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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로서의 들뢰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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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질 들뢰즈는 죽기 전에 자신의 마지막 책이 <맑스의 위대함>(맑스의 유산)이라고 이름 붙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탈근대 정보사회의 도래 이후 집단적 저항주체로서 호명할 ‘민중’이 사라졌다는 역사적 경향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소수정치’ 또는 ‘마이노리티의 정치’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제기되는 질문은 그 소수정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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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질 들뢰즈는 죽기 전에 자신의 마지막 책이 <맑스의 위대함>(맑스의 유산)이라고 이름 붙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탈근대 정보사회의 도래 이후 집단적 저항주체로서 호명할 ‘민중’이 사라졌다는 역사적 경향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소수정치’ 또는 ‘마이노리티의 정치’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제기되는 질문은 그 소수정치란, 탈맑스주의적인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들뢰즈의 소수정치와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에서 공통분모를 찾으며, 탈맑스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도발적이다. 쏘번은 심지어 맑스 자신이 소수적 저자라고 말한다. 20세기에 정통 맑스주의의 전통 속에서 손쉽게 형성되어버린 ‘근대 사회주의의 아버지’라는 맑스의 이미지와는 달리, 끊임없는 맑스의 교전과 맑스의 연기(延期)를 주목해 볼 때 그의 자본 비판은 자기 실천에 내재적이라는 것이다. 즉, 맑스의 교전양식을 소수정치학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

 

재미있는 것은 맑스의 룸펜프롤레타리아 개념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해 이것을 분석하고 맑스의 정치학에서 발견되는 차이의 정치학을 탐구하는 것이다. 쏘번의 주장에 따르면, 맑스의 룸펜프롤레타리아 개념은 (비록 그것이 차이 나는 것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동일성을 지향하는 존재에 대한 지칭이다. 한편 구성양식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이름 붙일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 프롤레타리아의 ‘부재’는 맑스가 열린 정치학으로 남겨둔 것으로서 맑스의 소수정치학에 근본적인 부분이다. 이렇게 맑스는 들뢰즈를 만난다.

 

들뢰즈는 정치학은 예술, 과학, 철학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삶에 내재적이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발명과 창조의 과정 그 자체이다. 게다가 쏘번은 들뢰즈의 정치학이 자본주의 동학에 초점을 맞춘 점에서 맑스주의적이며, 코뮤니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문화적인 것으로의 정치학 이행을 보여주는 신그람시주의적 탈맑스주의 모델이나 사회민주주의 정치학의 영역과는 다르게 코뮤니즘의 형상을 통해 맑스와 들뢰즈의 관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코뮤니즘은 자본 속에서 그것의 극복을 향해 배치되는 삶의 체제들, 관계들, 힘들과의 내재적 교전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쏘번은 <제국>의 마지막 문장에서 네그리와 하트가 제시한 “코뮤니스트인 것의 억누를 수 없는 쾌활함과 기쁨”을 인용하며 들뢰즈와 가따리의 갇힌 공간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의 정치학을 연결 짓는다.

 

삶의 긍정, 삶의 갇힌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출현하는 정치(학)의 활기, 논쟁, 발명을 긍정하는 것이다.

 

k*****4 2008.03.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