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가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다. 5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뇌에 종양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을 받은 후 할머니는 말을 할 수 없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5년 동안 할머니의 곁을 지킨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식사 시간을 맞추고, 욕창이 생길까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나가고, 똥오줌을 치운 건 할머니가 키운 자식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살아온 할아버지였다. 누구도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이는 할머니에게 희망을 갖지 않았다. 희망이란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으며 할머니와 함께 했다. 회복의 가능성이라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몇 번씩 중환자실을 드나들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보인 할머니를 보며 든 생각은 감탄이 아니라 할머니를 위해서, 할아버지를 위해서 편안하게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다는 이기심이었다. 미안하지만 모두를 위해서 그만 돌아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수십 번을 넘게 생각했다. 생각뿐이었지만, 평생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책 『개를 기르다』에 실린 이야기를 보면서 다시 한 번 할머니 생각이 났다. 작가가 10년을 넘게 기른 개의 죽음을 지켜보며 겪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한 만화로 죽음을 앞둔 생명 앞에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고민들을 사실감 넘치게 그리고 있다. 15년을 산 개는 차차 건강이 나빠지더니 앞다리에 힘이 빠지고, 똥오줌도 못 가리고, 움직이지 못해 몸이 욕창이 생기면서까지 생명을 유지한다. 개의 주인 부부는 개에 대한 의리와 생명에 대한 깊은 존경심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만화 속에서 개의 주인은 죽음을 앞둔 개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고민한다. 일 년 넘게 움직이지도 못하는 개를 간호한 주인이 개 앞에서 왜 이렇게까지 살려고 하는지 반문하는 장면은 내가 할머니 앞에서 가졌던 불순한 생각과 같은 것이었다. 작가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애완동물과‘함께 사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냥 예쁘고 귀여울 때는 곁에 두고, 정 떨어지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돌봐주고 신경 쓰며 책임질 수 있는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까짓 개 한 마리 잊으면 그만이 아닐까 싶지만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 할지라도 한 번 맺은 관계인데 쉽게 포기하는 것은 역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이야기「그리고... 고양이를 기르다」는 개의 주인 부부가 아무도 키우려 하지 않은 한 살짜리 페르시안 고양이를 키우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마음 약한 부부는 다시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키우지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불쌍한 처지의 고양이를 외면하지 못한다. 고양이는 임신한 채로 버려진 것이었고 주인 부부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를 분양하는 과정에서 죽음과는 다른 새로운 생명 탄생의 신비로움과 경건함을 경험하게 된다. 여자 친구가 1년 넘게 버려진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매일 약을 먹이지 않으면 아파서 침을 질질 흘리고,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는 불치병을 가진 고양이다. 처음 길에서 발견 되었을 때 이 고양이도 임신 중이었다고 한다. 좋은 사람을 빨리 만나지 못해서 새끼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지금도 입이 아파 자기 몸을 관리할 수도 없어서 늘 지저분한 고양이인데 잘도 키우고 있다. 오히려 불만은 내가 더 많았다. 아픈 고양이를 무책임하게 버린 사람을 욕하고, 고양이를 떠넘긴 채 연락도 없다는 주인을 원망하는 건 늘 내 쪽이었다. 벌써 여자 친구는 길에서 고생을 많이 한 고양이가 빨리 죽을까봐 걱정을 한다. 그러니 나도 어느새 한 식구라 생각하고 약을 챙겨줄 수밖에 없다.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아픈 고양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어서인지 만화의 내용이 내 일인 것처럼 와 닿았다. 이런 이야기를 그려준 작가가 고맙다. 식상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는데, 죽음 앞에서 고민하고 새로운 생명 앞에서 기뻐하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다. 세련된 그림은 아니지만 등장인물과 동물들의 사실적인 표정이 잘 들어나 있고, 성의 있는 번역은 만화의 차분한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솔직히 만화라 우습게 생각하고 읽었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간결하고 꼼꼼한 번역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내 주변의 사람들, 동물들의 존재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따뜻한 이야기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권해 주고 싶은 책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건 ‘어떻게 잘 견뎌낼 것인가’가 아닐까. |
|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슬픔을 남긴다.
언젠가는 인연이 되었던 것들과 아주 짧은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개를 기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초등 3년 딸아이에게 내가 사준 책이다.
아파트에서의 개 키우기를 반대하는 내가 딸아이에게 개에 관한 모든 책을 사준다고 약속한 것이다.
딸아이는 매일 개에 관한 책이 새로 나왔나를 먼저 검색한다.
그래서 구입한 개에 대한 책만해도 벌써 40권이 넘었다.
딸아이에게 애완견백과나 개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 같은 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딸아이는 울었다.
그리고 개를 키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정들여서 키운 개가 죽으면 얼마나 슬플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담담하지만 생명이 스러지는 과정을 아주 자세히 그려냈다.
생명이 사그라지는 걸 볼 때는, 누구나 막막함을 느낀다.
이 책의 한 쪽 한 쪽에는 그 막막함이, 안타까움이 소리없이 배어있다.
내가 딸아이만하던 때.
키우던 개의 죽음을 보았다.
진돗개 어미와, 잡종견인 아비에게서 나온 암캐였는데, 유난히 영리한 개였다.
키운 지 2년이 조금 넘었을 때 성견이 되어, 발정기가 찾아왔다.
그래서 새끼를 가졌었는데, 새끼를 낳다가 그만 죽어버렸다.
난산으로 낳은 새끼 2마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죽은 개가 눈에 밟혀 며칠씩 울고불고 했던 생각만 난다.
개를 보면 아직도 그 때 내가 키웠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개가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지어주었던 약간은 치기어린 개의 이름도 아직 기억하고 있다.
렉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십년도 더 전에 죽은 렉스가 기억났다.
개를 키우는 것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도, 아파트 생활을 벗어나기만 하면, 나는 맨 먼저 개를 기를 생각이다.
그래서 더없이 소중한 한 생명과 의 만남, 또 그 생명의 절정기와 쇠퇴기를 곁에서 지켜볼 기회를 내 딸에게 주고 싶다.
비록 그 일이 슬픔일지라도
그게 바로 생명이라는 걸, 내 딸이 알게 되면 좋겠기에......
[인상깊은구절] 만화로 된 데다, 딸아이가 이 책을 친구에게 빌려준 관계로 인상깊은 구절을 그대로 쓸 수는 없지만, 가장 기억이 나는 부분은 개의 마지막 밤을 뜬 눈으로 지새며 지켜주던 부부의 모습을 그려낸 부분입니다. |
| 작은 딸이 늘 나에게 귓속말로 하는 부탁은 딱 한마디......... '엄마, 언제 우리 개 기를 거야?' 도시의 아파트에서 개를 기른다는 것은 선뜻 내키지않는 일이다. 더우기 나처럼 일을 하는 며느리를 두고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시어머님의 입장에서 '개'란 그저 또하나의 돌봐야하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다. 아이들은 귀엽고 이쁘고 재롱떠는 강아지를 생각하지만 이책을 선뜻 주문한것은 바로 '개도 늙는 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를 아예 길러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집오기전 엄마는 개만 보면 이상하게 과민반응을 했다. 어릴적 개를 한마리 길렀는데 하얀강아지에 대한 기억은 딱 두가지이다. 어린 동생이 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을 사서 개한입, 자기 한입 이렇게 먹다가 마지막 한입을 동생이 먹어버리자 하얀 개가 '왕'하고 달려들어 동생을 물었다. 그때까지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던 엄마는 기겁을 했다. 아직도 낡은 흑백사진속의 동생과 개는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개가 어느날 가출을 했다. 아버지는 개하나 간수 못하냐고 하며 엄마에게 당장 찾아 오라고 헀다. 엄마는 동네를 헤매며 그 개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온동네 하얀개가 다 우리집개같았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 개의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해피였나, 아니면 멍멍이였나. 정말 생각이 안난다. 아주 어렸을떄여서 일까..... 그리고 내 둘째딸이 딱 그때 내 나이 만했을때 남편이 같이 연극하는 사람한테 얻었다며 어느날 우리더러 강아지 한마리를 데리러 오라고 헀다. 우리는 대학로에서부터 덜덜 떠는 작은 코카스페니얼 종의 2개월된 강아지를 서로 안아 보곘다고 하며 보석처럼 귀하게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잘 걷지도 못하는 어린 강아지가 아무데나 똥을 싸는 것이 보기 싫어서 시어머님은 다시 가져다 주라고 날마다 성화셨고..... 그래서 3일째 되던날 우리는 '강아지 도로 갖다 주어야겠어'라고 말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말이 끝나자 마자 강아지가 없어졌다. 이방 저방을 뒤지고 다니는데 불꺼진 아이들방의 문뒤에서 낑낑 소리가 났다. 살짝 열어 보니 컴컴한 방에서 그때까지 사고뭉치던 녀석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거였다. 눈에는 눈물이 ............분명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렇게 그 강아지와 3일반에 이별한 우리집아이들은 아직도 기억속에선 2개월된 작고 귀여운 강아지만을 떠올리며 늘 아쉬워 한다. 그러나 어디 강아지 기를 형편이 그리 쉽게 될까나.... 자기는 커서 '개생활 연구가'가 되겠다고 하는 둘째....... 아이들과 함께 다니구치 지로의 [개를 기르다]라는 만화를 읽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늙은 개가 .....그것도 죽음을 앞에 둔 개의 모습이 나오는 것이 몹시 놀라운 장면이었나 보다. '엄마, 개가 몇년을 살아? 진짜로 15년밖에 못살아?' 둘째는 늙은 개 '탐'이 앞다리조차 들지 못하고 온몸에 욕창이 생기고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미쳐 생각지 못한 '개의 인생'을 엿보았다는 마음에 자꾸만 물어 본다. '그래, 이렇게 개도 늙는다. 사람처럼 말야. 그떄가 되면 똥도 가리지 못하고 아프면 밤새워서 간호도 해야하고 , 산책할때도 부축해주어야 하고 , 음식도 먹여 주어야하고.......' '그러다가 죽는 거야?" 둘쨰의 눈망울에 벌써 눈물이 한방울 맺혀있다. '그래......그런거야. 그게 또 개의 인생이야. 하지만 여기 나온 탐은 그래도 주인이 죽을때까지 잘 돌봐 주었으니 그래도 행복한거야, 어떤 개는 사고로 죽기도 하고 돌보아 주는 주인이 없어서 배고파서 죽기도 하고 그런단다.... 어릴떄는 귀여워하다가 크면 귀찮아서 일부러 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 '난 절대로 안그럴거야, 난 끝까지 같이 살거야. 그래도 탐이 불쌍해, 너무 아파 보여'하며 울먹거린다. 죽음을 눈앞에 둔 탐이 힘들게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한동네 사는 할머니가 다가와서 '너도 힘들지? 죽기도 참 힘드는 구나.....'하고 말하는 모습이 왠지 가슴에 싸하게 남는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또 개도 늙는다......태어나고 자라고 활발한 날들이 지나면 늙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미쳐 늙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어느새 거울앞의 내모습은 백발이 되어 있을것같다는 생각이 드니 그 또한 마음이 짠하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는 그렇게 일상을 통해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같다. 오늘 두딸과 함께 읽은 [개를 기르다]는 단지 기른다는 의미보다 같이 인생의 한부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의미로서 애완동물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애완'이란 말부터 다시 써야하지 싶다. 그 만화의 주인공처럼 나도 개를 좋아하는 둘째를 위해 도심 가까운 곳에 마당이 있는 주택을 빌릴수 있다면 좋곘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떄로 두근두근 뛰는 심장은 사람만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으로 자연을, 동물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늘 이밤 도시 어딘가 배고픔으로 서성이는 버려진 개들에게도 지구의 공기를 한껏 마실 건강한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함꼐 살아감의 의미를, 늙어 감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
|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사가 되었는데, 이런 일을 하게 되어 너무 당혹스럽다." 요즘, 구제역으로 살처분 일을 하고 있는 수의사가 한 말이다. 백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살처분되는 상황 앞에서 그 참담한 심정이 상상되었다.
개를 기르면서 느꼈던 즐거움과 행복부터 개가 죽기까지의 상황을 그리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너무 장편이 되고, 최초 의도한 것은 단편이기에 개가 나이를 많이 먹어서 힘들어 하는 부문으로 한정되어 그렸다.
개의 노화도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노화로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배설 조절도 못하고, 욕창도 생기고.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고생하는 모습에서 저자는 너무 안타까움을 느낀다.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생을 이어가는가?' 그러나 그것도 삶이기에 당연히 받아들이고, 견디고, 죽음 앞에서 안타까워하는 작가의 모습이 거룩한 모습처럼 보였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버리고,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가족같은 반려 동물이 죽어가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담담히 그려낸 그림과 서술이 어느 영화보다 어느 소설보다 무거운 무게로 남는다. 개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 삶도 그렇게 될 것이고, 그런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 어떤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20년 전 작품이지만 주제나 구성,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든다. 다른 단편인 '그리고, 고양이를 기르다' '마당의 풍경' '세 사람이 보낸 날들' '약속의 땅'이 함께 실려있다. '약속의 땅'을 제외하고는 연관이 되는 이야기다. 고양이를 기르고, 그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혼자사는 처형의 딸과 여름을 함께 보낸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일생을 너무도 담백하고 담담히 그려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또 읽고 싶어졌다.
|
| 강아지를 예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은 그보다 적습니다. 강아지는 먹는 것을 챙겨주고, 꼬박이 산책을 시켜주고,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이 세가지만 해주면 강아지는 행복해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강아지들에게 많은 것을 바랍니다. 자신들이 강아지들에게 맞춰주기 보다는 강아지들이 알아서 사람들에게 맞추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안하고, 조용하면서 때로는 애교있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저는 두번 유기견을 주워온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주워왔던 녀석은, 외갓집에 있다가 없어졌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목끈을 풀고 데려간 것 같았습니다. 그 녀석을 외갓집에 데려다 놨던 것은 그 다음에 주워온 강아지가 더 이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왔던 녀석(아찌)은 다섯살이 넘은 숫놈이였고 나중에 데리고 온 녀석(여우)은 한살이 갓 지났을 암놈이였습니다. 원래 이름은 아찌와 여우가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불렀던 것 뿐이지요.. 여우를 데리고 오던 날은 굉장히 춥던 1월 초였습니다. 바짝 말라서 뼈만 앙상한데다가 털에는 이상한게 덕지덕지 묻어 있었습니다. 척추는 좀 휘어서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경계하던 녀석이 알아서 용변을 가리고, 아빠께서 오시면 설설 기어서 아빠한테 다가가고, 엄마한테 폭 안기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아찌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하루에 한번정도씩 집에 오줌을 눴고 여우가 온 뒤로는 좀 더 심해졌습니다. 폭 안겨있거나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아찌를 외갓집에 보내고 몇년 뒤에 아찌가 없어지고나서 저는 여우를 많이 이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누워있는데 와서 안기면 귀찮다고 내쳐버리고 집에 혼자 놔두고 다니기도 하고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여우의 마지막 숨을 제 품에서 거두어야 했습니다. 2년전 10월 초. 그토록 좋아하던 닭고기를 여우녀석이 입에 대지도 않았습니다. 집에 처박혀 끙끙댔습니다. 엄마께서 안아주셔도 눈가가 눈물 떄문에 시커매지면서 끙끙대기만 했습니다. 별 일 없으면 절대 소리 안내던 녀석이 계속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서 엄마께서는 많이 마음아파 하셨습니다.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굳이 아빠 옆에 가서 자던 그 걸음걸이가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동물병원에서는 장염이라고 하였습니다. 링겔 계속 맞고 며칠 견디면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여우 나이가 8살이 넘은지라, 어린 강아지는 장염으로 죽어도 성견은 나을 확률이 높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이전에 잡아놓았던 약속 때문에 개천절 연휴에 강원도에 다녀오셔야 했습니다. 낮에는 동물병원에 맡겨놓고, 밤에 데리고 왔다가 다시 아침에 데려다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데리고 왔고.. 데리고 오는 동안 고개를 들어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기도 하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리에 붕대를 보고 다리를 다쳤나봐- 했었습니다. 이때까지는 눈에 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실에서 수건을 깔아놓고 강아지를 옆으로 눕히고, 가끔 입이나 항문에서 뭔가가 나오면 깔끔하던 여우녀석이 싫어할까봐 수건을 갈고 닦아주면서 밤을 보냈습니다. 한참을 검색해서 장염은 많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보고 그다지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새벽 5시 반.. 왜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여우의 색색대는 숨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나서 조심히 안아서 닦아주고 수건을 갈고 있는데.. 갑자기 헉, 하더니 잠시 경련이 일고 고개가 꺾였습니다... 수건 위에 누이고는..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색색대던 숨소리가 멈춘 것입니다. 너 왜그래!! 하면서 갈비뼈 있는 곳을 마구 눌러댔습니다. 그러면 다시 살아줄 것 같았습니다... 울면서 부모님께 전화하고.. 새벽에 부모님께서 오실때까지 잠도 못자고 울었습니다. 강아지는 죽을 때 눈이 안감기는 때가 많다고 합니다. 여우의 눈을 감겨주고.. 수건으로 감싸서.. 거실 한쪽 옆에 놔뒀었습니다. 그날 밤, 묻어주러 가실 때 저는 차마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울지 몰랐으니까요.. 엄마께서는 다시는 강아지 키우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낮시간에 단둘이 있던 녀석이 없어진 이후 너무 힘들어하시다가 다른 강아지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이녀석은 지금 저희 가족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것을 처음으로 직접 봤었습니다. 죽는다는게 어떤 것이고 남겨진다는게 어떤 것인지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울고 있고 앞으로도 여우 생각을 하면 울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만날때는 서로 보듬어줄 수 있는 친구이기를 빌어봅니다. 작가는 탐의 어린 시절부터 그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랬으면 더 많이 울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여우가 마지막 힘들어 하던 모습이 너무 기억에 남아 있거든요. 열네살 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알게 되었던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는, 이전까지 접하던 만화와는 정말로 다른 것 같습니다. 전, 저희 집 강아지랑 놀아주러 가야겠습니다... ^-^ |
|
요즘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에 관심이 많이 간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책. 일본에서는 1992년에 초판 발행된 <개를 기르다>는 그 시간만큼 오랜된 이야기이다. 실제로 1990년 끝자락에 세상을 떠난 저자의 반려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더욱더 가슴에 와닿는다. 개를 기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도 지금 개 다섯마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개를 기른다는 것은 한 생명을 지켜주는 일이며, 그 생이 마감할 때까지 돌봐준다는 의미이다. 나 역시 두 마리의 개를 이미 떠나 보낸 기억이 있어, 이 책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첫번째로 보낸 녀석은 아직 강아지였지만 장염으로 고통받다가 떠났고, 한녀석은 18살의 나이로 장수를 하다가 갑자기 떠나 버렸다. 강아지였던 바우는 일주일정도 고통스러워하다가 떠났고, 18살의 노령견이었던 가을이는 전날 저녁까지 다 먹고, 다음날 새벽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러다 보니 이 책에 나온 탐탐처럼 오랜 기간 투병생활이나 큰 고통은 겪지 않았지만, 그래서 좀 다행이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죽음이란 것의 무게는 너무도 무거웠다. 이 책에는 총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개를 기르다는 탐탐의 마지막 나날들을 그린 것이고, 두번째 단편부터는 탐탐 다음으로 온 고양이 보로와 보로가 새끼를 낳고 어미가 된 이야기를 비롯해 작품의 주인공의 아내의 조카가 찾아온 이야기가 이어지는 연작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마지막 단편인 약속의 땅은 전체적인 스토리 흐름과 동떨어진 이야기였지만, 이는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가 그려내는 자연과 인간이라는 소재의 한 단면을 엿볼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일단 표제작인 개를 기르다에 나오는 탐탐(일명 탐)은 노령견으로 점점 쇠약해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단 걷는 것이 불편해지고,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게 되는 과정들.. 이는 내가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동물병원에서 근무할때 간혹 보던 모습이다. 결국 일어서지 못하고 누운 자리에서 배변까지 하게 되는 탐의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고통없이 보내는 안락사란 방법도 있었지만, 저자 부부는 탐이 스스로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기다려주었다. 사실 자신의 반려 동물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면 그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반려동물도 고통스럽겠지만 사실 그걸 지켜보는 사람 입장도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신 아팠으면 할 만큼 고통스럽다. 하지만 살려는 의지를 보이는 동물에게 인간이 스스로 판단을 하고 그런 처사를 내리는 것은 어찌보면 부당한 일이다. 탐탐은 생에 대한 의지로 그 힘든 순간들을 버텨냈다. 그리고 부부의 품에서 떠나갔다. 탐을 보면서 1995년에 무지개 다리를 건넌 우리 바우가 생각났다. 내가 집에서 처음으로 키웠던 강아지. 그러나 녀석은 이미 내가 입양을 해올때부터 바이러스성 장염에 감염되어 있었고, 결국 그걸 이기지 못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작은 몸으로 고통에 몸부림칠 때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흘렀다. 어떤 식으로 눕든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질렀던 녀석. 지금도 제일 후회스러운 건 잠시 눈을 돌렸을때 그녀석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만 것이다. 마지막을 지켜줬으면 하는 후회.... 그렇게 아픈데 혼자 떠나게 되어 얼마나 무서웠을까..... 지금도 그 순간이 후회가 된다. 책의 주인공인 저자 부부는 탐을 떠나 보낸 후 생명이 있는 건 다시는 기르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몇달 뒤 난 다른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었고, 그녀석은 지금 16살이 되었다. 저자 부부의 경우 우연히 맡게 된 고양이 보로를 키우게 되고, 다시금 동물과의 생활에서 느끼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죽음이란 늘 슬프다. 하지만 추억이 있어 우린 견딘다. 저자 부부도 바로 그런 게 아닐까.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만화중에는 상큼발랄한 작품이 많다. 대부분 함께 하는 시간의 즐거움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뒤의 이야기는 피하는 경향이 많다. 동물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만큼, 대부분의 경우 반려인보다는 반려동물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러한 아픔과 슬픔의 시간을 우린 늘 머리 한구석에서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먼저 세상을 떠날때 잘 보내 줘야하는 것은 반려인의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한다.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은 그런 면에서 다른 작품과의 차별성을 보인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사실들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는 것이다. 행복한 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는 이별의 시간이 찾아온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은 늘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표제작 외의 다른 작품인 <그리고... 고양이를 기르다>와 <마당의 풍경>은 탐탐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후 우연히 맡게 된 고양이 보로와 보로가 낳은 새끼 고양이들의 이야기이다. 주인집에 아기가 생겼다고 버려지게 된 고양이 보로. 이런 걸 보면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속사정은 비슷한 모양이다. 내가 직접 본 케이스로는 십여년을 키우던 강아지를 아기의 탄생과 함께 안락사를 시켜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쉽게 생명을 버릴까. 사람과 동물의 생명의 무게가 다르다고 생각한 그 사람은 나중에 자신의 아이에게 어떤 것을 가르칠까. 슬픈 그 녀석의 눈을 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쨌거나 보로는 저자 부부의 집에 와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자신의 새끼를 낳고 돌봐 주던 보로, 그리고 자신의 새끼가 입양되었을때 새끼를 찾아다니던 보로를 비롯해 탐괴 비슷한 나이의 개 마루 이야기까지... 너무나도 따뜻한 이야기들에 가슴이 포근해졌다. 네번째 단편은 십대 초반 소녀의 성장이야기로 볼 수 있으며, 마지막 단편은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의 큰 흐름을 보여주는 만화인듯 하다. 자연과 인간이란 소재를 사용한 그의 만화에 대한 맛보기였달까. 어찌보면 세 편의 만화는 비슷비슷한 이야기지만 나머지 두 편은 책의 제목과는 좀 다른 분위기였다. 그래서 한 권의 책에 묶인 이야기치고는 좀 어색한 느낌도 들긴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다니구치 지로가 그리는 작품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었다는 잇점도 있다.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은 이제 시작이지만, 수많은 작품이 있는만큼 기대가 많이 된다. |
| 자극적이지 않은 참 맑은 느낌의 책이다. 소설이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짜임세 있는 스토리도 마음데 든다. 개를 기르면서 우정과 사랑, 교감을 함께 나누는 그들이 모습이 보기에 좋다. 각각의 단편들에는 모두 동물들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주제는 당연히 가족이다. 가족과, 동물간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정이 가득 느껴지는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유사한 느낌의 이야기인것 같다. 하지만 그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항상 같다는 느낌이라서 역시나 읽어보고 싶다. 이 가을 마음이 스잔한데 이런 만화책들이 좀 더 많이 나왓으면 좋겠다. 가을에 극장가는 액션영화나 코미디가 주춤하고 맬로나 드라마가 호응을 더 얻는 것처럼 우리들 마음은 여전히 한국적인 감성이 있다. 추워지는 11월 이 책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
| 아무생각없이 산 책이다. 나의 문화 과소비에 불을 지르는 단어들. 개와 이벤트.. 펼쳐보니 만화책이다. 몰랐다. 만화책인지.. ㅡㅜ; 보아하니 오래 읽지 않아도 될 듯 싶어 한장한장 넘기기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왠지 불편하다. 키우던 개가 죽는 거였어? 그것도 늙어서? 오.... 맙소사. 몇장 안넘기고 벌써부터 눈물바다다. 가족같은 동물을 떠나보내는 기분을 알아설까? 심장이 시리다. 갑자기 우리 구슬이 생각이 난다. 아버지 사업이 기울어서 이사를 가게된 우리와는 함께 갈 수 없었던 우리 개 구슬이. 중학교 2학년의 여린마음으로 지가 팔려가는 줄도 모르고 새끼만 챙기던 그 구슬이를 팔고 하루를 울었던 생각이 났다. 다시는 개를 안기르겠다고 다짐도 했었는데. 남일 같지 않고 잔잔한 느낌이 울컥 밀려왔다. 하지만, 사는게 그런걸까? 다시 고양이를 거두는 주인공을 보고 흐뭇한 기분이 든다. 집에서 개 키우면 안되냐고 땡깡이라도 부리고 싶은 생각이 문득드는 것은 돌봄의 맛을 알아서일까? 멋부리지 않은 잔잔한 그림체와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들을 잘 표현되어 마지막 장을 덮을때까지 극하진 않지만, 잔잔한 느낌이 남는 책이다. 시사/명랑만화라는 분류가 좀 안맞는 듯, 생활만화 분류가 없음이 좀 아쉽다. |
|
다니구치 지로를 알게 된 게 시튼 시리즈라 그런지 그의 여러 작품 가운데서도 동물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더 간다. 제목에서 드러났듯이 개를 기르면서 겪는 일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탐이라는 개의 처음이 아닌 14살이나 먹은, 몸이 아파 잘 달릴 수도 없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탐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는 셈인데 너무 생생해서 보고만 있어도 아픔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탐은 각별했다. 14년이나 함께 살았으니 거의 자식 같고 가족 구성원이나 다름없는데 그런 탐이 떠나려 하고 있었으니 복잡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탐이 점점 쇠약해 가는 모습을 기록하면서 이게 탐을 애도하는 마지막 마음인 것 같아 마음이 찡했다. 이별은 정해져 있는데 마지막을 함께 견뎌야 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말 못하는 동물이 힘들어 하는 모습에서 때론 지치기도 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모습도 낱낱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가족 같았던 동물을 떠나보내는 일.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기에 그 의미가 더 남달랐기도 하지만 결코 쉬운 일도 아니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한 생명과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탐을 떠나보내고 다시는 동물을 키울 것 같지 않던 부부도 고양이를 들이게 되고 그 고양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안정과 의미를 되찾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한 편의 이야기만 실려 있는 줄 알았는데 <약속의 땅>이라는 산악 만화가 이어졌다.『신들의 봉우리』를 읽어서인지 낯설지 않았고 안나푸르나에서 동료를 잃고 죽음의 순간 눈표범을 본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저자의 만화에 등장하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그렇듯 지상에서도 산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다. 동료를 잃고 등반에 실패까지 한 상황이라서 아마 가슴 속에 응어리처럼 남아 있었으리라. 그런 남편의 마음을 알고 기꺼이 재등반을 허락한 아내의 응원 속에 다시 한 번 안나푸르나 등반을 시도하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감격. 그리고 또다시 마주한 눈표범과의 만남. 그 순간 만화는 끝이 나지만 눈표범이 ‘살아 돌아가라고 일러 주었다.’고 했으니 무사히 산을 내려왔을 거라 믿었다. 적어도 눈표범과 마주한 순간만큼은 어떠한 걱정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두 편의 이야기를 만나고 나니 마음이 휑하다가도 잔잔히 올라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개의 죽음을 바라보는 게 역시나 힘들었지만 다른 동물로 인해 치유되고 위로를 받는 모습에 조금은 안도했다고나 할까? 반대로 등반에 관한 이야기는 늘 긴장하게 된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인지 괜히 몸이 더 뻣뻣해지고 만화 속의 추위에 그대로 노출된 기분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묵묵히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건, 그들이 만난 눈표범처럼 경건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저자가 이 세상에 남겨 놓고 간 작품들처럼 말이다.
|
|
애완동물은 우리 인간에게 몸을 맡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맘대로 굴어도 허락해 준다. 그들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순수'를 살짝 보여주곤 한다. -본문 중에서
*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개를 기르다> 개를 기른다는 것이 개라는 그저 개라는 동물과 함께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만화책이다. 애완동물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대상으로 사육하는 동물'이다. 인간이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동물을 사육하는 유일한 동물일 것이다. 그러나 즐거움을 주어야 마땅한 애완동물은 즐거움을 넘어선 그 무엇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안겨준다. 행복함과 즐거움 우정과 사랑 순수한 기쁨과 무거운 책임감과 깊은 슬픔과 괴로움, 허전함과 쓸쓸함이 깃든 외로움을. 그럼에도 사람들이 돈과 시간과 노력과 감정을 공유하며 애완동물을 기르는 배경에는 지독한 이기심과 외로움이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동물들의 그 무조적인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 외로움을 함께 나누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 말이다. 요즘의 애완동물은 말 그대로 친구이고 가족이고 연인이니까.
어째든 다니구치 지로의 <개를 기르다> 오랫동안 함께 살았지만 결국 먼저 죽게 되는 애완동물 탐의 죽기까지의 일년을 그린 만화다. 개를 기른다는 것의 의미와 오래 함께 한 개의 죽음을 통해 애완동물의 의미, 삶과 죽음에 대한 책임과 슬픔과 안타까움이 묵직하게 가슴을 눌러오는 만화다. 잔잔하고 조용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만화를 보고 기르긴 했지만 제대로 기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애완동물들이 떠올랐다. 사온지 며칠 되지 않아 시름 시름 앓더니 금세 죽어버렸던 병아리, 정을 들이기도 전에 사고로 죽었던 아기 고양이 삐삐, 먹이를 제대로 주지 않아 배를 뒤집고 죽어버렸던 금붕어들, 선물 받아와 몇 달을 살았지만 무관심 속에 다시 돌려보냈던 거북이....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고 또 사랑받지 않았던 그래서 잊혀진 내 유년의 동물들. 이제 나는 어린 시절 처럼 동물을 기르고 싶어하지 않는다. 애완동물을 떠올릴 때면 아낌없이 주고 받는 사랑 보다 생명에 대한 책임과 유지비를 먼저 생각하는 무심하고 무정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게 참 서글프기도 하다. 다니구치 지로는 이 만화로 많은 상을 받았고 이후에도 묵직한 내용의 만화들을 그려내고 있다. 날씨 좋은 주말 어렵고 복잡한 그런 책들 잠시 내려 놓고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 다락방서 허뭄
추신: 하지만, 언젠가 내가 좀 더 나이가 들고 동물을 돌볼 수 있는 그런 때가 된다면 나는 고양이를 한마리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왜 개가 아니고 고양이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