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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는 질병, 특히 감염병을 향한 관심을 높였다. 관련한 책도 여럿 소개되었다. 역사와 감염병 간 관계를 분석한 고전인 『전염병의 세계사』는 차트를 역주행했다. 역사 전문 출판사 이산에서 낸 책답게 역사 덕후들이 찾던 책이었는데, 코로나 19 이후로 이 책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중 한 명이 나다. 이산출판사에서 나온 책답게 미주가 많고, 미주와 색인만 무려 80쪽이다. 본문은 300쪽을 조금 넘지만, 이 책을 완독하는 데 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용이 쉽지 않다. 다 읽고도 이해 못한 부분이 꽤 많다. 일단 고유명사가 많이 나온다. 다시 읽을지는 모르겠다. 소장은 하려고 한다.
한병철이 쓴 『피로사회』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그래서 이를테면 박테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적어도 항생제의 발명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인풀루엔자의 대대적 확산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힘입어 이미 그 시대를 졸업했다. (11쪽)
오늘은 차가 별로 막히지 않는군, 하면 어김없이 정체가 시작되더라.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는 끝났다고 말한 뒤 미중 신냉전이 이어졌고... 마찬가지로 한병철 저자가 말한 바이러스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윌리엄 맥닐이 옳았다. 맥닐은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이 출판된 후에 발생한 어떤 상황도 이 책을 전반적인 논지와 모순된 것은 없었다. 인간은 지구생태계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동식물을 포식하며 먹이사슬에 참여하는 동시에 각양각색의 기생생물에게 풍부한 먹이의 장이 되는 인체를 제공한다. 우리의 지식과 행동에 변화가 생기면 질병이 발생하는 양태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도 바뀔 것이다. 그러나 지구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조건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15쪽)
이 책에서 맥닐은 감염병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좌우하는 주요한 원인이자, 문명의 모습이 변화하면서 초래한 결과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 하에,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다양한 곳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배경부터 고전 종교 사상,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앙아시아를 중국과 러시아가 차지한 역학적 상황,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전환 등등을 분석했다. 대한민국 필독서 『총균쇠』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미 아는 내용도 더러 있겠지만, 나로써는 종교 사상과 전염병 간 관계가 흥미로웠다. 특히 거의 모든 고전종교에는 신비주의 흐름이 있는데, 이를 감염병에 대한 종교의 대응으로 서술한 점에서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종교와 감염병'이라는 주제로 한 책을 읽어보고 싶으니, 혹시 이 주제와 관련한 책을 알고 계시다면 잇님들의 추천을 바랍니다. 꼭, 이 주제는 아니지만 『축의 시대』 카렌 암스트롱의 책 『신의 전쟁』이 최근 출간되어, 읽어볼 생각이다.
그나저나 학부 시절에 이산에서 나온 책을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2018년 이후로 나온 책이 없다. 기존에 낸 책만 유통하고 새로운 책은 안 내시려는 건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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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만~1만 년 사이에 인류가 급속히 팽창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다양한 자연환경에 대한 문화적 적응이었지만, 또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열대의 자연환경을 떠나면서 그때까지의 인류 또는 오늘날에도 열대에 사는 인류를 괴롭히는 수많은 기생생물과 병원체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들의 건강과 활동력은 개선되었고,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48쪽)
먹이사슬의 단축과 사육ㆍ재배하는 한정된 종의 동식물의 증식은, 기생생물의 잠재적인 먹이가 밀집되는 사태를 의미했다. 가장 강력한 기생생물은 대체로 작아서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인류의 대단한 지혜로도 오랫동안 그들의 창궐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다. 근대과학이 탄생하고 현미경이 발명되기 전, 우리의 선조들이 잡초나 경쟁상대인 대형포식자와의 투쟁에서 거둔 승리는 일견 화려해 보였지만 소형 포식자인 기생생물로부터 통렬한 반격을 당했다. 이들 기생생물은 성공한 농민들이 바꿔놓은 자연환경에서 전대미문의 호기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61쪽)
새로운 질병이 안정된 패턴을 유지하려면, 숙주와 병원체 모두가 충격적인 첫 만남에서 살아남아 적절한 생물학적ㆍ문화적 적응을 통해 서로 용인할 수 있는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이런 적응과정에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세대교체 기간이 훨씬 짧다는 점에서 숙주에 비해 유리하다. 한 숙주에서 다른 숙주로의 안전한 이동을 촉진해주는 병원체의 유전자 변이는, 유전적으로 계승되는 인간의 신체적 형질이 변화하는 과정에 비해 훨씬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보면 인간집단이 전혀 새로운 질병에 안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는 적어도 120~150년이 걸린다. (79쪽)
문명화된 사회생활의 기본구조에서 지방의 농경민은 두 가지 의미에서 필요한 존재였다. 농경민들은 도시주민을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소비하는 것 이상의 식량을 생산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구성원 수를 유지하기 위해 도시로 내보낼 아이들까지 더 낳아야 했다. 또 농촌의 잉여인구는 전쟁이나 약탈 같은 거시기생 현상 및 그에 뒤따르게 마련인 기근으로 인한 인구감소도 보충해야 했다. (84쪽)
질병의 장벽이 얼마나 컸는지는 한족의 개척자들이 양쯔 강 유역에 집단으로 이주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까지 500~60년이 더 걸렸따는 사실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단순하게 말하면, 춥고 건조한 북부에서 온 이주자들이 너무 많이 죽었기 때문에 신속한 개발이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110쪽)
인도 종교의 특징이 된 초월주의는 가난에 찌들고 전염병에 시달리던 농민의 상황에 잘 어울렸다. (116쪽)
살아남은 자들에게 면역력을 부여하는 전염병이 한 공동체에 5~10년의 간격으로 발생하면 그 병은 자동적으로 소아병이 된다. 그리고 어린이, 특히 유아들을 다시 낳을 수도 있으므로 어린이들이 걸리는 전염병이 지역의 인구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신종 전염병이 노소를 가리지 않고 공격할 때와 비교하면 아주 미미하다. (152쪽)
종교사의 측면에서도 로마와 중국에서는 놀랄 만큼 비슷한 현상이 전개되었다. (중략)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불교도 현세의 고통에 대한 종교적 혜안을 제시했다. 중국에 뿌리를 내린 불교는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가 그랬듯이 상심에 빠진 생존자와, 전쟁과 질병의 희생자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불교는 물론 인도에서 유래했는데, 인도는 차가운 기후대에서 발달한 문명들에 비해 질병발생률이 높은 곳이었다. 그리스도교 또한 기온이 낮고 인구가 적은 지역에 비해 전염병이 발생하기 쉬운 예르살렘ㆍ안티오크ㆍ알렉산드리아 같은 도시적 환경 속에서 탄생했다. 따라서 처음부터 그리스도교와 불교는 질병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인생에서 중요한 사실의 하나로 다룰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두 종교가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내세에서 다시 만나 이승에서 받았던 핍박이나 고통을 보상받을 수 있는 축복이라고 설파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58쪽)
전통적 관습이라는 방역수단이 원난이나 만주에서 확실히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1898년부터 1924년까지 성공적으로 개발된 의학적인 방역조치도 과거에 비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긴 했지만 전염병 유행이라는 위급한 사태에 인간이 반응한 지극히 정상적인 대응책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8쪽)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럽인에게 폐결핵이 늘어났기 때문에 나병이 물러났다는 것이다. (195쪽)
이때 대중적인 신뢰를 등에 업고 등장한 것이, 설명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진지하고 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신과 교류하려는 신비주의였다. (중략) 따라서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프로테스탄트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교 조직이 개인적 신비주의나 신과 교류하는 이단적 방식들을 용인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교회 당국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열정에 몰입하는 세태에 불편한 심기를 갖추지 못했다. (204쪽)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면서 문화적 가치가 바뀐 것이 물론 페스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페스트가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도시정부들이 페스트 유행에 성공적으로 대처햇다는 점이 유럽인의 감수성을 전반적으로 바꾸어놓는 데 기여한 것만은 분명하다. (206쪽)
유라시아 대륙에서 선페스트의 분포상황이 변하면서 초원 지대에 기반을 둔 사회가 해체되었다고 가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15쪽)
양측이 역병의 원인을 똑같이 해석했다면, 신이 일방적으로 침략자들만 두둔하는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뻔한 것이었다. 그리스도 교도들의 하느님뿐 아니라 아스테카의 신들마저도 백인 침략자들의 모든 행위를 인정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228쪽)
한편 1529년에 발생했던 무서운 '발한병'은 성찬식에 관한 조항을 합의하려던 루터와 츠빙글리의 마르부르크 회담을 돌연 중단시키기도 했다. 물론 회의가 계속되었더라도 완고한 두 종교개혁가가 합의점을 찾았을지는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이들이 감염의 위험을 피해 황급히 떠나버렸기 때문에 루터파와 스위스파(후에 칼뱅파가 됨)의 분열이 굳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의 분열은 향후의 유럽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241~242쪽)
결과적으로 유럽 각지를 나머지 세계와 연결시켜주는 교통망이 촘촘해질수록 파국적인 재난을 겪을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범세계적인 교역 및 교통망이 고도로 발달해 모든 문명집단 사이에서 온갖 질병이 자주 순환되는 시대에 접어들자, 병원체의 유전적 돌연변이나 기생생물이 다른 숙주로부터 인간에게 이행되는 새로운 사태만이 치명적인 전염병을 유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1500년에서 1700년경 사이에 실제로 나타났다. 1346년부터 17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기승을 부렸던 파괴적인 전염병들은 점차 위력을 잃으면서 소아병으로 변했다. 발생범위가 현저히 축소된 페스트와 말라리아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243~244쪽)
잘 무장한 군대가 야전이나 포위공격에서 발휘할 수 있는 살상력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신무기를 장악한 국가가 조직적인 폭력이 발생할 여지를 최소화함으로써 전쟁터에서 또는 전쟁의 여파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는 오히려 줄어들게 되었다. (253쪽) |
| 두말할 나위 없는 최고의 역사가인 맥닐의 책이다. 『전염병의 세계사』 윌리엄 맥닐은 인류 역사를 전염병이라는 렌즈를 통해 조망하며, 전염병이 정치, 경제, 사회구조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흑사병, 천연두, 스페인 독감 등의 사례를 통해 질병이 문명과 제국의 흥망성쇠를 좌우했음을 설명한다. 전염병은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을 넘어 문화적, 역사적 변화를 이끄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