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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와 멜로에 코믹을 결합한 소설...
"추리와 멜로에 코믹을 결합한 소설..." 내용보기
“고독이 과일의 씨앗처럼 단단하게 여물지 않았거든 고독하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마라. 제대로 여문 것은 모든 것의 중심에 박혀 있고, 중심에 박혀 있는 것은 가볍고 경박하지 않다. 고독을 말하는 자는 고독을 모르고, 고독을 아는 자는 고독을 말하지 않는 법...” 소설은 자신의 고독을 갈고 닦아 신의 영역인 창조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으나, 신의 창조 솜씨에 비하여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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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 과일의 씨앗처럼 단단하게 여물지 않았거든 고독하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마라. 제대로 여문 것은 모든 것의 중심에 박혀 있고, 중심에 박혀 있는 것은 가볍고 경박하지 않다. 고독을 말하는 자는 고독을 모르고, 고독을 아는 자는 고독을 말하지 않는 법...” 소설은 자신의 고독을 갈고 닦아 신의 영역인 창조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으나, 신의 창조 솜씨에 비하여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창작 솜씨가 얼마나 미숙한가를 깨달았을 뿐 결국은 좌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과정의 해피엔딩에 만족하는 것으로 또 다른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는 한 사내의 삶의 한 시기에 집중되어 있는 고군분투의 이야기다. 해피엔딩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메일을 받고(메일에는 인간 사회의 정화를 위하여 처단되어야 할 사람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한 시나리오를 창작하며(그 이후에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그 사람이 죽어나가는지는 잘 모르지만) 살아가는 나는 희곡 작가이다.(무대에 올린 것은 한 작품 뿐인 듯하지만) “...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자 영국이 나에게 두 명의 여자를 동시에 소개시켜 주었다.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해서는 ‘109번째 여자’라는 설명을 달았고, 장미에 대해서는 ‘향이 너무 강해 뇌를 손상시키는 여자’라는 수식을 달았다. 109번째 여자는, 영국의 여자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초면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껏 영국이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내게 소개시킨 모든 여자들이 다 초면이었으니까.” 그리고 친구인 영국으로부터 소개받은(이라고 하기는 힘들겠다. 영국이 여자로 사귀라고 소개를 한 건 아니었으니까) 장미와 간혹 만나고 간혹 섹스한다. 하지만 그녀 장미를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물론 장미가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 흡족하지 않아서는 아닌 듯하다. 그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장미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그를 질투하고(그러면서도 자신을 찾는 그는 또 얼마나 얄미운가) 그를 죽이고 싶다고도 말한다. “장미가 나를 죽이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다시 빵을 먹는다. 빌어먹을, 죽는 건 억울하지 않지만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그녀가 나를 죽인다면 정말 억울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것 때문에 죽어야 하다니...” 게다가 그의 절친한 친구인 석모의 죽음에서 발견된 석연치 않음이 그를 지금 어떤 미궁으로 빠뜨린 상태다. 석모의 죽음의 이유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것도 나를 무척 바쁘게 만들고 있다. 갑작스런 석모의 죽음은 나의 부모의 죽음을 닮아 있기도 하고, 거기에는 최준혁이라는 또다른 친구와 마리라는 이름의 여인까지 얽혀 있다. “... 석모의 죽음은 고사하고 부모의 돌발적인 죽음도 나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2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죽음은 나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부모의 죽음은 연출자의 광기, 석모의 죽음은 연출자의 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한 게 아니라 원망하고 저주했다. 연출자를 죽이는 연극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창조자를 죽이는 연극!” 사실 나의 첫 번째 희곡 작품의 탄생 배경에는 나의 부모의 죽음이 있다.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집에 칩거하여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나에게 친구인 영국이 희곡이나 써볼 것을 제안했고, 내가 쓴 첫 번째 희곡은 삶을 창작하는 신의 자리에 도전한 것이었다. (우리의 삶이 한 편의 연극이고 나는 그렇게 신에 의해 창조된 한 편 연극의 주인공일 뿐이라면, 이라는 케케묵은 사색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여하튼...) “해피엔딩은 결말이 아니라 과정에서 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의 몫으로 주관하고 관장할 수 있는 인생, 나는 그것이 해피엔딩의 운동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행복한 일만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인생에는 오히려 해피엔딩이 깃들지 않는다. 드라마가 없는 인생에 행복한 결말이 왜 필요한가.” 신의 영역에 도전한 듯 들떠 있던 나이지만(실제하는 인물의 삶, 그 알 수 없는 미래를 시나리오로 만드는 작업으로 먹고 살았던) 자신의 그처럼 우쭐해하던 작업들이 결국은 자신을 옥죄어 버리는 형국에 도달하자, 인간의 이름으로 나약해지는 자신을 추스릴 수밖에 혹은 합리화 할 수밖에 없다. 창작과 창조, 연극과 현실, 신과 인간, 우연과 필연 등... 우리들 삶을 들여다보며 느끼게 되는 딜레마나 아이러니, 그리고 정신의 바벨탑을 쌓아올리기에 여념이 없는 한낱 창작자들의 번민에 대한 이야기...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소설 속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엮여 있어(추리 소설처럼 절묘한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준비해 놓고 있지는 않지만) 잘 읽힌다. 그렇대도 소설을 읽는 동안 이상하게 내 맘을 끌었던 것은 나에게 사랑받지 못함에도 나를 사랑하는 일에 목숨을 건 듯 굴고, 결국에는 이런 편지로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남자에게 일침을 가함과 동시에 마지막까지도 과감하게 사랑을 구걸하는 이 여자 장미였다. “남자랑 잤어. 내가 좋아하는 놈은 나를 싫어하고, 내가 싫어하는 놈은 나를 좋아하는 시나리오……정말 짜증나. 하지만 나를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그 사람을 사랑할 거야. 난 이런 메일을 받고도 오빠가 약 오르지 않을까 봐 정말 걱정돼 미치겠어. 그러니까 제발 나를 위해 약 올라 줘. 이게 장미의 마지막 부탁이야.” 귀엽지 아니한가...^^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06.05.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