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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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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때론 눈물이 있다. 깊은 슬픔이나 갑작스레 닥친 절망은 어둠과 시련을 가져온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과 슬픔의 눈물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셔서, 이러한 아픔을 주셔서 원망하고 괴로워한다. 사랑의 하나님인데, 왜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고통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절망을 느낀다. 저자는 예레미야라는 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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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때론 눈물이 있다. 깊은 슬픔이나 갑작스레 닥친 절망은 어둠과 시련을 가져온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과 슬픔의 눈물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셔서, 이러한 아픔을 주셔서 원망하고 괴로워한다. 사랑의 하나님인데, 왜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고통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절망을 느낀다. 저자는 예레미야라는 선지자를 통해 고난과 눈물의 의미, 그리고 우리가 진정 얻어야 할 눈물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시대를 적확히 파고드는 진정한 복음주의 신앙의 강점으로 유명하다. 예레미야의 시대는 바벨론 유수(바벨론의 침략을 당해) 나라를 잃은 상황이었다. 우리의 일제시대와 매우 흡사하게 민족적 위기와 고통의 시기였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떠나버린,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 인해 매일 눈물로 기도한 '눈물의 선지자'였다. 왜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을 믿는 길은 좋아보이거나, 편안해보이질 않는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 저자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 강함을 갖지 못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정말 궁극적인 더 큰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예레미야를 하나님이 깊은 어둠 가운데 놓으신 것은 나라를 이끌 위대한 지도자로 단련시킨 기간이었다.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약함과 고통은 경험하지 못하면, 남의 아픔과 어려움을 동감할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진정한 도움과 리더쉽은 자기가 직접 어려움을 체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고통 가운데 흘리는 눈물은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회개, 즉 하나님과의 온전한 만남을 의미한다. 본문 중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늙은 권사님옆에서 눈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청년'의 모습에서, 메마르고 진정한 회개와 만남이 없는 현재 세대를 본다. 소명을 위해, 이 세상을 위해, 그리스도의 리더쉽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가장 치열한 곳에서 고통의 인내를 감당하며, 애쓰고 있지 않다면 세상에 패배하는 그러한 모습을 가질 것이다. 차라리, 지금 고통을 당하고 좌절의 쓴맛을 느끼는 것이 - 대부분의 위대한 인물들이 그러했듯이 - 장차 올 영광의 기쁨을 맛보는 진정한 가치있는 길이 될 것이다,
j****c 2005.11.1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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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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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에는 독수리같은 사람 그리고 오리같은 사람 이있다고한다. 오리같이 시끄럽게 떠들고~ 꾁꾁 소리만 지를뿐 ...하지만 독수리를 생각해보아라 우직하게 높이날고 용감하게 창공을 지배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인 독수리로 부르셨다. 우리는 걸을 수 있다. 우리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가지에 매달려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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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에는 독수리같은 사람 그리고 오리같은 사람 이있다고한다.

오리같이 시끄럽게 떠들고~ 꾁꾁 소리만 지를뿐 ...하지만 독수리를 생각해보아라

우직하게 높이날고 용감하게 창공을 지배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인 독수리로 부르셨다. 우리는 걸을 수 있다. 우리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가지에 매달려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창공을 나는 자가 되기 원하신다. 창공을 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사명에 부응한다는 뜻이다. 나를 지으신 주께서 내 이름을 부르실 때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사명에 헌신하는 것이 바로 창공을 나는 독수리의 모습이다.

 

1.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아 사명에 부응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최상의 인생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사명안에서 헌신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어느때는 시험으로 부르시고, 어느때는 환경으로 부르시며 자꾸만 불러내신다.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도록 이 땅에 왜 왔는지 알기 바라며 자꾸만 부르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대로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 최상의 삶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되, 현실 속에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붙들어야 승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능력이 생긴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소유할 때에 악에게 위축되지 않으며 끝까지 성실하게 헌신하여 승리할 수 있다.

한계를 가지고도 하나님이 주시는 무한한 능력으로 일하고 하나님께 돌아가 절망속에서 다시 소망을 일구어 낼줄 아는 신실한 믿음의 백성이 되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고난을 주실 때 우리는 그 고난이 많은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필요한 영적 지도력의 기초임을 자각해야 한다.

과거에 얼마나 기도 많이 했는지, 과거에 얼마나 영적 체험을 많이 했는지는 별 의미가 없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해 아침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체험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을 체험해야한다. 하나님의 자비, 긍휼, 성실하심을 체험하라. 오늘의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라.

참된회개란 마음과 손을 동시에 드는 것이다. 단지 입술의 고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변화까지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는 왜 많은 능력을 구하는가? 개인적으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섬기기 위해서다. 새벽사람이 되어 기도로 섬길때 능력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 원하시느냐 하면 순종하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이세상의 모든 고난, 우리의 삶에 노정된 모든 것들을 다 받아들일 줄 아는 것, 이것이야 말로 고난의 최고 목적이라는 것이다.

 

믿음은 동사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떤 도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우리의 삶에 깃든 모든 고난과 의문, 그속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반응이 바로 믿음이다.

 

내 삶 가운데 찾아오는 많은 고난을 수용하라. 의문도 수용하라. 믿음은 동사이다. 이것들을 수용하면서 적극적으로 또한 긍정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하라. 그것이 믿음이다. 그때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하나님께서 내 평생의 길을 인도하시고 함께하셨음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s*******6 2009.02.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