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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런 남자지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원래 그런 남자지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 내용보기
남성과 여성 중 행복한 쪽은?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대답은 언뜻 가벼운 농담으로 들린다. 하지만 조루보다도 심각하고 에이즈보다도 치료가 어려운 그「남성 불감증」이 밝혀진 뒤라면 ? 사정 뒤에도 대단한 쾌감이 따라오지 않으며, 오히려 순식간에 흥분이 깨며 온몸이 기운을 잃고 어둡고 공허한 기분이 엄습하는 남성불감증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남자들에게도 그 농담은 여전
"원래 그런 남자지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 내용보기
남성과 여성 중 행복한 쪽은?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대답은 언뜻 가벼운 농담으로 들린다. 하지만 조루보다도 심각하고 에이즈보다도 치료가 어려운 그「남성 불감증」이 밝혀진 뒤라면 ? 사정 뒤에도 대단한 쾌감이 따라오지 않으며, 오히려 순식간에 흥분이 깨며 온몸이 기운을 잃고 어둡고 공허한 기분이 엄습하는 남성불감증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남자들에게도 그 농담은 여전히 농담일까. 포르노 열풍, 교복소녀 애호, 롤리타 증후군, 남성우월주의를 통해 남자들이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정한 뒤에도 공허한 사막 속에 있는 것 같고, 가끔씩 자학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이 더러운 남자의 몸이 싫었습니다. 저 순결하고 해맑은 소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몸으로 옮긴 뒤, 아름다운 저의 여체를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아이로서 새로운 제 자신이 되고 싶었습니다.” 지은이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희대의 걸작「무통문명론」에서와 마찬가지로 개인적 체험과 고백을 빌린 서술, 즉 나르시시즘적 철학 서술로써 자신의 남성성 분석을 시도한다. 기존의 남성 분석이 내면적 이해를 배제한 남성의 객체화로서 남성과 여성의 권력과 억압만 조명하였기 때문에 놓쳤던 핵심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지도 모르는 자기 내면의 분석을 통해서 성실하게 주워 담은 것이다. 일본 남성들의 반응은 대부분 ‘모리오카 씨의 논리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라는 감상이었기 때문에 저자의 나르시시즘적 서술은 성공했다는 평이다. 유교적 토양이 아직 건재한 한국에서는 이 책이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성산업과 성문화가 자랑스럽게도 일본을 뒤쫓고 있는데다가 롤리타 증후군이 ‘전 국민의 여동생 문근영’ 증후군으로 나타난 현실을 보면, 저자의 주장은 한국에서에도 통한다 할 수 있다. 특히 변화와 전통의 갈등을 축으로 한 사회적 상황만 두고 보자면 오히려 한국 남성들에게 적합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남성들은 보이지 않는 이중고를 겪기 때문이다. 성개방 진전과 여권 향상이란 변화를 수용해야 하면서도, 사회적으로도 강요되고 있는 가부장을 맡아야 한다. 바꿔 말하면 참된 의미의 성적 쾌락과 자유는 남성 불감증에서 예외인 여성들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단 것이다. 일그러진 성적 정체성에 갇힌 남성들은 저자가 말한 ‘사정 후 허무함’을 자학적으로 즐기면서 자신이 여자가 되길 갈구하거나, 혹은 여자에 대한 복수심 속에서 수음이나 변태적 성행위, 심지어 성폭력을 저지르게 된다. 게다가 나라를 지키고 가족을 먹여 살리며 질서를 책임지는 가부장으로서, 개인적 욕망과 감각에 솔직해지는 건 생각할 수조차 없다. 한국 남자들도 나름대로 불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남성들의 아픔을 보듬지만 않았다. 기존의 페미니즘 서적이 남성들을 비난하거나 비판하여 반감을 부추긴 것과 달리, 남성들의 내면을 제대로 대변해주었기 때문에 남성우월주의와 성적 망상의 허구를 역설적으로 폭로해버리고 만 것이다. 극렬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김신명숙조차도 이 책을 읽고 자신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할 정도이지만, 페미니스트가 아닌 남성이라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마침내 외친 후련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자발적인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모리오카 마사히로의 나르시시즘적 서술은 적어도 남성 독자들에게 있어선 “고해성사”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읽는 남자들은 오르가즘 이상으로 행복한 ‘감정의 배설’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완전한 해결은 아닐지라도, 무한정 증식하는 비틀린 성적 욕망과 그에 비례하는 성산업의 노예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고 느끼기 시작하는 첫 발자국은 월면에 새겨진 암스트롱의 발자국보다도 위대하다. 그렇다면 모리오카 마사히로가 최종적으로 겨냥한 대상은 무엇일까. 단지 이 책은 남성 불감증을 해소에서 끝나는 것일까. 저자는 남성들의 변호 입장에 서있지만, 그보다도 심각하게 염려하는 것은 그런 일그러진 성적 정체성과 관련 성산업의 피해자인 희생되는 성인 여성과 소녀들이다. 저자는 비록 짤막하게 언급했지만,「무통문명론」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의미심장하게 음미할 대목이 있다. 남성들의 저열한 섹스 심리를 노려 돈을 벌기 위해, 여성을 착취해 포르노물을 제작하고 어린 소녀들을 이용해 롤리타 상품을 양산하는 집단의 존재이다. 남성들의 자폐적 행위 때문에 노리개가 되고 학대받고 상품화되는 소녀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필경「무통화 시스템」의 한 단면이리라. 저자 못지않게 주목할 사람은 또한 이 책의 원서에 충격을 받아 번역하게 되었다는 옮긴이 김효진이다. 그녀의 정갈한 우리말 문장구사력은 “원서나 읽을 걸”이라는 흔한 비명도 못 지르게 한다. 또한 ‘옮긴이의 말’은 독후감이나 서평을 쓸 의욕을 꺾을 정도로 훌륭하거니와, 모리오카 마사히로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풍부히 담고 있다, 이 책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번역자의 귀감이 어떠한지 알고 싶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남자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느끼지 못하는 남자'는 '남성불감증'을 안고 산다. (…) 일단 쾌감에서 남성은 여성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여성의 쾌감을 지배하거나 조정함으로써 여성보다 우위에 서려고 한다. (…) 그러나 만약 지배에 실패했을 때에는 반대로 느끼는 여성에게 복수하여 벌을 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성폭행하고 싶다는 충동이 튀어나오는 것은 이 때다. 더 나아가 자신의 더러운 몸, 느끼지 못하는 몸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면 제복 페치와 롤리타 콤플렉스가 출현한다. 그 결과 멋대로 상상한 이미지와 자기 중심적인 욕구를 여성에게 강요함으로써 여성을 제멋대로 삼켜버리려는 남성이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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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쓰기조차 곤혹스러운, 그러나 남자들이여 꼭 한번 읽어보시라!
"리뷰 쓰기조차 곤혹스러운, 그러나 남자들이여 꼭 한번 읽어보시라!" 내용보기
모리오카 마사히로 교수의 라는 매우 도발적인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리뷰를 써야하는 지금,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합니다. 이 책에는 세상의 절반은 이미 경험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결코 제대로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지금까지 몰래 숨겨왔던 남자들의 성에 대한 비밀을 거리낌없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고백의 화자는 3
"리뷰 쓰기조차 곤혹스러운, 그러나 남자들이여 꼭 한번 읽어보시라!" 내용보기
모리오카 마사히로 교수의 <남자는 원래="" 그래?="">라는 매우 도발적인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리뷰를 써야하는 지금,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합니다. 이 책에는 세상의 절반은 이미 경험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결코 제대로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지금까지 몰래 숨겨왔던 남자들의 성에 대한 비밀을 거리낌없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고백의 화자는 3인칭 '우리' 또는 '남자'가 아니라 저자인 모리오카 마사히로 교수 자신 = '나'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을 다룬 대부분의 책에서 '남자는 이러하다' '여자는 이러하다'고 쓰고 있지만, 자신은 쏙 빼버리는, 마치 다른 사람은 그러한데 나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마저 풍기는, 그런 책과는 달리 '나는 이렇다'고 거침없이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더욱 당혹스럽습니다. 책을 읽다가 마치 내 마음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기도 합니다. 미니스커트, 포르노, 자위, 교복 페티시*, 롤리타 콤플렉스*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통한 심리학적 분석이야기입니다. 그 분석에는 몇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저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자는 '성 불감증'을 갖고 있다. 즉 '느끼지 못하는 남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몸을 ‘부정’한다. 남자는 남자의 몸이 더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성을 동경하고 경외한다. '느끼는' 여성을 학대한다. 특히 소녀의 몸으로 탈출하고 싶어한다. 교복에는 학생을 '세뇌'하는 '학교'에 대한 욕망이 있다... 는 등. 때론 저자의 가설 중에 인정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은 또 없었습니다. 책 내용 순서대로 요약합니다. 물론 책에 대한 요약이기 때문에 '제 이야기'는 없습니다.^^ 먼저 미니 스커트. 남자는 바지보다는 스커트에, 그 중에서 미니 스커트에 끌리고, 미니 스커트보다는 그 안쪽의 팬티에 끌린다. 상상 속의 팬티는 거의 언제나 하얀색이다. “그 안쪽에 팬티가 감춘 대단한 그 무엇, 이 세계를 초월할 것 같은 무엇이 슬쩍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이때 미니 스커트를 입고 있는 실제의 여자, 즉 의지도 감정도 있는 진짜 여자는 남자를 방해하는 존재"일 뿐이다. 이런 시선을 가진 남자는, 실은 '느끼지 못하는 남자'다. 술자리에서조차 자신의 경험을 장황하게 말하는 것을 즐기면서도 정작 "나는 어떤 느낌이 들었다"는 얘기는 전혀 없고 오로지 "어떤 여자와 했다"만 말할 뿐이다. 여기에는 남자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아니 이미 세뇌당한 '사정'에 대한 신화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거의 유일한 성 과학자인 킨제이는 1948년 <남성의 성행동="">이라는 저서에서 사정을 남성 오르가즘의 증거로 채택했다. 오르가즘과 사정이 다소 다른 점이 있지만 그렇게 가정하고 글을 쓴다고 밝히고 있다. 그 후 사정은 남자들에게 있어 매우 기분좋은 최고의 체험이라는 신화가 형성됐다. '느낌'은 간 데 없고 오직 ‘사정’만 남았다. 이에 대해 모리오카 교수는 이렇게 묻습니다. "사정 뒤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거나 머리 속이 하얗게 되거나 쾌감에 마비되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적이 있는가?" 따라서 사정은 사정일 뿐이다. 배출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사정이라는 것은 “허탈감과 공허감과 패배감으로 전락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평생 경험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 남자는 점점 느끼지 못하게 된다. 포르노 속 남자들은 사정하자마자 순식간에 화면에서 사라진다. '느끼지 못하는 남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자를 느끼게 했는지 못했는지"를 중심으로 자신을 긍정하거나 부정한다. 성 행위의 중심은 자신이 느끼는 과정이 아니라 여성을 만족시켜야한다는 부담스러운 행위이다. "여자가 느끼는 것과 같은 쾌감을 절대 맛볼 수 없다는 패배감"이 자리잡고 있는 '느끼지 못하는 남자'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여자를 증오하기 시작한다. 포르노는 그런 남자들을 위한 것이다. "증오하는 여성을 마음대로 지배해 여자의 쾌락을 자유롭게 조종하는 듯한 내용을 보면서, 여성보다 우위에 선 것 같은 착각을 즐긴다." 포르노 속의 여자들은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나중에는 한결같이 즐긴다. 이는 '느끼는 여자'에 대한 복수이면서, 남자 스스로의 자학 행위이며 자해 행위이다. 즐거운 것 같으나 그 결말은 늘 허탈하고 공허하고 죄책감이 동반되는 과정이다. 다음은 교복 페티시. 교복 페티시와 롤리타 콤플렉스는 남성이 선택한 환상이다. 교복에 끌리는 것은 실은 교복으로 상징되는 ‘학교’에 대한 욕망이다. 여학생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들을 '세뇌'하는 곳이다. 따라서 교복에 대해 끌리는 이유는 "소녀들을 세뇌하는 것에 대해 성적으로 욕정하는 일"이다. 그 이면에는 "내 몸뚱이를 버리고 소녀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그 귀여운 몸을 안쪽에서부터 자유자재로 조종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그 소녀에게 넘어가는 다리는 정액이다. 그런 심리의 이면에는 또 "울퉁불퉁하고 더러운 남자의 몸으로부터 빠져나오려는 탈출의 소망"이 있다. 남자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울퉁불퉁하고 더럽다'고 생각한다. 정액이 튀어나온 뒤의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런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다음은 롤리타 콤플렉스. 롤리타 콤플렉스 대상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정도까지의 연령이다. 그것은 희한하게도 여성의 초경 나이와 일치한다. 현대의 롤리타 콤플렉스는 대개 소녀 를 이용한 성산업자의 교활한 상술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위장된 '소녀 포르노'에 몰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사춘기의 갈림길에서 여성의 몸을 향해 방향을 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동시에 "이제 배란이 가능하게 된 소녀의 몸 속에 누구보다 빨리 정액을 흘려넣어 자신의 정자와 소녀의 난자로 임신시키고자 하는 욕망도 숨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 리뷰 글자 수 제한으로 나머지는 블로그(http://blog.yes24.com/namu0808)에서 확인해주세요. ㅠㅠ
n******8 2005.11.06.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충격적인 섹슈얼리티론
"충격적인 섹슈얼리티론 " 내용보기
포르노, 제복 모에, 롤리타콤플렉스 등 이 책에서 분석한 남성들의 성욕을 자극하는 현상들은 바로 이런 점에서 남성들이 거짓된 남성다움에 얼마나 얽매여 있는가, 그리고 그에 비례하여 병적인 성적 욕망이 점차 사회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글쓴이의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페미니즘은 이러한 남성들의 가학적인 성적 욕구는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
"충격적인 섹슈얼리티론 " 내용보기
포르노, 제복 모에, 롤리타콤플렉스 등 이 책에서 분석한 남성들의 성욕을 자극하는 현상들은 바로 이런 점에서 남성들이 거짓된 남성다움에 얼마나 얽매여 있는가, 그리고 그에 비례하여 병적인 성적 욕망이 점차 사회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글쓴이의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페미니즘은 이러한 남성들의 가학적인 성적 욕구는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반영한다고 설명해왔다. 더 나아가 이것을 공격적인 남성성(마초)을 신성시하는 남성 중심 문화에 내재된 여성억압의 기제로 해석해왔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성으로서의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 논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남성 내부의 심리를 탐구하고 있다. 공격적이라 비판 받아온 남성 성욕이 스스로의 남성성을 부정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욕구, 더 나아가 자신의 몸을 여성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욕구, 순결한 소녀의 몸을 통해 남성이 아닌 몸으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욕구라는 저자의 견해는 참으로 흥미롭다. 게다가 이 견해가 오늘날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매체와 남성들의 변함없는 행태를 탐구한 결과라는 점도 놀랄 만하다.

어느덧 우리 주위에 범람하고 있는 그런 매체들은 이미 성적 욕망이 끊임없이 시장에 공급할 상품을 만들어낼 정도로 수요가 많아졌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으며 이런 매체들은 일본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전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하루에 몇 통씩 이메일로 배달되는 성인물 광고들의 많은 부분이 일본의 성적 매체의 광고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한국 남성들 안에도 저자와 같은 욕망을 지닌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일본 사회의 특수성 혹은 병리적인 소수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논의를 덮어버리는 태도로는 남성의 병리적 성욕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성적 욕망은 근본적으로 동물적인 부분과 무화적인 부분으로 구성되며,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책에서도 나오는 다양한 성적 기호에 흥분하는 것 자체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단죄할 수는 없다. 다만 저자가 부연하는 것은 인간의 이런 성적 욕망이 가진 양면성을 인식하고 현실과 환상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점점 현대의 남성들에게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며 바로 그런 우려가 이 책의 출발점이다.
s****j 2007.01.3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