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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 연대기>를 읽으면서 아더왕 신화에 관심이 생겼고, 자연히 아더왕 신화를 다룬 다룬 책들도 읽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더왕 신화를 본격적으로 다룬 서적은 거의 전무했다. 그 중에 <파르치팔>이 완역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난 주저없이 그 책을 선택했다. <파르치팔>은 중세 서사시나 성배 전설의 고전으로 훨씬 더 유명한 작품인데, 난 아더왕 신화를 통해 알게 된 셈이다.
<파르치팔>은 바보같은, 아니 말 그대로 완전 바보인 아이가 가장 선한 기사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파르치팔이 어머니의 충고를 말 그대로 곧이곧대로 듣는 바람에 온갖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는 대목을 보다 보면 어느새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광대도 입지 않을 요상한 옷을 입고 천연덕스럽게 다니다니! 하지만 웃는 것도 초반만이었다.
<파르치팔>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이다. 해프닝을 주로 다루는 초반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파르치팔은 고의가 아니지만 많은 실수를 하는데, 그 중에는 당시 예법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행위가 되는 것도 여럿 있었다. 이런 일들은 서사에서 처음 언급될 때는 기껏해야 좀 비중있는 해프닝 정도로 취급되고, 아예 지나가듯이 언급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도 많다.
파르치팔이 점점 기사로 거듭나게 되면서, 여러 위험에 직면하고 많은 과업을 해결하게 된다. 그 중에는 과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도 포함된다. 개인적으로는 성배 이야기보다 이 대목을 훨씬 인상깊게 읽었다. 자신이 대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서서히, 스스로 혹은 주위 사람의 가르침으로 깨달아간다. 자신이 미숙해서 그랬느니 어쩌니 하면서 변명하려 들지도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피해를 회복시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힘껏 노력한다. 그 일을 공적이라도 되는 양 떠벌이지도 않고, 할 일을 다한 것뿐이라는 수준의 공치사조차 내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입혔던 피해만을 상기하며 마음을 다스릴 뿐이다.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파르치팔이 성배의 기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냉소적으로 본다면 성배를 지키는 어부왕의 친척인 덕도 톡톡히 보지 않았겠느냐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르치팔이 그 덕에 성배와 관련된 친인척에게 여러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성배를 찾고 어부왕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학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순수하고 진실된 마음가짐이었다.
번역도 딱히 어색한 부분이 없고, 충실한 주석도 돋보인다. 삽화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좋게 말해 소박하고, 나쁘게 말해 투박한 그림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그림이 파르치팔의 우직할 만큼 순수한 심성에는 잘 어울리고, 중세 분위기도 내고 있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저자도 언급했듯이, 서사'시'의 형식을 거의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직역하면서 운율을 맞추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했겠지만, 시의 형식을 갖추는 것 정도는 불가능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척박한 한국 고전 풍토, 그것도 중세 독일의 서사시가 완역되었다는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소소한 아쉬움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아주 사소한 것인데, <파르치팔>의 고유명사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을 따로 정리했으면 독자 입장에서 정말 유용했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난 작품 자체로만 보지 않고 다른 작품이나 신화와의 연계성을 파악하면서 읽는 편인데, 덕분에 여러 언어로 쓰인 작품의 번역서를 볼 때는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다. '작품에 쓰인 언어의 발음대로 고유명사를 읽는 것'을 원칙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헷갈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파르치팔>은 독일어 서사시이니만큼 당연히 독일식 발음을 따르는데, 아더왕 이야기는 영국 이야기다 보니 흔히 알려진 이름과 발음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난 <아발론 연대기>를 안 읽었으면 '가반'이 가웨인의 독일식 발음인지 절대 몰랐을 거다. 대부분은 처음 이름이 언급될 때 주석에서 설명하고는 있지만, 뒷부분의 부록에라도 따로 수록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것을 아쉬운 점으로 꼽을 정도라면, 이 책이 얼마나 결점이 없고 좋은 책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옥이니까 티가 보이는 거지, 가치 없는 돌덩어리라면 티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법이니까.
사족이지만, 제목이 왜 <파르치팔>인지 궁금하다. 정확히 말하면, 파르치팔의 비중이 정말 낮다. 중반부의 절반이 가반(가웨인) 이야기다. 물론 파르치팔이 마지막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서도 정신적으로 중심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주인공이 거의 나오지 않는 건 읽는 입장에서 좀 황당했더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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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성배 이야기로 알려져있는 크레티엥 드 트루아의 '페르스발 혹은 성배 이야기'에는 성배를 얻기 위해 시련을 겪는 청년이 등장합니다. 청년은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어부왕을 보면서도 그를 동정하지 않아 모험에서 실패했고 이야기는 멈춥니다. 이제 볼프람 폰 에셴바흐는 '내가 이 이야기의 진상을 알고 있다'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바로 '파르치팔'이죠.
볼프람의 이야기에는 원탁의 기사 가반이 전면에 등장하고, 파르치팔은 마침내 자신의 모험에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바그너의 악극 '파르지팔'의 기본 텍스트이며 '로엔그린'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이 작품은, '다빈치 코드'와 같은 관점에서 볼프람의 '파르치팔'은 "성배"의 비밀을 간직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성혈과 성배'에서 '파르치팔'이 나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죠.)
한길사의 출판본이 텍스트와 전혀 상관없는 그림을 표지에 올린 것은 좀 당혹스럽지만 책 속에는 파르치팔과 관련한 중세의 그림이 여러장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무척 마음에 듭니다.
역자는 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많은 주석을 달아두었습니다. 1200년 경의 유럽 궁정에서 꿈꾸는 환타지 같은 작품인만큼 때로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기도 해서 독해의 많은 부분을 주석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주석이 스포일러처럼 작용해서 작품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잃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
그렇다 하더라도... 속내를 말하자면 출판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트프리트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언젠가는 출간되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되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