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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지도자의 역할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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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지도자의 역할을 생각한다 세월호와 메르스, 판박이라고들 한다. 정부의 대처능력과 책임성에서 동일선상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두 사건을 겪으며 국민의 목숨이 달린 문제에 대처하는 정부의 기본적인 자세를 보면서 국민 스스로들이 자신의 목숨을 지켜나가는 할 수밖에 없다고들 한탄이다. 정부의 무능이 이런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가권력이 존재하는 이유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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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지도자의 역할을 생각한다

세월호와 메르스, 판박이라고들 한다. 정부의 대처능력과 책임성에서 동일선상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두 사건을 겪으며 국민의 목숨이 달린 문제에 대처하는 정부의 기본적인 자세를 보면서 국민 스스로들이 자신의 목숨을 지켜나가는 할 수밖에 없다고들 한탄이다. 정부의 무능이 이런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가권력이 존재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국민이 뽑아준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지 못한다면 분명 그 권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곧 무너질 것이라는 말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시기에 한 역사인물이 주목받고 있다. 조선 선조 왕 때 임진왜란을 겪으며 조선의 운명을 함께 헤쳐 나왔던 징비록의 류성룡이 그 사람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시작으로 여러 종류의 책이 출간되면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시대 왜 류성룡에 주목하는 것일까?

 

서애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재상이다. 이황에게서 김성일과 동문수학하였으며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을 천거하여 전라도 방어책임자로 천거하여 임명하도록 하였다. 임진왜란 때 겪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였으며, 징비록은 현재 국보 제132호다.

 

징비(懲毖)는 곧 지난날을 징계하며 뒷일을 삼간다는 말이다. 이 징비라는 단어에 담긴 뜻이 주목받는 주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선 생각되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징비록을 남긴 류성룡의 당시 역할이다. 류성룡은 재상으로 전쟁의 중심에서 왕과 백성 모두를 위해 직접 뛰었다. 바로 국난의 중심에서 그 책임을 다했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했기에 징비록의 가치가 더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장윤철 번역의 이 책 류성룡의 징비록은 자서, 징비록 제1, 징비록 제2, 녹후잡기를 모두 번역하여 옮겼다. 징비록을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류성룡은 어떤 인물이며 징비록이 가진 가치를 먼저 밝힌다. 그 뒤 필사본 징비록 권 2를 기초로 하여 번역했다고 밝히고 있다. 72개의 문장을 중심 번역한 것이다.

 

최근 내가 접한 류성룡의 징비록을 번역 발간한 책은 세권이다. 홍익출판사 발행본 징비록’, 생각정원에서 발행한 이종수의 류성룡, 7년의 전쟁과 이 책이다. 각기 주목하는 바가 다르다. 오롯히 징비록에 주목한 것이 홍익출판사 발행본이라면 생각정원의 류성룡, 7년의 전쟁은 징비록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류성룡에 주목한다. 반면 스타북스 발행 류성룡의 징비록은 류성룡과 징비록 양자에 대한 적절한 이해에 주목한다고 보인다.

 

별스런 유행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방영과 때를 맞춘 책의 발간은 자연스런 결합이지만 연달아 발간되는 비슷한 책들을 보는 시각은 곱지만은 않다. 그렇더라도 이런 유행을 통해서라도 류성룡과 징비록이 주목받아 징비(懲毖)의 본 뜻을 되살려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류성룡과 징비록이 주목받는 이유가 지도자의 역할에 있다면 이를 통해 현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m*****8 2015.06.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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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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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징비록』은 직접 구입한 책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더불어 임진왜란의 2대 기록물인 이 책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그런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난중일기와 징비록은 역사 시간에 귀에 닳도록 들은 문헌들이다. 그중에 난중일기는 교과서에 일부분이 실리기도 했고, 단행본으로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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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징비록은 직접 구입한 책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더불어 임진왜란의 2대 기록물인 이 책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그런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난중일기와 징비록은 역사 시간에 귀에 닳도록 들은 문헌들이다. 그중에 난중일기는 교과서에 일부분이 실리기도 했고, 단행본으로도 여러 차례 발간되었으므로 친숙했다. 그러나 징비록은 내게 있어서 수수께끼 같은 책이었다. 또한 류성룡은 이순신 장군 못지 않게 역사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그런 인물이 쓴 유명한 책을 읽게 되었으니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둘째, 저자와 책에 대한 해설이 좋았다. 저자는 이 책의 1부와 2부에서 류성룡이 어떤 인물인가징비록은 어떤 책인가를 통해 류성룡과 징비록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이 해설을 통해 저자와 책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60여 쪽에 다다르는 이 부분만 읽어도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징비록본문에 들어갔을 때는 또 하나의 역사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내게는 딱딱한 경전을 읽는 듯 고단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무언가 깊은 풀이가 있을 듯도 한데 더 깊이 들어가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어떤 대목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데 너무 상세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 권율의 행주대첩이나 이순신의 한산대첩의 승전보는 너무 간략하게 서술했고, 심유경의 자기 변명은 그의 서간까지 인용하면서 장황하게 나열하고 있다. 심유경의 이야기가 그렇게도 중요한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부분적으로 뭉클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고, 저자의 한탄에 공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읽기가 쉽지 않은 문체와 구성이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소중한 기록이고, 의미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러나 독자들이 환호하면서 책장을 넘기기는 힘들 듯하다. 중학생에게는 어렵고, 고등학생도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중학생 이상은 한 번 정도 읽어 봐야 할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y******3 2015.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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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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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懲毖錄   류성룡 지음 | 장윤철 옮김 | 스타북스 | 2015.05.15.     징비록懲毖錄은 조선 선조 때의 재상인 서애(西厓) 류성룡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역사적 사실을 사건 중심으로 정리하여 저술한 귀중한 문헌이다. 저자 류성룡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정부의 요직에 있었고, 왜란 중에는 좌의정에서 영의정으로, 도체찰사의 중책까지 맡아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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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懲毖錄

 

류성룡 지음 | 장윤철 옮김 | 스타북스 | 2015.05.15.

 

 

징비록懲毖錄은 조선 선조 때의 재상인 서애(西厓) 류성룡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역사적 사실을 사건 중심으로 정리하여 저술한 귀중한 문헌이다. 저자 류성룡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정부의 요직에 있었고, 왜란 중에는 좌의정에서 영의정으로, 도체찰사의 중책까지 맡아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1592 ~ 1598) 7년 동안 왜적의 침해로 인한 국난 극복의 처참한 사실을 회고하는 뜻에서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징비록懲毖錄은 중국의 시경(詩經)에 나오는 지난 일을 징계하면서 뒷일을 삼간다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다. 징비록은 징비록상하권과 녹후잡기(錄後雜記)로 마련된 2권본 및 이를 포함한 16권본이 있다.

 

징비록에는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쟁 상황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 왜의 사신이 왕래하던 일부터 왜란이 일어나게 된 경위를 적었으며, 부산 동래가 함락되고 상주 전투에서 관군이 패하고, 왜적이 서울로 북진하자 왕이 피란하고 서울이 함락되어 종묘까지 불타 재가 되고, 평양성이 함락되고 왜적이 함경도까지 짓밟아 두 왕자가 포로가 되는 등 국토와 민족이 처참한 국난을 겪는 눈물겨운 사실들을 기록해 놓았다.

 

또한 이순신이 이끄는 해군이 왜적을 무찔러 승리한 것을 계기로 의병이 봉기하고 차츰 전비를 갖추어 항전 태세를 취하다가, 명나라 군사의 내원으로 힘을 합하여 공세를 취하면서 평양성을 회복하고 개성을 수복하고 서울로 입성하게 되는 과정을 정연하게 기록하였다. 더 나아가 왜적이 강화(講和)를 구실로 영남으로 물러나 전쟁이 소강상태로 되었다가, 1597년 정유왜란이 일어나서 다시 2년 동안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였으며, 노량싸움을 마지막으로 왜적이 패주한 사실 등을 탁월한 식견과 유창한 문장으로 간단명료하고 조리 있게 서술하고 있다.

 

자신의 안위는 뒷전이며 오로지 지극정성의 일념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온몸을 던진 이들이 있어 임진왜란이란 지독한 전쟁에서 우린 민족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에겐 류성룡과 이순신이 있었다. 이 인물들 때문에 우리 민족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것은 민족의 축복이었다. 임진왜란의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징비하지 않은 우리에게 역사는 자비롭지 않았다.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모두가 하나같이 우리의 지독한 건망증과 한심한 의존성에 기인하여 생겨난 것이다. 우리 스스로 강한 힘을 갖지 못한다면 통일된 미래도 우리 것이 아니다. 자강(自强)을 길러야 한다. 지금의 중국, 일본을 봐라. 400여 년 전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힘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중국의 한 지방의 성()으로,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임진왜란은 조선을 2개의 파()로 갈라놓았다. 자강파(自强派)와 의명파(依明派)이다. 자강파는 스스로 힘을 길러 적과 싸우며 나라도 다시 일으켜 나가자는 것으로 류성룡과 이순신, 그리고 의병들이 있었다. 의명파는 명나라에 의존하여 명의 구원을 받아 적과 싸우고 나라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의명파에는 선조를 위시하여 대다수의 신하들이 속해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자강파는 사라지고 의명파만이 남아 19세기 말까지 숭명파(崇明派)란 이름으로 존재하였고, 결국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일본에 넘기고 말았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이제 명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 역사를 창건하고 나라 중흥의 길로 인도되는 대전환의 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오직 징비록만이 그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어떻게 명나라에서 독립하여 자강하는 몸부림이 없었을까 

 

류성룡이 경계하고 징비한 일들이 우리 눈앞에 현실로 일어났다.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고 반성했으며, 깨달았는가, 스스로 치열하게 질문하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300여 년이 지난 후, 그렇게도 원하지 않았던 열강들의 틈 속에서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는 왜 고민하고 치열하게 자강하지 못했는가, 오직 명나라에만 의존하는 정책에만 따랐는가, 스스로 나라를 튼튼히 만드는 일에 왜 소홀히 했는가, 1945년 대한민국은 외세의 힘에 의해 독립을 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축복이고 기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외세에 의한 독립이라는 빚이기도 했다. 그 빚 때문에 우리기 지금 겪고 있는 수많은 사실들을 낱낱이 직시하자. 21세기 대한민국은 자강했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본다. 우리는 미국에, 중국에, 일본에 의존하지는 않는가, 또한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 적과 동지만으로 구분하는 그 비열한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 우리 정치권의 모습이 수 백 년 전의 그때와 다른 게 무엇인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징비(懲毖)하지 않는 자에게 역사는 자비롭지 않았다.’는 교훈을 세기고 자립, 독립의 힘을 키우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t*****8 2015.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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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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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사극 ‘징비록’이 방영되고 있다. 서애 류성룡이 저술한 ‘징비록’을 바탕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시대를 극화한 내용이다. 우리 민족이 가장 힘들게 헤쳐갔던 시대중 하나인 조선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만약 류성룡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어찌 되었을까 싶다. 그가 있었기에 이순신장군도, 권율장군도 그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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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사극 징비록이 방영되고 있다.

서애 류성룡이 저술한 징비록을 바탕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시대를 극화한 내용이다.

우리 민족이 가장 힘들게 헤쳐갔던 시대중 하나인 조선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만약 류성룡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어찌 되었을까 싶다.

그가 있었기에 이순신장군도, 권율장군도 그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다.

나라를 생각하는 뛰어난 한 인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를 우리는 그의 삶과 글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온 나라와 백성들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던 그 시기에 자신만 살고자 하는 권력자들의 비열한 행실은 여전히 일제 강점기에도, 현재에도 반복되는 것 같다.

류성룡이 글을 남겨 후대에 교훈을 삼고자 했던 것에는 이런 자들에 대한 염려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류성룡의 징비록은 왜란 후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향 안동으로 내려가 은거하면서 집필한 것으로 자신이 최고위직 관리로서 두차례의 왜란 동안에 몸소 체험한 사실에, 자신의 지위에서 구할 수 있는 풍부한 사료들을 더하여 저술하였다.

그의 사후 아들 류진이 1633서애집을 간행할 때 함께 수록(초본 징비록 2권본)하였다가 15년 후 16권의 징비록으로 간행하였다.

이 책 류성룡의 징비록 피로 쓴 7년의 교훈은 초본 징비록 2권에 녹후잡기를 함께 풀어쓴 책으로, 류성룡의 생애와 징비록의 가치를 앞에서 설명하고, 징비록 1권과 2, 녹후잡기를 후에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징비록의 가치는 역사적으로 우리 겨레가 외적의 침해를 물리친 국난 극복의 생생한 역사적 사실일 뿐 아니라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문물제도까지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문헌이며 전쟁문학의 고전으로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또 이 책을 읽음으로써 국난에 처한 국민이 지난 일을 거울삼아 앞일을 경계하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가다듬고, 지금의 우리 역시도 건강한 역사를 창조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 P. 54.

 

세월호로, 메르스로 매년 국민들은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고위관리로 선택된 이들은 온갖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자신의 삶에 대해 당당하게 얼굴을 들이댄다.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런 이들이 과연 국가 위기상황에서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자신의 이익과 권력만을 생각하는 이들이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경우는 없다.

아마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도망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슬프지만 현실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선택한 지도자의 선택을 어찌 하겠는가.

왜란시기의 선조를 보라.

솔직히 임금이면서도 나라와 국민들보다는 자신의 권좌에 더 얽매여 있는 모습이 선조뿐일까.

국민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지도자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도자도 국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멀찍이 떨어져 말만 하는, 가슴이 없는 지도자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지도자는 국민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만 할 뿐이기에.

 

대저 국가에서는 좋은 장수를 사변이 없을 때에 뽑아 두었다가 일이 생기면 임명하여야 한다. 이들을 선발하는 데는 정확해야 하고 임명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어찌하여 앞사람이 잘못한 일을 뒤의 사람도 고칠 줄을 모르고 그대로 답습하여 이처럼 일을 그르친단 말인가. 이러고서도 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을 바랄 따름이라 하겠다.” - P. 287~288.

l*******8 2015.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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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에 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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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징비록"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난 한번도 본적은 없는데, 책으로 징비록을 접할수 있었다. 책으로 접하면 상상력이 풍부해진다는 장점이 생기는 것 같다. 특히 시대상이 지금과 판이하게 다른 예전의 모습을 문자로서 읽다보면 드라마에서 한계가 있는 표현이 글자로는 한계가 없이 그려질수가 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떠올리면 거의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이순신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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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징비록"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난 한번도 본적은 없는데, 책으로 징비록을 접할수 있었다. 책으로

접하면 상상력이 풍부해진다는 장점이 생기는 것 같다. 특히 시대상이 지금과 판이하게 다른 예전의 모습을

문자로서 읽다보면 드라마에서 한계가 있는 표현이 글자로는 한계가 없이 그려질수가 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떠올리면 거의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이순신을 떠올리게 될것이다. 그만큼 이순신은 임진왜란의

영웅이 아닐수 없으며 그의 인물됨이나 올린 공적은 당시의 임금이었던 선조도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제 또

한명의 임진왜란 영웅을 꼽으라면 류성룡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로 그가 지은 징비록이 방송이 되고 있으며

요즘 많은 책들이 서점에 나와있다. 징비록은 어떤 내용일까? 비록 그 인기가 이순신의 난중일기 만큼 미치지

는 못하겠지만, 이 책을 지어 다시 후대에 임진왜란 같은 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자는 뜻으로 보자면

그의 백성과 나라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갈것이다.

 징비록은 전란을 순서대로 기술한 것으로 16권으로 구성된 것과 2권으로 구성된 것 두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2권으로 구성것이 따로 있느넫, 2권본은 일본에 까지 건너갔다고 한다.

 징비록을 읽으니 임진왜란의 왜군 침략으로 참혹한 고통의 삶을 겪으며 살아가게 된 백성들의 이야기를 읽으

니 정말 가슴이 아팠다. 전해지는 사료로는 징비록이 임진왜란을 사실 그대로 가장 잘 표현한 기록이라고 한다.

배가 고픈 나머지 사람을 먹게된 이야기도 나오며, 죽은 어머니 젖을 빠는 어린아이의 실상을 표현한 부분도

있다. 그 와중에도 당파싸움으로 인재는 등용이 되어서도 공적을 쌓으면 다시 모함과 시기로 귀향을 가게 되니

정말 그 시대는 임진왜란이 일어나 쑥대밭이 되지 않을수 없었던 것 같다. 전쟁에 대한 대비는 못했으나 다행히

곳곳의 의병이 일어나고 이순신이 해상을 장악했으며 명으로 부터 원군을 지원받아 왜적을 물리칠수 있었다.

징비록에는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하는데 이순신에 관한 사람됨을 이야기 하면서 이런말을 한다.

"이순신은 재주는 있었으나 운수가 없어서, 백가지 경륜 가운데서 한가지도 제대로 베풀지 못하고 죽었다. 아아,

참으로 애석하다." 이 책을 보면 정말 이순신이 능력은 출중하더라도 류성룡의 천거가 없었다면 지방의 고을

관리로 일평생을 마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린시절부터 이순신을 알고지내 그의 능력과 사람

됨됨이를 알고 적재적소에 천거를 여러번 하여 높은 관직에 등용되었으나 당파에 휘둘리다보니 몇번의 취소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이런저런 시대적인 배경으로 류성룡은 이순신을 무조건 편들지 않고 원균도 칭찬을 많이 한다.

하지만 결국 이순신은 모함으로 백의종군하게 되어 해상권은 다시 빼았겼는데 유야무야 다급해져 등용이 된다.

 

징비록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기록이다. 이 세세한 기록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흔히들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말을 쓴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현 시대도 혼란이

끊이지 않는다. 내적으로 성숙하고 강건해야 외적으로 부침이 없을것이라 생각한다. 류성룡은 그 의미로 징비록을

지어 후대에 그 교훈을 전해주려했다. 얼마나 당파싸움만 일삼고 전쟁에 대한 준비를 못한 결과는 너무나 컷다.

과거라 치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젊은이들이 한번쯤 읽어봄 직한 책이라 생각한다.

j*******s 2015.07.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