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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함엔 슬픔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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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비루하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글은 언제나 황홀하다. 그들은 삶의 본질을 깨달은 몇 안되는 위인 중 하나이며 그 통찰력은 비록 보통 사람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힐 게 뻔함에도 불구하고 널리 알려질만한 가치가 있다. 누군가는 끈기있게 그 일을 해 나가야 한다.정 알고 싶다면 털어놓겠는데, 나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산다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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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비루하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글은 언제나 황홀하다. 그들은 삶의 본질을 깨달은 몇 안되는 위인 중 하나이며 그 통찰력은 비록 보통 사람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힐 게 뻔함에도 불구하고 널리 알려질만한 가치가 있다. 누군가는 끈기있게 그 일을 해 나가야 한다.


정 알고 싶다면 털어놓겠는데, 나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산다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인 것 같다. 물론 이제는 어쩔 수 없고, 이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런 유감은 내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감정을 완전히 지워버리지는 못할 것이고, 그로 인해 결국 모든 것이 암울해질 것이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빠르게 늙어가는 일, 양옆을 돌아보지 않고 되도록 빠른 속도로 세월을 삼켜버리는 일이다. 살아 있다는 사실로 인해 빚어지는 갖가지 자잘한 고통들은 감수해야 하고, 그러면서 너무 힘들어 하지는 말아야 한다. 삶은 불합리한 것들, 터무니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소소한 광기일 뿐이지만, 눈을 좀더 가까이 대고 들여다보면 무시무시한 것들이다(p.5, 서문 중에서).


르 클레지오는 우리가 하루 하루 살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하루 죽어간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나는 이 의견에 대찬성이며 삶을 비전과 희망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그만 착각에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싶다. 혹자는 이같은 주장에 치가 떨럴지도 모른다. 삶은 축복이자 축제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허무와 패배감으로 채우는 건 낭비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범죄다. 당신이 허무로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오늘이지 않은가?


호통을 치는 사람들은 삶이 선물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귀한 선물이기에 조심히 포장을 벗겨 애지중지 다루리라. 그러나 나는 삶이 부당하게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나는 그것을 갖겠다고 동의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삶은 강매당한 다단계 제품보다 파렴치하고 술래가 등 뒤에 두고간 수건보다 음흉하다. 우리는 뒤에 수건이 놓인 줄도 모르다 순식간에 삶으로 빨려들어왔고 성장하고 연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섹스를 하다 그 냄새나고 더러운 수건을 또 다른 누군가의 등 뒤에 놓고 도망쳐 나온다. 번식은 기본적으로 억울함이 추동하는 복수극이다. 그것은 전혀 숭고하지 않다. 세대를 거치며 자행되는 죄의 대물림이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나는 평생 그 진실을 등지고 살겠다. 진실이 우리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진실을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그렇게 살고 싶다면 그렇게 살아라. 그러나 당신은 살아가면서 당신의 생각에 반하는 다양한 증거들을 만날 것이고 그 때마다 슬픔에 빠질 것이다. 슬퍼하지 않는 건 오히려 나다. 나는 애초에 이 삶이 파렴치한 사기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런 증거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 당신은 불합리한 삶에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나는 결코 상처받지 않는다. 당신은 삶이 당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게 배신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고통은 우리가 그렇다고 믿었던 것들이 그렇지 않았음을 깨달을 때 온다. 삶이 원래 터무니 없다는 걸 아는 자들의 마음 속엔 이러한 부조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터무니 없는 존재가 터무니 없는 모습을 드러내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s*******r 2015.09.14.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열병/르 클레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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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는 정신이 감각에 시달린 끝에 일종의 육체적 도취 상태에 빠져들기도 한다. 진실은 백열등보다 더 밝아서 보려고 하면 눈이 부실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금방이라도 깨질 수 있는 이런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다. 눈길이 가닿은 자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귀에 들리는 소리, 피부에 와닿는 감각은 무엇이건 의심해 보아야 한다. ('서문' 중에서) 이 모든 것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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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는 정신이 감각에 시달린 끝에 일종의 육체적 도취 상태에 빠져들기도 한다. 진실은 백열등보다 더 밝아서 보려고 하면 눈이 부실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금방이라도 깨질 수 있는 이런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다. 눈길이 가닿은 자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귀에 들리는 소리, 피부에 와닿는 감각은 무엇이건 의심해 보아야 한다. ('서문' 중에서) 이 모든 것 속에 와서, 이 맥락 안에 들어와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배는 섬을 향해 가는 것 같다' 중에서)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열병>은 르 클레지오의 중단편 9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발원한 '누보로망(Nouveau roman)'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장르에 굳이 얽어맬 이유가 있나 싶을 정도로 참신한 글쓰기를 하는 작가다. 국내에도 방문한 적이 있을 정도로 한국과는 꽤 인연이 깊은 작가라고 한다.

 

르 클레지오의 <열병>은 '이러이러한 이야기야!'라고 소개하기가 참 애매하다. 소설이라고 하면 스토리가 있기 마련인데, <열병>의 작품들에는 다만 '(언어의) 표현'만이 있기 때문이다. 열이 올랐음에도 출근해야 하는 로슈(열병), 세상의 모든 지식을 습득할 정도로 똑똑한 천재인 12세의 마르탱(마르탱), 쓰레기가 쌓인 강가로 산책을 하는 희곡 작가(배는 섬을 향해 가는 것 같다), 25세 생일날 플랫폼에 서있는 앙리 피에르 투쌩(뒤로 가기), 연인이 떠난 다음 날 커피를 마시며 싱크대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듣다 거리로 나간 파올리(걷는 남자) 등 딱히 등장인물들의 '서사'라고 할 만한 게 없다.

 

하지만 르 클레지오의 매력은 서사에 있지 않다. 그의 '서문'을 읽어보면 (비교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에밀 시오랑이 생각난다. '태어난 것'이 고통이라는 염세주의가 시오랑의 그것과 꽤나 비슷하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르 클레지오가 표현하는 '언어'는 낯익은 것을 '낯설게' 만든다. 가령 햇빛을 표현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어떤 영향을 주는지 언어로 표현될 때 그것은 기묘한 낯섦을 선사한다. 열이 나는 것도, 통증도, 혐오도, 자만도 하다못해 길을 걷다 마주치는 수많은 얼굴들, 건물들, 공기, 심지어 부모님마저도 낯설고 기이해진다. 그것들 중 '나를 아는 것'은 없다. 그 기묘한 낯섦이 바로 르 클레지오의 매력인 것이다. 

 

자신의 내부로 몰두하게 만드는 그 집요함ㅡ그것은 어느새 나를 르 클레지오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래서 그의 글에서 눈을 떼고 나의 현실로 회귀할 때, 나는 잠시 현실과 언어의 경계선에 선다. 지독한 작가다. 지독한 글쓰기다. 르 클레지오의 글은 이렇다. '미치거나 무관심하거나.' 이젠 나의 하루에서 마주치는 모든 소소한 것들을 눈부시게 바라볼 것만 같다. 내 귓가엔 아직도 개수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통 통 틱!

 

 

k********3 2023.02.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열을 내며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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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읽었다.병적으로 어렵게 읽었다.인체구조, 지질학, 기하학 등 문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부분들이 난삽하게 끼어 든 느낌이다.내가 이 책을 읽을 때 상황도 불안정하여 한 글자 한 글자 소리내고 문장을 책갈피로 밑에 대면서 페이지를 넘겼다.그렇게 읽어가며 머리에 들어 갔던 문장들은 휘발성 기체처럼 바로 증발해 버렸다.그래서 남는 것이 거의 없다.그런데 그런 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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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읽었다.
병적으로 어렵게 읽었다.
인체구조, 지질학, 기하학 등 문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부분들이 난삽하게 끼어 든 느낌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을 때 상황도 불안정하여 한 글자 한 글자 소리내고 문장을 책갈피로 밑에 대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그렇게 읽어가며 머리에 들어 갔던 문장들은 휘발성 기체처럼 바로 증발해 버렸다.

그래서 남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무의미한 흡입과 증발 작용 속에서 뭔가는 있었던 흔적같은 기억은 있는 모양이다.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도 사람 외의 자연물, 흙.돌.대기.물 등의 일부일 뿐이다. 동물, 생물인가의 여부도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철저히 비종교적 비기독교적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사람이 나와도 매우 이방인스럽다.
이방인스럽게 사는게 현실에서 무척 고통스러울 것 같지만
정상인으로 살아도 삶 자체는 고통스럽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므로 어떤 삶도 등종국성이다.
허무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을 체득하면
끝에 가면 이른바 죽음과 소멸에 이를때면
그냥 그러려니하며 그것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굳이 열병에 시달리고 그러지 않고
새가 아침에 눈 뜨고 저녁이면 눈을 감듯
세상에 왔다 가고 또 물로 재로 공기로 부유하면 될 것이다.
s*******k 2022.10.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