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일한 평전을 읽고 느낀점이 많았답니다.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그시대에 앞서서 종업원 지주제 실천, 등등
돌아가신지 30년이상 되었는데 기업인이나 일반인들이
존경하는 이유를 알수있었어요,우리 아이가 중2 도덕 교과서에 수록된 인물이라고
옆에서도 한수 알려주네요. 우리나에도 훌륭한 기업가들도 많치만
유일한 박사님의 정직과 댓가없는 나눔의 실천이 이 시대를 책임지고가야하는 젊은이들에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널리 퍼져 나갔으면 좋겠어요
기업이나 국민들이 건전한 경제활동보다는 부동산 투기나 한탕주의로 돈을 벌려는 요즈음 생각의 고리에 발을 묶어 놓는 계기가 되었음 하는 조그마한 바램입니다 [인상깊은구절] 나의 전재산 학교 재단에, 아들엔 한푼없이 자립하라 |
|
'어제는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으며 내일은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오늘은 어제를 행복의 꿈으로 만들며 모든 내일을 희망의 비전으로 바꾸어놓는다.' 유일한(柳一韓)이 늘 품고 있었던 메모입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다간 유일한은 1971년 3월 11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4월 4일, 유한양행 사장실에서 유일한의 유언장이 개봉되었습니다. 그 유언장이 4월 8일에 공개되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유일한 평전을 읽었습니다. 지난 주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새벽에야 겨우 다 읽었습니다. '겨우'라고 한 것은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지, 읽기에 지겨웠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말 내내 일이 있어 돌아다니다가 딸이 잠든 다음부터 집어들었는데, 오히려 생생한 마음으로 출발해야할 월요일 아침을 담보로 잡으면서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읽는 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합니다. 그것도 충분히 본받을만 사람의 전기를 읽는다는 것은 복 중의 복입니다. 세계1,2차 대전과 일제, 해방, 6.25, 4.19, 5.16을 관통하는 격동기를 살았던 유일한의 인생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습니다. 돌아가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초간단 버전으로 한 사람의 생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난 유일한은 서구문물을 배워오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 때 일한의 나이 10살. 여러 사람을 도움과 땔감 만드는 일을 하면서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대학 등록금이 없어 변전소에 취직하여 학비를 마련하고 미시간 대학에 입학합니다. 당시 국제 정세와 조국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일찌감치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대학 졸업반이던 1919년 4월 14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대회에서 '한국 국민이 독립운동을 일으킨 목적과 바람을 알리는 글'을 발표합니다. 한편 미국 CIA의 전신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의 한국 담당 고문을 맡게 되는데, 이 때의 정보력을 바탕을 1942년에는 항일무장독립군격인 '한인 국방경위대' 창설에 주동적인 역할을 합니다. 나아가 OSS의 비밀 침투작적인 냅코(Napko) 작전에도 참여합니다. 이 작전은 1945년 일본의 항복과 함께 실현되지 못합니다. 이 당시 OSS 비밀문서를 보면 A라고 표기한 인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A는 50세, 155파운드, 5피트 7인치이며 처와 두 자녀는 콜로라도주에 거주하고 있다. 부친은 돌아가시고 저명한 친척들이 한국에 많이 살고 있다. 그는 소년시절에 미국에 와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네브라스카주에서 마치고 1924년 미시건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27년부터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을 위하여 전쟁 발발 전까지 수차 한국과 미국을 왕래하였다. 그는 매우 투철한 애국자이며 그의 회사 지사들을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에 세워나갔다. 이들 사업체의 지배인, 부지배인, 직공장, 감독 등 감독들은 보다 투철한 애국자들인 그의 친천과 친구들로 메꿨다. 그래서 유사시 이들을 지하조직의 핵심으로 운영할 생각이었다. 따라서 그는 그의 사업조직망을 회사의 존망을 무릅쓰고 기꺼이 이용하는 데 동의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얼굴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조원들고 같이 들어가지 않고 그 조의 고문으로 남을 것이지만 필요한 경우 한국에 직접 침투해 들어가게 되어 있다.' 물론 위에서 말한 A가 바로 유일한입니다. 유일한은 사업가로도 역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제너럴 일렉트릭(GE)를 경험한 다음 "힘없는 나라를 살리는 길은 사업밖에 없다"는 생각에 '라초이 주식회사'라는 식품 회사를 설립합니다. 동양 음식을 통조림으로 만들어 꽤 번창하게 만든 다음, 1926년 한국으로 돌아와 유한양행을 설립합니다. 1936년 유한양행을 주식회사로 바꾸고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사원 지주제'를 도입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이승만과 매우 껄그러운 관계였습니다. 비밀 정보요원이었던 유일한을 경계한 이승만은, 그래도 그를 가까이 두고자 초대 상공장관으로 권유했으나 일한은 끝내 뿌리칩니다. 그 후 그는 한국에 쉽게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다가 어렵게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그런 다음에도 이승만과 악연은 계속됩니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자유당은 유한양행에 3억환의 정치자금을 은밀하게 요구해왔지만, 유일한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문을 닫는 일이 있어도 불법을 자행하는 무리와 공범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유한양행에 탈세혐의를 씌워 검찰에 고소하고, 철저한 세무조사를 했지만 아무런 혐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박정희 정권 때 한 번 더 일어납니다. 박정희 정권의 정치자금 요구조차도 계속 거부하자 역시 세무사찰이 들이닥쳤고, 그러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자 심지어 과학기술처에서 유한양행 제품에 대한 성분조사까지 실시합니다. 한 푼의 탈세도 없고, 약품의 성분을 조사하면 할수록 그 제품의 우수성이 더욱 입증되자, 이에 감동한 청와대는 오히려 동탑산업훈장을 수여하게 됩니다. 이 평전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는 오로지 하나 뿐이었습니다. - '正道' 올곧게 산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올곧게 경영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한 주를 시작하는 아침에 귀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올곧게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이번 주의 제 화두는 '올곧음'입니다. |
| 우리는 보고 배우는가. 듣고 배우는가?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훨씬 큰 영양을 끼친다. 그 본보기가 지금은 우리 곁에 없지만 언젠가는 있었다는 사실이 다행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글픈 일은 그런 인물이 남긴 발자취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음이다. 이 책은 유일한 선생의 일대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9살에 부모를 떠나 미국으로 갔고, 거기서 스스로 일어서서 성공을 했다. 무엇보다도 경제와 정치를 따로 생각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세무 조사를 해도 비리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상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로써는 상상할 수 없다. 불이 나면 소방차를 부를 권리가 국민에게 있다면 세금으로 그 소방차를 사야 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라고 했다니, 절세라는 미명으로 탈세를 저지르는 무리들에게 꼭 들려 주어야 할 이야기이다. 기업의 이익을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말은 진리이다. 그럼에도 온갖 편법과 부조리로 부를 세습하고, 정치와 결탁하여 도덕 불감증에 걸려서는 당당하게 얼굴을 파는 무리들에게 뭐라고 꼬집어야 하는가? 듣고는 배우지 못하더라도 보고도 배우지 못하면 어디서 무엇으로 가르쳐야 하는가?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책이다. |
|
유일한 박사에 관해서 접하게 된것이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의 인터뷰와 그의 책을 통해서 였다. 이전에는 유한양행이라는 안티푸라민으로 유명했던 제약회사로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그를 보고 감격한 나머지 대학시절에 그와 같은 기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되는 청년 문국현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시험을 보았을 때, 국내 굴지의 대기업(S전자)과 유한양행이라는 두 곳에 합격을 하였는데,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학창시절 그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유일한 박사가 창립한 유한이었다.
그후 그는 유한 킴벌리의 전산실장, 기획부장등을 거쳐 1995년에는 대표이사 사장이 된다. 가파르게 승진하면서 승승장구 했을 거라 여기는 사람이 많을 텐데, 사실 그가 사장으로 부임할 즈음에 유한 킴벌리의 상황은 IMF를 눈앞에 두고 장기간의 노사분규와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최악으로 치달은 때였다. 그렇지만 그는 모든 상황을 정면돌파하여 최근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일하고픈 직장 BEST에 뽑히고 있다. 문국현 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는 것은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인물중에 한 사람이 바로 유일한 박사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박사는 제약회사의 사장이었지만,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독립운동가의 성격이 아주 짙다.
홀홀단신으로 장사를 하며, 세상을 개척한 그의 아버지의 정신을 물려받아 9살의 어린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갖은 고생을 다하며 성장하였지만, 그의 주위에는 항상 그와 함께한 한국 독립투사들이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독립신문을 발간한 서재필, 안창호 선생등 말이다. (나중에 이승만 정권과는 정치자금 관련 사이가 조금 나빠지게 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일본의 침략으로 나를 내어주게 되는 슬픈 아픔을 간직한 시기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가슴에는 항상 조국의 독립을위한 열의가 타오르고 있었다.
미국 미시건 대학에서 만난 중국인 호미리 여사와의 앤 아버에서의 로맨스. 두 사람은 결혼하여 딸 재라와 아들 일선을 두게 된다. 아내도 대학을 졸업하고 의학 석사학위를 받은 인텔리로 의과분야에서 헌신하였다.
그의 발자취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기업경영의 본보기가 아닐까 싶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것을 철칙으로 알았기 때문에 강력한 세무조사가 나왔지만 오히려 국가로부터 성실납세 기업으로 표창을 받게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하였고 유한공고, 유한대학등 교육사업에 열심히였던 것은 교육이야말로 나라를 부국하게 하는 첫번째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그런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경영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선진 미국에서 받은 좋은 고등교육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야말로 깨끗한 경영, 그리고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회사를 물려준 것도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이었다.
1971년에 그는 타계하였는데, 20년이 지난 1991년에 중앙대학교로부터 참경영인 상을 받게 된 것도 그의 훌륭한 정신이 그만큼 높게 평가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평전을 읽고 참으로 본 받을 점을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된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 뒤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우리나라에 이런 기업인이 많아질수록 더욱 더 부국해지고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단축되리라 확신한다.
특히나 혼탁하고 어지러운 요즘 세상에서의 뉴스들을 보면서, 그와 같은 기업인, 아버지가 그리워 진다. |
|
감동 그 자체네여~~
평전이라 해서 지루 할줄 알았는데.. 소설 읽듯이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유한양행의 설립자인줄 만 알았는데 많은 업적을 남기셨더라고여
국가를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요즘 대기업들의 정경유착이 여전히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정신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것 같아여
암튼 이런 어지러운 사회속에 유일한 같은 분이 계셨음 하네여
조금이라도 깨끗한 사회가 되지 않을런지..
경제인들 뿐아니라 청소년들이 읽어도
많은 것을 느낄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인상깊은구절]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며 그리고 남은 것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한다.' |
|
삼성이 조금만 잘못해도 그렇게 비난받을 일이 아닌데도 국민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비난한다는 논조의 말을 한 공정거래위원장의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료들의 생각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관료들이 정부를 이끌기때문에 정경유착의 고리는 끊지 못하며 대기업들 자손들의 재산싸움이나 대물림이 끊이지 않는 것 같다. 대기업의 형제간의 재산싸움은 날마다 뉴스거리가 되고 그룹 회장이 사망하면 아내가 기업회장이 되고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온갖불법을 동원해 주식을 물려주는 등 이제는 국민들도 "다 그러려니"하면서 어느정도 면역이 되어버린것 같다.
책을 접하면서 표지에 쓰여있는 '기업의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글귀가 사실 현실적으로 그렇게 어울리는 글귀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내 자신부터도 내 재산은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사회에 환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성직자 같은 그런 행동을 스스럼없이 실천했을까?라는 의문에 그 두꺼운 책을 하나 하나 의미를 되새겨가며 읽어보았다. 사실 책을 읽고 난후 느낀점은 이 세상의 존경받고 추앙받는 모든 인물들이 그러하지만 일반인들은 할 수 없는 생각이나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그러한 자신의 철학을 몸소 실천한 정말 성인같은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즉, 나같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현재의 기업가들에게 자신들의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라는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물론 언젠가는 우리 자손들이 이런 문화를 만들겠지만 형제간에 재산가지고 다투는 현실에서 이런 요구는 사실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기업만큼은 투명하게 만드는 그런 기업가가 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유일한 회장의 말처럼 기업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즉, 사회와 국민이 없다면 협조하지 않았다면 그 기업은 존재할 수 없기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모든 국민들은 그 기업에 대해 올바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그의 철학이 바로 주식공개과정에서 나타나있다.
책 표지에는 한국 CEO, 경제학박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가! 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정말 우리의 젊은 청소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불이나면 소방서에 불을 꺼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국민의 권리라면, 소방서에서 소방차를 사는데 돈을 내는 것이 바로 국민의 납세의무이다" P.297 |
![]() 유일한 - 대한민국의 한줄기 향기로운, 그를 다시 만나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이 글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故 유일한 님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을 이룬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가가 있다면 바로 이분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오래전 TV를 통해 그분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막연히 유한양행 창업자이면서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기업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 사실 이 부분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한 분임이 틀림없다. - 이 책을 읽고 나니 유한공고를 설립한 교육가인데다 독립운동가로서의 그분의 애국적인 모습에 더욱 존경심이 생겼다. 교육도 기업도 어찌 보면 애국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들어가겠지 싶다.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느꼈다. TV 다큐멘터리와 같은 흥미로움을 기대한 탓도 있겠지만, 그의 기업정신에 초점을 맞추어 읽다 보니 책 내용이 다소 지루하고 줄거리가 복잡해 보였다. 책의 내용을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일 수도 있겠으나 유년시절 및 젊은 시절 유일한의 주변인물들이나 독립운동, 한국사에 대한 내용이 비중 있게 담겨 있어 중심 잡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유일한 평전』은 책 제목처럼 그의 일생 중 특정한 업적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평전(評傳,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이였다. 평전이란 게 원래 이런가 보다. 흥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내가 보기에 그의 유년시절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아홉 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그의 아버지 유기연은 일곱 살인 그를 50리 떨어진 양잠 학교로 떠나보낸다. 누에를 치고 비단 실을 뽑는 기술을 배우고 오라는 것이었다. 러일 전쟁 때문에 나라가 어수선한 시기에 아홉 살인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선교사들 손에 이끌려 혼자 미국으로 가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타국에서 홀로 어렵게 공부한 것이 생활력과 자립심을 강하게 만들어주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유일한은 자신의 자녀가 유학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도 전혀 도와주지 않았고, 심지어 생을 마감할 때도 미국에 사는 아들에게는 유산을 한 푼도 남겨주지 않았다. 모 그룹의 아버지들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유한의 정신과 신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힘을 다하여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 그렇게 하기 위하여 첫째, 경제수준을 높이며 둘째, 한결같이 진실하게 일하고 셋째, 각자와 나라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 그러므로 각 책임인들은 항상 참신한 계획과 능동적인 활동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자.' 마지막 문장에 '참신' '능동' '정직' '성실'이라는 네 단어가 있는데, 이것이 일한이 사원들에게 요구한 근무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원들을 뽑을 때도 일한은 이 점에 유의했다. 머리가 좋은 천재보다는 일에 대한 취미와 열의가 있는가,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건강이 있는가, 정직과 성실로 일할 수 있는 성품이 갖추어져 있는가를 보았다. (294~295쪽) 유한양행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뭐니뭐니해도 추억의 안티푸라민이 아닐까. 초등학교 시절 엄마한테 회초리로 얻어맞고 잠들면, 밤에 엄마가 살며시 와서는 멍든 종아리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시곤 하셨다. 납작하고 동그란 통에 여간호사 그림이 그려져 있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콘택600은 어른이 된 지금도 아플 때마다 이용하고 있다. 어릴 적 TV광고에서 보았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유한킴벌리 광고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유한양행과 킴벌리사의 합작으로 설립한 회사라는 걸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유일한 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에 약국에서 약을 살 일이 생기면 유한양행 약부터 찾곤 한다. 그의 기업정신에 큰 감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연예인 섭외해서 비싼 광고비 지출하는 기업들부터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박정희 정권도 기업들에게 정치자금을 요구하는 것은 이승만 정권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유한양행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치자금을 통해 권력과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도 국세청에서 강도 높은 세무사찰이 들어왔다. 하지만 한 달 동안이나 조사해도 탈세 사실을 밝혀내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세무서 직원들이 이렇게 깨끗하게 장부를 정리하고 정확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기업이 한국에 있나 하고 놀랄 정도였다. 그래도 실적을 올려야 했으므로 세무사찰 요원들이 유한양행 제품들에 대한 함량 분석을 과학기술처에 의뢰하였다. 이렇게 정확하게 세금을 내면서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제품의 함량을 속이는 길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처의 분석 결과는 제품의 우수성만을 증거해주었을 뿐이었다.
결국 세무사찰 요원들이 사실 그대로 국세청장에게 보고하였다. 국세청장은 의아해하면서 몇번이고 직원들로부터 확인을 받은 후에 청와대에 보고하였다. 박정희 대통령도 이런 기업이 있나 감동을 하여 1968년 3월 제2회 '세금의 날' 기념식전에서 '동탑산업훈장'을 직접 수여하였다. 그것은 업게 최초의 영예인 셈이었다. 국세청은 유한양행에 '국세청 선정 모범 납세업체'라는 동제 현판을 보내주기까지 했다. 유한양행은 일한의 지침에 따라 '정확하고 신속한 납세'를 늘 회사의 지상시책으로 삼고 있었다. “국가는 세수입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하고, 기업은 세금으로 유지되는 국가의 법적 보호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 따라서 기업은 납세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321~322쪽)
유한양행이 동탑산업훈장을 받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재밌는 사연이 있었다는 건 이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되었다.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치자금을 내놓지 않아 괘씸해서 혼내주려고 세무사찰을 시켰는데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모범 납세기업이라니! 정부로서도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유한양행의 트레이드 마크인 버드나무는 미국에서 '라초이 식품회사'와는 별도로 설립했던 '유한 주식회사'의 사장이었던 서재필이 한국으로 귀국을 결심한 유일한에게 조각가인 자기 딸을 시켜 버들 목각품을 만들어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이 버드나무처럼 민족이 편히 쉴 수 있는 큰 그늘이 되어 주게나” 그는 서재필의 당부처럼 대한민국의 큰 그늘이 되었다. 가정과 기업보다는 조국과 국민을 먼저 생각하셨던 분, 기업의 이익은 사회에 환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셨던 그분을 뵈니 영리추구만이 기업의 목적이라고 알고 있던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유언장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첫째, 유일선의 딸, 즉 손녀인 유일링(당시 7세)에게는 대학 졸업시까지 학자금으로 1만 불을 준다. 둘째, 딸 유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5천 평을 물려준다. 그 땅을 유한동산으로 꾸며달라. 셋째, 일한 자신의 소유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 넷째, 아내 호미리는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주기 바란다. 다섯째, 아들 유일선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는 말만 남겨놓았다. 여섯째, '아무에게 돈 얼마를 받을 것이 있으니 얼마는 감해주고 나머지는 꼭 받아서 재단 기금에 보태라'는 식으로 세세한 금전 거래까지 밝히고 있다. (349~350쪽)
그분이 떠날 때 남은 것이라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 몇 가지와 구두 두 켤레, 양복 세 벌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매사에 절약 정신이 투철한 편이었다. 19년 동안이나 쉐퍼(Sheaffer) 만년필 하나만 썼던 그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순식간에 벼락부자가 된 자가 아니고서야 평생 알뜰하게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슬하에 자식이 1남 1녀뿐이었데, 그들은 아버지의 유언장에 얼마나 많은 섭섭함과 원망이 있었을까. 그러나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딸 유재라 여사는 아버지의 정신을 본받아 63세에 별세하면서 200억 원 상당의 전 재산을 공익재단인 유한재단에 모두 기증하였다. 만약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다면 전 재산을 그리 기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자식 농사 또한 잘 지으신 게다.
유일한 님의 원래 이름은 유일형(유一馨)이라고 한다. 세상에 한줄기 향기가 되라는 뜻이란다. 유일한(유一韓)이란 이름은 하나의 대한제국이라는 의미도 되고 세계 제1의 대한제국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유일한이라고 불리든, 유일형이란 이름으로 불리든 그는 이름 그대로의 삶을 살다 가신 것 같다. 그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1년에 76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지만, 나의 마음속에 늘 살아있다. 유한양행이 존속하는 한 그의 이름은 영원히 세인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그의 올곧은 기업정신을 본받아 훌륭한 CEO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그가 경제계에서 유일한(only)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회사 사장님들, 제발 좀 본받으세요. 네?”
2008/07/18
Written by Dasom |
|
<유일한 평전>
○ 기업가로서의 유일한 유학시절 막바지에 조그만 통조림 회사를 시작했던 것이 그의 사업 사업가로의 길을 연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길은 가난과 질병으로 피폐해진 이 나라 백성들에게 좋은 약을 공급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없고 돈이 있어도 제대로 약을 구하기도 힘들었던 그 시기에 외국에서 질 좋은 의약품들을 수입하여 국내에 판매하는 수입상 ‘양행’을 설립했고 나중에는 건강보국의 기치를 내걸고 의약품 생산에도 나섰다. ‘유한양행’은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유한양행은 지금까지 국내기업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유일한 선생의 기업 신조는 참신, 능동, 정직, 성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승만 자유당정권 시절, 박정의 혁명정부 시절에도 그는 절대로 정권과 야합하지 않았고 정직하게 벌어서 성실하게 납세를 했다. 정권의 위협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빈틈없는 기업가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선생의 이러한 기업가로서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한 것은 1991년 중앙대학교의 제1회 참경영인상 수상자로 그를 선정한 이유에 잘 나타나 있다. ‘(...)고 유일한 선생은 (...) 투철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여 우수한 의약품 생산 보급을 통한 국민보건향상에 이바지했을 뿐 아니라 정직과 성실을 기업이념으로 사회공익을 기업에 앞세우고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여 국가 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민족기업가였다. 또한 수상자는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을 실천하기 위하여 최초로 기업공개를 단행했을 뿐 아니라 마침내는 개인 소유 주식마저 완전히 사회에 헌납하고 타계한 선구자적 기업인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기업의 부를 대물림하기 위해 온갖 편법을 마다않는 실정과 비교해 보면 그가 얼마나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 독립운동가로서의 유일한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사후에 뒤늦게 국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그가 미국에서의 독립활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사실 그가 어려서 부모 품을 떠나면서부터 가슴에 새겼던 것은 자신의 조국의 당당하고 떳떳한 독립국가의 모양새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유학생들 가운데 자신처럼 조국이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의 학생들이 많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 생각은 더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만났던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약하던 독립 운동가들이었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일본이 패전의 막바지로 몰리고 있던 시절에 한국에 침투할 특수부대가 되기 위한 OSS훈련도 받고 넵코작전에도 가담했지만 한국으로 파견되기 직전 일본이 항복하는 바람에 무산되어 버렸다. 그 이전에도 장차 대한민국의 기초헌법이 될 ‘한국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표명하는 결의문’의 기초 작성 대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나중 광복이 되고 난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상공부장관으로 함께 일하자고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했다. 기업인으로 남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교육가로서의 유일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술을 통한 재건이라고 판단한 선생은 ‘고려기술공과학원’을 설립하고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3년 동안 운영되던 기술학원은 곧 폐교되고 대신 ‘고려공과학원’을 설립하여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 기술을 가르쳤다. 그리고 1965년에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유한공업고등학교를 개교해 학생들 교육에 전심을 쏟았다. 말년까지 선생이 가장 아꼈던 것도 이 학교 학생들이었으며 교육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졌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지금의 유한대학으로까지 확대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 ○ 가족관계와 그의 마지막 생애 사회에 끼친 공적과는 다르게 그의 가정사는 순탄치 못한 것 같다. 그의 부모는 선생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나서 일본의 압제를 피해서 만주로 이주를 했고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으며 선생의 형제들은 대부분 젊어서 죽고 나중에는 선생과 두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 한명만 남았다. 그리고 부인과는 떨어져 혼자서 주로 한국에서 생활했던 것 같다. 그가 마지막 남긴 유언장의 내용은 이렇다. 첫째, 손녀 유일링에게는 대학 졸업시까지 학자금으로 1만 불을 준다. 둘째, 딸 유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5천 평을 물려준다. 셋째, 본인 소유 주식 14만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 넷째, 아내 호미리는 딸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 주기 바란다. 다섯째,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그리고 1971년 3월 76세의 생을 마감했을 때 그에게는 구두 두 켤레, 양복 세 벌, 그리고 꼭 필요한 물건들 몇 가지가 전부였다고 한다. 또한 선생의 딸 유재라 여사가 세상을 떠날 때도 자신이 가졌던 전재산을 유한재단에 모두 기증하였다. 한줄기 빛처럼 향기처럼 세상을 살다 간 유일한 선생. 오늘날 이 땅에 이런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대를 이어 생겨 날 때 우리 사회는 보다 건강해지고 부정한 뇌물과 편법적인 탈세 등으로 끊임없이 사회에 문제를 만들어 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
|
사실 계획에 없던 책이었지만 생긴김에 바로 읽게 되었습니다. 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유일한 평전을 구했기에 더 이상 미루기 싫었거든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고 그 결과는 '잘 읽었다'였습니다. 유일한 박사로도 알려진 유일한의 본명은 유일행입니다. 제가 유일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겨우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가족들에게 유산을 주지 않는 유언장 내용, 그리고 수원에 살던 아내와 데이트하던 시절 65번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지나쳤던 유한양행을 세운 사람이란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유일한에 대해 알면서 그동안은 몰랐던 여러 면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회사 이름 하나 짓는데도 판매전략을 염두에 두는 세심함이 있었다. - p. 165 아버지 유기연의 영향인 것인지 유일한은 자신이 사업가로써 성공하는데 밑거름이 된 통조림회사를 미국에서 차릴 때 그의 세심함을 보여줍니다. 회사를 차리기 위해 이름을 정하는데 '라초이'라는 이름을 썼다고 합니다. 중국음식점과 미국 가정을 동시에 공략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책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사례들이 평전에 소개되어 있는데 그것을 보면 유일한 박사가 일을 추진할 때 얼마나 세심하게 배려하여 추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일제시대, 해방 후 혼란기, 6.25전쟁 등 역사의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회사를 성장시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한양행하면 떠오르는 상징, 바로 버드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나와있었습니다. 서재필은 조각가인 자기 딸을 시켜 버들 목각품을 하나 만들라고 하여 일한에게 선물하였다. "이 버드나무처럼 민족이 편히 쉴 수 있는 큰 그늘이 되어주세요." - p.183 그동안 그냥 보고 지나쳤던 버드나무 상징... 그 버드나무가 유한양행의 상징이 되는 것에는 이런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나봅니다. 9살에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스스로 돈을 벌고 공부하면서 자수성가한 그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귀국을 결정합니다. 물론 그런 결심을 내리기 전까지도 그는 한국인으로써 자긍심을 잃지 않고 타지에서 힘을 기르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합니다. 그러다보니 서재필, 이승만 등의 인사들과도 교류가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버드나무 상징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책의 중간 부분에서는 각종 질병과 믿을 수 없는 약들로 고통받고 있는 민족들에게 버드나무 상징을 앞세워 신뢰와 정직을 바탕으로 믿을 수 있는 의약품을 공급하던 유일한 박사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OSS(CIA전신) 비밀 문서에 보면 A라고 표기한 인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책에서는 저 문구 뒤에 그 A라는 인물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나옵니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을 시작해 성공을 거뒀으며 국내로 귀국해 의약사업을 하는 A... 그 인물은 유일한입니다. 미국 정보기관과 함께 국내에서 실시할 작전을 함께 구상하면서 독립을 꿈꿨던 인물. 그렇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사업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이력은 생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후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해 1995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와 1996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이쯤되면 유일한 박사의 직업은 박사인지, 사업가인지, 독립운동가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책을 보면 어느 정도 답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외국에 나가거나 귀국할 때 유일한 박사는 자신의 직업을 교육자라고 썼다고 하네요. 실제로 유일한 박사는 교육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의 사재를 털어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유한공업고등학교가 대표적인 사례죠. 그밖에도 많은 돈을 교육기관에 기부했으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에도 많은 돈을 썼다고 합니다. 이렇게 위대한 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 동시에 교육가인 유일한의 정신은 어디서 찾아봐야 할까요? 아무래도 그가 세운 유한양행의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한의 정신과 신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힘을 다하여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 그렇게 하기 위하여 첫째, 경제 수준을 높이며 둘째, 한결같이 진실하게 일하고 셋째, 각자와 나라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 그러므로 각 책임인들은 항상 참신한 계획과 능동적인 활동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자. 마지막 문장에 '참신''능동''정직''성실'이라는 네 단어가 있는데 이것이 일한이 사원들에게 요구한 근무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p.294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유한양행의 성실한 세금납부 이야기.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 불법정치자금을 요구하며 강도높은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오히려 기업이 깨끗하다는 증명만 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통해 그가 얼마나 정직하고 투명한 기업운영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직원들을 위해 통근버스를 제공하거나 회사내 수영장을 설치하는 등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서도 신경쓴 모습에서 진정한 기업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언젠가 조사한 '존경하는 기업인'조사에서 1위를 당당하게 차지했다는 '유일한'... 이런 '유일한'의 영향으로 가족들까지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실천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투명한 기업운영을 위해 가족들의 기업운영을 차단한 결과 유일한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방도도 없다고 하니... 언젠가 방송에서 후손들을 찾아 인터뷰하려 했으나 연락처를 알 길이 없었고, 유한양행에 문의해본 결과 회사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 연락처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유일한의 생애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봐도 좋을 책인 것 같습니다. 꽤나 흥미로워서 다 읽고 이 시간에 서평까지 쓰고 있네요. (때문에 글이 좀 이상해도 이해를... 새벽 3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