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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이 책에 대한 조선일보 서평에서 발견한 한 줄의 문장이었다.
"80년대적인 반미의식". 흐음~박노자나 진중권 같은 반미논객들이 21세기의 눈으로 미국을 비판한 글은 많이 접해 일견 어떤 식으로 논의가 전개될지 짐작이 가곤 했으나, 80년대적인 반미의식이라면 또 얘기가 다르다. 구미가 당기는군.
그런데 정작 읽어보니 저자가 미국이 해방군이 아닌 또다른 점령기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80년대적인 반미의식이라고 하기보단 일반적인 역사의식의 줄기를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책들과 구별되는 점이라면, 국가권력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근대민족언어가 형성되고 이데올로기화되는 과정을 상세히 그림으로써 국가권력의 난폭한 얼굴을 드러낸 점이랄까.
이 책은 1945년에서 1970년대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근대민족국가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삐라니 전태일이니, 국보법이니 하는 당시 문화적 아이콘 내지 이슈를 매개로 읽어냈다. 특히 영어실력이 곧 능력으로 인정받는 풍조의 형성, 당시에도 뜨거운 논란거리였던 한자폐지론 등은 지금도 끝나지 않는 현안들이라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딱딱한 근현대사를, 그것도 근대민족화 형성에 따르는 국가권력과 이데올로기, 헤게모니의 머리아픈 싸움을 말랑말랑하게 풀어낸 덕에 별다른 두통없이, 무사히(!)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사다놓기만 하고 마지막 장까지 독파하지 못한 책이 어디 한 두권 이었던가!-.-) 오랜만에 젊은 역사서를 만나니 좋군!
[인상깊은구절] 우리 현대사는 정치적 삶의 바로 이웃에, 또 다른 삶으로 존재해왔습니다. 분명 우리에게서 나온 흔적임에도, 망각해버린 혹은 망각당한 기억과 말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 역사는 오랫동안 '실어증'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나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