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0)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40%
  • 리뷰 총점8 6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7.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절망의 낭떠러지 저 밑 아래 희망 쿠션..
"절망의 낭떠러지 저 밑 아래 희망 쿠션.." 내용보기
'희망이 없다. 없는 것 같다. 막막하다. 갈 길이 없다. 절벽이다. 낭떠러지다. 나는 곤두박질 치고 있다.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가파르게................' 라고 울부짖으며 모래 폭풍 같은 가파른 한숨으로 꺼져가고 있을 때 만나면 딱 좋을 그런 책이다. '모래 폭풍이 지날 때..' 산문시를 닮아있는 이 일기 같은 책을 훔쳐보고 나면 나처럼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절망의 낭떠러지 저 밑 아래 희망 쿠션.." 내용보기
'희망이 없다. 없는 것 같다. 막막하다. 갈 길이 없다. 절벽이다. 낭떠러지다. 나는 곤두박질 치고 있다.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가파르게................' 라고 울부짖으며 모래 폭풍 같은 가파른 한숨으로 꺼져가고 있을 때 만나면 딱 좋을 그런 책이다. '모래 폭풍이 지날 때..' 산문시를 닮아있는 이 일기 같은 책을 훔쳐보고 나면 나처럼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내가 하긴 뭘 했다고 절망씩이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절망을 논할 자격이 없다.ㅠ.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기 힘들 정도로 절망의 낭떠러지 같은 모래 폭풍...... 그 모래 폭풍들을 때로는 용서할 수 없는 원망으로.. 때로는 끝도 없는 그리움으로 '지나며'.. 죽지못해 내쉬어지는 호흡은 희망의 노래가 되는구나. 절망과 맞닿은 희망은 쉽게 상상되는 지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몸부림이 아니면 현재도 숨쉴 수 없을 거 같으니 억지스런 꿈과 고집이 생의 숨통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허나, 그 깊고 깊은 꿈과 고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럼 그때는 어떡하지.......? 빌리 조는 정말 어떻게 할까? 책을 덮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그러면... 그때는 그대로 또 '지나면' 그만이야.'라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났다. 산다는 것은.. 고비를 지나는 것이다. 그 맛의 묘미야말로..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삶의 보석이 아닐까.. 슬프도록 아름다운.. 보석..
h********2 2005.10.28. 신고 공감 1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희망이란 이름의 '피아노'
"희망이란 이름의 '피아노'" 내용보기
나는 심장이 미여터지는 줄 알았다. 아버지가 화덕 옆에 놓아둔 등유통을 빌리 조의 엄마가 주전자에 붓는 순간 불기둥이 치솟았다. 다급한 빌리 조는 뜨거운 주전자를 내던지는데, 그만 그것이 엄마의 옷에 번지고, 임신 말기의 엄마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3기 화상 환자가 되어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빌리 조의 피아노치던 긴 손가락과 손 등도 오그라져 생살을 드러냈
"희망이란 이름의 '피아노'" 내용보기
나는 심장이 미여터지는 줄 알았다. 아버지가 화덕 옆에 놓아둔 등유통을 빌리 조의 엄마가 주전자에 붓는 순간 불기둥이 치솟았다. 다급한 빌리 조는 뜨거운 주전자를 내던지는데, 그만 그것이 엄마의 옷에 번지고, 임신 말기의 엄마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3기 화상 환자가 되어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빌리 조의 피아노치던 긴 손가락과 손 등도 오그라져 생살을 드러냈다. 계속되는 모래 폭풍에 밀농사는 거듭 흉작이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아내마져 불의의 사고로 신음하고 있자, 빌리 조의 아버지는 아내를 돌보는 중 직면한 괴로움으로부터 잠시나마 도망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아내가 숨겨둔 동전 몇 푼을 가지고 그 날 밤 술을 마셨을 것이다. '물 한방을 거즈에 묻혀 떨어뜨려주면 되는데....' 빌리 조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침상 맡을 지키며 거즈를 쥐어짜던 모습처럼 자신도 '물' '물' 이상한 소리로 신음하는 엄마의 입에 물 한방울을 넣어드리고 싶었지만, 오그라든 자신의 손으로는 거즈조차 비틸 수 없었다. 그녀의 손도 심각한 화상을 입었기에.... 그녀가 어쩌다 물 한방울을 떨어뜨리면, 입 속 아닌 다른 곳에 닿아 엄마는 고통의 신음 소리를 질렀다. 빌리 조는 그 고통을 안다. 부모가 기다리던 남자 아이가 태어난 날, 빌리 조의 엄마는 숨을 거둔다. 갓 태어난 아이도 화염 속에 지쳤는지 서늘한 석고로 변해 차가운 엄마의 형체 모를 시신 속에 안긴 채 말라붙은 비버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붇힌다. 목사님이 장례식을 주도했을 때, 아이의 영혼을 연도하기 위해, 아이의 이름을 묻는다. 빌리 조는 그 아이에게 루즈벨트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플랭클린'이라 지어준다. 14살 위의 누나 빌리가 플랭클린이라 부르는 것을 직접 들어보지 못한 플랭클린.... 빌리조와 그녀의 아버지는 그렇게 사랑하는 두 사람을 모래 폭풍 언덕 위에 묻었고, 자신들의 마음 속에 묻었다. 그리고 그 둘은 말을 잃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나는 아빠가 무서워. 그리고 짜증이 나, 나는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게 될까 봐 겁이 나기도 해. 아빠와 나는 둘 다 변해 가고 있어. 엄마가 남긴 빈자리를 채우려 허둥대고 있어. 아빠가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생살이 드러나 있는 다친 두 손을 등 뒤로 감추곤 해. 왜냐하면 아빠는 내 손이 눈에 듸면 오랫동안 노려보니까. (1934년 9월, 95쪽) 내 심장 어딘가에서 뜨거운 피가 흉곽 전체에 빠르게 빠져나가듯 했다. 자책감에 시달리는 아빠와 딸, 그러면서도 미워하고, 그러면서도 이해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서로가 원하는 그런 애증의 관계 속에 그들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지 몰라한다. 빌리 조의 아버지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모래 폭풍이 거칠게 모든 것을 앗아가는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척박한 오클라호마의 버려진 마당에 엄마가 그토록 살아생전 바라던 커다란 우물을 깊게 깊게 파내려갔다. 빌리 조의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치 그 일 외에는 없어 보였다. 그는 그렇게 자기 깊숙히 긴 긴 우물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러는동안 빌리 조는 아버지와 소원해진다. 얼레이 선생님은 빌리 조에게 빌리 조가 사랑했던 피아노를 계속 칠 것을 당부하고 연주회를 갖자고 제안도 하지만, 빌리는 예전처럼 피아노를 사랑할 수 없다. 피아노는 아빠가 엄마와 결혼할 때 엄마에게 사 준 것이고, 비록 빌리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엄마가 질투했을 것이라 생각했던 빌리 조이지만, 빌리 조에게 있어서 피아노는 곧 엄마였던 것이다. 피아노에 앉으면 엄마와 함께 있는 것처럼도 느껴졌지만, 자신 때문에 엄마가 불에 타 죽었다고 생각하는 빌리 조에게 피아노는 고통 그 이상의 상실을 느끼게 했다. 그런 피아노가 심한 모래 폭풍 속에서 무래 속에 파묻히고, 빌리 조는 피아노를 더는 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빌리 조는 지긋지긋한 모래 폭풍과 아버지를 등지고 서부로 가는 기차에 올라탄다. 그러나 기차에서 만난 볼이 홀쭉한 남자의 가족 사진을 보고, 가족의 소중함, 자신이 나서 자란 오클라호마의 소중함을 깨닫고 빌리 조는 집으로 돌아간다.... 이야기는 대공황 시대의 밀 농작으로 연명하던 3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무분별한 벌목과 개간으로 인해 모래 바람이 그칠 세가 없던 오클라호마를 배경으로, 외부의 척박한 환경에 말라가는 농심 속에 소녀가 겪게되는 가족의 불행사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여기에서 그친다면 보고문의 성격만 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캐런 헤스는 이 슬픈 한 개인의 성장담을 소녀의 일기를 빌어 산문시로 승화시켰다. 그렇기에 이 아픈 이야기는 패이소스를 담고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준다. 이것이 뉴베리 상을 받은 청소년 소설로 읽힌다는 것에 유감이다. 이 책은 온 가족이 다 함께 읽어야하는 아름답고도 슬픈, 그러나 건강한 사랑을 담은 가족용 소설이다. 이 책을 흑백의 모노톤으로 가급적 대사를 줄이고 피아노 음악을 배경으로 하여 스로우 에니메이션으로 제작하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다시 음악을 알아가고, 음악도 다시 나를 알아가고 있어. 우리는 서로의 겨드랑이 냄새를 맡고, 서로의 귓속을 들여다보고, 목 뒤까지 넘겨다보고 있어. 우리는 둘 다 자신감이 넘쳐 조금은 건방지기까지 해. 늘 모래 폭풍에서 벗어나려 애썼지만 이제는 알아, 사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건 모래 폭풍이야. 현재의 나에게 만족해. 그게 나야. 1935년 11월, 빌리 조의 일기장에서
s*****s 2005.10.27.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희망에 관한 책
"희망에 관한 책" 내용보기
이 소설은 '희망'에 관한 글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말하는 희망은 루쉰의 '희망'과 동일 한 의미의 희망이다, 라고 생각한다. 루쉰은 소설 '고향'에 익히 유명한 구절을 썼다. "생각해보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대지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그 곳이 길이
"희망에 관한 책" 내용보기
이 소설은 '희망'에 관한 글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말하는 희망은 루쉰의 '희망'과 동일 한 의미의 희망이다, 라고 생각한다. 루쉰은 소설 '고향'에 익히 유명한 구절을 썼다. "생각해보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대지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그 곳이 길이 되기 때문이다." 이 루쉰의 글에서 '다가올 밝은 미래를 긍정하며 걸음을 내딛는 자의 암시' 따위는 없다. 루쉰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할 때 그는 희 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거의 없다'라고....... 인간은 희망이 있기 때문에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걸어가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 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희망'이다. '모래 폭풍이 지날 때'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자연 재앙과 개인적 비극이라는 암울한 불 행에 맞서 굴하지 않는 소녀의 노력, 그리고 희망적인 내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은 독자들은 알겠지만, 그 희망이라는 게, 붙잡으면 부서질 것만 같이 연약 하고 모래 폭풍은 완전히 끝났다고도 말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책의 말미에서 빌리 조는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달려들어 독사처럼 그 삶 을 꽉 감으면서 희망을 '욕망'한다. 살아야 하므로. 청소년들에게, 아니 우리에게 '희망'이란, 돈을 잃어버린 후 엉엉 울고 있는데 날벼락 같 이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 비슷한 어떤 것으로 각인된 경향이 있다. 하지만 빌리 조는, 혹은 저자 캐런 헤스는 삶의 둥지에 또아리를 틀고 친친 감으면서 희구 하는 '희망'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짓' 희망을 약속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말해나가는 그 솜씨에 감탄하게 되는, 뛰어난 소 설이다.
z*******i 2005.10.1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고생 끝에 樂이여 오소서;ㅁ;
"고생 끝에 樂이여 오소서;ㅁ;" 내용보기
고전(古典)이라는 무게에 압박당하지 않으면서도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있는 소설책을 찾던 중 예스 24의 리뷰어 코너를 알게 되어 받은 책이다. 책을 받자마자 두 세 시간에 걸쳐 다 읽었다. 자그마한 사이즈에 300쪽이 채 안 되는 얄따란 책인데다 훑어보면 알 수 있다시피 글자도 드문드문 있어 책 읽는 속도가 빠른 독자는 한 시간 안팎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 시간을
"고생 끝에 樂이여 오소서;ㅁ;" 내용보기
고전(古典)이라는 무게에 압박당하지 않으면서도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있는 소설책을 찾던 중 예스 24의 리뷰어 코너를 알게 되어 받은 책이다. 책을 받자마자 두 세 시간에 걸쳐 다 읽었다. 자그마한 사이즈에 300쪽이 채 안 되는 얄따란 책인데다 훑어보면 알 수 있다시피 글자도 드문드문 있어 책 읽는 속도가 빠른 독자는 한 시간 안팎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비해 빌리 조라는 주인공의 2년 동안의 생활을 고스란히 담은 이 책은 많은 것을 안겨줄 것이다. 산문시라는 소개를 보고 외국 작가가 쓴 산문시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겼을지 조금은 읽기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산문에 비해 산문시는 유창하지 않은 듯하거나 잘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인상을 주어 마치 내가 주인공인 빌리조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 의식의 흐름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처음부터 산문시 형태로 쓰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빌리 조가 살아남기 위해 투쟁했던 것, 그 과정에서 빌리 조가 느꼈을 결핍과 공허를 생각하니 아무래도 산문시 형태가 맞겠다 싶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충족시키면서 감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끄럽고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여러 행으로 나누어 시각적으로 공간을 생성하고 감상 흐름에 시간적 지연을 만들어내어 주인공의 사고가 지쳐있고 황량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은 밀을 심으면 모래 폭풍이 앗아가고, 모래가 잔뜩 붙은 음식을 먹으며 모래 바람 속에서 학교에 다니고, 어머니의 구박 속에서 좋아하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러한 생활의 반복이,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자그마한 실수로 끔찍한 사고를 당해 화상으로 덜렁거리는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즐거움마저 빼앗긴 채 엄마와 뱃속의 동생을 잃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는 일상이 비교적 담담하게 수용된다. 그녀는 가출하여 모래폭풍으로 상징되는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미수에 그치고 결국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그녀의 소소하고 단조로운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구하는 행복은 소박하다. 모래 폭풍이 없는 윤택한 땅으로 이주해 농사가 풍년을 거두어 부유하게 살거나 세계 제일의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아빠의 여자 친구 루이즈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며 적당히 작물도 수확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하는 것이다. 농사짓기 어려운 땅임을 몇 번의 실패를 통해 알게 되었다면 좀 더 비옥한 새로운 땅으로 진작 떠났어야 하지 않은가? 사람은 왜 중요한 것, 소중한 것을 잃은 후에야 후회를 하고, 마법에서 깨어나듯 자신의 잘못된 고집을 꺾을 수 있는 것일까? 약간의 비가 내린 것만으로 밀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순간순간의 작은 희망을 좇아 소신을 굽히려 하지 않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 용기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 밀을 심어야만 해. 나는 늘 밀을 재배했으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야." (P.53) 늘 모래 폭풍에서 벗어나려 애썼지만 이제는 알아, 사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건 모래 폭풍이야. 현재의 나에게 만족해. 그게 바로 나야. (P.258) 이처럼 결코 안락하다고 볼 수 없는 현실의 울타리에 갇힌 그들의 그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보로 세상 사람들은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배경이 배경이니만큼-모르는 분은 역자 후기에 약간의 배경 설명이 있으니 지나치지 말 것^^-어두운 분위기를 띌 수밖에 없지만 지나치게 절망적이어서 나를 비롯하여 부모의 보호 하에 아무 어려움도 겪지 않고 자라는 대다수의 요즘 아이들에게 얼마만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위한 책 치고는 너무 암담한 현실을 그리고 있어서 별 하나를 뺐다. '이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의 삶에서 만족을 찾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좀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b****4 2005.10.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성장은 고통스러운 탈피
"성장은 고통스러운 탈피" 내용보기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린시절의 삶의 터전까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있는 곳이 곧 나의 환경이지만 가끔은 자신의 처지가 왜 이렇게 평범한가에 대한 실망, 개인취향에 따라서 조금 더 온화한 환경이라던지 화려한 궁전같은 곳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어린이들의 욕구를 파
"성장은 고통스러운 탈피" 내용보기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린시절의 삶의 터전까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있는 곳이 곧 나의 환경이지만 가끔은 자신의 처지가 왜 이렇게 평범한가에 대한 실망, 개인취향에 따라서 조금 더 온화한 환경이라던지 화려한 궁전같은 곳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어린이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대리 만족을 시키는 것도 아동문학의 소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재 내 의지로 선택하고 있지 않은 곳에서 주인공이 사는 다른 삶을 대리 체험하면서, 주변과의 갈등을 풀어내고 주인공의 내면의 성장과정을 같이 따라가는 자아의 확장감 때문에 아동 문학의 여러 작품들을 사랑했다. 운명, 숙명, 로맨티시즘이라는 말을 알기도 전에 여러가지 운명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의 어른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책을 통해서 자꾸 체험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모래폭풍이 지낼 때라는 책은 농사를 짓는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정체성이 기본적으로 환영받으며 태어나지 못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킨다. 빨강머리 앤에서도 농삿일에 필요한 남자아이를 데려오려 했으나 앤이 오지 않았는가. 의식이 땅에 집중되어있어서, 상황이 어려워도 농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농부의 딸. 출생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해 이름조차 남자 이름이 붙는 여자아이가 자라나는 이야기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운명의 장난으로 피치 못하게 어른이 되는 길로 내던져진 소녀의 슬픈 성장기이다. 이렇게 슬픈 책도 드물 것이다.   빌리 조가 어떤 시련을 겪는지는  직접 읽어보시라.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실제로 초원에 집을 짓고 살았던 실존인물들이 재구성되어진 결과물이다. 땅에 살아서 움직이며 존재했던 사실들이 갖는 힘은 대단해서 작가의 묘사가 산문시라는 형태를 빌리지 않았어도 충분히 그가 전달하고 싶었던 대공황기의 메마르고 빈핍한 삶의 모습을 여과없이 전달할 수 있었을 겄이다. 사실 산문시의 형태를 취함으로서 효과가 배가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직접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이들이 행한 일들로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그 영향이 나에게 오기도 한다. 모래폭풍이 상징하는 것은 삶의 시련이기도 하지만, 자연의 균형이 무너진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것을 피해서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땅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떠난다고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없다. 서로를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뿐이다.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더 심해졌어도 서로가 가진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나누는 순박한 모습들이다. 밀재배농가의 경제적 몰락 이유를 학교에서 배우기는 하지만 사회적 차별과, 계급은 아직 어린 주인공의 시각에서 읽혀지지는 않는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눌 것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시대 배경을 일독한 책의 후기를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여주인공의 성장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치 구멍가게에서 껌 한통을 훔친 아이가 그에 응분한 벌을 받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시간이 지나서 자신을 용서하면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자신이 성장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런 방식과 비슷한 과정을 지난다. 단지 그것이 껌 한 통을 훔치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삶을 뿌리채 바꾸는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이 다르다. 그 실수 때문에 그녀는 심정적으로 절망적인 고립 상태에 빠진다. 딸을 돌볼 기력조차 없는 아버지의 무관심속에서 견딜 수 없어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다.   237p 모래구덩이 속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리는 걸었어. 내 자신을 용서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내가 저지른 모든 일들로.   과거를 인정하고, 과거가 나를 키웠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성장의 징표라면 주인공은 해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도 다시 새로운 자아성찰의 단계에 도달했다.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될 사람과의 만남도 시작된다.가혹해보이는 시련을 통해 가족은 성장한다.   일어난 자리 모래가 고이고, 음식과 흙이 범벅이 되기도 하며, 앞이 보이지도 않는 흙바람을 견디며 사는 가혹한 환경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비가 오지 않는 가뭄을 겪어도 큰 연못을 만든 주인공의 아버지의 酉쩜?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이름으로 대변되는 사회 시스템이 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지원한 한편에,  힘든 삶을 조금은 가볍게 해주는 것이 예술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도 알려주는 작가의 인생에 대한 이해가 돋보였다.   처음 몇 장 넘겼을 때는 여백이 많은 산문시 양식에 적응이 잘 안되었으나, 뒤로 갈 수록 짧은 시구로 표현되는 삶의 무게에 압도되고 말았다. 가볍고 얇은 책에 하드커버 장정이 되어 있는 것을 안좋아 하지만 이 책의 품격에는 하드커버도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아동도서가 아니다.   
l******a 2005.10.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온다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온다" 내용보기
결국, 울어 버리고 말았다. 이 울음은 단순히 슬프고, 가여워서가 아닌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 오는 고통이 내게로 전해져 왔기에 터져 나오는 눈물이였다. 그렇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물은 쉽게 말라 버릴 테지만 가슴의 통증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고통은 이렇듯 서서히 잠식 되는가 보다. 지나 갔을거라 생각했던 모래 폭풍이 다시 몰려 올때 처럼, 모래가 모든것을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온다" 내용보기

결국, 울어 버리고 말았다.

이 울음은 단순히 슬프고, 가여워서가 아닌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 오는 고통이 내게로 전해져 왔기에 터져 나오는 눈물이였다. 그렇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물은 쉽게 말라 버릴 테지만 가슴의 통증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고통은 이렇듯 서서히 잠식 되는가 보다.

지나 갔을거라 생각했던 모래 폭풍이 다시 몰려 올때 처럼, 모래가 모든것을 덮어 버렸던 암담함처럼, 고통은 희망이 되었다가 슬픔이 되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모래는 내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빌리 조와 오클라호마를 떠날 수 없었던 그 모래처럼 그렇게 끈질기게 내게도 들러 붙고 있었다.

모래가 온 집안을 뒤덮는 광경과 자신의 목에도 귀에도 이불 속에서도 모래와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던 빌리 조의 모습을 보며 모래가 내 입안에 서걱서걱 씹히는 느낌,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래에서 도망칠 수 없는 현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은 처절한 바닥의 비극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처절함이 가슴 아픈 것이 아니라 그, 처절함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모습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솔직하게 드러내는 빌리 조의 모습이 가슴 아팠다.

자신의 실수로 엄마와 남동생을 잃었다 생각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함에도 그 모든 현실을 유순하게 받아들이기에 마음의 아픔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차라리 모든 걸 포기한 채 현실을 비판했더라면 그려려니 이해했을 텐데 너무나 여리고 여린 빌리 조의 모습에 내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가 무척 힘들었을 터인데 꿋꿋이 버티어 나가는 빌리 조의 모습이 마냥 슬펐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빌리 조가 내 뱉는 불평도, 모래에서, 가난에서 벗어나겠다고 나선 가출도, 왜 그리 슬펐던 것일까. 그 울림을 받아 줄 사람이 없었기에 그랬던게 아니였을까. 그 울림의 대상이 나라고 생각했기에, 빌리 조를 다독여 줄 사람이 이젠 생겼다고 생각 했기에 그랬던게 아닐까.

그 어린 마음이 처연하고 대견스럽다.

좌절하고 우울해하고 어긋나 버려도 누구 하나 타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가 희망이 되고 정면돌파 하는 모습은 나 또한 빌리 조를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늘 모래와 가난과 외로움의 틈바구니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빌리 조였지만 결코 어린이다운 좌절을 보여 주지 않았기에 빌리 조의 이면의 슬픔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와 남동생의 죽음으로 아빠가 자신을 돌보아 주지 않아도, 동네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만을 언급해도, 친구들이 자신의 망가진 손을 쳐다봐도 그 아픔을 드러내되 징징거리거나 구차하게 굴지 않았다. 단지 조금 속상해 했을 뿐.

그래서 더 가슴 아픈 것이다.

 

비가 오지 않는 땅, 농작물이 자랄 수 없는 땅에서 그 땅을 일구며 살아야 하는 빌리 조의 아빠며, 오클라호마 사람들이며, 공황에 빠져 버린 미국인들까지 온 나라는 가난과 아픔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으로 조금씩 공황을 빠져 나오지만 그 빠져나옴은 고통과 맞섰을 때라는 것을 모두들 느꼈을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가출을 했던 조가 다시 돌아왔던 때처럼, 결코 모래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모래 폭풍을 향해 전진할 때 비로소 폭풍을 잠잠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처럼 말이다. 그럴 때에 희망의 비는 내릴 것이고, 모래를 잠잠히 만들어 줄 것이며, 농작물의 싹을 틔워 삶에 가능성을 증가시켜 줄 것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빌리 조는 그 한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헤쳐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과정이 너무 처연하고 가슴 아파서 작가마져 좀 더 나은 모습으로 고쳐서 쓰고 싶을 정도였다고 하니 모래 폭풍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빌리 조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을 고쳐 쓰고 싶었던 작가, 그 작가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는 나 같은 독자들의 마음 속에는 숨겨져 있는 고통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빌리 조를 보며 눈물짓고 모래 폭풍 속의 암울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 희망이 빌리 조에겐 엄마에 대한 그리움, 피아노에 대한 열망이 되어 서서히 피어 나고 있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도 힘겨운 시간이였다.

그러나 빌리 조는 모래 폭풍의 지나옴을 경험했다.

그 경험의 산물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 희망만 건져 내기로 했다.

그 희망이 내게도 닿는다면 기꺼이 품에 안으리라 다짐해 본다.

s****m 2007.05.10. 신고 공감 0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꿈과 용기라는 이름의 놀라운 힘
"꿈과 용기라는 이름의 놀라운 힘" 내용보기
케런 헤스의 [모래 폭풍이 지날 때]는 청소년을 위해 [생각과 느낌]이 펴낸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의 네번째 책이다. 이 책은 1934년 겨울부터 1935년 가을까지 오클라호마의 대초원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던 두 해동안 빌리 조라는 열네살 소녀에게 일어난 일을 소녀의 관점에서 일기체의 산문시로 쓰고 있다. 가난하고 어렵지만 따스한 엄마도, 곧 태어날 동생도,
"꿈과 용기라는 이름의 놀라운 힘" 내용보기
케런 헤스의 [모래 폭풍이 지날 때]는 청소년을 위해 [생각과 느낌]이 펴낸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의 네번째 책이다. 이 책은 1934년 겨울부터 1935년 가을까지 오클라호마의 대초원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던 두 해동안 빌리 조라는 열네살 소녀에게 일어난 일을 소녀의 관점에서 일기체의 산문시로 쓰고 있다. 가난하고 어렵지만 따스한 엄마도, 곧 태어날 동생도, 강인한 아빠도, 온전한 두 손도 모두 가지고 있던 열네살 빌리 조는 무서운 사고로 인해 그녀의 행복을 지켜줬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슬픔은 폭풍처럼 그녀를 덮쳤다가 모래폭풍이 남겨둔 모래알이 되어 공기와 함께 콧 속으로 들어와 진흙으로 뭉쳐지거나 음식과 함께 입 속으로 들어와 모래알로 씹히거나 침대 머리맡 베게 속까지 들어와 꿈 속까지 겁탈하며 빌리 조를 절망 속으로 몰아 넣는다. 빌리 조의 일기 한구절 한구절이 모두 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슬펐던 것은, 엄마와 동생을 잃은 뒤 남은 두 사람이 서로를 말없이 원망하며, 비난하며, 또한 가엾어 하며 조금씩 조금씩 더 멀어져 가는 부분이었다.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 긴 다리, 빨간 머리의 꼭 닮은 두 사람이 각자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 속에 시달리며 외로움과 절망의 끝에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그 장면- 서로를 안스러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서로를 결코 용서하지 못하기에, 먼저 다가가 딸의 어깨를 안아주거나 아빠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이 부녀의 쓸쓸한 모습은 엄마의 끔찍한 죽음보다도, 소녀의 무서운 악몽보다도 더 슬프고 아팠다. 여기까지, 앞에서 약 절반 정도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예쁜 이야기들도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왜 하필 빌리 조의 슬프고 잔인한 세상을 아이들 앞에 펼쳐 놓아야 하느냐고. 그러나 끝까지 모두 읽어내자 비로소 출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빌리 조의 슬프고도 감동적인 이야기야말로 삶의 모래폭풍과도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헤쳐나가야 할 청소년들에게 현실의 어떤 어려움도 위로해줄 힘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이 이야기가 끝나는 1935년 가을, 열여섯살이 된 빌리 조는 눈물을 참고 웃는 법, 삶의 슬픔을 기쁨과 바꾸는 법,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 현재를 사랑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을까. 그녀에게 어떤 힘이 있었기에, 사나운 모래폭풍을 이겨내고 촉촉한 흙을 움켜쥘 힘센 뿌리를 키워냈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그 순간, 우리는 그녀의 비결을 알게 된다. 꿈과 용기라는 이름의 놀라운 힘을.

[인상깊은구절]
아빠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어 어쩌면 엄마의 모습을 찾고 있는지도 몰라 하지만 불가능해 나는 아빠를 닮았어 (중략) 거울 속에 있는 내 얼굴에서 엄마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와 아기 프랭클린이 내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하지만 불가능해 나는 아빠의 딸이야 (p137, "아빠의 모습" 중)
j*****c 2005.11.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희망을 전하는 아이
"희망을 전하는 아이" 내용보기
중3 조카가 얼마 후 외고 시험을 친다고 했다. 그래서 시험치고 나서 보면 좋을 듯하여 신청하게 되었다. 선물로 주기 전에 내가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내가 리뷰어신청했던 책이라 꼭 읽어 보고 싶었다. 읽는 내내 나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했다. 모래폭풍으로 음식마다 모래가 들어가 서걱거리는 것도 경험했고 엄마를 구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희망을 전하는 아이" 내용보기
중3 조카가 얼마 후 외고 시험을 친다고 했다. 그래서 시험치고 나서 보면 좋을 듯하여 신청하게 되었다. 선물로 주기 전에 내가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내가 리뷰어신청했던 책이라 꼭 읽어 보고 싶었다. 읽는 내내 나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했다. 모래폭풍으로 음식마다 모래가 들어가 서걱거리는 것도 경험했고 엄마를 구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오히려 엄마를 다치게 했다는 오명을 쓰며 괴로와하는 주인공도 되고 동생을 낳고 숨을 거둔 엄마, 그 엄마의 애달픈 산고를 뒤로 하고 엄마를 따라간 동생, 그 대목에 책을 덮고 말았다. 가슴이 메이고 코 끝이 찡해 거실에 나왔는데 아이들이 동그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이런 땅에 태어난 것이 나도 다행이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환경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물론 힘든 상황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상황이 힘든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희망을 버리는 것이 더 큰 괴로움이란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마음이 천국이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천국임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희망만이 나를 바로 새울 수 있다는 것을 그 조카도 알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3****t 2005.11.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밀 같은 사람이야'
"'나는 밀 같은 사람이야'" 내용보기
때는 1934년, 주인공 빌리 조가 13살이 되던 해의 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의 일기로 된 이야기이다. 빌리 조가 사는 곳은 미국의 중남부 초원지대인 오클라호마 주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에 불어 닥친 대공황 시기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으로 경제를 재건하기 전, 계속되는 가뭄에다 초원을 밀재배지로 무분별하게 개간하여 발생하는 모래폭
"'나는 밀 같은 사람이야'" 내용보기
때는 1934년, 주인공 빌리 조가 13살이 되던 해의 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의 일기로 된 이야기이다. 빌리 조가 사는 곳은 미국의 중남부 초원지대인 오클라호마 주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에 불어 닥친 대공황 시기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으로 경제를 재건하기 전, 계속되는 가뭄에다 초원을 밀재배지로 무분별하게 개간하여 발생하는 모래폭풍의 고통까지 가중되었던 시기였다. 오로지 밀농사만을 고집하는 무뚝뚝한 아버지와 늦동이 동생을 임신한 엄마,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미묘한 심경의 변화들이 담담한 문체의 행간에서도 느껴지며 재미를 더한다. 지은이 캐런 헤스는 쓸쓸하고 냉혹한 현실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솜씨 있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돌고래의 노래>, <리프카의 편지> 등의 작품이 있다. 빌리 조의 아빠 베이어드는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로지 밀농사만을 고집하는 전형적인 농부이고, 엄마 폴리는 빌리 조가 학년 전체에서 1등을 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도 마치 빨래줄에 걸린 면보자기에게 말하듯 ‘잘 해낼 줄 알았다’고 끝내는 성마른 성격이지만,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눈이 부실 정도로 멋있는 사람으로 변한다. 비는 내리지 않고 계속되는 모래 폭풍의 고통에 이웃들은 하나 둘 짐을 싸서 서부로 이주하는 어수선한 가운데 빌리 조에게 불행이 닥친다. 아빠가 부엌의 화덕 옆에 가져다 놓은 등유 양동이를 물로 착각한 엄마가 커피주전자에 붓다가 불이 나고, 아빠를 부르러 엄마 뒤를 따라 나가다가 얼른 불붙은 양동이를 집밖으로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부엌으로 가 불붙은 양동이를 현관 밖으로 집어 던지는데, 하필이면 그때 집안으로 들어오던 엄마는 한순간에 불기둥이 되어 버린다. 엄마는 온몸에 중화상을 입고 신음하다 동생을 낳고는 숨을 거두고, 동생마저 바로 엄마 뒤를 따른다. 빌리 조는 손가락 뼈가 훤하게 드러나도록 심한 손의 화상으로 그렇게 좋아하던 피아노 건반을 덮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계속되는 가뭄으로 농사가 엉망이 되자 아빠는 땅을 파는 인부로 취직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야간학교에 다닌다. 점점 말이 없어지는 아빠가 낯설게 느껴지고 사고의 후유증으로 심한 우울에 빠진 빌리 조는 떠나고 싶다는 갈망이 점점 강해져, 어느 날 한밤중에 서부로 향하는 기차를 타게 된다. 황량한 벌판을 덜컹거리며 끝없이 달리는 기차에서 빌리 조는 아내와 세 아들을 친척집에 맡기고 떠나온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죽음과 같은 그림자가 눈동자에 짙게 드리워진 아저씨에게 빌리 조는 비스킷을 나누어 준다. 가족을 두고 떠나온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의 죽음과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서히 상처가 치유되고 비로소 빌리 조는 아빠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아빠는/잔디 같은 사람이야/ 흔들림이 없고/ 조용하고/ 깊이 뿌리를 내리지. 삶을 계속하기 위해/ 아빠와 나 그리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지탱하기 위해/ 힘을 비축해 두는 사람이야. 아빠는/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거야/ 내 변덕과 버르장머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아빠의 슬픔과 내 슬픔이/ 두 배로 내리눌러도/ 아빠는 가정을 지켰어‘ 빌리 조는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역으로 마중 나온 아빠에게 모래폭풍을 벗어나기 위해 떠났지만, 마음속에 있는 중요한 것들을 떠날 수 없었다고 이야기 한다. 아빠는 잔디와 같은 사람이지만, 빌리 조는 밀 같은 사람이기에 이곳에서만 자랄 수 있다는 알게 되었다는 것을. 빌리 조는 화상과 엄마의 슬픈 기억으로 중단했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다. 아빠는 정부에서 비상구호기금을 대출해주어 아빠는 다시 희망을 가지고 농사를 시작하고, 야간학교의 선생이었던 루이즈와 약혼한다. 마지막 일기 ‘길을 찾다’에서 드디어 빌리 조는 희망과 미래를 찾았다. ‘돌이켜 보면, 힘들었던 이유는/ 돈이나/ 가뭄/ 모래 때문은 아니었어. 힘을 잃고/ 희망을 잃고/ 꿈을 잃었기 때문이었어. ... / 내가 깨달았듯이, 사람들은 한자리에/ 머물러/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거야.‘
s*****g 2005.10.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현재의 나에게 만족해
"현재의 나에게 만족해" 내용보기
어느 날 갑자기 아기는 뒤집기를 하고, 혼자서 앉을 수 있게 되고, 벌떡 일어서서 자연스럽게 걷게 된다. 그런 것처럼 자아정체성도 시간이 지나면 내 안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 착각해 왔다.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머리로만 알았을 뿐이다. 20대 후반인 지금도 혼란스럽다. 나의 바보 같은 면을 용서한다거나 과거의 나와 화해한다는 것은 여전히 어
"현재의 나에게 만족해" 내용보기
어느 날 갑자기 아기는 뒤집기를 하고, 혼자서 앉을 수 있게 되고, 벌떡 일어서서 자연스럽게 걷게 된다. 그런 것처럼 자아정체성도 시간이 지나면 내 안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 착각해 왔다.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머리로만 알았을 뿐이다. 20대 후반인 지금도 혼란스럽다. 나의 바보 같은 면을 용서한다거나 과거의 나와 화해한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서른, 마법의 나이가 되면 사막에 가겠다고 결심했다. 사막을 열망하며 부지런히 살다보면 그곳에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주문을 걸었다.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모래 위를 맨발로 걸으면 정신이 번쩍 들겠지. 까실한 모래를 온몸으로 느끼면 삶의 무게를 이길 수 있을 거야. 매혹적인 사막 사진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했다. 아름다운 초원이었던 오클라호마 주가 사막 아닌 사막이 된 것은 1930년대, 대공황이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을 때였다. 열네 살, 꿈 많은 소녀 빌리 조는 풍족하지는 않아도 행복했다. 닦아 내고 닦아 내도 주변에서 발견되는 모래처럼 소녀의 삶에 위험한 징조가 조금씩 찾아들고, 어느 날 아침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고로 슬픔은 한꺼번에 폭발한다. 그래도 빌리 조는 울지 않았다. 행복해야 할 미래는 사라지고 고통스러운 현재만이 그녀를 압박해 온다. 모기 눈물만큼 비가 내려도 사람들은 희망을 보았다. 실낱같은 희망은 포기하려 할 때마다 뜨문뜨문 찾아 든다. 완전히 포기하기도, 계속 희망을 갖기도 힘들게 한다. 살기 위해, 행복해 지기 위해. 지겨운 모래를 피해 서부로 향하는 빌리 조. 엄마를 닮고 싶었지만, 영락없는 아빠의 딸이었던 소녀. 그래서 더 힘들었을 그녀는 ‘확실치는 않지만 자신의 생일인 것 같은 날’에 진정한 ‘빌리 조’와 만났다. 서른 살이 되면 사막에 가 볼 생각이다. 사진, 영상으로만 접했던 막연한 사막이 아니라, 사막 아닌 사막 ‘1930년대 오크라호마 주’를 마음에 깊이 새겨 넣었다. 진정한 나를 만나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사막일 것이라는 감이 강하게 온다. 산문시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야기가 처음부터 쉽게 눈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도입부를 서너 번 반복해서 읽은 뒤에야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익숙지 않은 형식이라고 그냥 던져 버렸으면 절대 맛볼 수 없는 감동이 숨어 있다. 단, 외적인 형태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다. 하드커버로 만들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또 제본이 깨끗하게 되지 않아서 인지, 책이 완전히 펼쳐지지 않는 부분이 꽤 있었다. 내용이 좋았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 경고! 지하철에서 또는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모래 폭풍이 지날 때>를 읽지 말 것!! 예기치 못한 부분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다른 사람과 눈 마주치면 상당히 곤란하다.

[인상깊은구절]
모래 언덕을 따라 어께를 나란히 하고 우리는 함께 걸었어. 나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등유 한 양동이를 부엌에 갖다 놓은 것조차도. 모래 구덩이 속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리는 함께 걸었어. 내 자신을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 내가 저지른 모든 일들도. p. 237 늘 모래 폭풍에서 벗어나려 애썼지만 이제는 알아. 사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건 모래 폭풍이야. 현재의 나에게 만족해. 그게 바로 나야. p. 258
i********l 2005.10.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