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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사회,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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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1990』 정확히 1990년에 태어난 나에게 90년대는 가장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을 담고 있는 시대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어린 시절이었기에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고 지나오지 못했다는 아쉬움,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을 품고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단순히 당시 노래를 다시 들어보거나 게임, 애니메이션을 다시 뒤져보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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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1990』
정확히 1990년에 태어난 나에게 90년대는 가장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을 담고 있는 시대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어린 시절이었기에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고 지나오지 못했다는 아쉬움,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을 품고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단순히 당시 노래를 다시 들어보거나 게임, 애니메이션을 다시 뒤져보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 90년대에 대한 갈망을 해소해 줄만한 꼼꼼한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때마침 발견한 이 책은 그런 갈망을 해소하기에 제법 도움이 되는 책이다.
 
 저자가 온라인상으로 연재하던 내용들을 묶어서 출간한 듯한데, 내용이 어렵지 않고 간결하게 읽힌다. 다만 90년대하면 으레 떠오르는 가요, 영화, 예능, 만화 같은 대중문화에 대한 내용은 그다지 많지 않고,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사실 90년대는 군사정권으로 상징되는 이전 시대나 극단적인 정치 갈등이 문제가 되는 이후 시대에 비해 유독 가벼운 시대처럼 생각되곤 한다. 흔히들 90년대는 상대적으로 정치·사회 문제가 적었던 시대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을 바로 잡아준다. 저자가 뚜렷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책을 읽으며 90년대도 이전 시대의 문제를 반추하고, 이후 시대에 문제거리를 던져주며 그 나름대로의 사회적 고민을 진지하게 성찰해 온 시대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예컨대 군사정권의 몰락 이후 갈 길을 잃은 학생운동, 본격적으로 한국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탈북자들과 조선족들, 커져가는 상대적 빈곤, 성희롱 문제, 오렌지족 문제, 그리고 IMF 등등...
     
 새로 알게 된 사실도 꽤 많았다. 특히나 90년대 초는 90년대 회고붐이 일고 있는 요즘에도 전체적으로 반쯤 잊힌 시대 대접을 받는데, 이 시기의 전세 대란, 마광수 교수 구속사태, 두산 페놀 사태 등등은 이전엔 들어 본 적이 없는 신선한 이야기였다. 아마 해당 시절을 고스란히 경험한 세대들에게도 이제 상대적으로 낯설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90년대는 그 이전 시대의 군사정권, 유신, 반공안보, 산업화, 민주화라는 몇 가지 선 굵고 덩치 큰 문제들의 그늘 아래 가려져 있던 모든 사회적 문제들이 마침내 빛을 보고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시대가 아니었나한다. 빈부격차, 조선족이나 탈북자 등 외부 유입자들, 부동산 문제, 성별 문제, 환경 문제 등등.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너무 딱딱하고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너무 가볍게 읽히지도 않게 적절한 수준에서 서술하고 있다.

    
21세기 오렌지족은 ‘위너(Winner)’
특히나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오렌지족 문제이다. 사실 시대가 지나서 요즘에는 오렌지족이라는 표현이 예능에서 장난처럼 쓰는 표현으로 변해버렸지만, 당시에는 심각한 사회문제이자 일탈이었나 보다. 오렌지족이 노력 없이 얻은 부富로 방탕과 쾌락을 만끽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된 당시 사람들은 그 께름칙한 위화감을 설득력 있게 분석하고 비판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그래서 겨우 도덕적인 표현으로 준엄하게 경고하는데 그칠 뿐이었다.
     
 그러나 오렌지족은 그 준엄한 도덕적 꾸짖음보다 훨씬 더 생명력이 길었다. 오늘날 더 이상 오렌지족이라는 표현은 사용되지 않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어린 나이 때부터 더 많은 부를 가지고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 무엇보다 단순히 당장의 쾌락이 문제가 아니라, 더 장기적인 경쟁에서도 항상 더 우월하다. 이제 사회는 더 이상 그들을 도덕적으로 멸시하거나 꾸짖지 않는다. 사실 그런 꾸짖음이 도리어 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러지도 못한다. 저자는 이제 사람들이 오늘날의 자유로운 금수저들을 ‘위너’처럼 생각하며 선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1994년 말 문화체육부에서 낸 ‘1994년도 청소년 육성정책 결산 및 1995년도 청소년 정책방향’ 보고서는 오렌지족의 특징을 이렇게 분석했다.


 일반 청소년들은 대학 입학이라는 지상의 과제를 향해 하루 24시간을 쪼개가며 당장의 고통을 참는 반면 오렌지족은 술·여자 등과 함께 ‘즐기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월 2~3만 원의 용돈을 사용하는 일반 청소년과는 달리 오렌지족은 카드나 수표를 사용하며 버스나 지하철보다는 스포츠카와 외제차 등을 몰고 다닌다. 서로의 사랑을 조금씩 확인해가는 애틋한 연애보다는 부킹과 함께 당일로 호텔로 직행하는 벼락치기 쾌락에 탐닉한다.

 저자는 이 보고서를 흉내 내어 지금 우리 사회를 이렇게 표현한다.
    

대학 입학이라는 지상과제를 위해 하루 24시간을 쪼개가며 고통을 참아 봐야 대학은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시급 벌자고 편의점에서 밤샘 알바를 하는 학생은 해외연수를 기본으로 다녀오고 온갖 스펙을 장착한 학생과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 서로의 사랑을 조금씩 확인하는 애틋한 연애를 하는 이들은 모텔비가 없어서 걱정이지만 21세기 오렌지족들의 활보는 여전하다. 1990년대의 오렌지족들은 규탄과 선망을 동시에 받았으나 21세기 오렌지족들은 오로지 ‘위너’일 뿐이다.

    
 사람들은 금수저들을 힐난하는 데 지쳤다. 요즘 부유층들은 90년대보다 지적으로 세련되고, 부드럽고 온화한 인품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인내심 있게 대한다. 정확하게는 90년대 오렌지족처럼 쾌락을 즐길 시점이 언제인지, 또 사람들 앞에서 도덕적으로 품위 있게 대해야 할 시점은 언제인지 잘 구분하는 센스를 갖추게 되었다.

 영화감독 박찬욱이 이런 상황을 분통터지고 화난다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난다. 과거에는 사회적 강자들이 가학적인데다 도덕적으로 부패한반면 약자들은 선하다는 식의 관념이 지배적이었고, 그만큼 그나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나마 강자와 약자 사이에 균형을 만들 수 있었지만 이제는 윤리적 우월성, 도덕적 품위마저 기득권층이 갖게 되었다. 약자를 도와야한다는 어떤 당위론도 감정적으로 매력 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된 거다. 겨우겨우 사회구조를 탓할망정 더 이상 기득권층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은 못난이들의 일종의 정신승리처럼 여겨져 비웃음을 사게 되었다.
     
 못난 자기 모습을 더 이상 어떤 형태로도 변명하기 힘들어진 시대, 약자들이 이제는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모습이 씁쓸하다. 어떻게 보면 일베 유저나 페미니스트들의 가시 돋친 말들이 90년대 오렌지족들의 먼 유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학생운동의 몰락
 학생운동에 관한 내용은 내가 책에서 눈여겨 본 또 다른 내용이다. 90년대의 학생운동은 갈 길을 잃고 극단화하면서도 점차 대중적인 관심을 잃어가는 걸로 특징지을 수 있다. 군사정권의 몰락 이후 뚜렷한 대적자는 사라져버렸지만, 여전히 학생운동 내부의 호전성은 관성처럼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무시무시한 괴물과 맞서 싸우러 갈 듯 학생운동은 권위적이고 집단주의적인 병영체제를 유지하고, 호전적이면서 폭력적인 구호를 내걸었다. 이 시기 학생운동은 프락치로 오인한 일반인을 폭력으로 살해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벌여 그들 스스로에게도, 사회에도 깊은 상처를 안겼다. 이러한 모습에 점차 대중들이 환멸감을 느끼고 진절머리를 일으키는 건 당연하다.
     
 책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중략)이들 중 일부가 한총련에 반대되는 정치적 입장을 게시한 대자보를 찢어버렸다. ‘
통일 단결 대오’를 깬다는 이유였다. 요즘 국정원에서 잘쓰는 말로 ‘일부 조직원의 일탈’이었겠지만, 거칠게 찢겨나가 너덜거리는 대자보는 그제껏 대학 내에서 보지 못했던 황망한 풍경이었다. 대자보 논쟁은 수도 없이 벌어졌지만 상대편 대자보를 찢는 일은 없었다. 2014년, 세밑을 뜨겁게 달군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 당시 한 ‘일베’ 회원이 자기 학교에 나붙은 대자보를 훼손하자 많은 이들이 격분했고 고발조처까지 거론된 것을 기억해보라. 그런데 못된 철부지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고 자부하던 학생운동의 선봉대가 그런 일을 벌인 것이다.

 더 큰 충격은 1994년에 왔다. 어느 날 시사월간지 「말」을 뒤적이던 나는 한 대목에서 놀라고 말았다. 한총련 중앙위원회에 제출된 결의안 가운데 한총련 대표자 관련 내용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선언한 5개 학교 총학생회장이 사퇴했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한총련 대표자는 백만 청춘의 자주적 이해와 요구의 유일한 체현자이며 통일단결의 구심이며, 백만 청춘의 최고 의사표현이며, 학우에게는 자주적 사상의식과 창조적 활동 능력을 키워 주는 백만 청춘의 유일한 정치 지도자입니다. (중략) 대표자를 믿고 삶과 생활, 운명을 의탁하면 삶은 개척됩니다.

 지금의 민주적 감수성으로 보면 너무나 당혹스럽고 낯선 이야기이다. 물론 이는 한총련이 북한식 수령론을 고스란히 본받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이든, 아니면 정말로 수령론을 진지하게 믿었기 때문이든 이제 와서 보면 그저 안타까운 모습일 뿐이다.
     
 앞서 나온 오렌지족 문제와 너무나 대조되는 상황이 아닌가. 오렌지족은 숱한 비판에도 도리어 오늘날 선망의 대상으로 남은 반면, 학생운동은 갈 길을 잃고 해매면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 90년대는 교차하는 시대였다. 자유롭게 욕구를 분출 할 수 있는 부유한 집단이 질타의 대상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동안, 정의와 개혁을 부르짖은 집단은 자기들 자신조차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점차 사람들이 혐오하는 대상으로 변해갔다. 이제 2010년대엔 그 간격이 더욱 벌어져만 간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아픔의 숱한 원인들 중에서도 이것이 꽤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a******2 2018.03.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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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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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전쟁터에서 살아남고자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은 지금, 미래에 대한 희망과 투지를 품고 살았던 90년대 그 시절이 아련하게 그리워진다. 당대 이슈가 되었던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돌아보면서 젊디젊었던 내 청춘의 역사들을 회상해본다.   90년대 벌써 아련해지는 기억이다. 그 시절을 나는 고등학교 3년과 대학교 3-4년, 그리고 군대 2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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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전쟁터에서 살아남고자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은 지금, 미래에 대한 희망과 투지를 품고 살았던 90년대 그 시절이 아련하게 그리워진다. 당대 이슈가 되었던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돌아보면서 젊디젊었던 내 청춘의 역사들을 회상해본다.

 

90년대

벌써 아련해지는 기억이다.

그 시절을 나는 고등학교 3년과 대학교 3-4년, 그리고 군대 2년6개월여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바뀌는 입시제도(수능시험을 처음 치르는 세대였다.)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 막상 입시를 치르고 들어간 대학교생활에서 느낀 허무함과 희의감, 군생활의 갑갑함 등 지나고보면 마음이 여려서였는지 꽤나 힘들어한 시절이었다고 기억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힘들었던 기억의 기간들이 묘하게도 그리워지는 마음이 드는 것은 무얼까.

정확하게 그 이유를 꼬집을 수는 없지만 그때는 미래에 대한 목표와 희망을 품었던 시절이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오직 미래를 위해 뛰어갈 수 있는 투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삶의 전쟁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은 현재, 그런 희망과 투지들은 품고 있던 그 시절이 아련하게 느끼지는지도..

당시 공부할 때가 좋다고 하던 선배들의 지나가는 한마디가 지금의 내가 느끼고 있는 그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었을까...

접속 1990.

당시 등장했던 PC통신이라는 색다른 문화는 나와는 그다지 인연은 없었지만

파란바탕화면에 흰 텍스트로 가득찬 이 책의 표지가 전하는 느낌은 90년대를 상징하기에 더할나위없는 표현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챕터별로 하나 하나의 사건들을 읽어보면서 내가 함께 했던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렇게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구나 싶었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그래, 그랬어'하며 생생하게 떠오른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모두가 기억 저편 너머 어딘가에 고스란히 자리잡고 동면하고 있다가

불쑥 튀어나온 듯하다.

그 가운데서도 안타까운 사고들이 그때도 많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서해페리호 침몰, 인천호프집 화재 참사, 아시아나기 목포 추락 등

지존파의 끔찍한 살인행각과 김부남, 김보은 사건을 통해 알게된 성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과 형사법상의 문제점에 대한 것도 생생하게 기억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국민적 정서나 사회규범, 법률적체계가 모든 면에서 뒤쳐져있었다는 느낌도 난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을 통해서 보는 90년대가 마냥 어두운 기억만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라는 20대 시절 대부분을 보냈던 시점이라 더 의미깊었고 첫사랑, 첫데이트 등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하는 일들이 많았기에 풋풋함이 물씬 나는 추억의 시점이기도 하다. 야구의 도시인 내 고향 부산에서는 1992년 연고팀이 뜻밖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마치 축제가 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던 기억도 난다.

이제 다시 올 수는 없을 시절이지만 이렇게 책 한권으로서 내 젊디젊었던 청춘의 세월을 회상하며 즐거움에 잠기게 해주는 것으로도 큰 가치를 얻는다.

다만 텍스트보다는 다양하고 컬러풀한 사진들을 더 많이 수록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i******0 2015.06.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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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를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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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이 이 시기에 출현했었구나. 그러고보니 90년대초반이었던 기억이 이제서야 떠오르네.   삐삐. 처음엔 이정도만으로도 지인들과 연락을 취하는게 편리하다고 생각한 시절이었다. 다만 삐삐 연락을 확인하고 전화를 하기위해 공중전화를 찾아 헤매는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당시에 휴대폰이 나오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휴거. 1992년 가을쯤엔가 종말론과 함께 갑작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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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이 이 시기에 출현했었구나. 그러고보니 90년대초반이었던 기억이 이제서야 떠오르네.

 

삐삐. 처음엔 이정도만으로도 지인들과 연락을 취하는게 편리하다고 생각한 시절이었다. 다만 삐삐 연락을 확인하고 전화를 하기위해 공중전화를 찾아 헤매는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당시에 휴대폰이 나오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휴거. 1992년 가을쯤엔가 종말론과 함께 갑작스럽게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 한바탕 소동. 사람이 하늘로 떠오를 거라는 거대한 기대는 엄청난 망신으로 마감되어 버렸다.

 

세월호 못지않게 온갖 대형사고들이 쏟아진 1990년대이기도 했다. 다리가 갑자기 끊어지고, 백화점 건물이 하루 아침에 붕괴되고, 지하철 공사장에서 대형 가스폭발사고가 발생하고... 그런 고초를 겪고도 다시 작년에 안전불감증에 따른 초대형사고를 겪다니 이게 말이 될 일인가.

 

90년대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이슈 중의 하나였던 IMF 사태. 일자리는 커녕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하늘의 별따기식으로 구하기 힘들어지는... 모든게 어렵고 힘들게 만들었던 그 시기에 골프의 박세리, 메이저리그의 박찬호가 국민들의 아픔을 위로해주던 시절

 

이제 까마득한 추억이 되어가고 있지만

어쩌면 촌스럽고 어쩌면 황당한 일이 많았던 그 시기가

지금보다는 더 활기가 넘치고 인정이 남았던 마지막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그립다 90년대

m****7 2015.07.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