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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너무 많은 작품들을 만나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이거나 특별하게 강렬한 인상을 받은 작품을 제외하고는 기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작가 미상의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라는 목판화를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루브르박물관에서 이틀이나(?) 보낸 저의 기억에는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독일작가 볼프람 프라이쉬하우어는 그렇지 않았던가 봅니다. 1986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난 이 작품의 배경을 추적한 끝에 <퍼플라인>을 썼다고 합니다. 책에서 소개한 그림을 보니 의문을 가질 만도 합니다. 욕조에 두 여인이 들어가 있는데, 한 여인은 다른 여인의 젖꼭지를 꼬집는 듯하고, 그 여인은 반지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고 있는 묘한 상황입니다. 가브리엘 데스트레 자매라고 합니다.
작가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또 다른 요소는 그림의 제목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역사를 자세하게 알지 못한 저로서는 그저 묘한 그림이라 생각하고 말았겠습니다만, 가브리엘 데스트레는 부르봉 왕조를 개창한 앙리4세의 정부였고, 임신6개월째 왕비로 승격되기 직전에 죽음을 맞은 여인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죽음에 관한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6세기 프랑스는 가톨릭과 위그노파로 대표되는 신교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선 때였습니다. 신교를 믿는 앙리4세가 왕이 되는 과정에서 스페인의 가톨릭 세력과 전투를 치러야 했고, 로마교황청과의 정치적 알력을 조정해야 했습니다.
작가는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죽음을 뒤쫓은 400년 전의 자료를 건네받아 이를 확인하는 과정과 확인한 내용을 이야기로 꾸미는 액자소설의 형태로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죽음을 확인합니다. 그녀의 죽음에는 심지어 앙리4세를 포함하여 이해관계가 얽힌 여러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음모론과 임신6개월에 불의의 자간증으로 죽음을 맞은 것이라는 설명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자간증은 임신20주 이후에 고혈압이 나타나고 소변에 단백질이 배출되는 전자간증, 즉 임신중독증에서 비롯됩니다. 전자간증을 방치하다보면 분만전후 혹은 임신말기에 전신의 경련발작을 일으키고 의식불명에 빠지기도 하는데, 임산부와 태아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질환입니다. 출혈이나 감염과 함께 중요한 임신중 모성사망의 3대 원인이기도 합니다. 저도 수련의 시절에 전자간증 환자를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자간증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임신6개월에 자간증으로 발전하여 죽음을 맞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까닭에 이야기의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599년에 일어난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죽음의 원인을 추적한 19세기 역사가 모르슈타트의 미완성 연구결과를 완성하는 형태의 겉소설과 모르슈타트의 원고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브리엘 데스트레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속소설을 이루고 있습니다.
앙리4세와 가브리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면 당시 프랑스 사회의 성관념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잡했던 것 같습니다. 사건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를 비롯하여 <욕조 속의 가브리엘 데스트레> <목욕 중인 다이아나> 등 여러 미술작품들이 등장하는데 화가가 밝혀진 것도 있지만 작가 미상의 것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같은 분위기의 작품이 십여점이나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원작을 바탕으로 그린 모작이 여럿인 셈입니다. 모작은 습작의 형태로 그려진 것도 있지만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그린 경우도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이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가브리엘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의문을 풀어내려는 작가의 시도가 충분한 결과를 얻었는지는 아직 분명치가 않아 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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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전에 집으로 들어왔다. 아마도 다빈치코드와 비슷한 시기에 나오지 않았을까. 소개된 그림에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매료되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미루다 미루다 한번 보게된 책인데, 손에서 놓기가 힘들었다. 궁금하고 또 궁금하고..
왕실의 스캔들이란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리고 애매모호하게 사건을 종결한 것 또한 계속 궁금했엇다. 가브리엘 데스트레는 살해 당한것일까? 국왕의 입장은 결혼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그냥 잡아 두기 위한 방침이었을까? 끝까지 이것을 물고 늘어졌는데, 정확 사실은 나오지 않았고, 단지 여러 문서를 통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강한 추측에 불과하다. 결국에는 앙리4세도 데스트레가 죽고 난 후 10년 정도 살다가 암살 당했다. 뭐 이 이야기는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그림을 독일 작가가 썼다는 것만으로도 솔깃했는데, 명화 한장으로, 또한 그 그림을 자세히 뜯어 봄으로써 작가의 생각을 읽고 난후 이 책을 썼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진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는 말이 모호하긴 하지만, 마지막에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예술의 역사로만 남겨두면 관련된 사람만 알게 되지만, 이렇게 소설이라는 방법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면 그 그림도, 그 역사도 빛을 바라게 된다는 말에 이해가 갔다. 이 책에서 내린 결론은 살해도 독살도 아니었으며, 왕 또한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약속을 했는데도, 하늘이 도우심일까 앙리4세가 원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그것이 죽는 한이 있어도.. 결과를 안다고 해도 이 소설의 가치가 떨어 지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러한 결과가 나왔는지가 더 궁금하게 되고, 읽으면서 분노하게 된다.
잠은 와 죽겠는데, 책은 보고 싶고, 그렇게 자다 읽고 자다 읽고를 몇번한 후에 결국 손에서 책을 떼게 되었다. 결론이 나왔는데도, 나는 끝까지 작가의 말까지 다 읽게 되었다. 그래서 앙리4세가 벌 받은 것에 대해서..(프랑스 사람들이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속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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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점이 있다. 보기만 해도 이상한 그림이다. 두 여인이 상체를 벌거벗은 채 모델이 되어 있다. 한 여인이 다른 여인의 젖꼭지에 손을 데고 있다. 이런 기묘한, 그리고 작자 미상인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작가는 그 시대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추리적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실존하는 인물들... 4백 여 년 전의 프랑스 왕과 그의 소실에 대한 이야기로 그 시대 정치와 정치를 위해 여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알려준다. 왕비가 되고자했지만 결혼식을 앞두고 죽은 여자. 그래서 많은 의문을 던져주는... 이 작품은 그림 한 점을 통해 현대와 과거를 넘나들고 사실과 소설을 넘나들고 있다. 그러니까 책 속의 과거 또한 소설속의 또 다른 소설이다. 역사가가 소설 형식을 빌려 썼다고 하지만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그럼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지적 호기심이다. 역사는 역사일 뿐이고 작가는 이 책 속에서 그 어떤 점도 피력하지 않으니 그림을 통한 어떤 수수께끼를 풀어 보려는 것이다. 추리적인 면에서는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림 한 점으로 이렇게 역사적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인정한다. 다만 끝이 없다는 것 그것이 아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 끝도 작가가 그림을 보는 사람이 각자 생각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정치가 등장하면 이야기가 어쩔 수 없이 씁쓸한 뒷맛을 주게 마련이다. 어느 나라나 정치란 그런 것인 모양이다. 그림 하나도 그냥 바라볼 수 없다니 아마도 정치 없는 세상이 낙원이 아닐까 싶다. 꼭지 : 이 책을 읽으면 역사 속 인물들은 모두 불쌍하기만 하다. 왕은 자신의 정부가 낳은 아이를 자기 아이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속아야, 아니 우겨야만 했고, 정부는 가족과 정치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고 결국 원하던 왕비도 되지 못했다. 왕에게 억지로 아내를 빼앗긴 남자는 어떠한가. 자신의 성적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했다. 그래야만 결혼자체가 무효가 되기 때문에. 또한 왕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기고 자신의 아이인지 아닌지, 그 아이에게 아버지임을 알리지도 못한채 살아야 한 남자는 어떠하며, 그렇게 태어나서 정략적 결혼을 한 왕자와 공주는 또 어떠하며, 고아로 자라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궁중 화가가 되려 했던 남자는 어떠한가. 그에게 단지 자신의 과욕에 의한 당연한 결과라 말할 수 있을까. 시대마다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불쌍하다. 그 불쌍함이 있기에 사람은 그래도 서로 부대끼며 사는 건 아닌지... 허무한 인생이여... 불쌍한 영혼들이여... 우리는 모두 그런 미약한 존재인 것을... 그림 하나에도 감탄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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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트 구성 주문이 안되지만, 두 권을 한꺼번에 언급하기 위해 세트를 선택했습니다.)
제목에 밝혔듯이, 소설이라기 보다는 수기나 역사 에세이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주인공이 과거 역사 비밀을 풀어가는 와중에 현재까지 이어지는 비밀단체 소속원과 활극을 벌이는, <천사와 악마>나 <다빈치 코드> 등 댄 브라운 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취향에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히스토리안> 같은, 역사를 추적해 가는 과정이 잘 표현되는 팩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 소설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다른 소설들처럼 과거의 문서를 발견하기는 하지만, 여기에 엄청난 사건의 실마리나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며,(특히 반카톨릭 단체가 등장하지 않으며 도식적인 선악 구분이 없는 점이 신선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 도중에 결론이 다 나오는 구성의 허점도 없다. 다양한 등장인물의 시점과 자료 인용도 재미있었다. 특히 소설이 끝나고 2권 부록에, 문학 전공이 아니고 사학자인 작가가 왜 이 그림에 빠져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논문이 아닌 소설을 발표하게 되었는지를 서술한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평범한 애호가의 열정이 느껴진다고 할까.
소설은 액자식 구성이다. 현재 '나'가 루브르에 소장된 그림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에 이끌려 관련 자료를 추적하는 내용이 겉 얼개이고, 속 이야기는 프랑스 앙리4세 시기인 1590년 경을 다룬다.
유럽의 16세기는 참 이야기거리가 많은 시기이다. 영국의 헨리8세와 엘리자베스여왕, 신성로마제국의 카를로스 1세와 그 후손들, 카를로스의 천적인 프랑스의 프랑수아1세와 며느리 카트린느 드 메디치, 카트린느의 자녀들, 마고와 앙리4세, 그리고 그 사이의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군주들, 토스카나 대공과 교황청,,, 그 중 소설은 프랑스 위그노 전쟁시기의 앙리4세와 그의 여인 가브리엘을 다룬다. 종교전쟁 시기의 프랑스 도시 풍경 묘사가 흥미롭다.
낭트 칙령으로 프랑스의 분열을 막은 앙리4세가 호색군주였던 것은 사실이다. 오랜 세월을 같이하고 자신의 아이를 셋이나 낳은 여인에게 결혼약속을 하면서도 피렌체와 국혼 교섭을 벌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소설은 앙리를 가브리엘을 살해한 파렴치한으로 단정적으로 몰고 가지는 않는다. 바로 이 점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작가는 단문으로 건조하게 서술한다. 당시 프랑스는 오스트리아, 에스파냐, 네덜란드까지 차지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럽에서 유일하게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적할 만한 세력이었다. 앙리는 그것을 안다. 앙리는 그의 여인들을 사랑하나, 그는 조국, 통일 프랑스를 언제나 잊지 않는다. 정치적인 고려 없이 그의 여인들을 왕가 - 퍼플 라인 - 의 호적에 올리지 않는다. 이 부분의 서술을 보자.
센 강 위로는 퐁뇌프 다리가 펼쳐져 있고, 그 다리 가운데에 있는 주춧돌의 뾰족한 끝에는 앙리 4세의 기마상이 마치 유령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그 비련의 여인이 죽음을 맞았던 그곳에서 지척의 거리에,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국왕 나바라 앙리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거기에 그는 앉아 있다. 당연히 말 안장 위에, 진정한 군인으로, 짐스러운 왕관을 쓴 채로 말이다. 그 기사는 사제 공관(가브리엘이 죽은 곳 - 내가 씀)과 루브르를 등지고 있다. 그렇다. 그는 이제 어느 방향으로 돌진해 나갈지 잠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그는 고삐를 잡아당겼고 사제 공관 쪽이 아닌 그의 도시, 그의 제국을 향해 달려 나갔다. -247쪽
바로 이 부분을 읽기 위해 나는 이 소설을 읽었나 보다. 작가가 다 말해 버리는 것보다 백배 멋지지 않은가? 이 소설을 두고 결말이 없다고 보는 독자들도 있겠다만,,,
(사족을 달자면, 도판 인쇄상태가 안 좋다는 것, 그리고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토스카나 대공,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페르디난도 대공에 대한 번역 오류이다. 179쪽을 보면 '페르디난도 대공은 그의 동생 프란체스코와 제수씨인 비앙카 카펠로를~'이렇게 나오는데, 사실 페르디난도는 프란체스코의 동생이다. 책의 다른 부분에서는 페르디난도가 추기경 출신이라는 등, 정확하게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작가의 오류가 아니라 번역의 오류같다. brother를 그냥 번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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