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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1990』 일반 청소년들은 대학 입학이라는 지상의 과제를 향해 하루 24시간을 쪼개가며 당장의 고통을 참는 반면 오렌지족은 술·여자 등과 함께 ‘즐기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월 2~3만 원의 용돈을 사용하는 일반 청소년과는 달리 오렌지족은 카드나 수표를 사용하며 버스나 지하철보다는 스포츠카와 외제차 등을 몰고 다닌다. 서로의 사랑을 조금씩 확인해가는 애틋한 연애보다는 부킹과 함께 당일로 호텔로 직행하는 벼락치기 쾌락에 탐닉한다. 저자는 이 보고서를 흉내 내어 지금 우리 사회를 이렇게 표현한다. 대학 입학이라는 지상과제를 위해 하루 24시간을 쪼개가며 고통을 참아 봐야 대학은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시급 벌자고 편의점에서 밤샘 알바를 하는 학생은 해외연수를 기본으로 다녀오고 온갖 스펙을 장착한 학생과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 서로의 사랑을 조금씩 확인하는 애틋한 연애를 하는 이들은 모텔비가 없어서 걱정이지만 21세기 오렌지족들의 활보는 여전하다. 1990년대의 오렌지족들은 규탄과 선망을 동시에 받았으나 21세기 오렌지족들은 오로지 ‘위너’일 뿐이다. 한총련 대표자는 백만 청춘의 자주적 이해와 요구의 유일한 체현자이며 통일단결의 구심이며, 백만 청춘의 최고 의사표현이며, 학우에게는 자주적 사상의식과 창조적 활동 능력을 키워 주는 백만 청춘의 유일한 정치 지도자입니다. (중략) 대표자를 믿고 삶과 생활, 운명을 의탁하면 삶은 개척됩니다. 지금의 민주적 감수성으로 보면 너무나 당혹스럽고 낯선 이야기이다. 물론 이는 한총련이 북한식 수령론을 고스란히 본받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이든, 아니면 정말로 수령론을 진지하게 믿었기 때문이든 이제 와서 보면 그저 안타까운 모습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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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전쟁터에서 살아남고자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은 지금, 미래에 대한 희망과 투지를 품고 살았던 90년대 그 시절이 아련하게 그리워진다. 당대 이슈가 되었던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돌아보면서 젊디젊었던 내 청춘의 역사들을 회상해본다.
90년대 벌써 아련해지는 기억이다. 그 시절을 나는 고등학교 3년과 대학교 3-4년, 그리고 군대 2년6개월여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바뀌는 입시제도(수능시험을 처음 치르는 세대였다.)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 막상 입시를 치르고 들어간 대학교생활에서 느낀 허무함과 희의감, 군생활의 갑갑함 등 지나고보면 마음이 여려서였는지 꽤나 힘들어한 시절이었다고 기억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힘들었던 기억의 기간들이 묘하게도 그리워지는 마음이 드는 것은 무얼까. 정확하게 그 이유를 꼬집을 수는 없지만 그때는 미래에 대한 목표와 희망을 품었던 시절이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오직 미래를 위해 뛰어갈 수 있는 투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삶의 전쟁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은 현재, 그런 희망과 투지들은 품고 있던 그 시절이 아련하게 느끼지는지도.. 당시 공부할 때가 좋다고 하던 선배들의 지나가는 한마디가 지금의 내가 느끼고 있는 그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었을까... 접속 1990. 당시 등장했던 PC통신이라는 색다른 문화는 나와는 그다지 인연은 없었지만 파란바탕화면에 흰 텍스트로 가득찬 이 책의 표지가 전하는 느낌은 90년대를 상징하기에 더할나위없는 표현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챕터별로 하나 하나의 사건들을 읽어보면서 내가 함께 했던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렇게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구나 싶었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그래, 그랬어'하며 생생하게 떠오른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모두가 기억 저편 너머 어딘가에 고스란히 자리잡고 동면하고 있다가 불쑥 튀어나온 듯하다. 그 가운데서도 안타까운 사고들이 그때도 많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서해페리호 침몰, 인천호프집 화재 참사, 아시아나기 목포 추락 등 지존파의 끔찍한 살인행각과 김부남, 김보은 사건을 통해 알게된 성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과 형사법상의 문제점에 대한 것도 생생하게 기억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국민적 정서나 사회규범, 법률적체계가 모든 면에서 뒤쳐져있었다는 느낌도 난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을 통해서 보는 90년대가 마냥 어두운 기억만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라는 20대 시절 대부분을 보냈던 시점이라 더 의미깊었고 첫사랑, 첫데이트 등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하는 일들이 많았기에 풋풋함이 물씬 나는 추억의 시점이기도 하다. 야구의 도시인 내 고향 부산에서는 1992년 연고팀이 뜻밖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마치 축제가 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던 기억도 난다. 이제 다시 올 수는 없을 시절이지만 이렇게 책 한권으로서 내 젊디젊었던 청춘의 세월을 회상하며 즐거움에 잠기게 해주는 것으로도 큰 가치를 얻는다. 다만 텍스트보다는 다양하고 컬러풀한 사진들을 더 많이 수록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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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이 이 시기에 출현했었구나. 그러고보니 90년대초반이었던 기억이 이제서야 떠오르네.
삐삐. 처음엔 이정도만으로도 지인들과 연락을 취하는게 편리하다고 생각한 시절이었다. 다만 삐삐 연락을 확인하고 전화를 하기위해 공중전화를 찾아 헤매는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당시에 휴대폰이 나오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휴거. 1992년 가을쯤엔가 종말론과 함께 갑작스럽게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 한바탕 소동. 사람이 하늘로 떠오를 거라는 거대한 기대는 엄청난 망신으로 마감되어 버렸다.
세월호 못지않게 온갖 대형사고들이 쏟아진 1990년대이기도 했다. 다리가 갑자기 끊어지고, 백화점 건물이 하루 아침에 붕괴되고, 지하철 공사장에서 대형 가스폭발사고가 발생하고... 그런 고초를 겪고도 다시 작년에 안전불감증에 따른 초대형사고를 겪다니 이게 말이 될 일인가.
90년대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이슈 중의 하나였던 IMF 사태. 일자리는 커녕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하늘의 별따기식으로 구하기 힘들어지는... 모든게 어렵고 힘들게 만들었던 그 시기에 골프의 박세리, 메이저리그의 박찬호가 국민들의 아픔을 위로해주던 시절
이제 까마득한 추억이 되어가고 있지만 어쩌면 촌스럽고 어쩌면 황당한 일이 많았던 그 시기가 지금보다는 더 활기가 넘치고 인정이 남았던 마지막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그립다 90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