는 국내작가의 연애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