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 아침 > 음악을 틀었다. <봄날은 간다>의 첫머리가 나오자마자 갑자기 가슴이 싸아해진다. 그러더니 덜컥 눈물이 나고 만다. 우아하게 한 두 줄기 흐르는 눈물이 아니라 눈 붓고 코 붉어지는 그런 울음이다. 내가 왜 울까. 어제 실연을 당한 것도 아니고. 추억이고 회한인가 보다. 향수와 체념인가 보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어제 저녁> '두 글자의 철학'이라는 책을 읽었다. '철학'이라는 말은 참 부담스럽다. 너무 어렵고 너무 진지하고 너무 무겁다. 그런데 알고보니 '철학'은 단지 두 글자일 뿐이라지 않은가. 그래서 읽었다. 나와 세상을 둘러 싼 두 글자 - 인간, 자유, 희망, 고통, 낭만, 모욕, 향수, 후회, 체념 등에 대해 철학적으로 풀어나간 책이었다. 어렵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고 내가 겪은 감정들에 대해 그 저변을 풀어나가는, 그래서 감정을 이상적으로 이끌어가주는 차분한 책읽기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인간, 자유, 희망, 질투, 모욕, 체념 등의 철학적 사유보다는 이것들이 담겨 있는 영화와 노랫말에 더 마음을 빼앗기며 읽었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가사로 다시 만난 것도 이 책에서였다. 내일 출근하면 '낭만에 대하여'를 찾아서 들어야지, 하는 책과는 다소 엉뚱한 다짐을 하며 책읽기를 마쳤다. < 다시 오늘 아침 > 쓸데없는 일에는 강한 성취동기를 갖고 사는 한가한 인간답게 어제 다짐한 <낭만에 대하여>를 들었다. 듣는 김에 흘러간 노래 찾기에 빠졌다. 그렇데 다시 들려온 곡이 <봄날은 간다>였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치매 할머니가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뒷모습을 보이며 유유히 사라지던 날, 나도 울었더랬다. 내가 왜 울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다가 어제 읽은 책 생각이 나 피식 웃고 말았다. 내 안에 들어 있었을 감정을 그만 철학적으로 발견하고 말았다. <두 글자의 철학>이 가져 온 행복 쯤으로 마무리해도 좋을 듯 싶다. |
| 갈수록 서평쓰기가 힘들다. 제법 익숙해질 때가 됐다싶으면서도 막상 쓰려고 하면 이내 자신감을 잃게 된다. 문득 그 이유를 고민해 본다. 고민을 핑계로 몇몇 서평을 뒤로 미루어둔다. 그렇게 뒤로 밀린 건 영원히 써지지 않을 것이다. ‘포기’인 셈이다. 고민 끝에 나름의 해답을 얻었다. ‘허영’과 ‘무지’ 탓이었다. ‘허영’, 일테면 지적 허영이라 할 수 있겠다. ‘자만’도 한몫을 거들었다. 그동안 책에 대한 이해와 상관없이 그럴싸한 리뷰를 써보겠다는 강박적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 얼핏 보아 현란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빠진 허접한 리뷰들이 양산되고 있었다. ‘무지’, 청산에 올라서니 청산이 멀더라고, 오르면 오를수록 지식의 산맥은 높기 만하다. 그 높고 넓은 산맥 중 그 어느 작은 산조차 ‘내 것’이라 자처할 만한 게 없다. 문학, 과학, 역사, 철학 어느 것도 ‘내 것’ 혹은 ‘내가 아는 분야’라 할 만한 게 없다. 그러니 나의 글은 매양 정수를 찌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만다. 지적 게으름이 빚어낸 참담한 결과다. 거창하게 철학, 문학, 과학, 역사 등을 거론할 일도 아니다. 하물며 평소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간단한 어휘들의 의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게 태반이 말이다. 하여 그간 뱉어낸 나의 말은 9할이 거짓이며 사기였던 셈이다. 1할의 여지는 악의가 아니었음에 대한 정상참작일 뿐이다. 생명, 자유, 고통, 희망, 낭만, 시기, 순수, 관계, 비판, 책임, 용기, 체념... 평소 얼마나 자주 쓰던 말들인가. 그러나 그 가운데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몇이나 되나. 그저 피상적이며 도식적 이해에 근거해 아무렇게나 오·남용해 왔을 뿐이 아닌가. 철학자 김용석의 <두 글자의 철학>은 나의 지식결핍을 새삼 뼈저리게 일깨워준다. 대기의 오염은 자연을 훼손하지만 말의 오염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두고 언어적, 정치적,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말이 바로 잡혀야 정치가 바로 서고, 거기서 살맛나는 사회의 기초가 다져진다는 뜻일 터다. 말을 바로 잡기 위해 저자 김용석은 한자식 조어의 해체와 재해석을 주문한다. 특히 저자가 주목한 것은 ‘두 글자’의 틀에 갇혀 고정관념으로 고착돼버린 말들의 의미를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 ‘두 글자’의 틀 안에는 무시할 수 없는 우리네 전통과 관습, 그리고 고정관념이 담겨 있다. 그것들은 종종 우리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세상이 어느 때보다 빨리 변하고 있는데, 생각이 변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저자 김용석은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들로 각각의 ‘두 글자’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 새롭고 다양한 시각은 개념을 변화시키고, 개념의 변화는 실천을 위한 사고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생명, 감정의 발견, 관계의 현실의 3부로 구성된 책의 각 장을 따라 읽다보면 문득 드넓고도 울창한 지식의 숲 한 가운데에서 지식의 열매를 실컷 따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울창한 지식의 숲은 결코 하루아침에, 저절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본문’이 지식의 열매를 따먹는 즐거움을 준다면, ‘글 뒤에’의 ‘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는 지식의 열매가 무르익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노력과 지속적인 열정이 필요한가를 깨닫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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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향수, 유혹, 질투, 그리고 행복. 26개의 단어들.
두 글자의 한 단어 속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사고思考 들의 잔치 !
최첨단이 자랑인 듯 매일같이 최신의 제품과 상품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툼을 하며 쏟아져나오는 오늘날 이미 알고 있는 이름보다 더 많은 이름들이 서로를 알리고 있다. 시선으로도 쫓을 수 없을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쉼'은 곧 죄악시 되고, '행동'은 찬양시 되어버렸다. '생각'을 권유하기보다는 '활동'을 강요하고, '깊은 사고력思考力 '보다는 '넓은 정보력情報力'을 우선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창조적인 생각Creative Thinking'이라고 하니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을 사유思惟 라 하는데, 철학적 개념으로는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으로 본다. 본질이나 객체의 외면에 나타나는 현상現象에 집중하고 마치 그것 밖에는 없다는 듯 몰두하며 살았던 내게 '사유思惟 의 즐거움'을 알려준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자 문명의 영향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기에 이렇다 할 관찰의 대상이 되지 못한 관념의 두 글자들을 한데 모아 그들에게 본래의 이름값을 매겨주는 화려한 잔치가 열렸다. 철학자이면서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용석 교수의 생각과 손에 의해 펼쳐진 잔치의 이름이 바로 [두 글자의 철학]이라는 책이다.
우선 글을 읽고 있자면, 벌거숭이 디오게네스나 발끝까지 끌릴 듯 긴 수염의 공자님처럼 기인奇人 이나 노인老人의 모습을 띨 것 같은 철학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이 표현만 봐도 난 현상학적 관념주의자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잘 다려진 블루톤 체크무늬 피케셔츠에 소매는 두 번 정도 걷었을테고 그에 어울리는 조끼를 입고, 그리 헐렁해보이지 않지만 편안해 보이는 갈색 카고바지에 양말이 보이지 않는 덮개가 있는 슬리퍼를 신었을게다. 한 손에는 책을 들었는데 책의 한 쪽 면을 밖으로 감아 손에 쥔 채로 밤색 뿔테 안경 너머로 나를 보며 즐기듯 고민하는 듯 이야기를 하고 있다. 빛과 어두움이 교차하는 서재의 중간에 둘이 앉아 있을테고, 오래된 책 냄새와 파이프 담배냄새도 나는 듯, 커피향도 은은하게 흐르는 듯하다. 저자이자 화자는 묻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강조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편안하게 듣는 듯 읽기만 하면 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방대한 자료와 축적된 사고로 펼쳐지는 이 축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관념적인 두 글자의 한단어를 찾아 그 함축적 의미를 단어의 기원인 한자에서 찾고, 동서고금의 자료속에서 그 단어의 넓이와 깊이를 더한다. 게다가 우리가 봤음직하고 읽었음직한 영화와 책속에서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단어가 얼마나 멋들어진 말인가를 되새겨준다.
예를 들어 말씀 언言 과 빼어날 수秀 의 합으로 만들어진 꾈 유誘 자가 더해진 유혹誘惑 은 세익스피어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키스 장면처럼 줄리엣이 로미오의 요구를 모두 거절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사실 모든 것을 허용하고 더 나아가 로미오를 유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재림 감독의 영화 [연애의 목적]에 나오는 "저가 가서 키스나 하고 갈래요?" 같은 대사는 거부할 것을 알면서도 시도하는 표현만 다른 유혹으로 시대는 바뀌었어도 생명력의 표출과 즐김, 그리고 기쁨으로서의 유혹의 변질은 변하지 않음을 사례를 들어 이야기한다.
또 우리는 '유혹을 당한다'는 수동태의 표현을 자주 쓰는데, 실은 유혹이 곧 욕망을 실현하는 기회라는 점에서 매우 능동적이라고, 그래서 '유혹당하기'는 '욕망채우기'와 일치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혹은 대표적인 상호 소통의 행위라는 것을 소유, 정복, 지배에 대한 욕구 때문에 현대인들이 잊고 있던 것이고, 소통은 즐거움이므로, 유혹은 본질적으로 유희라는 것이다. 단, 키에르케고르가 "모든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유혹자가 있다. 행복이란 바로 그를 만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걸맞는 상대를 만났을 때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단번에 걸맞는 상대를 만날 수 있겠는가? 여러 상대를 많이 만나봐야 걸맞는 상대를 알아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보면 확실히 유혹은 자주 당해도 보고, 해도 봐야 한다는 말이 맞기도 하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공감의 느낌은 사고가 확장된 듯 막혔던 교통체증이 풀린 듯 산뜻한 느낌을 주었다. 주워 듣기만 사람과 생각한 사람과의 차이점을 새삼느끼게 한다.
[리뷰]를 읽는 독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유혹'이라는 두 글자의 단어를 썼을 뿐, 이보다 더 훌륭한 문장의 생각들이 유혹을 포함해 26 가지의 두 글자 단어들를 통해 펼져진다. 잔치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관념적인 단어에 대한 철학적 해석'에 대해 어려워서 포기하지 않을까 했던 선입관으로 비롯된 두려움을 몇 장을 넘기면서 어리석인 기우杞憂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늘 내가 사용하고, 옆에 두었던 말들(단어들)이었는데, 이렇게 깊은 뜻과 이야기가 숨어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느낌은 감탄이 되고, 오해가 풀려 이해로 변했다. 정말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여느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형상화되지 않은 관념들이 머리속을 떠도는데도 즐거움은 더했다.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리라. 더우기 뜻하지 않게 선택한 책 속에서 이런 재미를 느끼기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저자의 책을 좀 더 찾아 읽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인류 최대의 화두이자 이 책에는 있을 법하지만 없는 '사랑이라는 두 글자의 철학'을 또 다시 저자의 손을 빌어 읽고 싶다.
나처럼 짧디 짧은 어휘력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두 글자로 된 한 단어'가 얼마나 깊은 의미와 이야기를 갖고 있는 지 알게 될 것이고, 영화와 책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사고의 확장이 어디까지 가능한 지를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너무 어려워서, 아니면 나와 상관없다고 치부해버렸던 철학이란 학문이 실은 우리 생활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와 있는지, 그리고 그 쓰임과 소용이 얼마나 방대한 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 단어의 이야기마다 그리 길지도 않다. 혼자 있을 때, 혼자 있지만 외롭고 싶지 않을 때 읽으면 참 좋을 책이다. 특히 오늘 처럼 눅눅히 흐린 저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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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회의 변화 속도는 거의 측정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현대라는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변화하는 물질 세계만큼이나 우리 정신 세계도 새로운 변화의 시점에 놓여 있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읽을 수 없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는 점점 세분화, 복잡화, 파편화되어 가고 있는데 비해, 우리의 의식 수준은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위와 같은 물질 문명과 정신 세계의 괴리는 우리 사회에 뜻하지 않은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최근 각종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급증하는 자살률과 연쇄 살인 사건 등은 인명경시 풍조의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철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거창한 철학적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들이 겪는 평범함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돌이켜보고 무엇이 진정한 우리들의 모습인지, 그리고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필요하다. 지은이는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 자주 사용하는 두 글자로 된 언어에 주목한다. 생명, 자유, 휴혹, 고통, 희망, 행운, 안전, 낭만 등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말은 대체로 두 글자다. 이 두 글자들 속에 담긴 의미를 따라 새로운 사유를 하기를 원하고 있다. 비록 두 글자지만 이 두 글자를 통해 수 백, 수 천 가지 생각이 넘쳐나기를 바라고 있다. 인간의 조건, 감정의 발견, 관계의 현실 등. 3부로 나누어 영화, 문학, 가요 등 다양한 문화적 텍스트를 끌여들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감정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는 신선했다. 일반적으로 철학서에서 감정을 다루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지은이는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낭만, 향수, 시기, 질투, 모욕, 복수, 후회, 행복, 순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머리 속에 추상적인 이야기로만 머물러 있던 내용들이 이 책을 통해 어렴풋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는 느낌이다. 지은이가 인용하는 글에 대한 출처가 없어 어디서 인용한 글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고, 많은 영화들을 인용하면서 줄거리를 지나치게 길게 소개하고 있어 마치 영화감상문 같다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지은이도 인정하고 있듯이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주관적인 이야기로 흘러가버려서 뜬 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경우도 있다. 이 책은 혼자만 읽고 그냥 끝낼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책에서 언급된 주제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대화하고 그럼으로써 서로 소통하고 우리들의 삶과 생활에 대해 좀 더 진지해질 수 있는 시간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단지 수많은 사유에 대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정도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본다. 이 책에 언급된 내용을 소화하는 것은 책을 읽은 독자에게 달린 몫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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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똘히 생각하던 것을 중단하는 순간, 시작을 외치는 무언가. '두 글자의 철학'
철학이라 하면 철학이라고 붙일 수 있지만 내가 이 책을 덮고 나서 생각한 건 '철학'이 '철학이 아닌 것'이다. 조금 더 덧붙여보자면 '철학'이라고 했을 때 나를 비롯한 뭇사람들이 떠올리는 무거운 이미지의 '철학'은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조차도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게 말해서 '형이상학적'이고, 정말 와 닿도록 풀어헤쳐 말하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싶을 때 그 깊이부터 머리 아프게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한 미지의 세계에 도달'이라 일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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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어려울 것 같다. 철학을 가장 쉽게 풀어 썼다는 <소피의 세계>도 두번이나 시도했다가 포기한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앞의 "두 글자" 라는 글자 때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글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궁금했고, 잘못 알고 있었다면 이 책을 계기로 바르게 써야지~하는 생각도 있었다. 요즘 내가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 글짓기에도 무척이나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가 김용석은 여는글에서 "천 가지 생각으로의 초대"라는 소제목을 붙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글자의 의미 뿐만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혹은 모르는 척 해 왔던 또다른 의미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또한 함께 생각하고 즐기자고 한다. 그렇게 하면 두 글자로 된 말을 두 가지 생각이 아니라 천 가지 생각으로 만들수 있다는 것. 그것이 작가가 이 책을 쓴 의도이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인간의 조건(생명, 자유, 유혹, 고통, 희망, 행운, 안전), 2부에서는 감정의 발견(낭만, 향수, 시기, 질투, 모욕, 복수, 후회, 행복, 순수) 그리고 3부에서는 관계의 현실(관계, 이해, 비판, 존경, 책임, 아부, 겸허, 체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이 책은 대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작가가 글을 쓰기 전 항상 많은 공부를 한다는 데, 그것이 관련 영화를 보고 관련 책을 읽어 그 자료들이 책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려울 것처럼 느껴지던 설명이 예로 나오는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에 빗대어 설명하면 그 의미가 바로 내 가슴에 전해진다. 1부 자유편에서 <블루>의 주인공 줄리가 정사를 나누는 '푸른 방'의 경계(둘만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경계)가 그렇고, 유혹편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유혹하며 나누는 대화를 인용한 부분도 그러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을 소개하자면, 2부 감정의 발견에서의 "낭만"과 3부 관계의 현실에서의 "체념"이다.
"낭만"에서 작가는 노래 두 곡을 인용한다. 하나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이고, 또다른 하나는 체리필터의 <낭만 고양이>이다. 난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나이 드신 분들이나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해왔다. 노래방에 가면 우리 아버지가 부르시는 노래이고, 노래 자체도 30대인 내가 즐겨 부를만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오히려 몇 년전에 유행했던 <낭만 고양이>를 더 흥얼거리던 나이다. 그런데, 그 노래 가사를 활자로 보니...아~ 어쩜 그리 가슴을 후벼파던지... 정말 "낭만"이란 두 글자가 노래 가사에 뚝뚝 떨어져 있다. 나도 이제 늙었나보다. 그런 촌스럽고 소박하고, '실연의 달콤함'이라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추억을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체념"의 장에선 동화 두 편이 나오는데,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과 케네스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다. 이 두 편의 동화를 통해 체념과 포기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일상적 체념과 삶을 초월하고 달관하는 체념에 대해 설명한다. 이 두 편의 동화는 읽어본 적은 없지만 줄거리라든가 그 안에 내포된 주제 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과 "체념"을 연관지어 생각하니 또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포기는 아무때나 그만두는 일이고, 체념을 위해서는 깊은 깨달음이 있든지 전환의 진통을 스스로 경험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체념의 과정이 아프다고. 포기는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체념은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책의 매 주제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나에 관하여, 우리에 관하여, 사회에 관하여...그리고 존재 자체에 관하여. 글자의 의미를 알면 제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 그냥 아무렇게나 쓰는 말들이 사실은 깊은 의미를 담은 글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 글자는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이다. 나에게 이해(용서와 함께)란 무엇인지, 책임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
| 김용석. 내가 정말 좋아하는 우리나라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요 몇년 사이에 관심을 갖게 된 대표적인 철학자로 김용석과 탁석산을 들 수 있는데, 탁석산 선생님의 경우에는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의 주체성>이라는 미니 문고판 책으로 단번에 스타 철학자로 우뚝 선 반면, 김용석씨(선생님이란 칭호는 나에게 오프라인을 통해 가르침을 준 분이기에 사용했고, '씨'는 오로지 책을 통해서만 안 분이기에 구별해 사용했다)의 경우에는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듯 서서히 다가왔다. 그리고 실제로 대중들에게 알려져있기로도 대중에게 다가서는 탁석산 선생님의 접근 방식과 김용석 씨의 접근 방식은 엄연히 다르다. 두 분 모두 강단철학이 아닌 대중적인 철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탁석산 선생님의 경우에는 무게있는 주제를 가볍게 다루는 반면, 김용석 씨의 경우에는 가벼운 주제를 깊이있게 다루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철학자 김용석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지금은 절판된 <서양과 동양이 만나 127일간 이메일을 주고 받다>라는 책을 통해서다. 이 책에서 그는 서양철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승환 교수는 중국철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이 대화가 대담집의 형식을 빌어 나온 것이었다. 일방적인 강의보다 대담 형식의 책은 같은 주제를 통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의 시각을 엿볼 수 있어 더 폭넓은 사고를 장려한다. 이 책을 통해 김용석씨의 사유가 마음에 와 닿았고, 이후 그의 저서를 곁눈질 하고 있었으나 <일상의 발견> 이외에는 아직 접하지 못했다. 그리고 세번째 그와 만난 것이 바로 이 책, <두 글자의 철학>이다. 책이 소개되면 그 책의 내용과 불문하고 바로 구입해버리는 작가가 나에게는 몇 있다. 김용석씨가 그렇고, 앞서 언급한 탁석산 선생님이 그렇고, 스위스의 젊은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그렇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저서가 최근 번역되자마자 바로 '질러버렸다'. <두 글자의 철학>은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들을 주제로 삼아 저자의 생각을 풀어내는 철학에세이이다. 저자는 크게 1부 인간의 조건, 2부 감정의 발견, 3부 관계의 현실의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각의 범주안에 두 글자로 된 작은 제목들을 품고 있다. 생명, 자유, 유혹, 고통, 희망, 행운, 안전, 낭만, 향수, 시기, 질투, 모욕, 복수, 후회, 행복, 순수, 관계, 이해, 비판, 존경, 책임, 용기, 겸허, 체념 등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여러가지 주제를 다룬다고 하여 결코 글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주제 하나를 다루더라도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평상시에 가지고 있던 깊이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쓰여졌고, 우리가 뻔히 다 아는 주제이고 여기서 더 무엇이 나올까 싶은 주제들이지만 내가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 자신이 생각한 것 등을 바탕으로 폭넓고 깊이있는 시각을 전달해준다. 그래서 그의 글이 좋다.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소재를 다루지만 거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부분을 물어 들어가 사색의 향연을 펼쳐준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흠뻑 젖은채 즐긴다. 책에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명언이 나오지만, 그는 명언에 의존하지 않는다. 명언은 단지 그의 글을 보조해줄 뿐이고, 정말 알짜배기는 그만의 순수한 사유이다. '용기'와 '소신' 에서 보여준 그의 이런 사유들은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이 자기 생각을 만들어갈 때 중요한 것은 결론 이상으로 과정이다. 더구나 어떠한 입장에 대해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지속적인 반성과 성찰을 전제로 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위험하다. 진짜 소신을 중요시하는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해오던 것과 믿어오던 것을 수정할 줄 안다. 소신을 내세우고 지키며 굽히지 않는 것 이상으로 소신을 관리할 줄 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성실한 관찰, 치밀한 사고, 다른 사람과의 지속적인 대화, 포용적인 세계관 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실수와 오류를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소신은 강자앞에서 지키는 것이지 약자 앞에서 내세우며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소신이 그야말로 옳다고 확신하더라도 약자의 소신에 문을 열줄 알아야 한다. 진정으로 소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신에 귀 기울이고 그것이 부각되도록 하며, 그것이 지켜지도록 배려한다. 이것이 소신있는 사람의 겸허함이다." "모든 일에 총명하게 대처하고 매사에 정의롭게 행동하며, 용기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의 에너지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편안한' 상태의 자기를 유지하기 힘들다. 이때 필요한 것이 겸허의 자세이다. 즉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쓰던 에너지를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로 돌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에너지 사용을 적절히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겸허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겸허는 자신의 능력을 가장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무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능력대로 삶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겸허는 일반적 정의에 따르면 다른 사람 앞에서 뻐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인 관계의 덕목이지만, 각 개인의 차원에서는 결국 자기 조절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자아 찾기의 덕목인 것이다." 이로써 나는 책을 통해 그와 세번째 만남을 경험했고, 그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책을 조만간 탐독하겠노라 다시 다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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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상의 ''감정''을 ''이성''으로 표현한 책이다.
그 표현이 작가의 다방면에 걸친 지식을 바탕으로 정곡을 찌르는 시선까지 곁들여져
더할나위 없이 잘 설명되었다는게 나의 느낌이다.
각 소단원 제목에 덧붙여 작가 나름의 결론을 10자 가량되는 짧은 문장으로 표기해놓아
대충의 느낌을 잡기에도 좋고, ''아니, 어째서 이렇게 생각했을까'' 라는 호기심을 갖게도
해 글 속으로 쉽게 빨려들어간다.
난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단 생각이 점점 강해졌고
심지어는 아직 있지도 않은(>.<) 내 자식도 읽게 해줘야겠단 생각도 했다.
막연하게 느끼기는 쉬우나 이것을 내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보통 이상의 능력을
요구한다. 이런 면에서 작가의 출중한 능력이 돋보이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인상깊은구절] 현실에서의 용서는 항상 ''어느 정도의 망각''과 ''약간의 무시''와 ''많은 편의''를 동반하는 행 위이다.즉 용서한다고 믿고 그 믿음의 편리함을 취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대충 넘기지'' 또는 ''참고 넘어가지''같은 일상적 요령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것은 일종의 ''비합리적 지 혜''이지만 요긴하게 쓰인다) ...... 정말 맞는 이야기이지 않나???^^ |
|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니까 이제 제법 귤을 먹을 때가 됐다 싶다 귤은 달콤한 맛도 좋고, 적당히 새콤한 맛도 좋지만 무엇보다 일품인 것은 입안에서 퍼지는 시원함이다 다양한 맛을 가진 과일들 중에서 내가 귤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 시원함이 아닐까 두 글자의 철학은 시원한 귤이다 겨울에 가장 흔한 과일이 귤인 것처럼 이 책의 주제들은 하나같이 흔한 것들이다 하지만, 탱글탱글하기도 하고, 말랑하기도 하고, 때론 새콤한 맛이 강하고, 때론 단 맛이 강하다 이 다양한 맛들이 알알이 서로 얽혀 읽을 때마다 머릿속에 시원함이 톡톡 터진다 생각이 아랫목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을 때 침샘을 자극하는 시큼한 맛과 달콤함, 그리고 시원함을 잊지 못하고 찾게 될 것이다 하나하나 벗겨낸 후, 손톱에서 묻어나오는 귤 냄새도 나는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